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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구출 작전(2)
“와… 지, 진짜 왔네. 이거 효과 짱이다…….”
그들의 앞에는 찢어진 부적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 대하의 모습이 있었다.
“뭐야, 소환이었어요? 그럼 차라리 설명을 좀 하고 이동하지.”
대하가 찢은 부적은 보람도 아는 물건으로 의지를 가지고 찢는 순간 술식이 발동되어 미리 지정되어 있던 인물들을 불러들이는 소환부였다. 전투가 벌어지며 대하의 곁을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동민이 비상시를 대비해 그에게 맡겨 놓은 것이다.
“부적은 1회용이다. 거부권을 발동하는 거야 가능하지만 그렇게 되면 여기까지 한 번에 올 수 없지.”
“그렇지만… 에구에구. 잠깐만 기다려요.”
보람은 투덜거리며 미리 챙겨놓은 물건을 꺼내 들었다. 강력한 전파를 쏘아 보내 어디에서든 특정 주파수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군용 통신기다.
“언니! 제 목소리 들려요?”
[들린다! 갑자기 어딜 간 거야? 아무리 민간인이라지만 작전 중에는 항상 보고와 함께…….]
“황녀를 찾았어요!”
[뭐!?]
느닷없는 희소식에 막 뭐라 질책하려던 미영이 멈칫한다. 한참을 찾아다녀야 하는 게 당연하고 어쩌면 찾아내지 못한 채 적들과 싸우기만 해야 할지도 모를 절망적인 작전이었는데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세레스티아 라 레온하르트다. 대하 녀석이 웬 부적을 찢으니 이 두 명이 날아오는군. 설마 우주를 넘어온 건 아닐 테니 대천공에 침입한 거겠지?”
[황제 폐하를 위하여! 제1기갑 보병 중대장 신미영 대위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병력을 이끌고 침입에 성공했으며 현재 임시 요새를 만드는 중입니다. 옥체는 안녕하십니까?]
“그래, 멀쩡해. 다만 계속 온전할지는 모르겠네.”
쿠쿵!!
거기까지 말했을 때 폭음이 울려 퍼진다. 이미 세레스티아와 대하의 위치를 파악한 비인들의 병력이 무너진 복도를 뚫으며 전진하는 소리였다.
[즉시 위치를 확인해 이동하겠습니다! 동민! 다시 이쪽으로 이동해서 인원을 옮기는 게 가능한가?]
“아쉽지만 공간이동을 막는 힘이 펼쳐져 있어 불가능하다. 내 호위 대상에게 준 마법기가 있어서 단 한 번만 가능한 일이었지.”
[하긴 당연한 일인가……. 알았다. 통신기의 위치 송신 기능을 사용해라.]
“네, 언니! 제가 결계로 시간을 끌고 있을게요!”
[…보람, 누누이 말했지만 언니가 아니라 중대장이다.]
거기까지 말하고 통신이 끝난다. 통신기를 잡고 있던 보람이 혀를 찼다.
“거참, 내가 군인도 아닌데 왜 이렇게 호칭에 집착하는지. 그나저나 선배는 괜찮아요? 낯빛이 말이 아닌데.”
“고생을 좀 했거든. 아니, 그것보다.”
“음? 왜요?”
대하는 의문을 표하는 보람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그녀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가, 자신의 손에 들린 이상한 디자인의 열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러다 물었다.
“너 혹시 봉인 같은 거 걸렸냐?”
“네? 봉인이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의 보람을 보며 대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음? 몸에 걸린 게 아닌가? 그 팔에 차고 있는 거에 걸려 있는 건가?”
“…선배 잠깐만요.”
표정을 굳힌 보람은 황급히 대하를 끌고 구석으로 데려갔다. 비록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녀는 30인력의 괴력을 가진 존재. 비교적 건장한 체구의 대하라고 해도 끌려가지 않고 배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윽. 아파, 이 녀석아.”
“흠흠, 죄송해요. 놀라서……. 아니, 그보다!”
보람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그 봉인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거예요?”
“그냥 알았어.”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어요? 제2단… 아차.”
무심코 뱉어내고 멈칫한다. 물론 크나큰 실수는 아니었다. 겨우 그 정도 실언에서 뭔가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상대는 스스로 눈치 대마왕이라 자부하는 존재였다.
