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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전신 강림
“함장님.”
“응? 왜?”
푸른색의 영기를 피워 올리며 다시 함선을 조종하던 현일을 올려다본다.
“잠깐 비켜봐요.”
“…뭐라고?”
한순간 내 말을 이해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새하얗고 풍성한 털 때문에 그 어마무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꽤 귀여운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이 백곰을 감상할 시간이 아니었기에 차분하게 설명했다.
“알바트로스함의 제어권을 잠시만 빌려주시면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야, 이 녀석 뭐라는 거야?”
현일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세레스티아를 바라본다. 세레스티아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대하 이 바보야. 네 조종술이 뛰어난 건 잘 알지만 알바트로스함은 양산된 초월기야.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그렇다. 무엇보다 절대마나지배능력과 기본마나제어능력이 없으면 초월병기를 제대로 쓸 수 없어. 당장 배리어가 약화될 텐데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냐?”
한심하다는 듯 말하고 있지만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대전쟁]에 전함을 조종하는 것 까지 구현이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관련 게임은 많이 해봤으니 특이사항을 모를 리 없는 것. 당연히 감안하고 한 말이다.
“배리어 관리는 그대로 하고 계세요. 어차피 지금 막고만 계셨잖아요?”
“뭐라고? 그럼 대체 뭘 조종한다는 건데?”
합당한 의문이었지만 거기에 답해주지 못한다. 계기판을 바라보고 있던 승무원 하나가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다.
“라이징 스톰에서 30기의 절망이 발사되었습니다!”
“뭐?! 궤도를 파악해!”
경악해 소리치며 나를 무시하고 다시 알바트로스함을 제어하기 시작한다. 나는 술렁거리는 함교의 분위기에 세레스티아를 돌아보았다.
“절망 30기라는 건 무슨 소리야?”
“영자폭탄. 아르테인의 절망을 말하는 거야. 강력하기로 유명한 모델 중 하나지.”
“아.”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얼마 전 정비관으로 일하고 있을 때 수급 기가스 천둥룡에 설치된 폭탄에 대해 알바트로스함의 관제인격인 지니에게 알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천둥룡의 팔에 설치되어 있던 폭탄 이름이 바로 아르테인의 절망이었다.
“탄막을 펼쳐라! 광자포도 모조리 발사해서 요격해! 공뢰도 내보내고 하여튼 어떻게든 막아! 지금 배리어에 절망들이 틀어박히면 모조리 끝장이야!”
박력 넘치는 현일의 포효에 따라 승무원들이 급박하게 조종판을 조종해 요격을 시작한다. 그러나 전장정보를 살펴보니 30기의 절망 중 고작 8기를 요격했을 뿐이다. 아마도 미사일 따위에 탑재된 것으로 예상되는 영자폭탄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모든 방위를 점하며 알바트로스를 향해 날아들고 있다.
“펜릴의 포효를 발동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해?”
“가능하다 해도 소용없어. 자체적인 영자 파동을 뿌리며 날아드는 아르테인의 절망은 분산된 충격파 따위는 그냥 뚫고 들어올 테니까. 집중된 공격으로 요격해야 해.”
그러나 계속되는 요격에도 아르테인의 절망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전장정보로 파악된 거리가 벌써 지척임에도 5기를 더 요격했을 뿐이다. 아직도 17기의 절망이 남아있는 것이다.
“안됩니다! 재밍으로 추적 시스템도 먹히지 않고 회피기동으로 대부분의 공격을 피하고 있어서! 명중시킬 수가 없어요!”
승무원들의 외침대로 절망은 쏟아지는 탄환과 광자포를 모조리 피하며 날아들고 있다. 마치 미사일처럼 날아오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전투기나 다름없는 구조인 듯 자유롭게 회피기동을 해 모든 포격을 피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패닉에 빠진 승무원들을 보며 나는.
“속 터지네! 진짜!”
“어?”
