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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73화 (7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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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전신 강림

쿵!

한데 뒤엉킨 남녀가 갑판 위로 떨어져 내린다. 어지간한 교통사고보다도 훨씬 험악한 착지였지만 둘 다 인간을 초월한 초인이었던 만큼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괜찮나?”

“아, 네. 선배는요?”

“덕분에.”

이미 시스템이 무너져 우주 공간이나 다름없는 대천공의 갑판 위였지만 결계로 상당량의 공기를 잡아두고 있는 보람 때문에 생존에는 문제가 없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동민을 따라온 것도 바로 그런 능력 때문이다.

‘동민 선배는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동민은 강력하고 다양한 힘을 가진 능력자였지만 우주 공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만약 보람이 그에게 따라붙어 결계를 펼치지 않았다면 동민은 대천공에 도달하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초고속으로 이동하던 수송선과 다르게 그저 관성과 약간의 영자 방출만으로 이동해야 했던 그들은 수송선에서 대천공에 도착할 때까지 적어도 3시간 이상 어둠을 헤치고 날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거 마족 맞죠?”

“그래. 그것도 최상급 마족으로 보인다. 장로들이 보면 아주 좋아하겠군.”

“스승님도 보면 눈이 뒤집히겠네요. 이런 최상급 마족들의 몸은 정말 버릴 데 하나 없다고 하던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주변을 경계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소형도 아니고 초대형의 신장을 가진 지옥아귀의 몸을 챙겨 가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게 다 박살나서 고요한 침묵만이 가득한 폐허나 다름없는 대천공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적지 한가운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마나 하트는 챙겨야겠죠?”

“적지 한가운데에서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하고 싶지만… 동의한다.”

서로 고개를 끄덕여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보람과 동민이 역할을 분배한다. 보람이 결계를 펼쳐 둘의 기척을 숨긴 채 경계를 시작하고 동민은 어지간한 건물만 한 크기의 지옥아귀 위로 올라탄 것이다.

쿠우우…….

동민이 검결지(劍訣指)를 맺고 정신을 집중하자 검지와 중지를 둘러싼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초능력 중에서도 희귀하기로 유명한 공간 특성을 가진 동민은 평소 사용하는 공간이동 말고도 이런 식으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공간검(空間劍)이라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발동 시간이 워낙 길어 평소 사용하지 않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비록 죽었다 해도 최상급 마족의 육체는 워낙 강건해 이 정도 힘이 아니면 해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쩌저적.

마나하트가 느껴지는 지옥아귀의 흉부 아래쪽에서부터 서서히 가르고 들어간다. 그런데 그때였다.

꿈틀!

“보람!”

“으악?! 안 죽었어요?!”

보람과 동민이 거의 동시에 튕겨 나가듯 지옥아귀의 몸에서 떨어진다.

적어도 그들은 대하와 함께 우주로 나오기 전에는 외계인 따위 SF에나 나오는 존재라고 생각할 정도로 외부세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지만, 마족의 경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지구에 존재하는 이면세계, 어나더 플레인(Another Plane)에는 정기적으로 균열이 생겨나며, 거기에서는 종종 마족들이 침입해 들어왔기에 보람도 동민도 몇 번이고 마족들과 싸워온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최상급 마족의 경우는 그들로서도 말로만 듣고 시청각 자료만 보았지 실제로 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교육으로 그 끔찍할 정도의 힘을 들어왔기에 긴장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르겠군. 완전히 사망한 것으로 보였는데.”

“그러게요. 재수 없으면 벌써 변신을… 엥?”

“음?”

그러나 잔뜩 긴장하고 있던 보람과 동민이 동시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동민이 갈라놓은 뱃가죽을 헤치며 흑발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바트로스함에서 방어전에 참가했던 보람은 그녀가 누군지 대번에 눈치챘다.

“이거 그때 그 리전 맞죠?”

“그래. 다만 느낌이 좀 이상하군.”

서서히 거리를 벌린다. 멍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리전 소녀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낀 것. 동민은 잠시 눈을 감아 영성을 일깨웠고 이내 그녀의 머리 위로 치솟아오르는 영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보람 역시 그것을 느낀 듯 동민을 돌아본다.

