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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59화 (59/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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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구출 작전

“역시 인간 아니지?”

“…….”

답하지 않는다. 슬슬 이 대답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고 있는 상항. 그런데 그때였다.

“…대하?”

여태 가만히 있던 리전 소녀가 난데없이 내 이름을 입에 담는다. 나를 부른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중얼거리는 느낌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듯 세레스티아가 눈을 반짝인다.

“헤에. 리전이 개인을 특정해서 부르다니……. 저기 너, 혹시 녀석에 대해 아니?”

마치 오랜 친우를 대하듯 자연스럽게 묻는 세레스티아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리전 소녀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도와줘?”

“…와.”

마침내 그 대범한 세레스티아마저도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내, 그 얼굴이 심각해진다.

“대하, 이건 위험해. 지금 이 녀석이 너를 돕겠다고 했어.”

“그게 뭐?”

“그게 뭐가 아냐.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은 너라면 리전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과도 다를 바 없잖아.”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을 조심스레 풀어놓는 그녀의 모습에 의아해한다.

“하지만 비인 녀석들도 활용했잖아?”

“그거야 모르네 녀석이 강제한 거지 자의로 도운 게 아니지. 만약 이 리전이 정말 진심으로 너를 돕는다고 하면.”

거기까지 말하고 세레스티아가 멈칫한다.

“어? 그렇다면 그냥 우리가 이 배를 뺏으면 되는 문제 아냐?”

“일단 이 감옥에서 나가면 말이지.”

커다란 변수였지만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응대한다. 놀랄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이 배를 뺏는 건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굳이 이 리전 소녀가 없어도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관제인격이 있기만 하다면 말이지.’

물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언 하트를 수입해서 쓰는 건 레온하르트 제국이든 테케아 연방이든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양식의 차이가 다소 있을 뿐 시스템은 대소동이하니까. 물론 리전의 공격을 방비할 수 있다면야 어떻게든 관제인격이 없는 비행 시스템을 만들 녀석이 많겠지만 리전은 마법적인 프로그래밍까지 크래킹하니 다 소용없는 일이다. 노를 젓고 돛을 펴 움직이지 않는 이상 반드시 침식당할 테니까.

“흠… 확실히 그 말이 맞아. 하긴 이 녀석들도 자신이 있으니 리전을 잡아두고 있겠지.”

세레스티아는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듯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에 잠긴 동안 나는 누워서 체력을 회복했다.

꼬르륵.

그러나 회복되는 기분이 아니다.

“죽겠구만…….”

이 망할 놈들은 밥도 제대로 안 먹인다. 이 배에 온 지 사흘, 아니, 나흘인가? 하여튼 그동안 먹은 게 전혀 없는 것이다. 고문을 할 때 몸에 영양분을 몇 번 주사한 게 전부다. 말 그대로 죽지만 않게 유지시키고 있었으니 단지 쉬는 것만으로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세레스티아가 와서 치료 능력이라도 사용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혼절해서 외부의 연락을 받아들이지도 못했겠지.

“뭐야, 너 식사도 못 한 거야?”

“그리 자상한 놈들이 아니더라고.”

사지에 힘이 없어 축 늘어지는 나를 보며 세레스티아가 다시 말한다.

“그러고 보니 고문도 당한 것 같았지.”

“같았지, 가 아니라 당했어. 살아남은 게 다행인 분위기였……. 왜 그래?”

툴툴거리며 숨을 몰아쉬다가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에 멈칫한다.

그녀는 마치 신기한 동물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야. 그냥, 너 되게 튼튼하구나.”

“다 죽어가고 있는데 튼튼은 무슨.”

“후후. 그런 이야기가 아닌데.”

가볍게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와 앉는 그녀의 몸에서 황금사자기가 뿜어 나온다. 부드럽게 내 온몸을 감싸는 황금빛. 물론 그래봐야 주린 배를 채워주지는 못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한결 몸 상태가 나아진다.

“후우… 체력도 회복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먹을 건 없겠지?”

“있는데.”

“…있다고?”

그야말로 기대조차 안 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왜냐하면 감옥에 던져진 그녀의 복장은.

