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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전신 강림
기가스의 조종사가 아이언 하트와의 동조에 능숙해지면 그는 그의 성정이나 혈통, 그리고 자질에 따라 1~3개 정도의 어빌리티를 각성하게 된다. 물론 1~3개라는 것도 전체적인 이야기고 보통 조종사들은 1개의 어빌리티를 각성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흔히 말하는 고유 어빌리티이다.
고유 어빌리티는 대체로 첫 각성 때 결정되어 평생을 가게 되지만 조종사가 동조에 익숙해질수록 점점 성장하고 심지어 진화하기도 한다. 흔치 않은 경우이지만 동조에 능숙해지면 고유 어빌리티의 숫자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계속되는 수련과 명상으로 자신의 안에 내재된 가능성을 깨우는 것.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희귀한 어빌리티를 타고나는 조종사가 유리한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어빌리티의 종류나 성능은 조종술과는 다른 [재능]으로써 조종사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꼼짝 마라!]
“뭘 꼼짝 마, 멍청아.”
어빌리티 점멸을 발동해 공간을 뛰어넘는다. 그것만으로도 나를 노리고 날아들었던 온갖 미사일과 광탄. 그리고 탄환들이 허공을 가른다. 물론 적들은 회피기동과 공간이동에 대비해 탄막을 깔았지만 그래 봐야 이 넓은 우주를 모두 채울 수는 없다. 빈틈이 생기는 것이다.
펑!
그리고 나는 단 한 발의 광탄으로 한 기의 적을 날려 버린다. 어차피 궤도를 다 읽고 있으니 회피기동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 항복하라! 전력 차이는 막대하다! 너에게는 승산이 없어!]
“아, 시끄럽다고…….”
자꾸 통신을 걸어오는 적들 때문에 짜증 나서 주파수를 차단해 버린다. 상황이 이렇다 해도 저들도 우리도 같은 레온하르트 군이라 그런지 너무 쉽게 통신을 건다.
“뭐, 확실히 전력이 부족하긴 하네.”
하지만 정말 압도적으로 아군이 불리했다면 저렇게 필사적으로 항복을 ‘사정’할 리는 없다. 그냥 쓸어버리고 들어왔겠지.
아마 녀석들도 악몽을 꾸는 기분일 것이다. 절대 다수인 자신들이 단 한 대의 기가스에게 농락당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 그리고 그걸 느낀 건 적들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역시 불공평하군.]
“응? 뭐가?”
[네 존재 자체가.]
나폴레옹의 투덜거림에 어깨를 으쓱인다.
“하긴 좀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지. 어빌리티만 해도 벌써 몇 개야.”
나는 기가스를 조종할 때 남들은 상상도 못하는 여러 가지 어드밴티지를 가진다. 솔직히 말하면, 나 스스로가 생각해도 불공평하게 느껴질 정도의 보정이 붙는 것이다.
‘어빌리티의 종류와 성능이 조종사들의 재능이라면… 이건 거의 치트에 가까운 재능이지.’
나에게는 [오늘의 어빌리티]라고 부르는, 다른 조종사들처럼 특정되지 않고 매일매일 변화하는 3~5개의 어빌리티가 존재한다.
물론 이 어빌리티의 종류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어서 내 첫 전투 때처럼 스킬이 꼬이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건 적이 내 어빌리티를 특정하지 못한다는 강점이 되기도 한다. 나를 [공략]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 어빌리티.
나는 기본 어빌리티 또한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똑같은 [나폴레옹]이라도 어떤 기체는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만을. 또 어떤 기체는 <죽지 않는 황제>만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탄 나폴레옹은 그 전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마치… 해당 기체에 존재하는 [가능성] 전부를 발현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데 그때 나폴레옹의 뜻밖의 말을 했다.
[…어빌리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음? 그럼 뭔데?”
[그야.]
쩡-!
그러나 그때 공간 전체를 점하는 파동이 나폴레옹을 후려친다.
물론 나는 어빌리티 <영자 흡수>를 발동해 가볍게 막아냈다.
“먹히지도 않을 뻔한 기습 하기는!”
드넓은 우주라지만 회피 불가능한 공격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영력을 파도가 몰아치듯 파동의 형태로 전방위로 쏘아내면 피할 틈이 없으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천현일 소장의 <펜릴의 포효>도 바로 그런 종류가 아닌가?
