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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구출 작전
“이것 참, 상황이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모르겠는데!”
“…그런 것치곤 좀 신 난 표정 아니냐?”
“어머, 그래?”
피식 웃으면서 몸을 솟구친다. 나는 그녀의 목을 꽉 잡고 볼썽 사납게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쾅쾅!
연신 터지는 폭음 소리를 뒤로 한 채 세레스티아가 돌진한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두 다리가 허공으로 휙 하고 뜰 정도.
나는 몸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소리쳤다.
“야! 나 떨어지겠어!”
“나도 급하니까 잘 잡고 있어봐! 일단 무기를 못 찾으면 다시 잡혀서 갇힌단 말이야!”
자신을 향해 달려든 사족 보행 형태의 비인을 밟고 다시 뛰어오른다. 아니, 밟은 게 아니라 빗겨 쳐내고 땅을 박찬 건가?
쿠당탕! 쾅! 퍼버벅!
모르겠다. 정신이 없다. 시야가 빙빙 돌고 팔이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 황금사자기가 내 몸을 감싸고 있었음에도 몸에 상당한 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전장의 학살자라 불리는 알바트로스의 유령이 바로 나였지만, 기가스에서 내리면 그냥 일반인이니 당연한 일이다.
“크악!”
“크아아--!”
“제, 제길! 쏴! 쏘라고! 그냥 죽여 버려!”
“으악! 이 미친놈이!”
형편없이 당하던 비인 중 하나가 분노를 터뜨리며 중화기를 겨누자 주변에 있던 다른 비인들이 기겁해 그를 후려쳐 쓰러뜨린다. 이 혼란한 와중에도 수십이 넘는 비인이 포위진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세레스티아는 자유롭게 적들을 헤집고 있다. 그녀를 상처 입히면 안 된다는 금제는 여전히 존재하니 제대로 된 공격을 못 하는 것이다.
-나와라, 모르네! 내가 이 벌레들을 다 죽여 버리기 전에!
그리고 그 와중에도 최상급 마족 지옥아귀는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 수급과 기급 기가스 상당수가 덤비고 있었지만 지옥아귀의 거대한 팔이 휘둘러질 때마다 굉음과 함께 튕겨 나가 주변 건물을 무너뜨릴 뿐 녀석을 막지는 못한다.
‘와, 진짜 괴물이네, 저거.’
지옥아귀는 기본적으로 인간형에 가깝지만 신체의 대부분이 몸통으로 이루어진 괴물이다. 다리가 없는 건 아닌데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짧은데다 그마저도 출렁거리며 넘쳐난 뱃살에 뒤덮여 잘 보이지도 않는 상태.
솔직히 움직이는 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의 체형이었지만 놀랍게도 녀석은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다. 두툼한 뱃살은 레이저 포와 미사일을 맞아도 출렁이기만 할 뿐이고 간혹 강력한 공격에 찢어진다 해도 순식간에 회복했다. 둔해 보이는 몸은 멀리서도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매섭게 움직이고, 점프를 뛰었다 하면 백여 미터는 우습게 뛰었다.
쾅! 우르릉!
지옥아귀가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가 그대로 떨어지자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건물들이 부서져 내린다.
도시처럼 꾸미고 있다지만 결국 이곳은 우주선 내부. 땅이 갈라지자 그 안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내부 부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번뜩이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셀! 뛰어내려!”
“뭐? 지금 여기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어쩌려는 건데?”
“포위당하는 것 보다 차라리 그게 나아! 그리고 아까 리전 녀석이 보여줬던 투시도를 잊었어? 이 아래가 바로… 아차!!”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지옥아귀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우리를 도와주었던 리전 소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세레스티아가 데리고 탈출한 건 나뿐. 지옥아귀의 일부였던 수갑과 쇠사슬이 풀리는 모습을 확인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깨어난 지옥아귀의 뱃속에 남아 있을 그녀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당연한 생각이었고 세레스티아 역시 내 생각을 짐작한 것인지 가볍게 고개를 흔든다.
“둘 다 데리고 나올 수는 없었어. 이런 전함 내부에서 리전의 도움을 받으면 몹시 좋겠지만… 저 괴물의 뱃속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맞는 말이야.”
지옥아귀가 잠들어 있었을 때에도 그 몸에 구멍을 뚫지 못하던 세레스티아다. 만약 비인들의 주포가 지옥아귀의 몸에 구멍을 내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우리는 지금쯤 지옥아귀의 뱃속에서 사이좋게 소화되고 있었을 것이다.
팟!
그때 리전 소녀에 대해 더 생각할 틈도 없이 세레스티아가 갈라진 균열 아래로 뛰어내린다. 당연하지만 그녀의 등에 업혀 있는 나도 그녀와 함께 떨어졌다.
“아앗! 저것들이 아래로 내려간다!”
“잡아!”
어떻게든 몸으로 덮쳐 세레스티아를 제압하려 하던 비인들이 혼비백산하며 쫒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다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만큼 배 안의 상황이 태평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콰광! 펑!
뭔가가 터져 나가는 폭음과 함께 땅이 재차 흔들리고 좁은 균열로 뛰어내리려던 비인 대부분이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간다. 물론 개중 날렵한 몇몇은 정확히 우리를 따라 들어왔지만…….
“어서 와, 멍청이들아---!”
황금빛 서기로 전신을 뒤덮은 세레스티아의 주먹이 그들을 반긴다.
빠박! 콰득!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져 나간다. 벌레 한 마리 못 잡을 것 같은 청순한 얼굴로 살벌하기가 어지간한 맹수 이상! 거대한 양팔을 사납게 휘두르는 악어 머리의 비인에게 파고든 세레스티아는 왼팔로 그의 방어를 쳐낸 후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 가슴팍에 오른손을 꽂아 넣었다. 상대는 3미터에 가까운 신장을 가진 괴물인데다 갑옷이나 다름없는 가죽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일격에 고개가 푹푹 꺾이더니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콰득!
