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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구출 작전
차릉.
목걸이를 풀어 손에 잡는다. 그 끝에는 열쇠가 달려 있다. 마치 수십 개 정도 되는 쇳조각을 조립하고 짜 맞춰 만든 것 같은 특이한 디자인의 열쇠.
친아버지라는 사람의 유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어디에 쓰는 건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군.’
열쇠 모양인걸 보니 뭔가를 여는 데 쓸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사용처를 별로 궁금해 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우주로 나온 그 시점부터, 열쇠 구멍 따위는 어디에서도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 우주 첫(?) 열쇠 구멍이라 할 수 있겠지.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아 별건 아니고. 열쇠를 하나 얻어서.”
그렇게 말하며 열쇠를 들어 올린다. 그녀의 귀걸이가 그랬듯이 이 열쇠 역시 비인들에게 빼앗기지 않았으니 어지간하면 인식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식이 투명화 같은 쪽은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녀는 내 손에 잡힌 열쇠를 인식했고, 그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왜?”
“아니, 잠깐. 그거 잠깐만 줘볼래?”
“그래.”
순순히 넘겨준다. 이게 뭐든 간에 그녀가 가지고 도망갈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열쇠를 그녀의 손에 내려놓는 순간.
따앙-!
순간 망치로 철판을 후려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큿! 하고 억눌린 신음 소리가 들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분명히 눈앞에 있던 세레스티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녀의 손에 내려놓았던 열쇠는 내 손 위로 돌아와 있다.
“셀?”
문자 그대로 눈앞에서 꺼지듯 사라져 버린 셀을 찾아 주변을 둘러본다. 다행히 그녀가 사라지거나 한 건 아니어서, 벽과 천장이 만나는 방 모서리 부분을 등진 채 마치 거미처럼 달라붙어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 하냐.”
“아, 아니, 별로.”
그녀는 잠시 나를, 아니, 내 손 위에 올려 있는 열쇠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내려섰다. 이미 그녀의 몸은 황금빛 서기에 둘러싸여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듯 이내 가라앉는다.
다만 모든 금빛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너 오른팔이…….”
다가오는 세레스티아의 팔을 보니 새하얗고 늘씬하던 그녀의 손가락이 마치 바람이 들어간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어올라 있다. 피부와 근육은 물론이고 뼈도 상당 부분 상한 것 같은 상태. 그러나 세레스티아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어깨를 으쓱였다.
“조금 다쳤어. 지금 치료 중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
“오른손이 그 모양이 됐는데 걱정을 하지 말라고?”
“아까 전 네 몸 상태가 이거보다 훨씬 안 좋았거든? 나도 군 생활 한두 해 한 게 아니니 너무 공주님 취급하면 곤란해. 심지어 황금사자기로 치료까지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황금색 기운에 둘러싸인 그녀의 팔이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이 보인다. 피부 위로 죽은피가 몽글몽글 새어 나오고 뼈 맞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다.
“뭐, 네가 괜찮다면 상관없지만. 결국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분위기를 보면 이 열쇠가 널 공격한 것 같은데.”
“공격한 건 아냐. 분위기를 보아하니 초월병기 같은데 제대로 된 적대였다면 더 크게 다쳤겠지.”
“…초월병기? 열쇠가?”
의문을 표한다. 초월병기라면 신급 기가스와 같은 줄에 놓인다는 무시무시한 병기들이 아닌가? 사람이 들 만한 사이즈의 무기가 테라급의 전함 이상의 힘을 가졌다는 말은 종종 들어봤지만 칼도 총도 아닌 열쇠가 초월병기라니.
그러나 세레스티아는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다.
“대체로 전투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서 [병기]라고 뭉뚱그려 표현하긴 하지만 초월병기가 전부 무기인 건 아냐. 결국 초월병기는 신기(神器)의 다른 이름이니까. 드물지만 초월병기 중에는 원거리를 이동하는 [문]의 형태인 것도 있고 부상을 치유하는 성수를 만들어내는 주전자도 있으니까. 아, 이건 소문인데 넘버링 100위 안쪽에는 먹고 싶은 음식을 무한정 만들어내는 냉장고도 있다네.”
