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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구출 작전(2)
‘죽였어.’
그렇다. 그것이다.
‘모르네가 대천공의 관제인격을 죽여 버렸다.’
사실 짐작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 어떤 척박한 행성보다도 더 가혹한 환경을 자랑하는 우주공간에서 우주선은 승무원들을 보호하는 요람이자 집이며 생활의 터전이다. 때문에 우주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관제인격이 적으로 돌변했을 때의 위험성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실제로 대천공의 관제인격인 아틴은 승무원들을 우주에 던져 버리는 것만으로 너무나 간단히 어마어마한 수의 비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 않은가?
결국 비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미쳐 버린(그들의 입장에서는)관제인격을 그대로 둘 수 없다. 당연히 무슨 수를 쓰는 게 정상이고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관제인격 자체를 죽여 버림으로써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관제인격이 죽었음에도 대천공에 큰 문제가 생기는 대신 시스템이 복구되는 걸 보니 예비 시스템이 있든지 아니면 예비 관제인격이 있든지, 그것조차 아니면 또 다른 수단이 있을 거라고 짐작된다.
“시간이 없습니다! 즉시 수송선에 올라타십시오!”
“출발하겠습니다!”
뜻밖의 사태에 당황하던 구출대였지만 순식간에 평정을 찾고 맡은 임무를 다시 수행한다.
원래 그들이 가정하던 상황은 훨씬 안 좋았을 것이다. 동민이 공간의 틈을 열어 구출대와 단박에 만난 것도, 내가 관제인격에게 명령권을 사용해 비인들을 공격하게 한 것도 그들로서는 기대조차 안 하던 호재였을 테니까.
애초에 장기 작전을 예상하고 수송선이 내려서 주변을 요새화하고 있던 그들이 계획에도 없던 적들의 패닉이 끝났다고 혼란에 빠질 이유가 없다.
“아, 조금만 더 뻘짓 하고 있었으면 아무 고생 없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물론 좀 아쉬워할 수야 있겠지만 말이다.
콰쾅! 쾅!
그때 저 멀리에 있던 포대로부터 수송선을 향해 포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함 내부에 숨겨져 있던 모양인데 지옥아귀를 공격했다가 다시 비인들을 공격했다가 다시 이번에는 인간들을 공격하느라고 바쁜 녀석이다.
텅! 텅!
수송선 안에 들어서고 문이 닫히자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울려 퍼지던 굉음이 조금은 잦아든다. 다만 공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듯 연신 수송선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몸은 좀 괜찮아?”
“안 괜찮아.”
”후후, 솔직해서 좋네. 비인들의 형틀은 지독하기로 악명 높으니 아무리 치료해도 완전히 괜찮을 리는 없겠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황금사자기를 일으켜 내 몸을 치료하자 주변에 있던 군인들이 깜짝 놀란 듯 움찔움찔하는 게 보인다. 다들 군인인지라 경솔하게 입을 열거나 하지 않았지만 묘하게 술렁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세레스티아가 묻는다.
“신미영 대위, 형틀을 치료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형틀이라면 그 비인도적인 제재 수단 말이군요. 지금 설마 그가 형틀에 중독되어 있는 겁니까?”
“응.”
세레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영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고통이 보통이 아닐 텐데요.”
“맞아요. 보통이 아니네요.”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고 배를 칼로 계속 찌르고 있는 것처럼 아프다. 하긴 몸속에 금속을 들이부었는데 괜찮으면 어디 그게 사람일까? 그나마 세레스티아가 황금사자기로 치유하고 권능(다시 생각해도 웃기지만)으로 불러들인 통돼지 구이를 먹게 해줬기에 이 정도지 아니었으면 의식을 잃은 지 한참이었을 것이다.
쿵!
그런데 그때 수송선 내부가 심하게 흔들렸고 미영의 급히 귀에 손을 대었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무슨 보고를 받은 듯 표정이 딱딱해진 상태다.
“무슨 일이야?”
“흠. 저, 그것이.”
쿵!
그러나 그녀가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수송선이 한 번 더 크게 흔들렸다. 미영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탈출 포트에 탑승하십시오!!”
그런데 그렇게 소리치며 나를 번쩍 들어올린다.
“엥?”
당황한다. 아니, 이 여자는 왜 황녀인 세레스티아가 아니라 나를 챙기는 거야? 그러나 내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그녀는 수송선 한쪽의 벽을 조작했다. 벽 안에서는 기기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나 거기에 들어갈 수는 없다. 난데없이 온몸이 떠오르는 부유감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콰앙---!!
고속으로 달리는 차를 타고 중앙선을 넘어 다른 차와 충돌하면 이 꼴이 될까? 어떻게 항거할 틈도 없이 벽에 충돌하고 다시 붕 날아올라 바닥에 떨어지자 컥 하고 숨이 막히는 것이 느껴진다.
