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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구출 작전(2)
내 말에 주변에 있던 군인들이 고개를 흔든다. 이미 인원 체크를 끝낸 것이다.
“여기 있는 인원이 전부입니다.”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이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강력한 힘을 가진 그들이고, 무엇보다 보람의 경우는 수송선에서 떨어지기 직전 신기의 봉인을 풀어주었다. 대천공에서 동민이 휘두르던 힘을 생각하면, 그들 역시 어떻게든 대천공으로 내려갔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겠지.
‘하지만 이대로라면……’
당장에 죽는 것보다야 당연히 낫겠지만 인육을 좋아하는 비인들이 득실거리는 대천공에 고립되는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나와 세레스티아 때와 달리 비인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들의 목숨을 노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모르네의 경우는 우리에 대한 분노로 광기를 불태우는 중이니 어떤 일을 저지를지 상상도 안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가서 구할 수는 없어.’
말해줘도 들어주지 않겠지만 들어준다고 해도 문제다. 지금 이대로 수송선의 방향을 틀어버리면 모르네가 얼씨구나 하고 다 박살 낼 게 너무 뻔한 상황이 아닌가?
“그나저나 모르네도 정말 절박한 모양이네. 미치지 않은 이상 그 상황에서 직접 추격을 해오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어차피 모르네 입장에서는 반드시 우리를 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 재수 없으면 연합으로부터 징계를 받게 되니 우리부터 잡으려 한다든지.”
테케아 연방은 연합 몰래 리전과 접속해 그들을 병기로 썼으며 그 와중에 고위급 신선 청원과 얽히고 말았다. 엘라-3행성에 있는 자원을 좀 쉽게 먹어보려다가 엄청난 위기에 몰려버린 것이다.
즉 모르네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정리하려면 어차피 세레스티아를 잡아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 추격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닐까?
그러나 내 말에 세레스티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 상황에서는 나를 잡았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지. 저길 봐.”
세레스티아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대천공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알바트로스함의 모습이 보인다. 날개를 펼친 새와 비슷하게 생긴, 솔직히 말하면 우주를 날아다니는 비행물이라기보다는 그냥 아름다운 건축물처럼 생긴 우주선의 두 날개가 일순간 빛나는가 싶더니 머리 부분에서 거대한 광자포가 뿜어낸다.
쿠구궁…….
피라미드처럼 생긴 정사면체의 대천공은 그 공격을 너무나 무력하게 얻어맞고 있다. 대천공에서 출격한 기가스나 전투기들이 어떻게든 발버둥 쳐보지만 소용없는 짓. 기본적인 출력이나 기능면에서 알바트로스함을 압도하는 대천공이라도 관제인격이 파괴된 상태에서 조종사라고 할 수 있는 함장까지 자리를 비워 버린 이상 대처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박살 나고 있군.”
“그래. 모르네는 큰 실수를 한 거야. 농담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대천공을 장악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는 상태가 됐단 말이야.”
그녀의 말을 들으며 무형의 파동을 뿜어내 대천공을 후려치는 알바트로스함의 모습을 지켜본다. 방금 전의 공격으로 대천공의 외벽이 10% 이상 파괴되었다. 이제는 시스템을 복원했어도 외부 보호막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이 전쟁, 이겼군.”
“그래. 모르네가 우리를 추적한 게 미친 짓이라는 것도 그 이야기야. 날 죽일 수도 없어서 인질로도 못 잡는데 그 상황에서 우리를 잡아봐야… 정말 자기만족일 뿐이지. 아무리 비인이라지만 모르네 정도면 그리 멍청하지 않을 텐데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세레스티아의 말에 모르네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감수하겠다! 네놈을 죽여야 내 권능이 다시 돌아올 테니까!]
대충 짐작이 갔다. 아무래도 내가 [잠근] 그 힘이 녀석에게 매우 중요한 종류였겠지. 어쩌면 녀석은 세레스티아가 아니라 처음부터 날 죽이려고 쫒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흠… 셀, 그럼 말이야.”
머뭇거리는 내 모습에 세레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 걱정하지 마. 보람과 동민이라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 보람이 날아가기 전에 그 열쇠를 사용했지?”
“응. 봤어?”
“정확히 말하면 느꼈지. 그녀가 사용하는 힘은 황실에 있어서도 상당히 의미가 깊은 힘이니… 뭐, 어쨌든.”
세레스티아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 속삭이듯 말한다.
“최대한 힘을 써볼게. 이래 봬도 황녀니까.”
거기까지 대화했을 때 수송선이 잠깐 덜컹이더니 부서진 벽 사이로 알바트로스의 사출구가 보인다. 모르네 덕택에 한쪽 벽이 다 날아가서 수송선의 도킹 과정을 코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허 참. 아무리 그래도 한쪽 벽이 다 날아갔는데 이렇게나 멀쩡히 비행할 수 있다니.”
“배리어를 밀폐형으로 전개하면 우주로부터 내부를 보호할 수 있으니까. 물론 에너지 소모가 상당하지만 지금 같은 비상시에 많은 도움이 되지.”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수송선에서 내린다. 한쪽 벽이 없으니 굳이 문으로 내릴 필요가 없었다.
“황녀님! 괜찮으십니까?”