“…냉장고는 또 뭐냐.”
내가 생각하던 초월병기의 이미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슬쩍 한 손을 들어 금줄에 달려 있는 열쇠를 바라보았다.
‘유품으로 초월병기를 남겨두었다고?’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다. 내 [친부]라는 작자는 고위 초월자라고 했고… 고위 초월자라면 초월병기 하나쯤 가지고 있더라도 이상할 게 없겠지. 그리고 초월병기가 있다면 후대로 남겨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달랑 열쇠만 사용법도 없이 넘기다니.’
나는 손에 들린 열쇠를 조용히 만지작거렸다. 누가 봐도 금속으로 보이는 물건이었지만 느껴지는 감촉은 따듯하다. 웃기는 말이지만, 마치 자그마한 햄스터를 만지고 있는 느낌. 그리고 그런 촉감을 느끼며 생각을 정리한다.
‘어쩌면,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예지하고 우주로 보낸 건지도 모르지.’
예전에 봤던 영화를 떠올린다.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만들어 과거의 자신을 지원하는, 뭐 그런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위기에 빠진 현재의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미래의 주인공이 보내준 물건들은 버스 카드, 차 키, 공사 인부용 모자, 뭐 이런 쓸데없는 것들이었지만 막상 필요한 상황마다 그 물건들이 쓸데가 생겨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위기를 마술처럼 빠져나가 마침내 적들에게 반격하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미래를 알고 있는 미래의 주인공이 상황에 딱딱 맞게 소품들을 준비했던 것.
‘어쩌면?’
순간 나는 열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앞에 엎드려서 고개만 들고 있는 리전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목에, 수갑에 달린 열쇠 구멍이 눈에 들어온다.
‘별로 하고 싶은 가정은 아니지만…….’
나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어머니가 본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주로 나오는 것도, 그래서 알바트로스함에 타는 것도, 전쟁에 참여하는 것도.
그리고 비인들에게 납치당하는 것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피해야 할 위험이라는 게 대체 뭐지?’
확신이 안 간다. 정말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굳이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내 앞에 있는 리전 소녀가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 뭐 실험해 보면 알겠지.”
“실험?”
“응. 잠깐만.”
나는 벌써 거의 나아가는 손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하고 있는 세레스티아를 두고 리전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개목걸이 같은 봉인구가 보인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한다. 그리고 열쇠를 들어 올려--
그극.
안 들어간다.
“…뭐하는 거야?”
“어? 어어? 자, 잠깐만.”
당황해 열쇠를 마구 들이밀어 보았지만 그래 봐야 안 들어간다. 열쇠 모양이 전혀 달랐다. 열쇠 구멍보다 열쇠 크기가 미묘하게 크다.
카각!
급한 마음에 거칠게 밀어 넣어보려 해봐야 안 맞는 구멍에 들어갈 리가 있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갑에 있는 열쇠 구멍에 들이밀어 보았지만 이번에는 구멍이 너무 크다.
“…바보도 아니고 그냥 열쇠 구멍이면 다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냐! 이, 이건 다 이유가 있어!”
“그게 뭔데?”
“…비밀.”
“…….”
고개를 돌린다.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세레스티아의 시선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으아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다니!
‘뭔가 될 거 같았는데!’
대마녀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어머니가 미래 예지를 할 줄 안다고 했으니 어쩌면 지금 이 위기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이 유품이라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했고.
하지만 그런 건 없다. 그렇다는 건 지금 이 정도 위기는 내가 알아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일까?
“아, 제길. 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가볍게 성질내며 열쇠를 벽으로 집어 던진다. 사실 몇 번 몸에서 떨어뜨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다시 나에게 돌아왔었기에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다.
푸욱!
그리고 그렇게 던진 열쇠가 벽에 박힌다.
“…엥?”
“어?”
멈칫한다. 나를 보고 있던 세레스티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뭐야, 내가 황금사자기로 후려쳐도 흠집 하나 안 나던 벽에 박혔어.”
