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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60화 (6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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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구출 작전

“결론은 나도 순수 인간은 아니고 이건 혈통에 기반을 두는 권능이라는 거지. 솔직히 별 쓸모없는 권능을 타고나서 짜증났었는데 쓸데가 있긴 있네.”

차분한 목소리에 지금까지 그녀가 했던 말들을 떠올린다.

“…그래서 계속 물었던 거야? 지구인이냐고? 인간이냐고?”

“응. 사실 나도 다른 황족들 말고는 신족을 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너를 처음 봤을 때는 제법 놀랐었어.”

그러고 보면 이 녀석은 누가 봐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나를 대번에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었다. 아마 그녀가 가지고 있다는 사자안의 힘일 것이다.

“그나저나… 응?”

막 입을 열었다가 멈칫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고 버린 돼지 뼈는 물론이고 그 아래 있던 장작이 마치 지우개로 지워지듯 사라져 버렸기 때문. 그러나 세레스티아는 많이 봐온 모습인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아, 놀랄 거 없어. 원래 이래.”

“원래라니. 원리는 뭔데?”

“뭐? 하하, 권능에 원리 따위는 없어. [그냥 그렇게] 되는 게 바로 권능이지. 애초에 밖으로 연락 한 통 보낼 수 없으면서 이런 통돼지를 만드는 것부터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내가 쓰면서도 어이가 없는데, 뭐.”

너털웃음 짓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뜬다.

“막 내 뱃속으로 들어온 돼지고기도 사라지고 그러는 건 아니지?”

“그런 거 전혀 없으니까 걱정 마. 오히려 몸이 더 건강해지고 한동안 약이라도 맞은 것처럼 힘이 넘칠 거야.”

“확실히 그렇기는 하네.”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생각을 한다.

‘권능이라.’

그러고 보면 내가 가진 일종의 [명령권]도 그 영역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를 강제하는 정도라면 그냥 정신지배 같은 힘이겠지만 상대방으로 하여금 [할 수 없는 일]조차 해내게 하는 건 충분히 그 이상의 힘이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이어나갈 때 리전 소녀가 다시 말을 건다.

“필요 없어?”

뜬금없이 느껴지는 말이지만 아마도 아까 말했던 도와줘? 와 이어지는 내용이겠지. 어쨌든 나는 손바닥을 펴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그녀를 가로막았다.

“흠. 아니, 잠깐.”

“잠깐?”

“기다려.”

“응응, 나 기다려.”

마치 착한 강아지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리전 소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면 리전이야말로 궁극의 [인공지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흠. 우리를 이 감옥에서 탈출시켜 줄래? 아니, 탈출시켜.”

대충 말했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분명한 명령의 형태로 말한다. 그러나 리전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웅… 난 그런 거 못해.”

“역시 안 되나…….”

안타까워하는 나를 보며 세레스티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당연하지 바보야. 마음대로 나갈 수 있으면 이 녀석이 여기 가만히 있겠어?”

“그냥 한번 말해봐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대충 얼버무린다. 아무래도 아레스처럼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뭘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어봐.”

“흠. 그래, 날 도와준다고 했는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어?”

“몰라.”

“…몰라?”

“응응. 먼저 말해줘.”

“….”

할 말을 잃는다. 무슨 제시요, 선 제시요, 이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먼저 말해달라는 건 뭐야? 도와주고는 싶은데 자기가 뭘 할 수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말인가?

옆에서 보고 있던 세레스티아는 별 기대도 안 한 듯 내 어깨를 툭툭 쳐 주의를 환기시켰다.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것부터 생각하고 나간 다음에 부탁해 봐. 적어도 알바트로스함에서 했던 시스템 봉쇄 정도는 할 테니.”

“좋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권능이라고 부르기에 좀 볼품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금돼지의 효능은 훌륭했다. 누워 있어도 손이 덜덜 떨리던 내 몸 상태가 단박에 베스트 컨디션으로 호전된 것이다. 지금 상태라면 별 문제 없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 나폴레옹을 조종할 수 있을 것 같다.

“계획을 세워야 해.”

“계획?”

