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9 / 0117 ----------------------------------------------
Chapter 15 전신 강림
“그냥 단순하게… 출력이 강한 적이라니.”
나는 단순 힘 싸움을 강요하는 적에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탄다고 기가스의 출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방어도 회피도 불가능하다, 파트너! 뒤로 빠져야 해!]
“나도 알지만 지금 뒤로 빠져 봤자 어딜… 이런!”
어빌리티 영자 흡수를 발동해 골드리안에서 뿜어지는 빛을 막아냈지만 실패. 아까보다는 나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배리어가 한 움큼 뜯겨 나가고 그 충격이 나폴레옹의 기체를 덮친다.
[파트너! 죽지 않는 황제를 발동시켜야 해.]
“하지만 에너지가 너무 간당간당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다음 공격에 기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어.]
“…잠깐만 기다려 봐.”
나폴레옹을 진정시키고 정신을 집중한다.
‘더하기. 더하기. 더하기…’
<관통> 어빌리티를 발동한다. 관통 어빌리티는 지금 골드리안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 적의 방어를 날려 버리는 그런 식의 공격이 아니다.
대신 방어에 구멍을 낸다.
나머지 배리어가 다 멀쩡하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 공격만 배리어를 넘어갈 수 있다면 적의 남은 에너지 잔량 따위는 알 바 아니니까.
‘그리고 거기에.’
<저격> 어빌리티를 발동한다. 사격의 사정거리를 늘리고 파괴력 또한 더한다. 거기에 어느 정도 관통 효과도 가지고 있으니 관통의 사격 특화 어빌리티라고 해도 좋겠지.
‘마지막으로…….’
<침식> 어빌리티를 더한다. 적의 영력에 접하는 순간 마치 독처럼 퍼져 나가는 어빌리티로 1의 마나를 집어넣으면 최소 3에서 5의 마나를 못 쓰게 만들어 버리는 공격적인 영력을 주입하는 방식이다. 적의 장갑에는 조금의 타격도 줄 수 없기에 단독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자신을 막아서는 배리어를 일순간 약화시킬 수 있기에 이렇게 어빌리티 융합을 사용하면 꽤 괜찮게 활용할 수 있다.
우웅--!
저격, 관통, 침식 어빌리티가 합쳐져 광자포에 실린다. 당연하지만 이 한 방에 실리는 수고와 영력이 보통이 아니니 빗나가면 그냥 실패했다 정도의 타격으로 끝나지 않는다.
‘물론.’
피식 웃으며 나폴레옹을 조작해 방아쇠를 당긴다.
‘빗나갈 리 없지만!’
퓨웅! 하고 새카만 우주를 광자포가 가로지른다. 골드리안은 별다른 저항조차 못하고 그걸 얻어맞았다.
펑!
“뭐?”
신음한다. 왜냐하면 정확한 명중에도 골드리안의 머리가 움찔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부 장갑이 튼튼해도 이 정도 공격을 맞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결과적으로 녀석은 내 공격을 맞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막았다! 포기하고 물러서!]
“아니, 무슨 전함급 배리어도 아니고 이게 안 먹힌다는 게 말이 돼? 골드리안이 좋은 기체인 건 사실이지만 절대 이 정도는 아닌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설사 녀석이 배리어를 강화했다 하더라도 3중 어빌리티라면 관통 자체는 되어야 정상이다. 심지어 3개의 어빌리티 중 2개나 관통 효과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막히다니. 차라리 배리어를 관통한 다음 장갑에 막혔다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배리어에서부터 막혔다니 답이 없다.
[파트너! 중력 제어부에 균열이 생겼다! 수리해야 해!]
“으, 알았어. 지금… 음?”
그러나 막 <죽지 않는 황제>를 가동시키려는 순간 뭔가 번뜩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직감적인 판단에 따라 주변을 포위만 하고 있던 다른 기가스를 향해 <마렌고의 질주>를 가동했다.
쿠오오오---!!
그러나 미묘하게 늦었다. 막 돌진해 나가는 순간 내가 있던 자리에 웜홀이 생겨나며 나폴레옹의 왼팔이 빨려 들어간 것이다. 반사적으로 배리어를 발동했지만 아무런 방어가 되지 못했다.
[이건 뭐야?]
“제길! 고유 어빌리티다!”
날아드는 것도 아니고 특정 위치에서 기척도 없이 터지는 웜홀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 골드리안에는 이딴 어빌리티 따위 달려있지 않으니 뭔가 대단한 혈통을 가진 상대가 녀석에 타고 있는 모양이다.
