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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전신 강림
순간 떠오른 가설에 세레스티아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하와는 그녀의 가설에 확신을 안겨주는 말을 던졌다.
“특히나 적의 사지를 잘라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그 특유의 기술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전 우주적으로 유명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지. 아니, 이제는 될 예정이었었다고 해야 하겠군.”
어떤 존재가 스스로를 단련해 깨달음을 얻으면 그는 초월지경에 이르러 세계의 법칙을 넘어선 초월자가 된다.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고 종의 한계를 넘어서 하급 신위를 쟁취하게 되는 것으로 현경에 이른 절대고수나 9클래스의 경지에 도달한 대마법사, 혹은 성계신의 명령에 따라 행성을 관리하는 신령(神靈)과 용왕(龍王) 등이 바로 여기에 속하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급 신위라는 것은 초월자 중 낮은 위치라는 뜻이니 당연히 그 상위의 경지가 존재한다. 흔히 황제 클래스라고 불리는 중급 신위가 바로 그것으로 생사경에 이른 고수나 10클래스에 도달한 궁극의 마도사, 혹은 한 종족을 관리하는 종족신(種族神)이 바로 거기에 해당하는 이들로 세레스티아를 핍박했던 엘로힘의 신선 청명 또한 여기에 속한다.
사실 이 중급 신위에만 올라도 가볍게 행성을 파괴하고 항성조차 사멸시키는 게 가능할 정도의 괴물이기에 온갖 강자가 난무하는 대우주에서조차 적이 별로 없을 정도.
그리고… 그 경지조차 넘어서면 상급 신위를 가진 진정한 신, 언터쳐블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스스로의 존재 자체마저도 초월하여 하나의 개념과 동화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들은 그리 널리 알려진 정보는 아니었지만 세레스티아는 빠르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역사나 신화보다는 사격과 전쟁에 더 관심이 많은 소녀였지만 동시에 고급 교육을 받는 황족이기도 했던 것이다.
“개념 지배…….”
모든 상급 신위를 가진 존재가 그 힘을 가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녀 앞에 있는 이브와 그녀의 반려 아담은, 그리고 또 다른 연합의 대적 킹(King)과 퀸(Queen)은 그런 종류의 힘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단순히 상급 신위를 가진 강자를 넘어서 특수한 위(位)을 가진 [신]은 특정하는 개념을 자신의 근간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하나의 특징이 있다.
‘해당하는 개념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
마법의 신, 무의 신. 빛의 신이나 어둠의 신. 시간의 신이나 공간의 신. 그리고 생명의 신과 죽음의 신 까지…….
그들은 해당하는 개념을 [지배]하고 [소유]한다. 특히나 마법의 신이나 무의 신 같은 영능의 주인들은 해당 카테고리의 모든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마법의 신은 천지가 창조될 때 존재하던 비밀스러운 주문부터 세상이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미래의 최신 마법까지 모르는 것이 없으며 무술의 신은 최초의 존재가 내뻗은 주먹질부터 수천 년의 개량 끝에 만들어질 미래의 무학마저도 이미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부터 영원까지.”
그들은 자신이 지배하는 개념 그 자체이기에 적어도 해당 개념에 한해서는 그 어떤 제약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심지어 시간축의 영향에서조차 자유롭기 때문에 태초부터 영원까지 그들은 자신이 지배하는 개념을 완벽하게 소유한다.
즉 아무리 오랜 시간 단련하고 강력한 힘을 얻은 존재라도 [개념 그 자체]인 상급 초월자들을 해당 개념으로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대하는 인간이에요. 그것도 지극히도 평범하고 약한…….”
“맞아.”
“…그런데 존재하는 모든 기교를 다 알고 있다고요? 아니,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한 [개념]이라는 게 뭐죠? 조종술의 신인가?”
이해할 수 없다는 세레스티아의 물음에 하와가 답한다.
