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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66화 (66/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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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구출 작전(2)

“모, 모르네…….”

그렇다. 바로 그다.

대주술사이자 대천공의 함장인 그 강대한 초월자가 우리 앞에 있었다.

“짜증 나는군. 분명 압도적이어야 할 전쟁이었는데 이렇게 되다니. 엄청난 숫자의 전투기와 기가스를 잃은 거야 그렇다고 쳐도 망할 마족 녀석이 날뛰어서 모함의 태반이 파괴되고. 거기에 신선 녀석까지 얽혀서 연방이 존립의 기로에 서야 하다니……. 덕분에 전쟁이 끝난 후 청문회는 예약한 거나 다름없어.”

다른 비인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모르네 혼자서만 널찍한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적이 하나라고 안도할 수 있을까? 그는 하위문명으로 내려가면 당장에라도 신으로 불릴 수 있을 만한 초월적인 존재다. 비록 선계에서 온 청원에게 망신을 당했지만… 그건 상대적인 차이 때문이었을 뿐 그의 강함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청원은 우주에도 몇 없는, 중급 신위를 가진 초월자이자 강대한 힘을 지닌 고위 신선이었으니까.

“선배!”

그리고 그렇게 서로 마주 보고 있을 때 보람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모르네가 보고 있는 만큼 정확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알았다. 내게 황금의 공주에 걸려 있는 봉인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하아압---!!”

세레스티아의 몸에서는 황금빛 광휘가 폭발하듯 퍼져 나간다. 한순간 사방으로 퍼져 나갔던 빛이 다시 모여들고, 이내 그녀의 돌격소총에 모여들었다. 자신이 가진 총기에 힘을 집중한 모양.

그러나 그 순간 묵직한 목소리로 모르네가 말했다.

“속박하라, 아르거스.”

쿵쿵쿵!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방패 모양의 토템들이 떨어져 금속으로 만들어진 바닥을 뚫고 박힌다. 나는 깜짝 놀라 물러서려고 했고 보람은 실제로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지만, 그 순간 그녀도 나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짓눌린 것처럼 바닥에 처박혔다.

카가강!

그리고 세레스티아가 뿜어낸 광자탄 역시 모조리 방패에 튕겨 소멸한다. 각도상 방패를 피해 가야 할 탄환들 역시 방패에서 펼쳐진 역장에 가로막혔다.

쿵!

“크윽……!”

그리고 광탄을 다 쏘아낸 세레스티아 역시 짓눌려 바닥에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그녀는 전신으로 황금빛을 뿜어내며 저항하려 했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나 막대하다.

키기긱! 키기긱!

그리고 그렇게 땅에 엎드려 부들부들 떠는 우리 주변으로 바닥에 박혀 있던 토템들이 다가선다. 바닥에 박힌 상태로 움직이는지라 바닥에 깊은 고랑이 생겼는데, 나는 직감적으로 우리가 절대 그 고랑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좋을 대로 날뛰어주었더군. 아래 녀석들이 널 죽이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할 정도로 말이야. 개중 몇은 네 아랫도리에 아주 많은 관심을 보였지. 종을 안 가리는 것들이라.”

괴수나 다름없는 외양을 가진 주제에 제법 또렷하고 중후한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아래 깔린 자욱한 살기를 감추지는 못했다. 인간을 싫어하는 비인중에서도 그는 특별히 더 그런 성향이 강한 듯 초월적인 정신을 완성하고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욱한 살기에도 세레스티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내 아랫도리에 관심 가지는 놈팡이가 한두 명이 아니지만 비인들까지 그럴 줄은 몰랐네. 그나저나 어떻게 네가 여기에 온 거지? 지금쯤 천현일 소장한테 얻어맞느라 함교에서 떠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내가 그걸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말하며 세레스티아에게 다가간다.

쩌엉!

쏘아진 광탄이 모르네의 코앞에서 굴절돼 한쪽 벽을 파괴한다. 세레스티아의 쌍권총이 저절로 일어나 사격을 가했지만 모르네가 너무나 쉽게 막아낸 것이다.

‘제길, 역시 안 되나.’