두터운 검은색 뿔테 안경에 양복을 입고 있는 알바트로스의 부함장 나탈리가 수행원 몇을 이끌고 세레스티아를 마중한다. 표정은 제법 밝았는데 사실 그게 당연하다. 사지나 다름없는 비인들의 모함으로 자신들의 황녀가 잡혀갔으니 어찌 피가 마르는 심정이 아니었겠는가?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무사히 돌아온 것이다.
“응, 괜찮아. 보고는 대충 들었지?”
“물론입니다. 아, 대하님도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형틀을 제거하는 외과 수술을 준비했으니 즉시 이동하셔서 치료받으시면 됩니다.”
“외과 수술인가요…….”
하긴 넣을 때야 주사기로 쭉 밀어 넣으면 그만이었겠지만 피와 섞이고 내장기관에 침투한 금속을 그냥 꺼낼 수는 없겠지.
물론 그렇다고 당장 치료받을 생각은 없다.
“급한 건 아니니 일단 전투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네?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나는 보람과 동민을 떠올렸다. 녀석들의 상황을 모르는 이상 대천공을 최대한 빨리 장악해야 한다. 다행히 몸 상태는 엉망이라도 아레스를 이용한다면 기가스를 조종하는 정도는 가능할 테니까.
“부함장.”
세레스티아의 말에 망설이던 나탈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습니다. 사실 대하 님의 도움은 저희로서도 반길 일이지요. 다만 대략적인 전투만 끝나면 바로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죠. 셀, 너는 이제 어쩔 거야?”
“함교로 가봐야지. 곰… 아니, 천현일 소장과 할 이야기도 있고.”
“역시 그가 마중을 나오지는 못하는 건가?”
“후후, 당연하지. 모르네가 우리를 추격해 온 것만큼이나 멍청한 짓이니까. 부함장, 전황은 어떻지?”
“최상입니다. 이미 대천공의 방어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했고 어떤 연유인지 적들의 관제인격이 사망하였지요. 대단한 위기였지만 우리는 엑사급 모함을 포획한다는 어마어마한 전공을 세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흠.”
약간은 흥분한 얼굴로 세레스티아에게 설명하던 나탈리의 표정이 변한다. 뭔가 우리가 듣지 못한 보고를 받은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나?”
“황실에서 지원군이 왔다고 합니다.”
“…황실에서?”
“네.”
분명히 아군이 왔다는 말이지만 주변에 있던 그 누구도 기뻐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던 지난 시간 동안 통신조차 연결이 되지 않다가 지금 지원군이 왔다고? 하필 이 타이밍에? 심지어 분위기를 보니 제대로 된 연락도 없이 갑자기 온 느낌이다.
“설마… 그 지원군을 끌고 온 게 6황자는 아니겠지?”
“후후, 서운해요, 누나. 그렇게 남처럼 부르다니.”
느닷없는 목소리에 모든 사람의 표정이 경직된다. 나 또한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돌렸지만, 세레스티아만은 짐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차분하게 답한다.
“…그럼 남처럼 불러야지.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에에~ 너무해요. 상처받는다구요.”
거기에는 깜짝 놀랄 정도의 미소년이 서 있었다. 160도 안 되어 보이는 키에 여자같이 날렵한 체구를 가진 그는 무슨 처리라도 한 것처럼 반짝이는 환한 금발에 금안을 가지고 있다.
‘이 녀석이 6황자?’
과연 세레스티아와 같은 피를 타고 난 듯 대단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머리색이 달라서일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세레스티아가 그를 보며 묻는다.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온 거지?”
“글쎄요.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그걸 가르쳐 드려야 하나요?”
밉살스럽게 말하는 그를 세레스티아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차갑게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자, 어쩔 수 없다는 듯 6황자가 어깨를 으쓱인다.
“하하하! 사실은 요번에 황자비 후보를 발견했거든요. 아쉬우시겠지만 저 결혼한답니다!”
느닷없는 폭탄선언에 주변에 있던 승무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해서 나탈리가 입을 연다.
“축하드립니다, 황자님! 그 까다롭다는 모든 조건을 통과하시다니. 하지만 황자비 후보를 발견한 것과 여기에 오신 것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맞는 말이다. 왜 여기에 왔냐고 물었는데 결혼할 거라니. 그 내용 자체가 파괴적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동문서답이 아닌가? 그러나 그 순간 6황자의 등 뒤에서 환한 빛이 뿜어지고--
“후후후. 사실 저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답니다.”
거기에서 새하얀 날개를 가진 은발의 미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여기에 오게 된 것도 자의 반 타의 반이거든요.”
나는 나긋나긋 속삭이듯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신음한다.
“…천사?”
그리고 주변에 있던 다른 승무원들도 기겁했다.
“천족이잖아?”
“아니… 황자비 후보가 천족이라고? 전례가 없던 일 아니야?”
“그걸 떠나서 이게 가능한 일이긴 한가?”
“가능하네.”
술렁이는 사람들의 말을 자르고 비단옷을 입고 백우선(白羽扇)을 든 금발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우리를 비인들의 소굴에 던져 버렸으며 그러면서도 그들의 자부심을 짓밟아 두려움을 안겨준 존재.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엘로임의 신선, 청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