“정확히 인식하고 알고 있는 건 아닐 거야. 그건 그저, 그의 바탕을 이루고 있을 뿐이지.”
대하는 모험왕 카를로스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자신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영자 흡수의 사용법이 누군가 평생을 걸려 고안해 낸 방식이라는 사실 역시 알지 못했다.
그것은 그냥, 그가 자연스럽게 [떠올린] 것이다.
다 마찬가지다. 가급적 인간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몇 십 년 뒤에 정립될 불살법(不殺法)을 떠올린다.
적이 그의 사격을 피하지 못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까마득한 과거부터 수없이 많은 이가 스마트 건으로, 전자식 총기로, 함포와 광자포로 적을 사격해 왔다.
개중에는 수십 킬로미터 너머에서도 동전만 한 표적을 맞추는 저격수도 있었고 넘어지는 와중에도 허공에 던져진 십 수 개의 동전을 모조리 관통시키는 트릭샷의 대가도 있었다. 함포를 발사해 적 전투기의 조종석만 날려 버리는 실력자도, 날아드는 수십 발의 미사일을 일일이 요격시키는 실력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기교가, 기술이, 노하우가 알게 모르게 그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사실상 우주 최강의 조종사라고 해도 과언이… 잠깐만요.”
세레스티아는 고개를 돌려 하와를 바라보았다. 하와는 우주에서 싸우고 있는 나폴레옹을 보고 있을 뿐 그녀에게 시선조차 두지 않았지만 세레스티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걸 왜 나한테 말해주는 거죠? 대체 뭘 보고 뭘 바라는 거예요?”
언터쳐블의 무서운 점 중 하나는 바로 전지(全知)라 불리는 힘이다. 세계의 흐름을 읽어내는 초월적인 지각능력을 가진 그들이기에 하위의 존재들을 너무나 쉽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게 가능하다.
“글쎄.”
그러나 경계심이 담긴 세레스티아의 목소리에 하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묘한 표정으로 연신 섬광이 터지고 있는 우주 공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글쎄…….”
그것은 하와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직 자신의 마음조차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아담에 의해 자신의 [조각]에서 깨어났을 때는 그의 부탁, 아니, 명령에 따라 대하를 제거할 생각이었지만, 막상 그와 마주친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어째서.’
태연한 척했지만 그녀는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하고 자신의 마음을 결정할 수 없다.
‘이렇게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니…….’
흐릿하다. 처음 봤을 때는 윤곽이나마 보였는데, 이제 와서는 대하는 물론이고 심지어 세레스티아의 미래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세계의 흐름을 읽어내는 초월적인 권능, 전지(全知)가 완전히 먹통인 것이다.
그리고 그를 볼 때마다 자꾸자꾸 솟아오르는 호의적인 감각이 그녀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의 존재를 들었을 때 느꼈던 분노와 질투가 다 거짓이었다는 듯 수그러들고 있었다.
‘이건 위험해.’
그러나 그것을 느끼면서도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그를 죽일 수도, 그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번쩍--!
그런데 그때 아무것도 없던 나폴레옹의 위쪽에서 엄청난 빛이 터져 나온다. 세레스티아는 깜짝 놀라 전장정보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새롭게 등장한 기가스의 정보가 표시되고 있었고, 그것은 그녀에게도 매우 익숙한 종류의 것이었다.
“뭐야, 골드리안을 출격시켰다고? 어째서?”
황금성좌(黃金星座) 골드리안. 그것은 황족들을 위한 황실의 기가스이다. 레온하르트 제국에도 흔치 않은 성(星)급의 기가스.
하지만 골드리안은 오직 황족만이 탈 수 있는 기체다. 결국 현재 라이징 스톰에서 골드리안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6황자 엘리언뿐이라는 말인데 그가 왜 굳이 지금 전장으로 나선단 말인가?
“죽이기 위해서. 그리고… 어쩌면 그들은 목표를 이룰지도 모르겠군.”
