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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구출 작전(2)
[연결이 끊겼다. 차단됐어!]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을 통해 함교에 울려 퍼졌지만 천현일 소장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흠. 뭐 그렇게 마냥 편하게 연락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되면 함정일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나?”
그는 모르네 소장이 조종하고 있는 대천공에서 뿜어진 영파를 자연스럽게 흘려내며 중얼거렸다.
초월자끼리의 함대전은 함교에서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을 정도로 고된 중노동이지만 그렇다고 오직 그것에만 신경을 몰두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특히나 그처럼 전투에 익숙한 초월자라면 함대전을 하면서 전투를 지휘하고 명령을 내리는 정도는 어렵지 않다.
[방도를 마련해, 이 곰탱아!]
“곰탱이, 곰탱이 하지 마, 이 머리통아. 지금 생각 중이니까.”
현일은 레이더를 통해 전장 정보를 파악했다. 절망적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불리했던 전황이었지만, 대하가 조종한 나폴레옹이 비인들의 전력 태반을 박살 낸 덕택에 비교적 나쁘지 않은 전투를 이어가고 있다.
‘전투 정보가 상부로 올라가면 정말 난리가 나겠군.’
인급 기가스 나폴레옹이 강력한 기체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대하의 활약은 그야말로 상식 이상이다. 그 넓은 우주를 뒤집어도 이 정도의 조종 능력을 가진 존재는 다섯을 넘지 않을 거라고 예상될 정도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물며 고작 30년도 못 산 인간족이 이만한 활약이라니.
‘물론 고유 스킬의 숫자만 봐도 보통의 혈통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지만 말이야.’
현일은 그의 정보를 지켜주기로 마음먹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전투 정보가 기록된 거야 어떻게든 수습하면 되겠지만, 이미 알바트로스의 유령은 승무원들에게 너무나 강력한 인상을 남기고 말았던 것이다.
그에게는 전투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권리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별한 문제가 없었을 경우뿐이다. 수천이 넘는 승무원 모두의 입을 막는 건 불가능하니 결국 이야기는 새어 나갈 것이고 상부에서 정보 공개 명령을 내리면 전투 정보를 공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다면…….’
반드시 황실에서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대하처럼 홀로 전황 자체를 뒤엎을 수 있는 조종사가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니까.
단적인 예로 지금의 알바트로스함만 해도 그가 없었다면 벌써 비인들에게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하라는 조종사 하나가 테라급 전함 하나를 구해낸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런 조종사가 레온하르트 제국군에 속하게 된다면 앞으로 얻게 될 이익은 얼마나 될 것인가?
[야, 곰탱아!]
“아, 시끄러워! 어차피 황녀님을 구해야 하니까 좀 닥쳐! 아니 그것보다 네가 왜 이렇게 안절부절 떠들어? 너랑 상관도 없는 녀석이잖아? 초월자도 아니… 음?”
거기까지 말한 현일이 멈칫한다.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던 아레스가 대하에게 너무나 큰 관심과 정성을 쏟아붓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설마 그 녀석… 네 [적합자]냐?”
기본적으로 신급의 기가스들은 초월경의 존재만을 태우지만,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예외도 있었다. 이번 대에는 없지만 레온하르트 제국의 전대 황제의 경우 초월자가 아니면서도 신급 기가스 [라]에 탑승할 수 있었고 다른 기가스들의 경우에도 종종 미약한 존재에게 자신을 허락하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바로 적합자로 신급 기가스의 [이름]과 관련된 혈통인 경우가 많다.
[어, 어쩌면?]
자신 없는 대답이었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내고 있던 현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하가 평범치 않은 혈통을 타고났다는 거야 몇 번이고 생각하던 일이니까.
“올림포스 신족이라……. 하지만 올림포스 신들이 멸망한 지 수천 년도 더 지난 것 같은데 이제 와서 그 혈통이 발현되었다니 특이하군. 녀석은 무에 대한 재능이 먼지만큼도 없어 보였으니 아레스의 형제 신 중 하나의 피를 이은 건가?”
아레스는 올림포스 신족 중에서도 유명했던 전신. 아레스의 적합자가 되려면 당연히 올림포스 신족의 피를 이어야 한다.
물론 아레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올림포스 신족은 무슨.’
그는 대하가 올림포스 신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 강한 떨림은 그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아레스의 위상과 하등의 관계도 없는 종류였던 것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지막 통신이 왔던 대로 정해진 좌표에 포격을 가할까요?”
“계속해서 지속적인 통신이 되던 때라면 몰라도 이렇게 끊긴 이상 그 방법은 철회한다. 어쩌면 비인 녀석들이 우리 손을 빌려서 황녀님을 해치려는 것일 수도 있어.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청원 녀석의 사명이 있으니 비인 녀석들이 황녀님을 해칠 수는 없거든.”
“하지만 그렇다면 구출대를 보내는 것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함정이라면 돌입과 동시에 제압당할 텐데.”
부함장인 나탈리의 말은 정확하다. 애초에 적들에게 잡혀간 황녀측과 통신이 된 것부터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비인들이 고의로 흘린 정보라면?
그러나 현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나는 보내는 게 좋을 거라고 본다.”
“어째서입니까?”
“어째서냐면.”
거기까지 말하고 현일이 씩 하고 웃는다.
“좋은 예감이 드는걸.”
“…직감입니까.”
“드물 정도로 선명한.”
흔히 초월지경이라 부르는 초월경의 깨달음은 보통(물론 예외적인 경우 역시 상당수 존재하지만) 세 가지 능력을 획득하는 것으로 완성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기본마나제어능력, 절대마나지배능력, 그리고 만물동조이다.
