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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구출 작전(2)
꿈을 꾼다. 그것은 머나먼 세계에서의 이야기.
“당신은 누구세요?”
사랑스러운 소녀다.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웠던 존재.
촤악.
피가 튄다.
“Hey~ 혹시 호위 같은 거 필요하지 않나?”
상쾌한 미소가 어울리는 사내다. 너무나 많은 것을 나누어 주면서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사내. 모두에게 박해받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밝은 영혼.
촤악!
피가 튄다.
“큭큭. 네가 바로 그 [위대한 지혜]인가. 이거 행운이로구만! 헛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이야!”
험상궂은 사내가 수백 명의 부하 앞에서 웃고 있다. 그들은 쓰레기. 욕망에 자신을 던져 버린 자들.
촤악!
피가 튄다.
“아아,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만월이 가득한 평원 아래에서의 결투라니.”
아름다운 사내였다. 더 없이 선량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 그야말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고결한 영혼을 지닌 자.
“그럼 싸워보도록 하지. 무한(無限)의 학살자(虐殺者)여.”
촤악!
피가 튄다.
“왜 저런 괴물들 편을 드는 거야! 너도 인간이잖아!”
“살려내. 살려내!! 내 동생을 살려내란 말이야!!!”
“우리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네놈을 처단하겠노라.”
“왜. 어째서 이런 짓을……!”
“살려줘. 내, 내가 이렇게 용서를 빌 테니…….”
“지옥에서… 기다… 리…….”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피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사내, 증오를 불태우며 검을 휘두르는 여인, 해일처럼 몰아치는 군대와 새하얀 머리칼의 노인들.
“죽어.”
“죽어라.”
“죽여 버리겠어어어어어!!!!!”
“반가워.”
“사랑해요.”
“망할… 자식.”
“당신을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피가 튄다. 팔에 피가 튄다. 발끝과 가슴에 피가 튄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탐욕과 욕망, 오해와 원망이 어우러져 구르기 시작한 피의 수레바퀴는 멈출 줄을 모르고 하염없이 돌아갔다.
그리고 어느 날.
“이게…….”
마침내 그는 [아버지]를 원망하게 되었다.
“이게 당신이 원하는 것입니까?”
*
“앗! 선배가 일어났어요!”
“대하! 너 괜찮아?”
정신을 차리기가 무섭게 두 가닥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왱왱 울린다. 딱히 신음 소리를 흘리거나 눈을 뜬 것도 아닌데 눈치 참 빠른 녀석들이었다.
“아… 머리 아파. 조용히.”
이마를 짚으며 일어난다. 아닌 게 아니라 머리가 윙윙 울릴 정도로 어지럽다. 다만 그게 초월자를 상대로 열쇠를 사용해서인지, 아니면 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심해.’
그는 세계의 관리자였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는 신이었으니 그리 틀린 생각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아버지]라고 불리는 상위의 존재에 의해 인간의 몸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의 믿음이 틀리다는 게 증명되었다. 신의 자리에서 추락했음에도 보통의 생명체는 감히 따라갈 수도 없는 지식과 능력을 가졌던 그였지만, 그는 그런 스스로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의 능력이야말로 파멸을 불러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섣불리 자신의 능력을 드러냈기에 그 세계에 살던 모든 권력자가 그의 능력을 탐하게 된 것이다.
‘모든 걸 안다고 했지만 정작 인간의 욕망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지.’
때문에 그는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야만 했다. 자신을 욕심내는 자들에게서 스스로를 지켜야 했으며, 또 자신이 사랑하게 된 자들을 지키기 위해 적을 죽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망가지고 말았다.
“그나저나 상황은 어떻게 된 거야?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대략 30분 정도 지났어. 다시 복도 안쪽으로 들어와 숨은 상태고… 전황은 되게 좋아. 이대로라면 그냥 탈출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이기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지.”
“뭐? 어떻게?”
테케아 연방과 레온하르트 제국의 전체적인 전력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세퍼드 항성계에서는 압도적으로 열세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테라급 함선인 알바트로스 함과 엑사급 우주모함인 대천공이 지닌 전력의 격차는 쉽게 메울 만한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 전투가 이어질 수 있었던 건 탐지가 힘든 엘라-3행성에 잘 숨어가며 싸워왔기 때문이지 제대로 붙게 된다면 절대 이겨낼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세레스티아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다.