그뿐이 아니다. 자신의 몸을 실타래 풀어내듯 풀어 세레스티아를 묶으려던 스파게티 형태의 비인은 쓰러지듯 넘어져 묶이는 걸 피한 세레스티아의 돌려차기에 사실상 머리나 다름없는 눈알이 터져 나갔다.
“좋아, 다음!”
세레스티아는 신 나서 소리쳤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쩌면 아쉽게도, 위쪽에서 다시 폭음이 울려 퍼진다.
쿠우웅-!
폭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자 그 진동과 함께 갈라졌던 균열이 다시금 닫혀 버렸다.
“큭! 아, 안 돼!”
“으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비인들이 균열 사이에서 짓눌리고 그 틈을 타고 마치 빗줄기처럼 체액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다행히 이미 빠져 있던 난 체액을 뒤집어쓰는 걸 피할 수 있었지만 녀석들과 싸우고 있던 세레스티아의 상황은 좀 달랐다.
“이런, 괜찮아?”
“아, 물론이지. 비인 중에는 피에 독이 흐르는 녀석도 제법 있지만 저것들은 아니거든.”
“아니, 그걸 떠나서… 에휴, 됐다. 잠깐 기다려.”
시설이 파괴된 만큼 칠흑같이 어두운 것이 정상인 상황이었지만 주변은 밝다. 모든 광원이 사라진 함선 내부였지만 세레스티아의 몸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몸을 광원 삼아 주변을 살펴보며 말한다.
“그나저나 정말 무시무시하게 싸우는구나.”
“어쩔 수 없잖아, 맨손인데. 장비가 있었으면 더 우아하게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내 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에 황당해한다.
“아니, 무슨 아이돌이 이래? 걸 vs 비인 뭐 이런 프로로 인기 끌었냐?”
“엥? 아니지. 인기는 외모로 끌었지.”
“…….”
할 말을 잃는다. 딱히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짜증 나는 발언. 그러나 내가 짜증이 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는 듯 그녀는 자신의 몸에 묻은 비인들의 체액을 툭툭 털어내며 물었다.
“그나저나 결국 여기 어디야? 네 말대로 오기는 했는데.”
“창고야. 그리고… 역시 여기 있군.”
나는 주변에 있던 상자 하나를 열어 익숙한 짐들을 찾아냈다. 두꺼운 테의 안경과 통신기, 그리고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전투복이다.
“엇? 설마… 앗! 내 것도 있어!! 내 총!!”
세레스티아는 주변을 둘러보다 자신의 물건들이 담긴 상자를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어찌나 기뻐하는지 두 눈에 하트가 뿅뿅 떠오르는 게 아닌가 싶었을 정도. 다행히 누가 훔쳐 가거나 하는 상황을 가정하지는 않은 듯 상자는 순순히 열렸고 세레스티아는 즉시 입고 있던 천 쪼가리를 벗어 던졌다.
출렁!
예상치 못했던, 문자 그대로 상상 이상의 볼륨이 화인처럼 뇌리에 각인된다.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황금빛 때문에 이미 밝던 주변이지만, 한순간 더 밝아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 옷 입으면 말라 보이는 타입이라는 게 정말 있구… 응?’
그러나 그러다가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는 흉터들을 발견한다. 그리 진하지는 않았다. 전부 희미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흉터의 개수가 심상치 않다. 수십 개가 넘는 흉터… 그것은 곱게 자라야 할 황녀의 몸에 있을 만한 것들이 아니다.
심지어 놀라운 치료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아니던가?
“좋아, 무장 완료!”
그러나 내가 보고 있거나 말거나 세레스티아는 비인들의 체액으로 범벅이가 되어버린 옷 쪼가리를 벗어 던지고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뒤 허리춤에 금색의 권총을 찼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태도였기에 나 역시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상자 안에 있던 전투복을 꺼내 입었다. 만일을 대비해 혜란에게 강탈했던 안경을 쓰고 근처에 있던 총기 중 하나를 챙긴다.
물론 이것들로 싸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좋아. 저기 갈라진 틈으로 가서 몸을 숨기자.”
“나가서 싸우는 게 아니고?”
“지금 여기서 나가서 비인들 잡는 게 무슨 소용이야. 탈출을 해야지. 아레스랑 연결해서 이쪽의 소식을 전하고 구하러 올 테니까 그동안 내 몸을 좀 지켜줘.”
“흐음, 그렇다면… 급한 대로 이 근처를 요새화해야겠네.”
상황을 이해한 세레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닥치는 대로 털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창고에 있는 모든 물건을 이용하기로 한 모양.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쪽 구석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
아레스를 부른다. 정신을 집중하고 집중해 감각을 확장하려고 노력했다.
상황은 나쁘지 않다. 적들에게 포로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탈출했고 최상급 마족 지옥아귀가 대천공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지옥아귀를 막으려면 모르네가 나서야 하지만 모르네는 현재 천현일 소장과 함대 전투를 수행하고 있기에 움직일 수 없는 상태.
상당한 난이도와 방해를 생각했던 최초에 비하면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양반이다. 이대로 나폴레옹을 조종해서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로 쳐들어올 수만 있다면 별다른 문제 없이 탈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레스. 대답해, 아레스.’
집중한다. 더 집중한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아레스?’
당황했다.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온간 보호 시스템으로 떡칠하고 있는 대천공 안에서 외부와 연락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나는 지금껏 그걸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는 곧 중대한 문제를 깨달았다.
“오, 이런 망할…….”
그렇다. 리전 소녀가 없다.
나는 더 이상 나폴레옹을 원격조종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