세레스티아가 압도적으로 비인들을 휩쓸고 다닐 수 있었던 건 물론 그녀가 강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녀를 상처 입히지 않고 잡아야 한다는 페널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여기가 적진 한가운데라도 어지간히 완벽한 포위망을 갖추지 않은 이상 그녀를 막기 어려웠던 것.

그러나 상대가 초월자라면 상황이 전혀 다르다. 세레스티아가 아무리 잘 싸운다 해도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제압당하는 것이다.

“날뛰지 마라, 인간 계집. 역겨운 일이지만 널 내 부인으로 맞이하기로 결정했으니 그에 합당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뭐? 하하하! 너도 그 미친 소리에 장단을 맞추기로 한 거야?”

자신을 비웃는 세레스티아의 반응에도 모르네는 진지하게 답한다.

“그게 우리 테케아 연방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면 그렇게 해야겠지.”

차분한 목소리에 나는 녀석이 진심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것은 세레스티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쳤군.”

“나도 어지간하면 시간을 두고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너희가 나를 궁지로 몰아넣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서 나와의 결혼을 공표하겠다고? 그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상관없다. 어차피 그 신선 녀석이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닌 것 같았으니까.”

모르네는 세레스티아를 향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요는 네가 내 씨앗을 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지.”

저벅.

순간 모르네의 모습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저벅.

4미터, 아니, 5미터도 넘는 신장을 가진 그의 모습이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점점 작아진다. 나 정도는 한입에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던 거대한 입도 사라지고 어지간한 장검 수준으로 기다란 발톱도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줄기처럼 일렁이는 몸 안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세상에.”

나로부터 약 3미터 가량 떨어진 장소에서 엎드려 있던 보람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도 같은 심정이었다.

“변신이라니.”

어느새 거대한 덩치를 가진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땅에 엎드려 있는 세레스티아의 앞에 선 것은 185센티미터 정도 되는 신장에 단단하게 단련된 몸,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녹색 머리칼의 사내였던 것이다.

“그런… 공룡족의 전투 주술에 모습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정말 코앞만 보는 인간다운 생각이군. 나는 대주술사 모르네다! 이깟 모습을 바꾸는 주술 따위를 만들어내는 건, 하물며 전수해야 하는 기술도 아니고 나 혼자서 쓰기만 해도 되는 주술을 만들어내는 건 숨 쉬듯 간단한 일이지.”

그렇게 말하며 퍽 소리가 나도록 세레스티아를 걷어찬다. 분명히 엄청난 힘에 짓눌리고 있던 세레스티아였지만 그 발길질 한 번에 당연하다는 듯 세레스티아의 몸이 뒤집힌다. 엎드린 자세에서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자세가 된 것이다.

“이… 자식이!!!”

다시금 세레스티아의 몸에서 황금빛이 터져 나온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짓누르는 파괴적인 기운. 그러나 모르네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후우웅!

묵직하고 차가워 가슴속을 짓누르는 것 같은 바람이 모르네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 바람이 주변을 한번 휘몰아치고 지나가자, 세레스티아의 황금사자기는 모조리 날아가 흔적조차 찾을 데가 없다. 심지어 그녀가 장비하고 있던 병기들까지 모두 날아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압도적이야.’

저항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수백이 넘는 비인에게 포위당했을 때가 훨씬 나은 상황인 것이다. 생명체의 한계를 넘어 신성을 획득한 초월자는 하위의 존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라던 말이 사실인 것이다. 기가스를 타고 있어도 감당하기 어려운 강자인데 맨몸인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가만히 있어라, 계집. 아프게 할 생각 없으니.”

“너, 너 이 자식…….”

“여전히 기가 세군. 일단 버릇을 좀 고쳐 줘야겠어.”

찌이익.

모르네가 손가락을 그어 내리자 타이즈 형태의 전투복이 서서히 찢어지기 시작한다. 가슴팍부터 시작된 그 균열은 서서히 내려가 명치를 넘어 배까지 도달했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 있는 세레스티아의 새하얀 가슴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모르네는 멈추지 않았다. 균열은 계속해서 내려갔고 마침내 그녀의 옷이 완전히 두 조각으로 잘려지게 되었다. 세레스티아는 버둥거렸지만 그녀의 양 손목과 발목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바닥에서 들러붙었기 때문에 그 버둥거림은 단지 그녀의 몸에 슬쩍 걸쳐진 옷이 흘러내리게 하는 결과 밖에는 만들지 못했다.