“네 덕택에 대천공이 완전히 엉망이야. 기동 자체가 완전히 멈춰서 알바트로스한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지. 게다가 외부 보호막이 해제되고 사출구도 죄다 열려서 외부에 나와 있던 비인들이 전부 우주로 날아가 버렸고.”
“즉 나는 말 몇 마디로 대학살을 했다는 거구만.”
과연 몇 명이 죽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테라급인 알바트로스 함에도 1만 명이 넘는 승무원이 있었다. 당연히 그보다 훨씬 큰 규모의 대천공에는 더 많은 비인이 살고 있었겠지.
“…멍청아.”
“음?”
그런데 그렇게 말하다가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그러고 보니 옆에 있는 보람도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긴장 좀 해요 선배! 잘 탈출한 다음에 잡혀가고 싶어요?”
“에? 그게 무슨 소리야. 잡혀가?”
그런 걸로 자책하지 말라는 뭐 그런 위로 같은 걸 예상했던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세레스티아가 말한다.
“다시는 그런 뉘앙스의 말을 하지 마. 네 그 힘이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이 안 가니?”
“정말이지! 리전 이야기 나올 때마다 다들 기겁하는 걸 봤으면서 무슨 경솔한 짓이에요? 외계인들한테 잡혀가서 인체 실험 당하고 싶어요? 인간 형태의 리전이라고?”
“구해준 건 고맙지만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너 그러다 비인들이 아니라 레온하르트 제국한테 해부당한다.”
“하여간 경솔해요!”
연속해서 쏟아지는 맹비난에 벙찐 표정으로 두 소녀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내 그녀들의 진심을 깨닫고 피식 웃었다.
“고마워.”
“…뭐래, 바보가.”
“하여간 조심 좀 해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으면서.”
그녀들은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말한 것처럼 내 위험한 힘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살해의 후유증에 대한 걱정이기도 하다.
늦은 밤 운전하다 동물을 차로 치어도 그 섬뜩한 느낌을 잊기 힘든 게 사람이다. 법적으로 국가의 칼이 되어 사형을 집행하는 사형 집행인들조차도 막대한 후유증에 고통스러워하는 게 현실이니까. 심지어 사형 집행 참여 명단에 자기 이름이 들어있다는 사실에 졸도하는 사형 집행인들도 있다고 할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괜찮단 말이지.’
내심 쓰게 웃는다. 그렇다. 나는 괜찮았다. 억지로 강한 척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보람의 말대로 몇 달 전만 해도 일반인이었던 나지만… 그렇다 해도 정말 일반적인 인간은 아니니까.
게다가 우주로 나와서 내 힘을 점점 각성함에 따라… 내가 잊으려 노력하던 [악몽]은 점점 더 또렷하고 분명해진다. 처음에는 그 기억이 나를 잡아먹는 과정이 아닐까 걱정했을 정도였다.
‘뭐.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지만.’
기억을 공유한다 해도 그게 [내] 기억이라는 느낌은 없다. 1인칭이라고는 하나 마치 TV나 영화의 주인공을 보는 감각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진 그의 기억은 그의 인생 전부가 아니다. 전능한 존재로서 우주를 관리할 때의 기억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이름 모를 행성에 떨어져서 겪은 일이니까.
아마 그 기간이…….
“대하야.”
“300년?”
“…뭐?”
“아, 말이 헛 나왔어. 그나저나 동민은 어디로 간 거야?”
나답지 않은 실수에 혀를 차며 화제를 돌린다. 그러나 질문하고 나니 확실히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세레스티아와 보람이 여기에 있는데 정신을 잃고 있던 동민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동민이라면 깨어나서 구출대를 인도하러 갔어.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묻자면 대체 모르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맞아요. 녀석이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던지…….”
그녀들의 말에 잠시 고민한다. 말해도 괜찮을까?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미 그녀들 앞에서 명령권까지 써버린 이상 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뭐 짐작하겠지만 열쇠의 힘이야. 우리를 공격했던 건 녀석의 본체가 아니라 분신이었고… 나는 그걸 잠가 버렸지.”
