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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 장미 꽃다발
모여드는 시선은 복잡하다. 전, 그러니까 어제 나를 보던 승무원들의 시선에 존경과 감사만이 담겨 있었다면 오늘은 그 외에 온갖 감정이 가득한 것이다.
“으으 대체 어떻게… 내 여왕님을…….”
“원통하다…… 복수 할 거야…….”
“하지만 그는 우리의 은인인데?”
“맞아. 아니었으면 이미 나한테 죽었지…….”
스멀스멀대는 어둠의 기운에 피부가 따끔따끔하다. 솔직히 짐작 못 하던 바는 아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겪으니 식은땀이 흐른다.
‘쳇. 이래서 숙소에서 식사를 챙겨 먹고 싶었는데.’
그러나 선체의 40% 이상이 파괴되어 전투가 끝난 직후에는 제대로 된 비행조차 힘들 정도였던 알바트로스 함은 비행 기능과 아스트랄 드라이버를 최우선적으로 정비하기 위해 중요도가 떨어지는 기능 대부분에 제한을 걸었다. 때문에 우리는 선실에서 전이된 음식물을 받았던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거주구역에 위치한 식당으로 직접 이동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정말 시선이 두려우면 동민이나 보람에게 부탁하면 될 일이지만…….’
그러나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세레스티아와 혼인하기로 결정한 그 순간부터 대중의 시선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것이 되었으니 지금 이 정도야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나를 보는 시선에 살기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과연 내 생각은 틀리지 않은 것인지 내 앞으로 다가온 사내가 정자세로 경례를 올린다.
“존경.”
“…충성도, 필승도, 황제 폐하를 위하여도 아니고 존경이 뭡니까, 존경이.”
내 어이없다는 표정에도 붉은 머리칼의 미남자, 알렉스 대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뿐입니다. 캬, 설마 우주를 밝게 비추던 별빛의 마음을 빼앗는 게 가능한 일일 줄 몰랐습니다. 저는 제가 제법 난다 긴다 하는 놈인 줄 알았는데 하늘 위의 하늘이 있군요. 당신은 저희 조종사들의 꿈과 희망입니다.”
“맞습니다. 찌질한 놈들이 유령님을 질시해서 뒷말을 하는 모양이지만 저희 같은 팬들도 있다는 걸 기억해 주십시오.”
“할 줄 아는 게 돈질, 권력질밖에 없는 멍청이들에 비하면 유령님이 훨씬 대단하죠!”
“전투 정보 매일 돌려 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우주적인 천재예요!”
“싸, 싸인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수급 기가스 중에서도 특별히 강력하던 천둥룡의 조종사 알렉스 대위를 비롯한 몇몇 조종사가 다가와 시끌시끌 떠든다. 나는 비인들에 의해 전멸의 위기에 처해 있던 알바트로스 함을 구한 전쟁 영웅이었기에 추종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나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기밀이다.
내 부탁에 따라 천현일 소장은 내 활약 상당수를 기밀로 지정해 유출을 막았다. 특히나 신급 기가스 아레스의 존재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에 붙였으며 직접 목격한 이 전부에게 보안 서약서를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엄청난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기밀로 막힌 활약을 제하고 보더라도… 내 활약은 일개 조종사의 그것을 넘어섰다. 특히나 내가 유령으로 활동하면서 벌인 활약과 그 전투 기록은 충격적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라서 세레스티아와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본성에서 연락이 왔을 것이라 한다.
“인기 좋군.”
“시끄러워, 이 녀석아. 가서 갈비탕이나 가져와.”
“저는 라면이요.”
중얼거리는 동민에게 밥셔틀의 영광을 안겨준 후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알렉스 대위를 비롯한 조종사들이 식당을 떠났지만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홍수는 멈출 생각이 없다.
“뚫어지겠네요, 뚫어지겠어. 그나저나 어때요, 우주 아이돌한테 고백 받은 기분이란?”