“그래. 알바트로스함과 연락을 한 건 다행이지만 여전히 상황은 우리에게 불리하니까. 위치를 파악한다 해도 여기까지 구출대가 들어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테고……. 무엇보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이 감옥을 부수지 못하면 모든 게 끝장이야. 우리는 물론이고 구출대까지 위험해지겠지.”

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최상급 마족 지옥아귀의 뱃속에 있는 상태고… 이곳은 비인들이 리전을 무방비하게 가둬둘 정도로 자신하는 공간이다. 비인들이 바보도 아니고 자신의 모함 한가운데에서 리전이 풀려났을 때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리 없다. 절대 탈출하지 못할 거라는 자신을 가졌기에 이렇게 우리와 리전을 함께 둔 것이다.

“천현일 소장이 온다면 무조건 부술 수 있겠지만, 당연히 그걸 기대하기는 어렵겠지?”

“그 곰탱이는 그냥 없다고 생각해. 모르네가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까. 괜히 이것저것 신경 쓰게 했다가 덜컥 지기라도 하면 모조리 다 끝장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 그 곰탱이가 잘못되면 문자 그대로 희망이 없거든.”

백병전에서 초월자가 가지는 절대성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다. 알바트로스함에서 자신들의 함장을 직접 적의 심장부로 보내는 초강수를 둘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이미 비인들 역시 사용했던 작전이다. 당연히 예상하고 대비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천현일 소장이 죽기라도 한다면? 탈출은커녕 모든 상황이 끝장이다.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초월자가 우리 근처에 붙어 있다면 명령권이고 리전 소녀고 나발이고 그 어떤 변수도 소용이 없을 테니까.

“그럼 역시 중화기로 무장한 기가스가 필요하겠네.”

“아니면 아예 이 주변을 향해 알바트로스함의 주포를 발사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봐. 이곳의 방어력이 보통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방법을 궁리한다. 어차피 알바트로스함에서 세워질 작전이 있겠지만 거기에 더할 내용들을 상세히 정리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리전 소녀가 만들어준 대천공의 투시도가 있는 상황.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마칠 때쯤 아레스가 돌아왔다.

[준비가 끝났어! 그쪽 상황은 어때?]

“아직 무사해. 몸 상태도 양호하고.”

나는 우리 상황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갇혀 있는 감옥의 특수성, 여기를 탈출하려면 상당한 화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 먼저 주포를 갈기면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 등등.

우리의 설명을 다 들은 아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단 접속을 할 거면 가급적 안전한 장소에서 해. 나가서 실컷 날뛰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 네 몸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니까.]

당연하지만 이미 그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내 몸이라면 셀이 지키고 있을 예정이야.”

[셀? 아, 황녀. 애칭이구나.]

“음? 그렇지 뭐.”

[그렇군.]

“……?”

맥락 없는 대화의 내용에 의아해하는 사이 연결이 완료된다. 이제는 굳이 말할 것도 없이 리전 소녀가 능숙하게 내 감각을 확장시켜 주는 상황.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세레스티아가 묻는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온 것처럼 밖에 나타날 수는 없어? 감옥 밖의 상황을 알면 좋을 텐데.”

[…흠.]

그러나 아레스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 말이 좋아 생각에 잠긴 거지 그냥 딴청 피우는 느낌이었기에 가볍게 재촉한다.

“불가능해?”

[미안하지만 어렵다. 물리적으로 생각하면 안 돼. 나는 직선으로 쭉 날아와서 여기에 온 게 아니라 저기 있는 리전 녀석을 일종의 중계기로 활용한 거니까. 저 녀석이 볼 수 없는 건 나도 볼 수 없지.]

“역시 그런가.”

세레스티아가 말했었듯이 이 감옥 안은 일종의 이계나 다름이 없다. 더불어 중앙 시스템에 연결된 우주선의 일부가 아닌 살아 있는 최상급 마족의 몸속이기 때문에 리전의 크래킹 능력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도와줘?”

그런데 그때 리전 소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반색해 물었다.

“혹시 밖의 상황을 볼 수 있어?”

“그야… 없지.”

“…….”

슬슬 이 녀석이 나를 약 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거의 장난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하지만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세레스티아의 생각은 다른 듯 나에게 말한다.

“흠, 이 녀석 그런 거 아냐? 정확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도울 수 없는?”