다만 이런 능력은 출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회피는 불가능한데 막기가 너무나 쉬워지는 것. 상대보다 수십 배 이상 강한 영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허공에 삽질하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콰득!
당연한 말이지만 막아내기만 한 게 아니라 접근한(파동형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화되어 어느 정도 근접해야 한다. 초월기가 아닌 바에야…) 전투기에게 파고들어 광선검으로 양 날개를 잘라낸다. 통제 능력을 잃고 저 멀리 날아가 버리는 적을 보며 가볍게 심호흡한다.
“아, 머리 아프다. 안 죽이고 하려니 동선 계산이 힘드… 아자!! 사지절단(四肢切斷)!!”
무릎을 쳐올려 나를 향해 달려드는 기가스의 동선을 빗겨내고, 그 직후 관통을 건 광선검을 양손에 들고 순차적으로 휘둘렀다. 우검으로 적 기가스의 오른팔을 자르고 좌검의 폼멜로 머리를 후려쳐 자세를 아래로 떨어뜨린 후에 그대로 X자로 빗겨 올라가며 양다리도 잘라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듯이 녀석의 남은 왼손을 손을 턱, 하고 잡아 그대로 깔끔하게 뜯어버렸다.
아이언 하트가 무사하고 몸통에는 별다른 타격이 없으니 조종사가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사실 이렇게만 해도 전투 능력은 완전하게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양팔과 양다리가 없이 몸통만 있으면 자세 제어도 불가능에 가깝고 방향 전환도 어렵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남은 에너지는 어때?”
[90%. 양호하다.]
“오케이! 좀 불안했지만 영자 흡수도 나쁘지 않네!”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적 아이언 하트의 힘을 빨아들여 급속도로 회복하는 게 가능한 <메마른 심장>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흡수하는 <영자 흡수>도 꽤 괜찮은 효율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나 적의 파동 공격이나 광자탄 같은 경우에는 종종 흡수해서 회복할 수 있으니 방어용으로도 쓸 수가 있다.
[파트너! 조심해! 골리앗이다!!]
[우우웅----!]
그때 나폴레옹의 경고와 함께 거대한 기가스가 내 쪽으로 돌진해 온다. 보아하니 인급 기가스인 것 같은데 덩치가 예사롭지 않다. 기가스가 아이언 하트의 출력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하면 영력의 전달이 힘들어서 성급 기가스가 아닌 이상 저렇게 크게 만들지 않는 게 정상일 텐데도 골리앗이라 불린 기가스는 나폴레옹을 아이 내려다보듯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마 저게 골리앗이라는 아이언 하트의 특성일 것.
그러나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확실히 나폴레옹보다 훨씬 큰 것은 사실이다. 별다른 기술은 없어 보이지만 출력 자체도 상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참수!”
오히려 고맙다. 조종석이 머리에 있는 덕택에 힘들게 사지를 자를 거 없이 머리만 자르면 되었다. 잘라낸 머리를 멀리 차버리는 것만으로도 골리앗은 전투 능력을 상실했다. 몸통의 기능은 여전한 모양이었지만 버둥거리기만 할 뿐 재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하하하!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전설의 출현!”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게 있어. 뭐 어쨌든.”
몸 상태 때문에 부담을 가지고 출동했지만 생각보다 괜찮다. 이상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고 감각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어떤 공격이든 피하고 어떤 방어든 파훼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대로만 가자.”
그렇게 말하며 다시 동조를 시작한다.
*
“맙소사.”
대하를 마중 보내고 전장정보를 살피고 있던 세레스티아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신음했다. 대하가 타고 있는 나폴레옹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손쉽게 적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그렇다. 제압, 제압이다.
“전쟁에서… 그것도 혼자서 절대 다수를 상대하면서 적을 죽이지 않는다고?”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황당하게도 대하는, 그리고 그가 조종하는 나폴레옹은 광선검 두 자루로 마치 쌍검술을 펼치듯 적을 농락하다가도 다시 광자포로 적을 저격하고 어느새 다시 보면 한 자루의 광선검으로 적을 찍어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압권은 자신을 공격하는 기가스들에게 접근해 광선검으로 상대의 사지를 잘라 버리는 묘기였다. 적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배리어를 강화했지만, 나폴레옹은 너무나 능숙하게 그들의 반항을 억누르고 사지를 잘라 버렸다.
