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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구출 작전(2)
“전력을 다해 이 배에 있는 모든 비인을 척살하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모르네는 이해할 수 없는 내 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태도와 상관없이.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명령권이 발동했다.
-우우우---! 우우우---!
묘한, 그러나 위협적인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모르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뭐? 아틴!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비상 모드에 들어간 거지?”
모르네의 말에 나는 짐승 울음소리 같은 방송이 말하자면 비상벨이나 사이렌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꽤나 높은 등급인지 [자폭 모드에 들어가겠습니다!]라는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모르네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네 이놈!! 무슨 짓을 한 거냐!”
순간이동이나 다름없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나는 모르네의 억센 손아귀에 목을 잡힌 채 허공에 떠 있었다.
“글쎄? 멍청한 놈들. 애초에 나를 리전하고 같이 가두는 바보짓을 한 게 잘못이지.”
“…뭐라고?”
목숨을 건 필생의 개드립에 모르네가 혼란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망할 공룡 상태에서와 달리 인간 상태에서는 표정을 알아보기가 쉽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지금 이 상황을 일으킨 게 리전이라고?”
“당연한 거 아니야? 애초에 내가 함대를 이끄는 관제인격을 어떻게 미치게 할 수 있겠어?”
당당하게 말한다. 녀석의 눈앞에서 대놓고 명령권을 사용했다지만 내 능력은 쉽게 믿을 수 없는 상식 밖의 개념이라는 기대로 한번 질러본 것이다.
무엇보다 이 배에는 리전이 있지 않은가?
“그건.”
거기까지 말하고 멈칫한다. 왜냐하면 내 말이 충분히 상식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지. 보통 사람이, 그것도 비인의 우주모함에 먼지만큼의 권리도 없는 인간이 관제인격을 강제한다는 건 있을 수 없으니까.
리전이 왜 위험한가? 어째서 우주를 지배하는 연합조차 리전을 두려워하고 배척하려 하는가?
그것은 모든 시스템에 간섭하는 그들의 능력이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 능력을 다른 이들도 흔히 가지고 있었다면, 리전은 굳이 연합의 대적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콰앙--!! 쿵쿵!
그리고 그때 외부에서 폭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나에게는 그것을 감지할 감각이 없으니까.
그러나 초월자인 모르네는 당연히 나와 상황이 달라 그 모든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이런 미친! 무기고가!! 아니, 그보다… 잠깐! 아틴!! 멈춰!”
쿠오오오오----!
사색이 되어 소리치는 모르네의 고함을 짓누르며 귀가 멍멍할 정도의 폭음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직후 복도 저편에서부터 어마어마한 흡입력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제길!”
모르네가 이를 갈며 내 목을 잡지 않은 나머지 손을 들어 올리자 주변에 박혀 있던 토템들의 위치가 재설정되어 우리 주변에 반투명한 막을 만들어낸다.
끼기기긱--!
콰쾅!
나는 모르네에게 목이 잡힌 상태로 반투명한 막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무너진 복도의 잔해들이 무슨 민들레 씨처럼 하늘을 날아 복도 밖으로 날아가고 있다.
‘그렇군. 사출구를 열고 공기막도 해제해 버렸어!’
나는 대천공의 관제인격에게 모든 비인을 척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관제인격이 어떻게 자신의 내부에 있는 비인들을 공격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막연히 폭발을 일으킨다든지, 내부에 있는 자동병기를 움직인다든지 하는 방식만을 떠올렸던 것.
그러나 이제 보니 관제인격이 아주 간단히 승무원들을 해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들을 우주로 던져 버리는 것이다.
“버러지 같은 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여전히 내 목을 잡고 있는 모르네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손에 힘을 주었다. 머리로 피가 통하지 않아 머리가 띵해질 정도다.
“크윽…….”
신음한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너희 목숨 걱정해 주길 원했으면 좀 곱게 다뤄주지 그랬냐?’라고 도발해 보고 싶지만 숨이 막혀서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그런 식의 도발을 했다가는 이 녀석이 내 목숨도 걱정해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저항이 불가능하니 잠깐 참는 것도 좋겠지?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잠깐, 목숨?’
순간 나는 동민과 보람이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 다 무사해 보였다.
‘어째서 살려두고 있는 거지? 아니, 심지어 보호하고 있다고?’
물론 그들이 살아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어차피 희망이 없어 보여 일을 저질렀지만 당연히 그들이 무사하기를 원했으니까.
그러나 그냥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은 뭔가 이상한 일이다.
물론 의식을 잃은 동민은 몰라도 보람은 모르네가 억제를 푸는 즉시 돌풍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강자이니 보호를 고마워하는 건 아니지만, 살아서 도망갈까 걱정되어 여전히 잡아서 보호막까지 칠 정도면 차라리 죽이는 게 정상 아닌가? 백번 양보해서 나야 후환이 두려워 살려둔다 쳐도 보람과 동민은 왜?
“제길! 일단 중앙 시스템부터 관리해야겠군.”
이를 갈며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바닥에 누워있던 보람과 동민이 떠올라 토템을 등지고 묶였다. 두 손목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딱 붙어 있어 움직일 수 없고 입을 벙긋거리고 있음에도 조용한 걸 보니 소리도 차단당한 것 같다.
‘왜지?’
그리고 그 광경을 보는 나는 점점 더 의혹이 진해지는 것을 느낀다. 왜? 어째서? 생명경시 사상이 극에 이른 비인들의 머리통이라고 할 수 있는 모르네가 왜 굳이 그들의 목숨까지 아끼지? [비인은 포로를 잡지 않는다]는 거의 정설로 굳어진 성향이 아니었나?