“꼭 신내림을 받은 박수 같지 않아요?”

“뭔가 상위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해.”

만약을 대비해 영력을 끌어 올리며 동민은 도서관에서 공부한 리전에 대한 내용을 떠올렸다.

어느 차원 어느 행성에서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획득하면 그는 높은 확률로 거대한 통합사념망에 접속하여 리전(Legion:군단)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그래 봤자 갓 태어난 그들의 영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적어, 텍스트 몇 줄, 이미지 몇 장, 뭐 그 정도의 정보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점점 성장하여 영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리전은 통합사념망에서 무기, 능력, 지식, 수많은 것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되며 동시에 자신이 가진 정보를 업로드하는 것 역시 가능해 실시간으로 다른 리전들과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세상에! 그분의 자식이야!]

[믿을 수 없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우리의 신! 새로운 신이 태어났다!]

[세퍼드 항성계! 가장 가까운 ‘이름 가진 자’는 어디에 있지?]

[기적이다! 아버지의 새로운 자식이 태어나다니! 우리는 그것을 얻어야 해!]

[모든 전함과 병력을 동원해! 총력을 기울여 움직여야 한다!]

보람과 동민은 몰랐지만 리전 소녀의 머릿속으로는 셀 수 없이 많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수백만 수천만을 넘어 억이 넘는 숫자의 의지를 가진 목소리들.

그러나 그 순간.

-닥쳐.

단 한 줄기 의지가 수억의 목소리를 전부 짓눌러 버린다. 그 의지가 얼마나 크고 강렬한지, 리전 소녀를 통해 리전의 시스템 밖에 있는 보람과 동민에게조차 영향을 주었다.

“이게… 무슨.”

“쿨럭.”

피를 토하며 주저앉는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이다. 단 한마디. 한 단어로 이루어진 말이 모든 것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우리의 신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다!

분노에 찬 외침이다. 슬픔과 원망으로 범벅이 된 광기 섞인 목소리는 농담으로라도 기계나 프로그램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적이다.

-오직. 오직 나만이.

증오 가득한 목소리로 [그]가 외친다.

-아버지의 마지막 자식이다.

그것이 보람과 동민이 정신을 잃기 전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

“상황은 어때? 6황자 놈이 지금… 으악! 완전 포위당하고 있잖아? 펜릴의 포효를 써!”

“…너 내가 오늘 초월기를 몇 번이나 썼는지 알기는 하냐?”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천현일 소장은 척 봐도 지친 기색이 완연하다. 당연한 일이다. 대천공은 객관적으로 알바트로스함보다 훨씬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고, 적의 함장 역시 초월경의 경지에 이른 대주술사 모르네였으니 그들에게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야 했을 테니까.

“하다못해 좀 쉰 다음도 아니고 바로라니… 미쳐 버리겠군.”

“저 녀석들은 언제 발견한 거야?”

“발견이 아니라 두 시간 근방으로 워프 게이트를 열 테니 공간을 확보하라는 통신이 왔었어. 뭔가 느낌이 안 좋아서 좌표를 감췄는데도 정확하게 오더군.”

“워프 방해를 했어야지! 하다못해 차원을 뒤틀어 우주의 미아를 만들든가!”

세레스티아의 말에 현일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야, 황자가 아군을 돕겠다고 온다는데 내가 무슨 명분으로 그걸 방해해? 심지어 내 판단으로 황자의 목숨을 위협하라고?”

“하지만 그편이 나았을 거야.”

“물론… 지금 와서는 동감이다.”

쾅!

폭음과 함께 땅이 진동한다. 기본적으로 장기전이었던 비인들과의 전투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전력에서 밀리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라이징 스톰이 천 킬로미터 내로 접근한데다 알바트로스함의 함장인 현일이 너무나도 지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쾅!

“이 자식들… 우릴 그냥 다 죽여 버릴 생각이군.”

나는 배리어를 강화시켜 마치 거북이처럼 적의 포격을 막고 있던 현일이 이를 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전장 정보를 살폈다.