“2단? 2단… 2단! 그래! 2단 변신이군! 2단 변신에 대한 봉인이 걸려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1급 변신을 포함한 모든 봉인을 해제한다고 했었지!”
“소, 소리 지르지 마요!!”
기겁하는 그녀의 모습에 대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음?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거야? 그 2단 변신이라는 게 밝히면 안 되는 비밀?”
“물론 그렇… 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여튼 신경 쓰지 마요! 어차피 안 풀리는 봉인이니까!”
단정적인 말이었고,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보람은 2단 변신을 태어나서 단 한 번만 경험했고, 그것은 물질계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의 일이었으니까.
그녀에게 [힘]을 내린 무책임한 금빛의 용은 그녀가 초월경에 이르러야 그 봉인을 풀 수 있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이에 비해 훌륭한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경지는 숙련된 마스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실제로 발휘할 수 있는 전력은 그보다 압도적이라지만 그건 그녀의 경지가 높아서가 아니라 타고난 혈통과 변신의 힘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풀 수 있다면 어때?”
“시, 싫어요!”
“…그냥 풀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싫다고?”
“…….”
“뭐야?”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대화에 동민이 끼어든다.
“흠, 그런 거였군.”
“넌 또 뭐가?”
황당해하는 대하를 보며 동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구를 떠나기 전 스승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예언에 따라 오직 그만이 제석천의 봉인을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품속에 있는 제석천의 금강저를 떠올렸다. 그의 일맥(一脈)이 소유한 공전절후의 신기임에도 아무도 제 힘을 사용할 수 없었던 병기.
‘어쩌면… 이걸 예상하고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일까.’
사실 이번 출행은 시작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일한을 매우 존경하고 자신의 일맥이 그에게 많은 빚을 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맥 제일의 보물인 제석천의 금강저를 자신에게 들려 보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적이 빼앗으러 오면 일족 모두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킬 보물을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우주로 올려 보내다니?
‘그리고 저… [마법소녀]도 말이지.’
기밀 사항이었지만 그녀가 가진 [힘]에 대해서도 그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계의 용신(龍神)에게 받았다는 강대한 힘. 사실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이계(異界)가 아닌 외계(外界)라는 것을 알았지만 중요한 건 자신도, 그리고 보람도 고작 지구라는 작은 세계에 존재하는 어나더 플레인(Another Plane)의 규격을 넘어서는 폭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하야 말로 그 폭탄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존재라면?
쿵--!!
그때 다시 폭음이 울렸다. 적들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흠. 그럼 일단 보람이는 안 된다 이거지?”
“네? 아, 그,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아니, 그럼 됐어. 그럼 동민이 너는 어때?”
“…재미있겠군. 부탁하지.”
그렇게 말하며 금강저를 꺼내 든다. 그리고 그런 그의 금강저에 대하의 열쇠가 박혔다.
키긱!
그 어떤 공격에도 흠집조차 나지 않던 금강저의 몸통을 가볍게 가르고 박힌 열쇠를 잡고 대하가 잠시 가만히 있자 뒤쪽에 있던 세레스티아도 관심을 가지고 다가온다.
“이제 그 초월병기 사용처를 완벽하게 안 거야?”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충은.”
“응? 잠깐만. 무슨 소리예요? 초월병기?”
“이 열쇠가 초월병기라고?”
보람과 동민이 거의 동시에 묻는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철컥.
열쇠가 제석천의 금강저를 열었다.
*
콰앙-!
폭음과 함께 무너진 복도의 파편이 들썩거리더니 열기에 스펀지가 녹듯 사라진다. 만약 처음부터 우리를 죽이려고 작정했다면 폭발의 방향을 조절해 안쪽으로 터지게 만들었을 테지만 세레스티아를 해치면 안 된다는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일 것이다.
“돌입해! 변수가 생기기 전에 황녀를 제압해야 한다!”
“제압 술식을 가동해서 영력 자체를 눌러 버려!”
그들의 난입은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아무래도 비인들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강한 전력을 쏟아 부은 모양.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실수였다.
파직… 파지직…….
무너진 복도 한가운데에 동민이 서 있다.