기본마나제어능력은 마나의 최소 단위를 [인식]하고 제어하게 되는 능력을 말하며 절대마나지배능력은 한 줄기 사념만으로도 어떠한 특성의 마나라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만물동조는 세계와 동조함으로써 세계에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는 게 가능해지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각각 떨어져 있어도 대단한 힘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세 가지 능력이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루게 되면 기본마나제어능력은 초월자의 영혼이 하위의 법칙에서 자유로워지게 만드는 신격(神格)을 부여하고, 절대마나지배능력은 모든 힘을 아우를 수 있는 신위(神位)를 제공하며, 만물동조 능력은 초월자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켜 신성(神聖)을 완성한다.
물론 셋 다 하급신의 권세이기 때문에 신격도 신위도 신성도 미약하기 짝이 없지만 이 세 가지를 얻음으로써 그는 필멸자가 아닌 초월자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초월지경에 오른 존재들은 세계와 동조하는 만물동조 능력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자신과 관계된 [인과의 흐름]을 감지하는 게 가능해진다. 물론 본격적인 예지 능력처럼 구체적이지는 않겠지만 종종 깜짝 놀랄 정도로 날카롭게 자신이 처한 상황과 앞으로의 미래를 예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아시겠지만 예지 능력이 흔히 그러하듯 직감이란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에요.”
“알고 있다. 게다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직감을 모르네 녀석 역시 느낄 거라는 것 역시…….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기회가 있을 때 하는 게 좋지.”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나탈리가 작게 한숨 쉬었다. 우려되는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미 그런 결정 역시 예상하고 있던 바였기에 디스플레이를 조작해 한 지점을 표시한다.
“구출대는 은폐 모드로 대천공 주변에 대기 중입니다.”
“벌써? 이래서 내가 널 사랑한다니까.”
“…농담은 됐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파란색의 영기에 둘러싸여 마치 불타오르고 있는 것 같은 현일이 웃는다.
“돌입해.”
*
쿠웅!
괴음과 함께 대천공을 뒤덮고 있는 배리어에 직경 3미터가 넘는 거대한 탄환이 박힌다. 강력한 영력으로 보호받고 있는 배리어는 견뎌냈지만, 그 직후 탄환의 내부에서 수십 개의 칼날이 튀어나와 회전하기 시작한다.
카가가가각!!!
특별한 파장을 흩뿌리며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하는 탄환을 중심으로 주변 배리어가 말려들어 간다. 그리고 잠시 후, 배리어를 관통한 탄환이 대천공의 갑판마저 부수고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물론 자체 복원 능력이 있는 배리어는 이내 물결치며 원래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지만-
위이잉-!
그 한순간의 틈을 노리고 날렵한 형태의 수송선과 대여섯 대의 기가스가 대천공 안으로 침입한다. 평소였다면 배리어가 공격당함과 동시에 몰려든 적들을 마주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최상급 마족 지옥아귀의 폭주에 휩쓸리고 있는 비인들로서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쿵! 쿵!
수송선을 앞질러 내려온 기가스들이 사주경계를 시작하고 그 사이로 착륙한 수송선에서 보병부대가 신속하게 하선한다. 그들의 맨 앞에는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옷을 입고 자기 몸만큼 거대한 대검을 든 여인이 서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구출대를 이끌고 있는 검술 완성자로서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강자, 신미영이었다.
“호. 불안했는데 함장님 말대로 문제가 있긴 했나 보군. 도착하자마자 포격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이미 폐허 상태라니.”
신기해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미영의 모습에 대하를 구하기 위해 구출대에 참여한 보람이 묻는다.
“그 곰 아저씨 예지 능력이 있는 거예요?”
“잘은 모르지만 초월자들은 다들 조금씩 있다고 하더라고.”
미영의 말을 들으며 보람은 무장을 점검했다. 양팔에 착용하고 있는 건틀렛을 실체화하고 지급받은 광선총의 잠금 장치를 푼 것. 그리고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동민에게 물었다.
“뭔가 감지되는 게 있어요, 선배?”
보람의 물음에 동민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일단 반경 1킬로미터 안에는 아무도 없다. 다만 북서쪽에서 폭음과 진동이 느껴지는군.”
“반란이라도 일어난 걸까요?”
새로운 의문에 미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네가 함장으로 있는 우주모함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는 없지. 게다가 폭발도 아니고 물리력으로 박살 난 시설들이 있는 걸 봐서는… 뭔가 강력한 괴물이나 기가스가 날뛴 것 같군.”
“날뛴다… 확실히 그런 말이 어울리는 참상이기는 하네요. 서로 싸우는 과정에 파괴되었다고 보기에는 작정하고 부순 건물들이 상당히 보여요.”
“어쩌면 잡아놓은 괴수 같은 게 풀려난 걸 수도 있지. 이렇게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괴수를 그렇게 성의 없이 잡아둘 리는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 그것밖에는 떠오르는 게 없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수송선에 탑승해 있던 모든 병력이 다 내리고 무장을 완료한다.
수송선은 땅에 내려서 저격을 막아내기 위한 배리어를 전개하고 기가스들은 적당히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 몸을 숨겨 주변을 경계한다.
“알론! 황녀님의 위치는 어디지?”
“탐지 중입니다.”
탐지 능력자인 미영의 부관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어지간한 도시보다 거대한 대천공에서 단순 수색으로 목표 대상을 찾을 수는 없기에 따라온 이였다.
“음?”
그런데 그때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고 있던 동민의 표정이 변한다.
“왜 그래요, 선배?”
“이런! 보람! 통신기를 챙겨!”
“에? 그거야 가지고 있긴 한데 왜---”
파앗!!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나 싶더니 동민과 보람의 모습이 사라진다.
그리고.
“와… 지, 진짜 왔네. 이거 효과 짱이다…….”
그들의 앞에는 찢어진 부적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 대하의 모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