당황하는 현일의 두터운 팔을 밀치고 함장석에 앉는다. 현일의 덩치에 맞춰져 있는 함장석은 내가 앉기에 너무 커다란 크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어차피 함장석의 팔걸이에 있는 구슬에 손만 올릴 수 있으면 상관없었기에 한쪽에 붙어 앉았다.
“지니! 포격 권한 전부 가져와!”
[알겠습니다. 대하님.]
대답과 함께 머릿속으로 엄청난 정보가 주입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알바트로스함의 제어권을 달라고 한 건 나에게 무슨 숨기진 초월기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지금 앉은 이 함장석에서 알바트로스함의 제어권을 받아야 알바트로스함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우웅…….
“이, 이런! 모든 포격 시스템이 정지했습니다!”
“공뢰 사출도 중지되었습니다! 요격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함장석의 상황을 모르는 듯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적의 공격이 지척에 이르렀는데 반항할 수단마저 사라지니 공포를 느끼는 게 당연한 일. 그러나 나는 그들을 배려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시스템이 그대로면 요격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하기는.”
이것들 정말 노답이다. 이래서야 그냥 허공에 대충 쏟아부어서 적 미사일이 와서 부딪히길 기도하는 방식이 아닌가?
물론 압도적인 화력을 쏟아부어 점도 선도 아닌 면의 형태로 뿜어낸다면 일정 공간을 차단해 전함을 향해 날아드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게 가능하다. 그게 바로 흔히 사용하는 탄막의 개념일 테고.
그러나 자유롭게 움직이는데다 튼튼하기까지 한 대상을 상대로 하려면 훨씬 압도적인 화력이 필요하다. 구성이 촘촘하지 못하면 있으나 마나 한 게 바로 탄막인 것이다. 실제로 나도 비인들이 쏟아부었던 극대소멸탄(極大掃滅彈) 전부를 피하고 파고들어 적들을 박살 내지 않았던가?
물론 저 미사일들이 다 나처럼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지금 알바트로스함은 만전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 역시 감안해야 한다. 패닉에 빠진 건 알겠지만 내 목숨도 걸렸는데 이렇게 안이한 방어를 하는 꼴을 두고 보느니 다 내가 하는 게 낫다.
“지니, 1번부터 4번 포대. 21번, 35번, 그리고… 70번부터 77번 포대 부스터. 모든 영자력을 집중시켜.”
[네, 대하님.]
고분고분한 지니의 대답을 들으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러자 드넓은 우주 공간과 그곳을 가르며 날아들고 있는 미사일들의 궤적이 그려진다.
‘이 비행 방식. 기계가 아니군. 원격으로 조종하는 건가? 아니면 사람이 타고 있는 자폭 미사일?’
그러나 둘 중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적이 정해진 루트가 아니라 순간순간 선택으로 움직인다는 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다면 심리전을 걸면 된다. 나는 녀석들의 비행궤적과 회피기동 전부를 살폈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냥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함장석에 설치된 구슬을 통해 순식간에 정보가 전해졌다.
[영자력 집중이 완료되었습니다.]
“포격 개시.”
명령과 동시에 모든 궤적을 설정한다.
‘뇌파 조종이 좋긴 하군.’
만약 매직 핸드로 했으면 이 많은 궤적을 한 번에 설정할 수 없었겠지. 물론 시간을 들이면 가능하긴 할 테지만 그랬다가는 반도 설정하기 전에 미사일을 얻어맞았을 것이다.
“아니, 아니 이건…….”
그리고 그렇게 포격을 개시함과 동시에 갱신되는 전장정보를 본 승무원들 사이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저, 전탄 명중?”
“명중? 명중이라니? 지금이 전탄 명중 같은 보고가 올라올 상황이었나?”
“탄막도 광막도 펼치지 않고… 일일이 포격을 날려서 적의 공격을 맞춰 버렸다고?”
“…미쳤어.”