고요한, 너무나 고요해서 세상 그 어떤 흐름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 같은 바위 같은 눈. 그러나 그런 고요함과는 반대되는 격렬한 기운이 그의 전신을 타고 흐른다.
“인간?”
“새로운 침입자다! 그 둘 중 누구도 아니야!”
“죽여!”
늘 느끼는 거지만 죽이는 거 참 좋아하는 녀석들이다. 굳이 인간을 상대로 해서만 그런 느낌이 아니라 전체적인 성향이 전투적이고 살의가 짙다고나 할까.
나만 보면 못 먹어서 안달인 녀석들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바에 따르면 같은 비인이라고 서로 안 잡아먹는 게 아니다. 강자가 존중받고 약자는 도태되는, 강자에게는 천국이나 약자에게 있어서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약육강식의 문화를 셀 수 없이 오랜 세월 지속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기에… 그들이 가지는 살기는 보통의 것이 아니다. 상대를 질리게 만드는 그 강렬한 살기는 마주하는 순간 그들을 포식자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것.
그러나 그런 살기도, 돌이나 바위, 천둥과 벼락같은 자연물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콰릉!!
두 귀가 멍멍할 정도의 굉음이 사방을 짓누른다. 나는 벽 뒤에 숨어 귀를 막은 채 신음했다.
“살벌하구만.”
그 압도적인 기세에도 괴성을 지르며 덤벼드는 비인들이었지만, 그래 봐야 몰아치는 천둥과 벼락 앞에서는 다 소용없다. 튼튼한 몸을 믿고 덤빈 녀석은 그대로 새까맣게 타버렸고 배리어를 만들어 벼락을 막아내려 한 녀석도 배리어와 함께 숯덩이가 되어 바닥을 뒹군다.
“응. 상상 이상의 힘이야. 이거 어쩌면 별문제 없이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세레스티아 역시 놀랍다는 표정으로 벽 너머에서 스파크를 뿜어내고 있는 동민의 모습을 바라본다. 난데없이 앞으로 나서기에 걱정했는데 압도적으로 적을 쓸어버리고 있는 것.
그러나 그 순간 보람이 말했다.
“끝장… 끝장이에요.”
“뭐?”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창백한 표정으로 동민을 바라보고 있는 보람의 모습이 보인다. 세레스티아는 짐작 가는 바가 있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먹히는] 건가?”
“설마가 아니라 당연해요! 동민 선배가 제법 강한 정신력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저런 신기에 담긴 힘을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콰르릉! 번쩍!
벼락과 천둥이 몰아친다. 우리를 제압하려 몰려왔던 비인들은 마침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후퇴하려고 했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번쩍!
말 그대로 빛살처럼 쏘아진 벼락이 후퇴하던 비인들의 몸을 후려친다. 벼락을 막아낼 수 있거나, 벼락보다 빠르게 후퇴할 수 없다면 그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는 뜻.
나는 황급히 물었다.
“먹힌다는 게 무슨 말이야? 동민의 몸에 문제가 생기는 건가?”
“정신에 문제가 생기죠! 병기의 힘이 사용자의 몸을 뺏어버리니까요! 이미 동민 선배는 의식이 없어요. 결국 몸이 망가질 때까지 힘을 쓸 테고……. 무엇보다 움직임을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죠! 이대로 위로 올라가서 비인들하고 싸워도 문제지만, 어쩌면, 어쩌면.”
보람은 모든 비인을 살해하고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리는 동민의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우리를 해칠 수도 있어요.”
새파란 벼락에 둘러싸여 천둥의 창처럼 변해버린 금강저를 들고 있는 동민은 동공이 보이지 않는 눈을 떠 우리를 직시했다.
살기는 없다.
자연에는 살기도, 살의도 없다.
태풍은 사람들에게 악의를 품고 죽이기 위해 몰아치는 것이 아니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도, 쓰나미가 몰아치는 것도 모두 자연현상일 뿐.
“이거… 야단났군.”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세레스티아 역시 황금사자기를 일으키며 전투태세를 취한다. 보람 역시 당장이라도 변신할 분위기.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해제하면 되잖아?”
그렇게 말하며 열쇠가 들려있는 오른손을 든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찔러 넣는다. 슬슬 이 열쇠의 사용법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재봉인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라는 답변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나는 망설임 없이 손목을 돌렸다.
철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