“…무형적인 능력도 잠그고 딸 수 있다고? 심지어 살아 있는 초월자를 상대로?”
“나도 확신은 안 갔지만 위기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도 모르게 목에 걸려 있는 열쇠를 잡아들었다.
‘그러고 보면 기억에 전혀 없는 물건이란 말이야.’
나는 기억 속에서 온갖 신기(神器)를 보았다. 벼락을 내뿜는 지팡이, 비구름을 부르는 피리, 화염으로 이루어진 검까지…….
그러나 기억 어디에도 이런 열쇠는 없다.
‘인간의 몸에 깃들기 전에 가지게 된 물건인가? 아니면 그 이후에? 아니 애초에… 내가 가진 기억이 내 친부의 것이 맞기는 한가?’
언제나 짐작뿐이다. 명확한 사실은 하나도 없고 그냥 짐작만 해야 했다.
‘아니면 평범하게 전생의 기억 같은 걸지도.’
사실 아버지로부터 친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당연히 전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모르는 기억이 떠오르면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일 테니까. 그리고 그 가설은 칭호를 보는 내 능력에 더해져 [다른 게임]을 하는 기억 같은 게 아닐까? 하는 방향으로 발전되기도 했었다. 내가 사는 삶이 [인생 게임 온라인]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꽤나 예전부터 해 오던 생각이기도 하다.
팟!
그런데 그때 갑자기 공간이 일렁이더니 허공에서 동민이 떨어져 내린다.
“아, 일어났군.”
“응. 그나저나 몸은 괜찮아? 부하가 걸리거나 하지는 않고?”
내 물음에 동민이 슬쩍 웃는다. 거의 표정이 없는 녀석의 성품을 생각하면 드문 일이었다.
“오히려 상쾌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능력에 진전이 있었을 정도지.”
“…어느 정도?”
“이거 하나만 해도 우주에 나온 보람은 충분할 정도.”
한 10년 폐관수련 해야 얻을 정도의 성과를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얻은 것 같은 표정으로 동민은 가볍게 손을 그었다.
“그리고 그래서 이런 것도 가능하지.”
치이익-!
공간이 갈라진다. 그 놀라운 광경을 잠시 바라보자, 그 갈라진 공간으로 전투 태세를 취한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군인들과 기가스가 보인다.
“엑!? 선배, 차원문을 열 수 있게 된 거에요?”
“건너오십시오, 황녀님!”
보람의 질문에 동민이 대답할 틈도 없이 갈라진 공간 건너편에서 이쪽을 바라보던 여인의 외침이 들린다.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옷이라는, 사실 우주라는 배경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복장의 그 여인은 보병대의 중대장인 신미영 대위였다.
“시간 끌 필요는 없겠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세레스티아가 내 팔을 잡더니 차원의 틈을 건너간다. 어어, 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보람과 동민 역시 틈을 넘어와 있었고 갈라졌던 차원의 틈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다.
쿠구구구!!!
밖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외부 방어막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거주구역의 공기가 밖으로 빨려 나가면서 온갖 물건이 같이 날아오르고 있는 것.
다만 추적대의 경우에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방어막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기에 제법 평온한 분위기였다.
“외부 방어막이 없어졌는데도 괜찮군요?”
“멍청한 말이군. 적진에 침투하는 이상 적 관제인격은 무조건 적이라고 봐야 한다. 그 공격에 대비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비인들이야 아군한테 배신당한 상황이니 이렇게 된 거지 애초부터 적 관제인격이 적인 구출대의 입장은 다른 게 당연하다.
“자자, 빨리빨리 수송선에 올라타라! 탈출한다!”
미영의 외침에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그런데 그때였다.
[명령… 이행할 수 없… 죄송합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멈칫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쾅! 쾅! 콰앙-!
하늘로 날아올라가던 물건들이 힘을 잃고 사방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외부 방어막이 복구되고 있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시스템이 복구된 건가?”
당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깨달았다.
‘죽였어.’
그렇다. 그것이다.
‘모르네가 대천공의 관제인격을 죽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