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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75화 (7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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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전신 강림

“점프.”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눈부신 빛이 우주를 가로질렀다.

“…….”

“…….”

“…….”

관제관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정지 버튼을 눌려진 것처럼 굳은 채 전장정보를 살피고 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그들의 모습은 꽤 우스꽝스러웠지만 안타깝게도 그 모습을 제대로 보려는 순간 시야가 일그러진다.

쿵.

“이런! 대하야 괜찮아?”

세레스티아가 바닥을 뒹구는 나를 부축했지만 그런다고 몰려들던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비슷한 대사를 몇 번 했던 것 같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괜찮지 않아. 하지만, 후. 갑자기 이러다니. 좀. 윽… 당황스러운데.”

비인들의 고문들조차 버텨낸 나조차도 식은땀이 흐를 정도의 고통이다. 전신 근육이 뒤틀리고 뱃속에서 칼날로 만들어진 뱀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은, 그리고 거기에 더해 누군가가 머리통을 커다란 도끼로 계속해서 내려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통증. 더 짜증 나는 건 이 두 개의 고통이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는 점이다.

“멍청아! 형틀을 끼고 마나를 쓰면 어떻게 해?”

“그럼 그대로 죽으리? 아니, 그보다 머리가 너무 아픈데… 이것도 형틀의 효과야?”

세레스티아에게 한 질문이었지만 현일이 대답했다.

“포로의 기억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형틀은 뇌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형틀은 지금처럼… 내장 기관이 죄다 제자리를 이탈하게 만들 뿐이지. 어? 심장이 명치까지 내려갔잖아? 황금사자기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겠네.”

“이 곰탱이가 뭘 태연하게 떠드는 거야! 빨리 치료해야지!”

버럭 소리를 지르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에 현일이 어깨를 으쓱인다.

“난 치료보다 때려 부수는 게 특기인데 말이야.”

“잔말 말고 하시지?”

“거 참. 안 그래도 할 거였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합!”

가벼운 기합과 함께 약간은 서늘한 기운이 몸속으로 쑥 하고 밀려오더니 뱃속을 헤집고 다닌다. 치료라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포악한 조치였지만 뜻밖에 고통은 없다. 내가 당황스러워하며 올려다보자 현일이 그 두툼한 앞발로 내 가슴팍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아, 잠시 통각을 차단했다. 억지로 내장 기관을 움직이고 있는지라.”

“으 하지만 아직 머리가 아픈데요?”

“그거야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니 별수 없지. 하지만 너 대체 정체가 뭐냐? 초월자도 아니면서 초월기(超越器)를 다루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쓴 게 초월기(超越技)는 아닌 것 같고… 어빌리티인가?”

의문을 표하는 현일의 모습에 헛웃음을 짓는다.

“초월기도 어빌리티도 아니에요. 그냥 알바트로스함에도 있는 기능인 워프를 쓴 거죠.”

“뭐? 워프 게이트도 안 열고 좌표 설정하는 과정도 없었는데 워프?”

아스트랄 드라이브는 초장거리 항해를 위해 존재하는 기술이다.

긴 시간 동안 가속해 함선의 속도를 빛의 수백 수천 배 이상 끌어 올리는 중첩가속으로 과거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었던 장소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러나 아스트랄 드라이브를 항상 사용할 수는 없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에서 몇 달 이상 걸리는 가속의 과정은 목적지가 멀수록 큰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함에는 그냥 날아가기에는 멀고 아스트랄 드라이브를 작동시키기에는 애매한 거리, 즉 행성 간 이동을 위한 기술이 반드시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워프였다.

대우주 시대가 열리기 전에는 수많은 사용 방식이 있을 정도로 많이 사용했다는데 거리가 멀어질수록 필요 에너지가 많다는 단점 때문에 지금은 보조로만 활용하는 비운의 항해 기술이다.

“게이트를 왜 안 열어요. 안 열면 이동이 불가능한데.”

“…열었다고? 하지만 어디에?”

고개를 들이미는 현일의 모습에 환자를 너무 막 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떠들면서도 치료는 잘 진행하고 있었기에 순순히 답한다.

“바로 우리가 날던 그 공간에.”

“…….”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아무 말이 없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세레스티아가 말한다.

“그러고 보니 그런 걸 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한 놈이 또 있다고?”

“그래. 모험왕 카를로스.”

세레스티아의 말에 현일이 멈칫한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전설의 해적 말인가…….”