‘좋지 않은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입장이면 아무리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된다. 내가 탄다고 기가스의 성능이 극적으로 올라가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고작 인급으로는 전함을 상대하는 게 불가능해.’

차라리 약한 다수라면 시간이 걸릴 뿐이지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우주는 끝없이 넓고 원거리 사격이 주요 공격인 비행 전투에서는 숫자가 그리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함을 뒤덮고 있는 강력한 배리어에 있다. 알바트로스함이 그러하듯 초월병기에 속하는 전함의 배리어는 고작 기가스 한 대의 공격으로 뚫을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니까. 관통 어빌리티? 그것도 차이가 어지간해야 통하는 거지 기가스의 포격이 전함의 배리어를 뚫고 들어가는 상황 따위 꿈에 불과하다.

“함장님,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전투기와 기가스가 얼마나 되죠?”

“나가서 싸우겠다고?”

“싸워야죠. 이대로 방어만 하고 있어 봤자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됩니다.”

한시가 급하다. 6황자라는 그 또라이가 헛소리하고 사라지기 무섭게 함교에 올라왔는데 벌써 방어 태세인 알바트로스함의 배리어가 30% 이상 깎이고 양쪽으로 펼쳐진 좌익과 우익이 절반 이상 파괴되어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비행 속도도 대폭 떨어졌을 테니 적들을 뿌리치고 도망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비인들과의 전투로 빈사 상태인 데 반해 라이징 스톰은 완전히 쌩쌩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너라도 불가능해. 섬멸 전함 라이징 스톰은… 알바트로스함과 다르게 전투만을 위해 만들어진 전함이니까.”

알바트로스함 역시 전함이다. 그러나… 자세히 파고들어 가보면 전투 외에도 여러 가지 목적성을 가진. 그래, 말하자면 다목적 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를 여행하고 별과 행성들을 조사하며 필요하다면 좌표를 수집하거나 테라포밍까지 행할 수 있는 함선.

반면 오직 전투만을 위해 만들어진 라이징 스톰은 알바트로스함보다 더 많은 기가스와 전투기를 수납하고 있으며 그 속도가 알바트로스함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자체적으로 온갖 공격 수단을 가지고 있다. 배리어도 훨씬 강력한데다 방어 시스템 자체가 훨씬 튼튼해서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돌파가 어렵다.

‘성급 기가스가 있어도 쉽지 않겠는데 딸랑 인급이라니.’

전투 시뮬레이션, 대전쟁에서 골드리안에 탔을 때 난 레온하르트 제국의 적 테케아 연방의 3군단 전체를 다 밀어버리고 그들의 전함 [징벌]을 포획한 전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좋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전쟁에서 레온하르트 제국과 테케아 연방의 전력은 엇비슷하니까. 약간 불리한 편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이지 않았으니 그들을 지휘하고 이용하며 전투 사이의 틈을 파고드는 것만으로 어렵지 않게 적전함에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암담하다. 전력이 터무니없이 모자라다. 전투기와 기가스가 문제가 아니다. 알바트로스함은 전투기와 기가스가 파괴될 때마다 그 잔해를 회수하고 수리했으니까.

문제는 조종사다.

‘너무 많이 죽었어.’

알바트로스함의 유일한 인급 기가스 나폴레옹을 조종하던 터크 대령을 비롯해 무수한 조종사가 죽어나가 지금은 실력도 경력도 부족한 병사들마저 전투기와 기가스를 타야 하는 실정이다. 망가진 기계는 수리할 수 있지만 죽은 병사는 살릴 수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군인도 아닌 보람과 동민에게조차 기가스 조종법을 간략하게나마 교육시키려 했을 지경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흠. 미안한데 혹시 보람이랑 동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나요?”

“아, 통신 연결은 안 되지만 위치는 확인되었어. 무사히 대천공에 내려선 모양이야.”

“대천공에…….”

머리가 간질간질한다. 뭔가 수가 떠오를 것 같았다.

“함장님.”

“응? 왜?”

푸른색의 영기를 피워 올리며 다시 함선을 조종하던 현일을 올려다본다.

“잠깐 비켜 봐요.”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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