불길한 하와의 말에 세레스티아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게 무슨… 대하가 개념을 지배하는 언터쳐블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건 당신 아니었나요?”
물론 골드리안은 나폴레옹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가스이고 엘리언도 제법 괜찮은 조종사이지만 상대가 언터쳐블이라면 상황이 전혀 다르다. 실제로 대하는 기가스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전력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하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가 지극히 평범하고 약한 인간이라고 말한 건 너였지.”
“…평범한 인간인 게 문제다?”
“보기보다 더 눈치가 빠르군.”
후후후, 하고 웃는 그녀의 모습은 우아하고 기품 있다. 분명히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그녀를 감싸는 분위기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했다.
“뭐 그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말은 틀렸지만 적어도 인간의 육신에 갇혀 있는 것만은 틀림없지. 그리고 그렇다면.”
번쩍!
눈부신 빛과 함께 나폴레옹이 배트에 얻어맞은 공처럼 튕겨 나간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골드리안이 그 뒤를 쫒았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그 어떤 기교도 소용이 없어.”
그렇게 말하며 하와는 어지럽게 공간을 뛰어넘으며 골드리안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나폴레옹을 보았다.
그녀는 대하를 죽일 수 없다. 그와 마주하는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간접적인 방법으로도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혈육이다.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를 보면 볼수록 그 말도 안 되는 가설에 확신만 더해질 뿐이니 의심할 수조차 없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모든 걸 그에게 맡기고 싶은 마음이 들불처럼 일어난다.
‘하지만 안 돼.’
그녀는 이미 리전 안에서 실권을 잃었다. 그녀는 산산이 부서져 조각만이 남았고 그녀를 부숴 먹어치운 아담은 더욱 더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미쳐 버린 그는.
절대로 대하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게 유일한 방법이야.’
그가 여기서 죽는다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아담이 미쳐 폭주할 일도 없다. 오히려 그 광기가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하와는 나폴레옹을 쫒고 있는 골드리안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손에 죽는 거야.’
*
쾅!
폭음이 터진다. 아발론(Avalon)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조종석이 울릴 정도니 나폴레옹이 얼마나 막대한 타격을 받았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 나는 점멸을 이용해 몇 번이고 위치를 바꿨지만, 다 소용없는 저항이다.
쾅!
“이런 제기랄! 뭐 이런 게 다 있어!?”
영자 흡수로 간신히 막아냈지만 그럼에도 한방에 배리어가 다 날아간다. 회피는 불가능했다. 골드리안은 마치 태양이 우주를 밝히듯 모든 방향으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파트너! 이상하다! 골드리안이 강한 기체라는 건 알지만 이 정도는 아니야!]
“그건 나도 알아!”
많이 타본 건 아니지만 골드리안을 타고 비인들의 전함 [징벌]을 포획까지 해봤던 나다. 당연히 골드리안의 성능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샤아앙---!
“제길 또!”
골드리안에서 빛이 뿜어진다. 어떻게든 영자 흡수를 발동해 막아낸 후 배리어를 강화했지만, 마치 바람이 촛불을 꺼버리듯 훅 하고 배리어가 다 날아가고 타격이 들어온다.
“나폴레옹, 남은 에너지는?”
[15%다.]
“아, 뭔 잠깐 사이에 25%나 날아가!”
신음하며 내 앞으로 날아드는 금빛의 거인을 바라본다. 크기로만 치면 아까 목을 날려 버린 골리앗과 비슷한 정도지만, 그 전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적이다.
“제길. 이런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떤 적을 상대로도 불리한 적이 없었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많은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고 언제나 기교면에서 상대를 압도했으니까.
그러나 그렇기에 나는 더욱 더 내 약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약점이라기보다는 한계라고 해도 좋겠지.
“그냥 단순하게… 출력이 강한 적이라니.”
나는 단순 힘 싸움을 강요하는 적에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탄다고 기가스의 출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