“컴퓨터처럼 말이지?”

나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리전 소녀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계속해서 우리 대화에 끼어들고는 있다지만 그녀는 여전히 개목걸이를 한 채 쇠사슬에 묶여 있다. 두 손에는 강철 수갑이 채워져 있고 흑단 같은 머리칼은 바닥에 풀어헤쳐진 상태.

서로서로 아무렇지 않아 하니 괜찮았던 거지 사실 굉장히 어색한 그림이다. 그런데도 그런 자신의 상황에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는 건 그녀가 그 상황을 별로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막상 Help 명령어가 안 먹혀서야.”

리전 소녀는 도와준다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냐는 말에는 모른다고 답했다. 대화가 통할 정도의 지능은 남아 있으면서도 또 어떤 부분에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것이다.

[대하, 너희가 말한 내용을 다 전했다.]

“그쪽의 의견은?”

[현장의 판단을 따를 거라는군. 황녀는 작전권도 가지고 있으니 망설임 없이 주포를 발사해 주겠다고.]

“…그것 참 믿음직하면서도 무서운 말이군.”

투덜거리며 다시 리전 소녀를 바라본다. 내가 시선을 돌리자 그녀 역시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올려다본다.

“흠. 셀, 혹시 이 쇠사슬하고 수갑을 풀어줄 수 있어?”

“글쎄… 뭐, 내 황금사자기라면 가능하기는 할 테지만 상당히 시간이 걸려. 특수 제작된 물건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만약 장비들이 있다면 상황이 좀 다르겠지만 지금은 팬티 한 장까지 홀딱 뺏긴 상태라.”

파렴치한 놈들, 하면서 꿍얼거리는 세레스티아. 그리고 그 모습에 나는 문득 물었다.

“그런데 그 귀고리는 안 뺏긴 거야?”

“…뭐?”

“뭐냐… 니.”

느닷없이 정색하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에 멈칫한다. 실수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러나 상황은 이미 늦어서 세레스티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게 보여?”

이미 부정해 봐야 구질구질한 상황이었기에 순순히 인정한다.

“아, 응. 보이니까 이야기하지. 그 금귀고리 말하는 거 아냐? 십자가 모양의.”

내 말에 세레스티아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모르네도 못 봤는데 네가 본다고? 혹시 호루스 직계 혈통이세요?”

“…나도 그걸 몰라서 우주 나왔거든.”

“와, 신기하다. 이깟 돼지 부르는 권능보다 훨씬 대단해. 이걸 볼 정도면 사실상 현혹이나 환영에는 면역이라는 말 아냐?”

투덜거리며 귀고리를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설마 모르네조차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인식 방해 능력을 가진 물건이 있을 줄이야.

“황가의 물품이야?”

“그렇지. 평생을 걸고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써보지 못했지만 어쨌든 황가의 보물이라 할 수 있으니까. 뭐 어쨌든.”

그녀는 더 이상 귀고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싫은 듯 화제를 돌렸다.

“나도 이 쇠사슬하고 개목걸이는 보기 싫지만 당장 어쩌긴 힘들어. 내 몸도 아니고 다른 사람 몸에 걸려 있는 수갑을 자르려면 내 능력 이상으로 섬세한 운용 능력이 필요하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맨몸이기도 하고. 하다못해 커팅기 정도만 있어도 어떻게든 해볼 텐데.”

“흐음.”

세레스티아의 말에 약간의 안타까움을 느끼며 리전 소녀를 묶고 있는 개목걸이와 수갑, 그리고 사슬들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그것들에는 열쇠 구멍이 달려 있었다.

“쯧. 철창도 그랬지만 우주선에서 열쇠 구멍이 뭐냐, 열쇠 구멍이… 열쇠?”

불현듯 멈칫한다. 왜냐하면 세레스티아의 귀걸이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비인들에게 빼앗기지 않은 물품이 딱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차릉.

목걸이를 풀어 손에 잡는다. 그 끝에는 열쇠가 달려 있다. 마치 수십 개 정도 되는 쇳조각을 조립하고 짜 맞춰 만든 것 같은 특이한 디자인의 열쇠.

친아버지라는 사람의 유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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