“괜찮나?”
그러나 어느 순간 공간을 넘어온 동민이 나를 잡아챈다. 그리고 뒤이어 다가온 세레스티아와 보람이 내 앞을 막아선다. 어느새 똑바로 선 미영이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미친! 완전히 미쳤어! 대천공을 포기하고 우리를 잡으러 오다니……!”
콰득!
비명 소리와 함께 한쪽 벽이 뜯겨져 나간다. 놀라 밖을 보니, 저 멀리 뭔가가 펄럭이며 날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수송선을 호위하고 있던 기가스들은 당연히 그 앞을 막아섰지만-
[꺼져라!]
포효와 함께 뿜어지는 폭염에 모조리 쓸려 나간다. 하늘을 날아온 괴물, 모르네와 우리 사이의 거리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의 열기다.
“아니, 무슨 공룡이 불을 뿜어? 게다가 날개는 또 뭐고?”
“인간으로도 변하는데 날개 돋는 것쯤이야 신기할 것도 없지! 너는 여기 가만히 있어!”
“괜히 머리도 내밀지 말아요!”
“아니, 아예 저 탈출 포트에 들어가 있어라.”
세레스티아와 보람, 동민이 차례로 말하고 수송선 밖으로 뛰쳐나간다. 현재 대천공의 상공을 날고 있는 상태인 만큼 아래를 보면 아찔할 정도로 위태로운 전장이었는데 그 누구도 망설이는 이가 없었다.
“…아, 진짜 약해서 못 해먹겠네. 기가스를 항상 타고 다녀야 하나?”
한 나라의 황녀도 나가 싸우는 판국에 보호받고 있자니 뭔가 미묘한 기분이었지만 내가 나가 싸우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다.
쿠궁! 쾅!
다시금 들리는 폭음과 함께 수송선이 크게 흔들린다. 그러고 보면 이 수송선도 참 대단한 것이 한쪽 벽이 뜯겨져 나갔는데도 별문제 없이 솟구쳐 오르고 있다.
“막아! 저 괴물을 떨쳐 내라!”
“부상 입힐 생각은 하지도 말고 떨어뜨리는 데 전력해!!”
현재 모르네와 수송선은 수평을 이루며 날고 있었다. 모르네는 계속해서 수송선을 붙잡으려고 하고, 수송선은 온갖 포격과 탄환을 쏟아내며 그런 그를 떨쳐 내려 한다. 만약 모르네의 목적이 우리의 몰살이라면 벌써 끝났을 게임이었지만 세레스티아 때문에 큰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니 어떻게든 이대로 떨쳐 내고 달아나야 한다.
쩌엉!
그런데 그때 외각 쪽으로 크게 휘둘러진 모르네의 꼬리가 전력을 다해 모르네를 공격하고 있던 동민의 몸을 후려친다. 음속을 넘어서는, 솔직히 말해 내 경우에는 휘두른 직후에야 그게 공격인 줄 알았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기에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수송선 밖으로 튕겨 나간다.
수송선이 워낙 빠르게 비행하고 있는 만큼 동민의 모습이 삽시간에 멀어진다.
“동민 선배!! 으으, 제길! 선배, 이거, 이거 따줘요, 당장!”
“어, 어, 으응.”
철컥!
워낙 급했던 만큼 서둘러 그녀의 몸에 열쇠를 꽂아 돌렸다. 이미 그녀는 전신 갑옷 상태였기에 어디에 해도 마찬가지였다.
우우웅---!
열쇠를 돌리자 보람의 몸에서 세레스티아의 황금사자기와는 조금 다른, 더 밝고 화려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온다. 다만 동민 때와 다르게 그녀는 이지를 상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금방 다녀올 테니까 꼼짝 말고 최대한 깊은 곳에 숨어 있어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람 역시 동민이 튕겨 나간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려 멀어져 버린다. 나는 반사적으로 멀어지는 둘의 모습을 보려 했지만.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세레스티아가 수송선 안쪽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그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찾았-----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수송선 안쪽을 들여다본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긴장도 풀 겸 입을 열어본다.
“과도한 스토킹은 사절인데.”
[큭큭큭! 좋은 대로 떠드는구나!]
모르네의 덩치가 워낙에 큰 만큼 인간 사이즈로 만들어진 수송선에 들어올 수 없어야 정상이지만, 녀석은 무슨 종이 박스를 부수는 것처럼 벽을 헤집으며 내가 있는 선실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대하, 조심해!”
콰득!
경고와 함께 엄청난 힘이 내 몸이 뒤로 당겨지고, 내가 붙어 있던 벽이 한 뭉텅이 뜯겨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벽이 과자처럼 부서지는 걸 보니 내 연약한 육신 같은 건 젤리처럼 으깨질 것이 분명하다.