샤아앙---!
그리고 그때 다시금 골드리안이 빛나기 시작한다. 회피가 불가능한 파동형 공격이 또다시 날아드는 것이다.
“나폴레옹, 에너지는?”
[…3%. 평시였으면 대기모드로 바꿨을 거다. 더불어 왼팔과 함께 상당수의 장갑이 날아가서 배리어가 걷히면 바로 아발론 시스템에 타격이 올 거야.]
“제길.”
헛웃음을 짓는다. 방금 그 웜홀에 휩쓸리면서 또다시 에너지가 왕창 날아갔다. 흡수하기에는 너무나 강렬한 파도라고 할 수 있는 적의 파동형 공격을 더 이상 막아낼 수 없는 사태에 몰리게 된 것이다.
[탈출시키고 싶지만 지금 이대로 탈출해도 상황은 마찬가지겠지?]
“당연하지 단체전도 아니고 시선이 이렇게 몰려 있는데 탈출포트를 놔둘 리 없으니.”
허탈하게 웃으며 파도처럼 밀려오는 빛무리를 바라본다.
그러나 순간 새로운 발상이 떠올랐다.
“…힘 빼, 나폴레옹.”
[뭐?]
당황하는 나폴레옹을 무시하며 정신을 집중한다. 나폴레옹의 아이언 하트와 깊게 동조하기 시작하자, 거대한 나폴레옹의 몸이 내 몸처럼, 금속으로 이루어진 장갑이 내 피부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쿠우우!!!
몰아치는 파도에 몸을 던진다. 모든 걸 파괴하고 망가뜨리는 파괴적인 빛의 파동. 그러나 나는 거기에 저항하지 않고 그 흐름을 탔다. 마치 격한 물살에 휩쓸리는 것처럼 한순간 나폴레옹의 기체가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는 게 느껴졌지만, 그것은 우리와 적의 간격을 벌리는 데 도움을 줬을 뿐 기체에는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후우…….”
깊이 숨을 몰아쉰다. 한순간 너무 집중해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뭐, 뭐야? 파트너 지금 뭘 한 거야?]
“막을 수 없으니 흐름을 탔지. 다만 어디로 밀릴지는 통제를 할 수가 없… 네!”
콰득!
쾅!
넓게 포진해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기가스가 기겁해 광선검을 휘둘렀지만 쉽게 털어내고 가슴팍에 팔을 박아 넣는다.
“미안. 가급적 살인은 하고 싶지 않지만 여유가 없어서.”
나에게 붙잡혀 버둥거리는 수급 기가스를 향해 가볍게 사과하고 영자흡수를 가동한다. 지금까지야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식으로 썼지만 원래 영자흡수는 이렇게 사용하는 기술이다. 다만 <메마른 심장>처럼 단박에 힘을 다 빨아들이는 기술이 아니라 적의 영력을 영구적으로 손실시키며 자신의 아이언 하트를 강화시키는(물론 한계가 있다. 없었으면 이것도 레전드급이었을 것이다) 기술이기 <메마른 심장>처럼 에너지 상태가 극적으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회복된 에너지는 10% 정도였고.
[와---!! 진짜 대단해! 뭐야, 대체?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그런데 그때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익숙할 정도는 아니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6황자의 목소리에 인상을 찡그린다.
“아, 뭐야. 통신 차단했는… 웃차!”
어느새 다가온 골드리안이 어빌리티로 만들어낸 <황금망치>를 마구 휘두른다. 스치기만 해도 그대로 박살 날 공격이었지만 나는 블링크 노하우 중 하나인 삼연보(三連步)를 발휘해 그것을 피해냈다.
[저것 봐! 지금 짧게 세 번 공간이동해서 피한 거 맞지? 저런 좌표 계산을 어떻게 전투 중에 하지?]
다시 시끌시끌하게 전해지는 목소리에 인상을 찡그린다.
“야, 나폴레옹. 통신 좀 막아봐. 저 스팸메일 같은 놈이 계속 떠들잖아.”
[미안하지만 통신이 아니라 못 막는다. 그리고 나한테는 안 들려.]
“…텔레파시구만.”
기가 막혀서 혀를 찬다. 이 드넓은 우주 공간에서 상대방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렇게 쉽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니. 우리는 현재 맞붙어 싸우는 상태가 아닌데다가 고속으로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간의 간격이 심하면 수십 킬로미터 이상 벌어지기도 하는데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선명한 목소리다.
[파트너, 통신 요청이 들어왔다.]