[테케아 연방]
[3번 모르네]
녀석이 분신이라는 건 처음 보는 그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어차피 그 분신에게조차 승산이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가 우리를 압도하기도 했고.
하지만… 만약 힘의 총량이나 능력의 단계 같은 게 아니라 조건 같은 걸로 약화된 분신이라면 어떨까?
‘마치 신선인 청원이 [사명]으로 묶였듯이.’
분류를 시작한다. 급박한 와중이었지만, 녀석은 여전히 내 목을 잡고 있었기에 가능하다. 다만 아까처럼 위로 들어 올린 게 아니라 무슨 가벼운 가방 같은 걸 들고 있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고 있어 시선 고정이 어렵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어딜 가는 거야? 이거 안 풀어?!”
토템에 묶여 있는 보람과 동민, 그리고 목이 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나와 다르게 세레스티아는 자신의 다리로 걷고 있다. 다만 완전한 나체 상태에서 모르네의 옆에 나란히 걷고 있는 그녀는 육체의 자유를 빼앗긴 상태인 것 같았다.
‘…엄청난 광경이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가 하얗고 쭉쭉 뻗은 다리로 한 발 한 발 내밀 때마다 내 고개가 위아래로 흔들린다. 나는 어쩌면 지금 이 광경을 꿈에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생각을!’
황급히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다. 이 급박한 상황에 무슨 잡념이란 말인가? 그렇게 내가 자책하는 사이 모르네가 세레스티아를 보며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누구라도 홀릴 모습을 하고 있는 세레스티아였지만 어차피 종이 다른 그는 먼지만큼의 흥분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던 걸 멈춰서 애가 타는 거라면 조금만 기다려라 인간 계집. 평생 잊지 못할 즐거운 시간을 경험하게 해줄 테니까.”
나를 한 손에 들고 있는 걸 잊기라도 한 것처럼 성큼성큼 걸어갈 때마다 주변 공간이 휙휙 지나가는 게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때쯤 간신히 잡념을 떨치고 분류에 성공할 수 있었다.
[테케아 연방]
[비전투용 3번 분신 모르네]
‘역시.’
떠오르는 칭호의 모습에 호흡을 골랐다. 왜냐하면 이 녀석이 우리를 죽이지 않고 있는 것이 뭔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지금은 죽일 수 없어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이대로 목적지까지 끌려간다면?
녀석은 분명 우리를 다른 비인들에게 넘겨 끝장낼 것이다. 운이 좋으면 나까지는 어떻게든 살려놓을지도 모르지만, 동민과 보람의 경우는 반드시 죽게 되겠지.
‘막아야 해.’
슬쩍 움직여 본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구속당했을 때와 다르게 지금은 완전히 멀쩡히 움직일 수 있었다. 세레스티아의 몸에서 자유를 빼앗을 수 있는데도 내가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녀석의 의도인지 아니면 뭔가 실수인지 알 수 없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욱.
“…뭐야, 이건.”
열쇠가 다리에 박혀 들어가자 빠른 속도로 이동하던 모르네가 멈춘다. 당장이라도 쳐낼 줄 알았는데 녀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 아니, 그보다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보이는 것은 위기감보다 의문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방심해 줘서 고맙다.”
“뭐? 큭큭큭, 네가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지금 이 몸은.”
뭔가 더 떠들려는 모양이었지만 녀석이 마음이 변해서 날 쳐내기라도 하면 모든 게 끝장이었던 만큼 무시하고 열쇠를 돌렸다.
철컥!
분명 녀석의 피부 속이었음에도 들리는 금속음. 그리고 그대로 내 목을 잡고 있던 손길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끼며-
팟!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쾅!
“함장님? 집중해 주십시오! 지금은 위험합니다!”
모르네가 벌떡 일어서자 부관이 깜짝 놀라 소리친다. 현재 모르네는 대천공을 조종해 함대전을 벌이고 있었고, 난데없이 관제인격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천공의 함장이자 조종사로서 대천공의 아이언 하트와 동조하고 있는 모르네의 통제가 없다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 인간들에게 당하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미친… 미친…….”
부관의 비명도 무시한 채 모르네가 부들부들 떨었다. 엄청난 상실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장님?!”
“닥쳐!!”
모르네의 거센 고함 소리와 함께 웅-! 하고 공간이 울리며 주변에 있던 승무원들이 각혈과 함께 쓰러진다. 그러나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을 정도로 모르네는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아주 예전, 타짓트가 100번은 태어났다 죽었을 정도로 오래전 얻었던 권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초월자에 오르기 전부터 그를 왕족으로 만들었으며 과장하자면 초월자에 오를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애용했던 그 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쿠구구구---!
영기가 끓어오른다. 모르네는 영혼을 각성시켜 외부에 대한 모든 간섭을 차단하고 궁극의 주술 [아단타의 아침]을 발동시켜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최상의 상태로 회복시켰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쿠쿵! 쾅!
그가 잠시 통제를 멈추자 다시금 대천공의 관제인격 아틴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그뿐이 아니다. 화면 한편에는 대천공을 공격하는 레온하르트 제국의 전함 알바트로스가 보인다.
전력 면에서만 보면 테케아 연방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야 했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일정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적을 날려 버리는 초월기 [펜릴의 포효] 때문에 전투기와 기가스들이 알바트로스함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함장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일단 신창 알리에타를 사용하셔야……!”
평소라면 이렇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인 모르네에게 말을 걸지 않았겠지만, 상황이 너무 급박했던 만큼 선원들이 그를 닦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르네는 반응하지 못했다.
“어째서, 어째서 안 되는 거야?”
계속해서 영력을 일으킨다. 수천수만 번도 넘게 사용한 힘을 다시금 발동하려 집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 된다. 할 수 없었다.
그의 권능, [세 개의 영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