“설마 이거 암기 아냐? 열쇠 모양 암기.”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어디 있냐고 하고 싶긴 하지만 설득력이 전혀 없지는 않네. 설마 그냥 팔 힘으로 던져서 저 벽에 박히다니.”
어이없어 하는 세레스티아의 말을 들으며 벽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근데 안 돌아오네.”
“돌아오다니, 귀환 기능이 있는 거야?”
“응. 손에서 놓치거나 하면 다시 돌아왔었는데. 그래서 암기라는 생각도 한 거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벽으로 다가가 열쇠를 잡는다. 벽에 박힌 열쇠를 뽑아내기 위함이었지만, 그렇게 잡힌 열쇠의 느낌이 좀 이상하다.
“음?”
그냥 콱 박힌 느낌이 아니다. 뭔가 돌리면 돌아갈 것 같은… 마치 문에 열쇠를 꽂아 넣었을 때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무심코 손을 돌려보니.
철컥!
마치 문이 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열쇠가 돌아가고 눈앞으로 텍스트가 떠오른다.
[봉인을 해제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잠시 당황하는 순간이었다.
-그아아아아아아------!!
머리가 윙 하고 울릴 정도로 나직한 괴음이 주변을 짓누르듯 퍼져 나간다. 나는 깜짝 놀라 열쇠를 뽑아내고 세레스티아의 옆으로 붙었다. 세레스티아도 당황한 듯 황금빛 기운을 끌어 올리며 묻는다.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도 몰라!”
“모르다니 그런 무책임… 조심해!”
세레스티아가 내 몸을 껴안고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이미 주변의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있다. 나를 가두고 있던 창살도, 바닥에 깔려 있던 죄수복들도, 심지어 리전 소녀를 꽁꽁 묶고 있던 쇠사슬과 수갑마저 없어졌다. 남은 건 목에 걸린 개목걸이뿐이었다.
-건방진---! 건방진----! 죽여 버리겠다!!
살의로 가득한 포효가 울려 퍼지고 평범한 모양이었던 감옥이 검은색의 살점으로 변하며 삽시간에 좁아지기 시작한다.
당황한 세레스티아는 황금사자기를 일으켰지만 최상급 마족이 잠들어 있을 때에도 벽에 제대로 된 상처를 못 내던 그녀가 좁혀져 오는 벽에 저항하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그때였다.
쿠앙-!
폭음과 함께 꿀렁이던 벽이 한순간 세차게 일렁이더니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문자 그대로 한순간이었지만, 나를 안고 있던 세레스티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날렵하게 그 틈을 노려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런 제길!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저 괴물은 틀림없이 함장님에게 정신이 파괴되었을 텐데!”
“함장님! 당장 함장님을 불러와! 저 괴물을 막으려면 함장님이 필요해!”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야! 우리끼리 막지 않으면……!”
“배 안에서 최상급 마족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이야! 만일을 대비해 준비한 주포를 맞고도 벌써 회복했잖아!”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수많은 비인과 기가스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지만 어지간한 10층 건물에 맞먹는 괴물 앞에서는 다 소용 없는 일.
나는 칭호를 [상태]로 고정하여 그 괴물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탐식의 군단]
[깨어난 지옥아귀]
그렇다. 지금 날뛰고 있는 것은 우리를 뱃속에 넣고 있던 최상급 마족이었다.
“도대체…….”
나는 손에 들린 열쇠를 바라보며 아연실색했다. 분명히 백치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걸 원상복귀 시켰다는 말인가? 열쇠 모양인 주제에 치료용 초월병기라고?
“이런! 포로들이 탈출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에 빠질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상황은 아니었다. 날뛰는 지옥아귀 때문에 몰려든 비인 중 일부가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것 참 상황이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모르겠는데!”
“…그런 것치고 좀 신 난 표정 아니냐?”
“어머, 그래?”
피식 웃으면서 몸을 솟구친다. 나는 그녀의 목을 꽉 잡고 볼썽사납게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