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65화 (65/249)

0065 / 0117 ----------------------------------------------

Chapter 14 구출 작전(2)

[재봉인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라는 답변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나는 망설임 없이 손목을 돌렸다.

철컥!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금속음이 들리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던 동민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 인형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보람이 순식간에 다가가 녀석의 상태를 확인한다.

“어때?”

“그냥 체력을 많이 써서 혼절했을 뿐 멀쩡해요. 아니, 그보다… 그거 원거리에서 풀 수 있어요? 풀 때도 가서 꽂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응.”

“그건 어떻게 알았죠? 말을 걸어왔다거나?”

뭔가 흥미로운 설정이었지만 당연히 아니었다.

“아니. 그냥 왠지 알 것 같았어.”

내 말에 보람이 흐으음 하고 신음하며 ‘그런 식인가’라고 중얼거린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세레스티아는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열쇠]라는 형태를 보고 전투형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또 특이하네. 신기들의 봉인을 푸는 힘을 가진 건가? 아니, 뭔가 금제를 당한 걸로 보이던 마족 녀석을 자유로 만들었으니 열쇠라는 형태대로 [해제]의 권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특이한 기능이야?”

내 질문에 세레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지. 왜 [초월병기]라는 명칭이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지 생각해 봐. 기본적으로 신기라는 물건들은.”

“아니, 잠깐.”

나는 용어가 헷갈리기 시작한지라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신기라는 것하고 초월병기라는 것하고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동의어야?”

“…….”

순간 세레스티아가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당황했다.

“왜, 왜 그러는데?”

“별건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모르는 거 아니니? 하위문명 출신이라지만 어지간한 정보는 도서관만 가도 다 나올 텐데.”

맞는 말이다. 기본적인 배경지식들은 도서관에 가면 구할 수 있다. 물론 기밀이라든가 쉽게 돌아다니는 정보가 아니라거나 아예 기본 지식이라거나 하는 경우는 찾기 좀 어렵지만 알바트로스함에는 하위 문명의 존재가 우주로 나오는 걸 감안하고 만들어진 교육 시스템도 있으니 거기서 수업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조선시대의 사람이 갑자기 현대로 날아온다면 그가 모르는 어휘라든가 단어, 전혀 모르는 개념의 물건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자동차도 뭔지 모를 것이고 WTO나 UN등등의 유명한 단체도 전혀 모르겠지. 현대로 온 후 꽤 시간이 지나도 디젤 엔진이라거나 반물질 폭탄 같은 게 뭔지 감도 못 잡을 가능성이 허다하다.

어떤 존재가 전혀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을 때 그 새로운 환경에 대해 완전히 아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외국에 나가서 1년을 살고도 그 나라의 대략적인 역사도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하지 않은가?

하지만 세레스티아의 반응은 냉혹하다.

“우주로 나온 지 꽤 됐는데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이 정도를 모르는 건 좀 그런데. 듣기로는 개인 시간도 짱짱했다고 했는데……. 우주로 나오고 이 긴 시간 동안 대체 뭐 한 거야?”

“하, 하하. 뭘 했냐고 한다면.”

“한다면?”

그냥 말을 흐리고 싶지만 눈길이 매섭다. 나는 허탈하게 진실을 실토했다.

“게, 게임을 좀.”

“…어휴, 폐인.”

“시, 시끄러워! 거 게임 좀 할 수도 있지!”

애초에 내가 우주에서 얼마나 오래 살 거라고 공부까지 해야 하나! 나는 지구에서도 역사 별로 안 좋아했어!!

같은 지구 출신으로서 버럭 하는 내 모습이 안타까워 보인 듯 보람이 다가와 설명한다. 이 녀석은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사는 만큼 이미 우주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온갖 정보에 빠삭하다.

“신기랑 초월병기는 흡사하면서도 구분되는 개념이에요. 쉽게 설명하자면 신기는 신의 힘이 담긴 물건이고 초월병기는 신적인 힘을 가진 물건이죠.”

“…그게 뭔 차이야? 신의 힘이 담긴 물건과 신적인 힘을 가진 물건?”

“말 그대로예요, 선배. 예를 들어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위이잉-! 철컥!

흐릿하게만 존재하던 보람의 강철 토시, 혹은 건틀렛이라 부를 만한 물건이 선명해지며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손등에서부터 팔꿈치까지 뒤덮고 있는 그 은색의 금속은 다만 손가락 두 번째 마디부터만이 밖으로 나와 있을 뿐 한 치의 빈틈도 없어 굳건하기만 하다.