“크흠.”

“어머, 그렇게 끈적끈적하게 보면 부끄러워.”

“끄, 끈적끈적하긴 뭘 끈적끈적해! 0.1초도 안 봤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을 다 빼앗긴 것처럼, 세레스티아 역시 모든 무장과 방어구를 빼앗긴 상태다. 입고 있는 것은 회색의 얇은 티셔츠 한 벌뿐. 다만 특이한 게 있다면 십자가 모양의 금귀고리를 양쪽에 차고 있다는 점 정도일까?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눈에 안 들어온 게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자극적인 모습이긴 하다. 다행(?)히 티셔츠의 사이즈가 상당해 마치 원피스처럼 그녀의 하체를 어느 정도 가리고 있었지만 그 두께가 워낙 얇아서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난다.

“뭐, 어쨌든 잠깐 귀 막아. 먹을 것 좀 만들게.”

“…먹을 걸 만든다고?”

“하여튼 귀 막아.”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지금 굳이 거짓말을 할 상황도 아니었기에 순순히 귀를 막는다. 세레스티아는 내가 귀를 단단히 막았는지 확인하더니 그대로 천정을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어헝헝------!]

온몸을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그녀의 가녀린 체구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패도적인 포효! 그러나 나는 놀라움보다 황당함을 느끼며 인상을 찡그렸다.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다. 전해지는 진동만으로도 머리가 핑 돌 정도다.

“아니, 먹을 걸 준다면서 왜 소리를 질러?”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떼며 투덜거리자 세레스티아가 웃는다.

“왜 소리를 지르긴. 우리 불쌍한 중생에게 한 끼 식사를 선물하려 그러지.”

“아니 소리 지르는 거랑 식사랑 무슨 상… 관?”

순간 멈칫한다. 왜냐하면 보았기 때문이다.

내 앞에서 잘 구워지고 있는, 어린애 정도 되는 크기의 돼지 통구이를.

“…하?”

할 말을 잃는다. 무슨 마술 같은 광경이다. 주변 광경과 너무 안 어울리는 돼지 통구이가 태연스럽게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짜자잔! 필포스의 금돼지입니다!”

“…뭐야. 뭐야 이거.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야 나도 모르지.”

“모르면서 돼지를 불러왔다고? 아니, 돼지도 돼지지만 장작은 뭐야? 불은 언제 붙인 거야?”

순간 허상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아무리 봐도 눈앞에 있는 돼지 통구이는 진짜였다.

[신계]

[차원을 넘어온 금돼지]

“…….”

칭호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자. 미심쩍어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이건 우리 레온하르트 황족들의 특수능력이야. 검증이 끝났고 몸에도 좋은 고기니 먹어도 돼.”

“특수능력이라니……. 뭐 이런 이상한 특수능력이 다 있어.”

기가 찰 지경이었지만 무시하기에는 전해지는 냄새가 너무 좋다. 신계라는 프리미엄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훅 하고 풍겨오는 달콤한 향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머, 먹어도 된다 이거지?”

“물론이지. 이건 나타나는 그 순간 다 구워진 상태니 바로 먹어도 돼. 보기보다 별로 뜨겁지 않으니 화상 걱정도 없고.”

그녀의 말에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잘 구워진 돼지의 다리를 잡는다.

“하아… 하아…….”

그러나 거기서 스톱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톱은 아니고 뜯지를 못한다. 몸에 너무 힘이 없어서 잠시 쉰 것이다. 식욕은 치밀어 오르는데 그거랑 전혀 별개로 돼지 다리를 잡은 손에 힘이 없어 덜덜 떨린다.

“으이그 안 되겠다. 그냥 누워 있어.”

혀를 찬 세레스티아가 내 머리를 허벅지에 얹더니 돼지 다리를 뜯어 내 입에 가져다 댔다. 나는 그 고기를 냉큼 씹어 먹었다.

우걱우걱.

잠시 아무 말 없이 씹어 삼킨다. 혹시 턱 힘도 없어서 못 씹을까 걱정했는데 입안에 들어온 고기는 무슨 젤리 같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쉽게쉽게 넘어가서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레스티아가 잘게 찢어주기도 했고 말이다.