“무슨 짓이야! 대하를 죽일 생각은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이를 가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에 모르네가 흉악한 얼굴 근육을 움직여 웃는다.
[큭큭큭… 분명히 그랬지. 만약을 대비해서 말이야.]
콰쾅! 쾅!
이렇게 머리를 수송선 안에 넣어두고 대화를 하는 사이에도 외부에서는 펑펑 터지는 소리가 나고 있다. 황당하게도 지금 이 녀석은 날개와 꼬리만으로 주변에 모여든 기가스와 군인들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또 반격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생각이 바뀌었지? 연방 전체를 걸고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을 텐데!”
이 상황에서조차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적이나 다름없는 청원의 존재뿐이다. 우리가 이런 위기에 처한 것도 그 때문이지만, 비인들이 가득한 대천공에 잡혀 있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 역시 그였으니까. 포로를 잡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비인들 속에서 무사할 수 있던 건 그들이 청원을 향해 가진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에 와서는 생각이 좀 바뀐 것인지 날 보는 모르네의 표정에 살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감수하겠다! 네놈을 죽여야 내 권능이 다시 돌아올 테니까!]
모르네의 거대한 입이 내 몸을 덮친다. 뒤는 벽, 더는 물러설 곳도 없다.
턱!
그러나 내 몸을 물어뜯으려는 모르네의 위턱과 아래턱을 황금사자기를 일으킨 세레스티아가 붙잡는다.
물론 상대는 초월자. 그가 작심한다면 세레스티아가 아무리 버틴다 해도 단박에 고깃덩어리가 되겠지만, 아무리 모르네가 막 나가도 그녀를 죽일 수는 없다.
[꺼져라, 계집! 최대한 수치를 주지 않고 내 아이를 배게 할 테니!]
“지랄하고 있네! 그걸 설득이라고 하냐!?”
늘 생각하는 거지만 황녀치고는 입이 너무 걸다. 하긴 군인이기도 하니 당연할지도 모르지.
“셀, 고개 살짝 돌려봐.”
“가만히 있어! 버티는 것도 한계…….”
“빨리!”
여태 가만히 있던 내가 소리치자 깜짝 놀란 세레스티아가 고개를 한쪽으로 튼다. 그리고 그것으로 공간이 생겼고, 나는 한쪽 팔을 간신히 빼내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열린 모르네의 입안으로 그걸 던져 버렸다.
“뭐 하는 거야? 왜 안경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혼란스러워하는 세레스티아였지만 당연히 그건 시력 보정용 안경이 아니었다. 애초에 양쪽 눈 모두 2.0을 가볍게 넘는 내가 무슨 안경이란 말인가? 그것은 안경이 아니라 알바트로스함의 기술자 권혜란이 만들어낸 마도병기 우자트. 그것이 동굴같이 어둡고 깊은 모르네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걸 확인하고 즉시 소리친다.
“명령한다, 우자트! 네 모든 기능을 활용하여 적을 파괴하라!”
꾸웅---
[하! 무슨 짓… 크억?]
나를 비웃으려던 모르네가 신음과 함께 몸을 뒤튼다.
“셀! 녀석을 밀어내!”
“…알았어!”
대답과 동시에 황금사자기가 찬란하게 타오르기 시작하고 세레스티아의 양손이 어마어마한 힘으로 모르네의 머리통을 밀어버린다.
쿠드득!
거대한 머리통이 마술처럼 밖으로 튕겨 나간다. 생각해 보니 모르네는 고속으로 날아가고 있는 수송선에 억지로 붙어 있는 것이었기에 한순간 힘이 풀리면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황녀님! 모르네가……!”
“나도 알아! 딴생각하지 말고 속도를 높여!”
“네! 황녀님!”
대답과 함께 두 대의 기가스가 반파된 수송선 옆으로 붙어 비행을 돕는다.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수송선에서 떨어진 모르네의 모습이 삽시간에 멀어진다.
[네놈----! 네놈이------!!!!! 크아아아아-----!]
그리고 잠시 후 광기 가득한 포효가 머릿속을 울린다. 우자트를 뱃속에서 터뜨렸는데 벌써 저렇게 회복하다니.
‘뭐, 어차피 회복해 봐야 늦었지만 말이야.’
설사 지금 그가 완전한 몸 상태를 되찾았더라도 추격을 재개할 수는 없다. 우리 수송선은 이미 알바트로스함에 붙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미친 척하고 추격해 온다면… 그는 알바트로스함을 조종하는 천현일 소장에게 개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하여간 괴물이군…….”
한순간 몇 번이고 생사의 경계를 넘었다는 사실에 깊은 한숨을 몰아쉰다.
하지만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람이하고 동민이는?”
“안타깝지만…….”
내 말에 주변에 있던 군인들이 고개를 흔든다. 이미 인원 체크를 끝낸 것이다.
“여기 있는 인원이 전부입니다.”
“…….”
나는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