“어차피 말 걸고 있으면서… 열어.”
내 말에 화면 일부분에 금은 커플의 모습이 비춰진다. 뇌파 조종을 하는 듯 별다른 부착 물 없이 조종석에 앉아있는 6황자는 자신의 무릎에 앉은 천사의 가냘픈 허리를 팔로 감싼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기가스에 타고 있다. 역시 골드리안을 조종하는 건 녀석이었나.’
하긴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골드리안은 황족 전용 기체라고 했었으니까. 다만 저 천사까지 같이 조종석에 앉아 있을 줄은 몰랐다.
“뭡니까?”
일단 말을 건다. 아이언 하트는 지구에서 사용하는 연료 엔진과 다르게 에너지가 소모되어도 잠시 놔두면 회복되기 때문에 시간을 끄는 건 사실 나에게 나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영자력 발생기라는 이름을 가진 게 아니라는 말이지.’
출력 하나로 나를 짓밟으려 드는 조종 방식은 마음에 안 들지만 간당간당한 에너지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가만히 6황자를 지켜본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6황자는 환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너 되게 마음에 든다. 내 아래 있는 장군 중에서도 너처럼 움직이는 녀석이 없었어.]
“칭찬 고맙네요. 그래서요?”
물론 그렇다고 시간을 끈다는 인상을 줄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삐딱하게 답했다. 황족을 대하는 태도라기에는 꽤 건방진 태도였는데도 6황자는 별로 마음 상한 분위기가 아니다.
[너 내 부하 해라. 살려줄게.]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제의. 그러나 그때였다.
“그건 곤란하오.”
“이런 미친…”
신음한다. 왜냐하면 반대의 목소리가 화면 속도 아닌 바로 옆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심장이 떨어질 것처럼 놀랐지만 최대한 감정을 수습하고 옆을 슬그머니 돌아보았다.
“아까운 마음은 이해 가지만 이 녀석은 우리 계획에 차질을 주게 될 것이오. 이 기회에 죽여놓는 것이 좋소.”
“…….”
태연하게 내 죽음을 말하는 망할 깡패 신선의 말에 조마조마한 심정이 된다. 그러나 이내 이를 악물었다.
‘그래. 죽이려면 벌써 죽였다. 이 녀석은 나한테 손끝 하나 못 대.’
어차피 이 녀석이 작정하고 힘을 쓰면 기가스고 뭐고 소용없는 상황. 나는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먹고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6황자가 말했다.
[하지만 난 저 녀석 가지고 싶은데?]
“참아야 하오,”
[헤에. 아버지의 말을 거부하는 거야? 이거 혼내줘야겠는걸.]
장난스러운 말투에 청원의 표정이 차갑게 식는다.
“6황자…….”
청원의 눈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한다. 주변 온도가 뚝 떨어졌다.
“적당히 하시오.”
엄청난 위압감이다. 그 목표가 내가 아니었음에도, 숨이 턱 하고 막힐 정도. 하지만 그런 그를 보는 6황자는 겁을 먹는 대신 항상 싱글벙글하던 표정을 굳히며 눈을 크게 떴다.
단지 눈을 크게 떴을 뿐인데도 분위기가 급변한다.
[적당히 안 하면.]
선량하던 그의 인상은 온데간데없고 광기 넘치는 살기만이 스크린 너머로 전해진다.
[어쩔 건데?]
무시무시한 기백이다. 물론 지금 청원의 상황과 입장, 그리고 그의 위치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는 하나 중급 신위를 가진 청원에게 기 싸움으로 밀리지 않는다는 건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무릎에 앉아있던 천사의 표정이 야릇해진다.
[우리 멋진 엘… 또 반할 것 같아.]
[헤헤. 우리 자기도 예뻐.]
방금 그 광기 넘치던 또라이는 어디로 간 건지 순식간에 헤실헤실한 얼굴로 천사와 키스한다. 그냥 입술을 마주치는 정도가 아니라 혀가 오갈 정도로 진한 키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6황자의 손이 슬그머니 움직이더니 천사의 웃옷으로 쑥 하고 들어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하읏… 하앙……!]
점차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달콤한 신음 소리에 황당해한다.
‘아니, 이 년놈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6황자.”
황당한 감정을 느끼는 건 나뿐이 아닌 듯 청원도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부른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흐아아앗~~♡!]
아주 끝까지 갈 것 같은 기세로 터져 나오는 비음(鼻音)에 어안이 벙벙하다. 인간이고 천사고 금색이고 은색이고 제정신이 아니다.
완전 또라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