“심란하지.”
“하하, 시선 때문에 그러시나 본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참고 넘겨요. 하지만 설마 그녀와 선배가 이어질 줄이야… 세상일 정말 알 수가 없어요.”
보람은 내가 세레스티아와 사귄다는 사실에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소란을 좋아하지 않고 외모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렇다.
‘하긴 당연한가.’
말이야 바른말이지 나와 세레스티아가 사랑에 빠질 당위성(?)은 넘치도록 충분하다. 나와 그녀는 인간 포로를 두지 않기로 유명한 비인들에게 함께 납치당했으며 그들에게 온갖 고난과 고초를 당하다가 서로 힘을 합해 탈출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엑사급의 우주모함 대천공이 반파되었을 정도였으니 어지간한 할리우드 영화 이상으로 스펙타클한 탈출을 그녀와 함께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고난과 역경을 겪었으니 서로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도 이상할 게 없다, 라는 게 사람들 사이의 중론이었고… 배경도 재산도 뭣도 없이 가진 거라곤 뛰어난 조종 실력뿐인 나와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녀이자 우주적인 유명세를 자랑하는 아이돌인 세레스티아의 로맨스는 승무원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라고 한다.
“앗! 대하야!”
그리고 그때 그 로맨스의 당사자께서 모습을 드러내셨다.
와락!
당연하다는 듯 달려들어 내 팔을 안아 드는 세레스티아를 떨쳐 내지도 못하고 뻣뻣한 표정을 짓는다. 세레스티아는 내 팔을 끌어당겨 얼굴을 가까이 대더니 내 귀에 속삭였다.
“이 멍청아, 표정이 왜 그래. 너 진짜 협조 제대로 안 할래?”
으르렁거리는 그녀의 말에 항의한다.
“깜빡이도 안 켜고 들어와서 그런 거 아냐! 놀란다고!”
“내, 내 포옹을 접촉 사고 취급하다니!!”
소리 죽여 티격태격하는 우리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들이 심장을 부여잡으며 주저앉는다. 황당하게도 개중 몇몇은 피를 토했다.
“크윽! 여왕님이… 우리 카리스마 넘치는 여왕님이…….”
“이건 현실이 아니야…….”
멸망하는 세상을 눈앞에서 목격하기라도 한 듯 참담한 분위기였지만 세레스티아에게 그런 것들은 그냥 길가의 전신주 같은 지형지물로 보이는지 시선조차 주지 않고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어쨌든 빨리 따라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야.”
“음? 하지만 나 곧 식사가…….”
“내가 따로 챙겨줄 테니까 따라와!”
그렇게 말하며 그대로 이동하는 그녀에게 질질 끌려간다. 당연하지만 저항은 불가능하다. 코끼리가 끌고 가는데 인간이 어찌 버틸 것인가?
‘쳇. 이제 영력도 많은데 이 꼴이라니.’
내심 혀를 차는 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심장에 깃든 나폴레옹의 영력은 어지간한 고위 능력자 정도는 우습게 넘어설 정도로 막대한 양이지만 내게는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그 어떤 이능도 없다.
‘처음에는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일반적인 영력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단 말이지. 그 어떤 영능법으로도 다룰 수가 없다니.’
나는 다른 능력자들이 그러하듯 내 영력을 이끌어 움직일 수 없다. 내 심장에 깃든 아이언 하트는 스스로 약동하며 온몸을 휘돌 뿐 특정한 운기법이나 명상법에 제어되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사용하는 방법은 오직 [책]에 새겨진 어빌리티를 발동하는 것뿐.
그런데 거기에도 문제가 있다.