“이 [황금의 공주]는 황금용신의 힘이 담긴 신기예요. 그러나 초월병기는 아니죠. 이건 말하자면… 황금용신의 힘을 불러들이는 그릇이지 이 자체로 전함급의 힘을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약간은 불친절한 설명이었지만 대략적으로 감이 잡힌다.

“신기는 신이 만든 모든 물건을 말하지만 초월병기는 그 신을 위협할 정도의 힘을 가진 물건이다?”

“정답이에요. 초월병기라고 불릴 만한 신기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초월병기 전체가 신기인 건 아니죠. 대체로 신들은 자신을 위협할 만한 신기를 잘 만들지 않아왔다고 역사서에도 쓰여 있고……. 신기 중에는 진짜 사소하고 잡다한 힘밖에 없는 종류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 예로 지구의 이면세계라고 할 수 있는 어나더 플레인(Another Plane)에는 신기는 있어도 초월병기급은 없어요.”

그녀의 말에 생각을 정리한다.

“그럼 결국 이 열쇠는 초월병기 중에서도 드문 힘을 가지고 있고, 아마도 그건 다른 신기의 봉인을 푸는 방향일 것이다?”

내 말에 세레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그렇다면 그건 신이 만든 물건일 가능성이 높아. 어떤 봉인을 푸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범용성 높은 해제 능력은 문명과 재화가 모여 만들어지는 일반적인 초월병기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종류니까. [권능]이 담긴 신기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흠.”

나는 내 손에 들린 열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든 열쇠]

심플한, 너무 심플해서 뭔가 이상하게 보일 정도의 칭호와 명칭이다. 심지어 이 망할 열쇠는 [분류]를 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갓 만들어진 붕어빵도 1시간 정도 분류를 하면 1,000자 이상의 텍스트가 쏟아지는데 이 열쇠는 정말 이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것. 제작자나 유래는커녕 그 재질조차 알 수 없을 정도이니 이건 누가 봐도 내 능력이 막혔다고 볼 수 있으리라.

‘일단은 써먹겠지만……. 아는 게 너무 없군.’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보람이 쓰러진 동민을 가볍게 흔들어보다가 이내 포기하고 일으켜 세우는 모습이 보인다.

작은 토끼가 호랑이를 부축하는 것 같은 광경이었기에 한숨 쉬며 다가선다.

“내가 들게.”

“앗, 선배? 하지만…….”

“어차피 싸우지도 못하는데 짐이라도 들어야… 짓?!”

그러나 보람에게서 동민을 뺏어 들다가 녀석의 몸을 놓쳐 버린다? 그나마 보람이 다시 받아줘서 다행이지 볼썽사납게 뒹굴 뻔했다.

“이, 이게 뭐야? 왜 이렇게 무거워?”

혼절한 사람은 평소보다 더 무겁다고 하지만 방금 내가 느낀 건 그 정도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대형 냉장고나 그랜드 피아노가 한순간 몸 위로 얹힌 것만 같은, 그냥 무겁다, 정도가 아니라 생명의 위기를 느낄 정도의 무게였던 것이다.

내가 놀라 보람을 바라보자 동민을 부축하고 있던 그녀가 한숨 쉬는 모습이 보인다.

“동민 선배는 특이체질이라 체중이 1톤에 근접해요. 평소야 스스로 제어하지만 지금은 혼절 중이니 그럴 수도 없죠.”

“…그런데 그걸 넌 한 손으로 든다고?”

기가 막혀 신음하는 내 모습에 보람이 살짝 얼굴을 붉힌다.

“그, 근접 전투 회로 때문이지 근력이 그렇게 센 건 아니에요!”

“놀리는 게 아니라 부러워서 그래, 부러워서. 아! 그러고 보니 나는 그 회로라는 거 설치할 수 없나?”

기가스를 타지 않은 상태에서는 동네 양아치도 이기기 힘든 무력이니 살아남기가 너무 힘들다. 지금 떼로 몰살한 비인 중 하나만 덤벼도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약체라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는 것.

그러나 아쉽게도 보람은 고개를 흔들었다.

“죄송하지만 이것도 적성이 필요한 개념이고 시술에도 시간이 많이 들어가요. 그리고 이런 걸로 일일이 부담 느끼지 마세요. 저도 동민 선배도 호위로 온 거니 원래 제가 할 일이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동민의 몸을 한 팔로 휘릭 들어 올리더니 쌀자루를 얹듯 어깨에 올린다. 작은 체형의 그녀가 건장한 체구의 동민을 어깨에 올리자 뭐라 말하기 미묘한 이질감이 들었지만 어차피 도와줄 수 없는 나로서는 별 방법이 없었다.