도마 위의 생선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펄떡펄떡 몸을 튕겨봤자 숙련된 요리사는 자연스럽게 생선의 살을 가르고 머리를 떼어낸다. 대하의 움직임이 바로 그 요리사와 같았다.
“말도 안 돼. 이건 혈통으로 가능한 일이 아냐. 심지어 저 <영자 흡수>는 절대 방어용 기술이 아닌데.”
아주 드물 뿐이지 남들보다 귀한 어빌리티를 많이 가진 존재는 과거부터 있어왔다. 멀리 갈 것 없이 [언터쳐블]의 혈통을 이은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족 중에도 희귀하고 강력한 어빌리티를 가진 이가 다수 존재했다. 특별한 힘과 재능을 타고난다면 태어났을 때부터 말도 안 되는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대하가 지금 보여주는, ‘해당 기체가 각성하지 못한 어빌리티를 고유 어빌리티로 사용하는 힘’도 대우주 시대에는 최소 2명 이상 있다고 파악되는 능력.
하지만 지금 대하가 보여주고 있는 [기술]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어찌 저 나이에 이토록 다양하고 완성된 기술을 가질 수 있는 거지?”
“왜냐하면 그가 주인이기 때문이지.”
“……!!”
나직한 목소리에 기겁한 세레스티아가 쌍권총을 꺼내들며 영력을 폭발시켰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쏴도 돼.”
“…….”
세레스티아는 조용히 무장을 해제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은 사격 정도가 아니라 알바트로스함의 아이언 하트를 폭주시켜 자폭하려고 해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을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와… 혹은 이브. 설마 역사책에서나 듣던 존재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최초의 리전 중 하나이자 모든 리전의 어머니. 연합의 대적(大敵)이자 상급 신을 넘어선 존재.
하지만 그런 모든 것 보다 세레스티아의 관심을 끈 건 바로 그녀가 한 말이었다.
“주인… 이라뇨?”
“말 그대로지.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자면… 280년 전에 한 조종사가 있었다.”
하와는 적들과 싸우고 있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바라보며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뛰어난 조종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언 하트와 동조하는 재능은 별로였지. 그가 발현시킨 어빌리티는 고작 <영자 흡수> 하나뿐이었는데 그 어빌리티는 적에게 접근해 아이언 하트에 손을 올려야만 발동 가능한 힘이었거든. 실전에서 사용하는 게 불가능했지.”
“…제가 아는 사람인가요?”
“아니. 네가 알기에는 너무 먼 은하야. 뛰어난 조종사이긴 해도 전 우주에 위명을 떨칠 정도는 아니었고.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는 낙담하는 대신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어빌리티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단련했다는 점이야. 그리고 그는 마침내 적의 공격마저 흡수해 자신의 힘을 회복하는 게 가능하게 되었지.”
그녀의 말에 세레스티아는 대하가 보였던 묘기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 역시 같은 방식으로 어빌리티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이죠? 같은 기술을 쓸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뭐, 모험왕의 [점프]도 같은 방식이니 너를 이해시키기는 어렵겠고… 그럼 이건 어떨까. 올해, 아니, 정확히는 내년이군. 그래, 내년에 태어날 셀타 은하의 한 아이는 전쟁에 휩쓸려 10살부터 기가스에 타 전쟁터를 전전하는 삶을 살게 돼. 하지만 50살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죽인 소년병의 어머니가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불살(不殺)의 맹세를 하게 되지.”
“…잠깐만요. 잠깐. 당신 설마?”
하와는 당혹스러워하는 세레스티아의 반응에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때문에 그는 기가스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파악하기 위한 학습과 수없이 많은 실전, 그리고 수련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적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뛰어난 조종법을 확립하는 데 성공하게 돼. 특히나.”
“…….”
순간 떠오른 가설에 세레스티아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하와는 그녀의 가설에 확신을 안겨주는 말을 던졌다.
“특히나 적의 사지를 잘라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그 특유의 기술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전 우주적으로 유명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지. 아니, 이제는 될 예정이었었다고 해야 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