함교가 술렁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 그러나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쓰고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아르테인의 절망을 다 막아냈다 해도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적의 병력은 그대로였고 우리 앞에 있는 라이징 스톰에 타격을 입힌 것도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나는 즉시 알바트로스함을 조종했다.
“뭐야, 이동하려고? 지금 속도에서부터 차이가…….”
“배리어나 유지해요!”
“아, 알았어.”
시무룩한 표정의 현일을 무시하고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알바트로스함이 전속력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쿵! 쿠웅!
거대한 새의 형태를 하고 있는 알바트로스함이 전진하기 시작하자 벌레 떼처럼 주변을 맴돌고 있던 기가스와 전투기들이 마구 포격을 가했다. 하지만 정말 멍청하다. 방금 전 요격을 보고 아무것도 느낀 게 없단 말인가?
“14번, 27번, 48번, 그리고 70번부터 77번 포대 부스터. 거참 질기게도 꼬리로 붙는군.”
[완료했습니다.]
“포격 개시.”
알바트로스함을 중심으로 11줄기의 포격이 뿜어진다. 뇌파 조종을 시작한 후부터 알바트로스함이 뿜어내는 포격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듯 느껴진다.
“저, 전탄 명중! 8기의 적 전투기와 5기의 기가스가 완파되었습니다!”
“세상에! 함장님! 이건……!”
“지금 설마 저 모든 포격을 한 명이 쏘고 있는 겁니까?”
“모두 조용! 자리를 지켜라!”
묵직한 기파가 흥분해서 떠드는 승무원들을 내리누른 덕분에 나는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알바트로스함을 움직일 수 있었다. 적들도 완전히 바보는 아닌지 내가 같은 방식으로 몇 번 더 적 전투기와 기가스를 쓸어버리자 자잘한 병력을 다 뒤로 물리고 라이징 스톰만이 연신 주포를 날리고 있다.
“함장님, 방어는 할 만해요?”
“덕분이 많이 편해졌어. 하지만 시간만 늘어난 거지 결국 한계가 올 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알바트로스함을 움직인다고 해도 라이징 스톰을 떼놓을 수는 없다. 기본적인 만전의 상태에서도 속도에서 뒤지는데 거의 반파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지금 어찌 녀석들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가 있겠는가? 내가 조종한다고 전함의 성능이 높아질 일은 없으니 결국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음? 대천공? 대하 너 일부러 이리로 끌고 온 거야?”
함선 조종에는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는 듯 조용히 서 있던 세레스티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응. 저게 유일한 희망이야.”
슬쩍 고개를 돌려 전장정보를 비추고 있는 화면에 나타난 대천공의 모습을 바라본다. 라이징 스톰과 싸우며 멀리 떨어졌었는데 다시 가깝게 접근한 것. 하지만 내가 뭔가를 노린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그때까지 바싹 따라붙기만 하던 라이징 스톰의 정면부에 빛이 집중되기 시작한다.
[경고! 경고! 라이징 썬(Rising sun)의 작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아이고 맙소사.”
익숙한 명칭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대전쟁에서 익히 봐왔던 만큼 라이징 스톰의 주포, 라이징 썬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징 썬…….”
“끝이군.”
그리고 그 위력을 아는 건 나만이 아닌 듯 함교에 절망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전장정보에 떠오른 몇 개의 화면이 라이징 스톰의 정면부에 모여드는 빛을 보여주고 있다.
“6황자가 마음을 독하게 먹었군. [황제의 빛]을 사용하는 라이징 썬을 쓰게 되면 뒷감당을 하기가 어려울 텐데… 아, 미리 말해두지만 저건 못 막아.”
단정적으로 말하는 현일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한다.
“아니 저걸 왜 막아요? 당연히 피해야죠.”
“뭐? 아니 지금 이 속도로 라이징 썬을 어떻게 피해?”
“어떻게 피하긴요. 가볍게…….”
피식 웃으며 정신을 집중한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알바트로스함의 전부가 머릿속으로 떠오른다.
나는 말했다.
“점프.”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눈부신 빛이 우주를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