쿠우우웅---!

그때 멀리, 아주 멀찍이에서 폭음이 울리고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린다. 우주선 안에서 지진이 일어날 리 없으니 당연히 지옥아귀가 날뛰는 소리일 것이다.

“…이런.”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세레스티아의 표정이 돌처럼 굳는다.

“왜 그래?”

“그 마족이 당했어.”

“…이런.”

지옥아귀는 최상급 마족으로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곳은 비인들의 우주모함인 대천공이며 그 안에 있는 비인의 숫자는 감히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적진 한가운데에서 포위당한 상태인 것치고는 상당한 깽판을 쳤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결국에는 당하고 만 것이다.

“서둘러야겠어요.”

“맞아. 그 마족이 당했으니 당연히 우리를 노리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한 세레스티아가 돌격소총을 들고 앞장선다. 나 역시 녀석의 뒤를 따랐고 다시 그 뒤를 동민을 메고 있는 보람이 뒤따랐다.

“아아, 여기는 황녀. 위치는 어떻게 되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세레스티아가 통신기에 말을 건다. 그리고 잠시 후 통신기에 불이 들어온다.

[지금 적을 만나 교전 중이니 그 자리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다른 비인 무리와 만나면 위험합니다!]

미영이라고 했던가? 하여튼 그 중대장의 목소리 뒤로 연신 폭음이 울려 퍼진다. 다행히 위기 상황까지는 아닌 것 같았고 우리 위치도 파악할 수 있는 모양. 그러나 세레스티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안타깝지만 적들이 지금 우리가 있던 위치를 파악해서 가만히 있어도 곤란해. 지금 우리가 움직이는 방향은 정확한가??”

[예! 현재 복도를 따라 700미터가량 이동 후 측면 건물을 타고 올라가 우측으로 300미터 정도 이동하시면 됩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거리 자체는 별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것도 실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거리지만 여기는 도시에 가까운 규모를 가진 대천공이니 구석 부분에서 조금 움직이는 정도겠지.

문제는 그 사이를 막는 적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좋아. 그럼 이대로 움직일 테니 마중 나와 줬으면 좋겠어.”

[물론입니다, 황녀님! 자자, 이 자식들아, 서둘러!]

목소리와 함께 통신이 끊어진다. 나는 돌격소총을 드는 세레스티아를 보며 물었다.

“비인 녀석들이 몰려올 것 같은데 차라리 여기서 버티고 있는 게 낫지 않겠어?”

“괜히 그러다 적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면 골치 아파. 지금 이 상황에서 최악은 구출대와 우리가 분리되는 것이지.”

“그럼?”

“뭘 그럼이야.”

내 물음에 세레스티아는 서늘한 표정으로 웃었다.

“뛰어 들어가서 비인 놈들의 전열을 엉망으로 헤집어야지. 녀석들은 나한테 상처를 못 입히니까.”

적진 한가운데라는 환경은 우리에게 너무나 불리한 것이지만, 녀석들에게도 세레스티아를 상처 입힐 수 없다는 강력한 패널티가 존재했다. 만약 세레스티아가 무력한 보통의 소녀라면 그냥 붙잡혀 끝이겠지만, 강력한 능력자이자 군인인 그녀를 상처 입히지 않고 붙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리라.

“…네 판단이 그렇다면 따라가겠지만 조심해. 네가 붙잡히면 모든 게 끝이야.”

“흥. 비인 중에 무장한 나를 상처 없이 잡을 수 있는 녀석은 없어.”

자신만만한 대답.

그러나 그때 앞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든다.

“그건 좀 섣부른 판단이군.”

“……!”

“뭐?”

“이런……!”

나와 세레스티아가 동시에 굳는다. 보람은 너무 놀라 들고 있던 동민을 내던지고 황금의 공주를 활성화시킬 정도였다.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너무 날뛰는구나. 계집…….”

절망이 거기에 있었다.

쿵!

한 발을 내딛자 땅이 가볍게 울린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우주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높이를 가지고 있는 대천공의 복도에서조차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거대한 생명체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모, 모르네…….”

그렇다. 바로 그다.

대주술사이자 대천공의 함장인 그 강대한 초월자가 우리 앞에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