“맞아. 나도 항해술을 배우면서 자료로만 봤었지만… 그 역시 이런 항해법을 선보였다고 했었지.”

일반적으로 워프는 출발점과 도착점에 워프게이트를 생성하고 그곳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거기서 함장이 할 일은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의 좌표를 계산하고 게이트를 안정화시키는 것.

그러나 이 방식에는 단점이 있었는데 외부에 게이트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면 어떻게 해도 그것이 외부에 관측된다는 점이다. 공간을 다루는 워프 기능은 방해받기도 쉬워서 적 근처에서 하다가는 단박에 우주의 먼지가 될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

때문에 나는 그 방식을 아주 조금 간추렸다. 게이트를 외부에 만드는 대신 움직이고 있는 함선의 선체에 딱 맞게 좌표를 잡고 게이트를 열자마자 즉시 통과해 버린 것이다.

이 방법이라면 외부에서 게이트를 여는 걸 인식조차 할 수 없고 방해를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걸 나보다 먼저 한 사람이 있다고? 내가 맨 처음인 줄 알았는데.”

“…직접 떠올렸단 말이야? 기록을 보고 따라한 게 아니라?”

“응.”

내 대답에 세레스티아가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참 신기하네. 모험왕 카를로스도 이 기교를 점프라고 불렀거든. 그래서 그의 다른 별명 중 하나가 바로 점퍼(Jumper)지.”

“엑… 너무 뻔한 명칭이었나.”

그러나 그냥 바로 [떠오른] 대로 붙인 이름이라 억울할 것 까지는 없었다. 어차피 특허 같은 걸 낼 것도 아니고.

“정말이지 여러모로 놀라게 하는군. 뛰어난 기가스 조종사는 함선 제어에도 능숙하다는 게 정설이지만 테라급 함선까지 거기에 해당되는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몸 상태는 괜찮나?”

“어느 정도는요.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아픈데. 왜 이런지 아세요?”

내 물음에 현일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야 능력 이상의 기술을 써서 그렇지. 기교는 어떨지 몰라도 솔직히 네 마나는 먼지만도 못한 수준이니까. 다만 안 되면 안 됐지 지금처럼 [어떻게든] 된 후에 고생하는 건 처음 보는군.”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얼이 빠져 있던 승무원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닥을 뒹군 순간 내 제어도 멈췄기 때문에 권한들은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간 상태다.

“위치 확인! 현재 저희는 대천공 주변에 밀착해 있는 상태입니다.”

“…밀착?”

“네. 함선 사이의 간격은 10여 미터에 불과하군요.”

“나 참, 무슨 워프를 이따위로 하지. 10미터? 하하하.”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짓는 현일의 모습에 내심 신기해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곰인데 표정 변화가 저렇게 선명하다니. 실제 생명체가 아니라 무슨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다.

“그나저나 대하야, 여기는 어쩌려고 온 거야? 애들 구하려고?”

귓가에 속삭이는 세레스티아의 몸을 슬쩍 밀어내고 대답한다.

“당연히 계획이 있어서였지만… 그거 취소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오면서 세레스티아에게 설명을 들었다. 관제인격이 파괴되면 예비 관제인격이 작동을 시작한다고. 그리고 그렇다면 그 관제인격에게도 내 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지 않겠는가?

때문에 원 계획은 대천공을 거대한 영자폭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점프로 단번에 대천공에 밀착해 대천공으로 넘어간 후 보람과 동민을 구해내고 자폭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후 [점프]로 즉시 거리를 벌리고 폭발이 라이징 스톰을 후퇴하게 만들면(함께 자폭시키기는 어렵다. 그들도 자폭을 감지할 테니까) 충분히 아스트랄 드라이브를 작동할 만한 틈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안 돼. 할 수가 없다.’

이 작전의 핵심은 [점프]와 [천공(天空)]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점프 직후 천공을 발동해야만 자폭 범위에서 벗어난 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데 점프 하나만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이들이 ‘즉시 아스트랄 드라이브로 가속’하는 천공을 할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천공 쪽의 난이도가 더 높은데 말이다.

‘물론 형틀을 벗으면 내가 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형틀 하나가 문제가 아냐. 지금 이 두통 왠지 느낌이 안 좋다.’

즉 점프 하나만 사용해도 무리가 오는 현 상태에서는 점프와 천공을 연속해서 쓸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알바트로스가 좀 등급이 높은 초월병기였으면 상황이 달랐을 텐데.’