“옳지, 옳지. 잘 먹는다.”

“…그런 거 좀 하지 마시죠, 어머니.”

“그래그래. 우리 아들 잘 먹지, 우쮸쮸.”

“…….”

빈정거려 보았으나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에 한숨 쉰다.

배고파서 그냥 받아먹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구도가 좀 그렇다. 내 목덜미가 말랑말랑한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상태에서 그녀가 찢어주는 고기를 먹고 있는 것이다.

“다 먹었어.”

“에? 이왕 먹은 거 다 먹지.”

“…빈속에 너무 많이 먹으면 탈 나.”

“하하하. 거의 다 먹어놓고 이제 와서.”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기를 찢어주는 세레스티아. 그리고 나는 그걸 받아먹으려다가.

“역시 구도가 이상해!”

벌떡 일어난다.

“아, 깜짝이야.”

“앗, 미안……. 어라, 그런데?”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을 살폈다. 손이 떨려서 고기도 제대로 못 집어 먹던 방금 전 상태가 정말이었나 싶을 정도로 힘이 솟아올랐기 때문인데 세레스티아는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놀랄 거 없어. 그냥 평범한 통구이를 불러오는 거면 그게 무슨 황족으로서의 능력이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의 핏줄에 깃든 능력인데.”

“신의 핏줄?”

“그래. 신혈(神血).”

뜻밖의 단어에 황당해하는 나를 보며 세레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족은 황금사자신(黃金獅子神)피를 이었으니까.”

황금사자신이라면 나도 아는 존재다. 황금용신(黃金龍神)의 형제격이라는 짐승신.

대부분의 개체가 신적인 힘을 가진 드래곤에게는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희박하지만 그럼에도 신으로 추앙받는 몇 안 되는 용신이 존재한다. 사실 나는 그런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게임 속 설정에서도 몇 번이나 나왔기에 기억하고 있다.

‘황금용신과 암흑용신이던가.’

정의와 빛을 수호하는 황금용신과 평온과 어둠을 수호하는 암흑용신은 드래곤 중에서도 신도가 있을 정도로 신화적인 존재였는데 이들은 흔히 묶여 불리는 것과 다르게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그 출생부터가 황금용신은 태초부터 존재했던 선천적인 신이고 암흑용신은 흔히(?) 존재하는 그림자용, 쉐도우 드래곤으로 태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신의 자리에 오른 존재니까.

황금용신과 연관이 있는 건, 오히려 암흑용신보다도 황금사자신 쪽이다. 아무래도 황금용신에 비하면 인지도는 부족한 존재였을 텐데도 게임 배경 설명마도 꼬박꼬박 나오기에 이상하다 했더니 레온하르트 황실의 시조였을 줄이야.

“하지만 오리엔테이션에서도 그랬고 여태 혈통에 대한 말을 전혀 듣지 못했는데. 이건 거의 광고해야 할 정도의 내용 아냐?”

귀족이나 왕족, 또는 황족이 자신의 피를 신성시하는 것은 어느 시대 역사를 봐도 항상 존재하던 일이다. 신화나 전승을 보면 그냥 보통 사람 중에 하나가 왕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죄다 신의 자식, 알에서 태어난 존재, 뭐 하여튼 이런 식으로 신비감을 조성하는 게 바로 그런 목적이 아니던가? 그런데 황금사자신의 혈통을 이은 레온하르트 제국은 이렇게 조용하다니.

그러나 세레스티아는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그 황금사자신이 지금도 멀쩡히 살아있는데 광고를 할 수는 없지. 혹시라도 그녀가 우리를 불쾌하게 여기게 되면 뒷감당이… 어쨌든!”

세레스티아는 하던 말을 끊고 남은 통돼지 구이를 베어 물었다.

“결론은 나도 순수 인간은 아니고 이건 일종의 권능 중 하나라는 것만 알아둬. 솔직히 별 쓸모없는 권능을 타고나서 짜증 났었는데 쓸데가 있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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