‘쓸 만한 어빌리티가 하나도 없어.’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마렌고의 질주>
<죽지 않는 황제>
이 세 가지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어빌리티였는데 그중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증폭스킬이니 의미가 없고, 일정 거리 안에 있는 아이언 하트를 향해 초고속으로 이동하게 만들어주는 마렌고의 질주도 의미가 없긴 마찬가지다. 우주에서라면 아이언 하트가 일종의 지표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맨몸으로 전함 내에서 그런 스킬을 쓰면 벽으로 날아가 충돌할 뿐이니까.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죽지 않는 황제를 이용한 육체 재생뿐이다. 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로 증폭시킨 초재생이라든가.
‘결국 뭘 하려고 해봐야 고기 방패밖에 안 되는군.’
그나마도 일격에 죽게 되면 다 소용없는 일이니 능력으로 싸울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회복 기술 생긴 걸로 만족하며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딴생각 그만하고 스스로의 다리로 걷는 게 어때?”
“왜, 지금 편하구만.”
“확 던져 버린다?”
왠지 모르게 점점 과격해지는 세레스티아의 목소리에 냉큼 자세를 고쳐 그녀를 따라 걷는다. 뒤돌아보니 보람과 동민이 따라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몇 개월간 경호를 하다 보니 제법 익숙해진 녀석들이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니. 그 본성인가 하는 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없는 거 아냐?”
“원래는 그렇지만 이제는 아냐. 아, 정말 그 영감탱이 진짜.”
“……??”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의아해하면서도 그녀를 따라간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더니 표시판에 아무런 글자도 뜨지 않는 층에서 멈췄다.
“흠. 잠깐, 대하.”
“선배, 뭔가 위험한 느낌인데요?”
동민과 보람이 거의 동시에 내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긴장된 눈으로 앞을 보는 걸 보니, 뭔가 우리 앞에 위험한 존재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 걱정하지 마. 적은 아니니까.”
“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 느낌은…….”
세레스티아의 말에 동민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할 때, 우리 앞으로 염소 뿔 달린 노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오! 여왕님, 오셨구려. 늙은이가 직접 가지 못하고 움직이게 해서 정말 송구스럽소.”
전체적으로 선량한 표정의 노인이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가만히 있어도 웃는 표정을 만들어내는 실눈. 뭔가 기쁜 일이라도 있는 듯 방긋거리는 표정.
그러나 그런 그를 본 동민과 보람이 거의 동시에 신음했다.
“마족…….”
“미쳤어. 공작급이라고?”
경직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들은 인간 수준에서 더없이 강력한 능력자였지만, 어차피 초월자를 상대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 경호를 포기할 생각은 없는지 전투 태세를 취하며 내 앞을 막아선다.
“잠깐. 둘 다 진정해. 그는 적이 아냐. 마족도 아니고.”
“하지만 이 기운은…….”
“이런, 이런. 민감한 친구들이군.”
염소 머리의 노인이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선다. 자신을 적대하는 둘의 모습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너무 경계할 건 없네. 그리고 공작급이라니 지나친 소리야. 그 정도의 힘도 없을뿐더러 나는 순수 마족이 아닌 혼혈이니까.”
“마족과 인간의 혼혈.”
“그렇다네. 뭐 어쨌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거기 자네가 그 [유령]이라는 사내인가?”
“예.”
“오오, 역시 그렇군. 그럴 것 같았다네.”
별로 숨길 일도 아니었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양 뿔 달린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눈을 치켜떴다.
번뜩!
눈동자도 잘 안 보이던 눈이 크게 떠지며 육망성이 새겨진 왼쪽 눈동자와 검게 불타는 불꽃 문양이 새겨진 오른쪽 눈동자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서글서글하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지고 전신에서는 무시무시한 마기가 피어오른다.
방금 전의 선량한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흉악한 외양. 그가 소리쳤다.
“그렇다면 죽어라 애송이!!!! 히요---- 옥?!”
그러나 뻑! 하고 가죽 푸대를 후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시무시한 기세를 뿌리던 노인이 털썩 쓰러진다.
피 묻은 금색 권총을 든 세레스티아가 사과한다.
“아, 미안미안. 이 영감탱이가 좀 또라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