‘맙소사.’

나는 얼굴을 돌려 세레스티아를 외면했지만, 한순간 들어온 광경은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쉽게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밀가루를 묻혀 만든 것 같은 뽀얀 피부, 그리고 마르고 늘씬한 몸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볼륨감 있는 몸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래에 잇는…….

‘집중해!’

나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 냈다. 미약하다 해도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굴린다. 내가 지금 가진 무기라고는 목에 걸린 열쇠뿐이다. 이걸 어떻게 쓸 수가 없을까?

“제길…….”

그러나 불가능하다. 열쇠를 잡기는커녕 팔을 들 수조차 없다. 세레스티아가 그렇듯 나 역시 양 팔목과 양 발목이 바닥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건 머리 정도였다.

“으윽…….”

그리고 내 뒤에 있는 보람 역시 버둥거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와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근력을 가진 그녀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 그녀 역시 팔 한쪽 들어 올리지 못한 채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너… 이 자식이…….”

그렇게 우리가 일어나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는 와중에도 모르네는 하던 짓을 멈추지 않아 세레스티아는 거의 완전한 나체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상황이 그쯤 되자 여태 당당하던 세레스티아 역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모르네가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를 강간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귀찮게 날뛰지 마라, 계집. 나는 너를 죽일 수도, 상처 입힐 수도 없지만 인생에 다시없을 치욕을 선사하는 정도는 가능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바지 버클을 푼다. 이 미친놈은 진짜로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를 강간하려고 하고 있었다.

[어헝헝------!]

나체 상태로 있던 세레스티아가 포효한다. 그리고 그러자 다시금 황금사자기가 뿜어져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사자의 형상으로 변했다. 내 체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통구이를 소환했을 때처럼 뭔가 권능을 발현한 것 같았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그러나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금빛으로 이루어진 사자의 머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그것으로 모습을 드러내던 사자는 형태가 안개처럼 흩어져 버린다.

“너… 기억해. 반드시 내가 널 죽일 거야.”

이번에야말로 모든 수단을 다 써버린 세레스티아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르네를 보며 으르렁거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나는 무력하게 보고만 있어야 했다.

‘젠장!’

무엇도 할 수가 없다. 기가스를 타고 전장을 누비던 알바트로스의 유령이라고 해봐야 이런 상황에서는 철저하게 무능한 것.

모르네는 자신을 보며 으르렁거리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에 사납게 웃었다.

“역시 좀 기를 죽여놓을 필요가 있겠군. 아틴!”

[네, 함장님.]

답과 함께 허공에 직경 1미터 정도 되는 크기의 눈동자가 나타난다.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그 눈동자는 모르네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지금부터 여기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모든 수단을 이용해 촬영하라.”

[알겠습니다, 함장님.]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 절망에 엎드리고 있던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관제인격?”

[흥? 뭐냐, 버러지. 아틴에 대해 아는 게 있나?]

내 목소리가 조금 컸던 듯 여태 무시하던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르네의 모습에 한순간 갈등이 몰아친다.

‘할까? 하지만 지금?’

위험한 일이다. 비인들에게 빅엿을 먹이는 건 가능하겠지만, 그건 테러에 가까울 뿐 내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을 저지르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직후. 과연 모르네가 날 살려둘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 내 인생에 평온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내가 이 힘을 아끼고 숨겨온 것은, 이 우주에서 이 힘이 너무나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나는 나체 상태로 이를 악물고 있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고 있지만, 그녀의 속눈썹 끝에서 반짝이는 눈물이 보인다.

“명령한다! 아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조용해라, 인간. 아니, 뭐 어차피 이 계집도 시끄러워질 테니 적당한 배경음악으로 좋겠군.”

내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커다란 남근을 꺼내 세레스티아를 겨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소리쳤다.

“전력을 다해 이 배에 있는 모든 비인을 척살하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모르네는 이해할 수 없는 내 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태도와 상관없이.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명령권이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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