초월기라고 다 같은 초월기가 아니며 더 높은 등급의 초월기는 출력은 물론 사용자에게 주는 부담도 적다. 예로 내가 목에 걸고 있는 이 열쇠 역시 초월기지만 나에게 주는 부담은 그리 크지 않으니까.

그러나 [양산 초월기]라 할 수 있는 전함의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서 그것을 운영하는 데 상당한 힘이 들어간다. 인간 출신이 아닌 현일이 소장이 되어 알바트로스함의 함장이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초월자에 이른 그의 능력 덕분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테라급 이상의 전함을 양산해 봐야 초월자급 함장이 없다면 제대로 된 힘을 쓸 수가 없으니 인간 중심인 레온하르트 제국조차도 영수 출신인 그를 중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라이징 스톰의 분위기는 어떻지?”

“내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현재 제자리에서 대기 중입니다. 저희를 놓친 것으로 파악되며… 어쩌면 라이징 썬에 증발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안심할 정도는 아냐. 명색이 테라급인 알바트로스함이 파편도 안 남기고 증발한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뭐 어쨌든, 당장 들키지는 않을 겁니다.”

알바트로스함은 테라급 전함이고 대천공은 엑사급 우주모함이다. 무슨 말이냐면 대천공이 훨씬 크다는 뜻으로, 식별 신호를 끄고 대천공에 바짝 붙은 이상 레이더상으로 우리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결국에는 들킬 거야. 시간을 번 정도다.’

라이징 스톰은 우리를 식별할 수 없지만 당연히 대천공은 우리를 발견할 것이다. 보조 인격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테고 그게 아니라도 비인들이 육안으로 보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알바트로스함이 대천공보다 작다고 무슨 소형함 같은 게 아니니 자기네 함선 근처에 바짝 붙은 걸 발견 못 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 적대 관계라 할 수 있는 비인들이 라이징 스톰에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건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였다.

“일단 최대한 빨리 보람과 동민을 데려와 주세요. 시간을 벌었으니 그 정도는 요청해도 되겠죠?”

“물론이지. 그런데 너 일단 외과 수술부터 받아라. 형틀 때문에 될 일도 안 되겠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이 망할 액체 금속을 뱃속에 넣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뭐만 하려고 하면 발목을 잡는 게 짜증난다.

“저기 함장님, 잠시만.”

그런데 그때 한쪽에 있던 승무원이 현일을 보며 입을 벙긋벙긋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공을 사용해 전음을 보내는 모양이다.

‘이 대우주 시대에 무공이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모든 힘이 공존하는 시대였다. 유용한 힘이 있다면 익히는 게 당연하고 과학이 발전한다면 그 또한 취하는 시대. 그런데 그의 보고를 들은 현일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이해할 수 없군. 왜지?”

“알 수 없습니다. 아… 지금 승선을 요청했습니다. 어쩔까요?”

입을 열어 대답하는 현일의 모습에 말해도 상관없다는 걸 깨달은 듯 전음을 그만두고 말로 보고하는 승무원의 보고에 현일이 나를 돌아본다.

“무슨 일입니까?”

“흠. 저 배에 있는 리전이 네 친구 둘을 데리고 승선을 요청했다.”

“음? 요청이요?”

나는 지옥아귀의 뱃속에 놓고 탈출했던 리전 소녀를 떠올렸다. 뭔가 귀여운 강아지처럼 무조건적인 선의를 보이며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녀석. 하지만 녀석이 뭔가를 요청할 정도의 지능이 있었던가?

“흠. 나도 이해를 못 하겠군. 리전은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녀석들이 아닌데. 녀석들은…….”

“녀석들은. 뭐죠?”

순간 들려온 화사한 목소리에 분위기가 경직된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몸을 돌려 푸른색의 영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현일의 모습이 보인다.

“허. 이런… 이런 개 같은…….”

그러나 전의를 느낄 수 없다. 현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느새 우리 앞에 서 있는 리전 소녀를 바라보았다.

털썩, 털썩.

리전 소녀가 양손에 들고 있던 보람과 동민을 내려놓는다. 내가 놀라 그녀를 바라보자 리전 소녀가 웃으며 말한다.

“정신만 잃은 것이니 걱정하실 것 없어요.”

“말… 잘하게 되었네. 이름을 찾은 거야?”

그녀는 나에게 이름을 잃어버렸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이렇게 달라졌다면, 아마도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이요? 아, 후후. 네, 말하자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다시 인사드리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삼단 같은 머리를 우아하게 쓸어 넘기며 그녀가 나에게 예를 표했다.

“하와라고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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