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57화 (57/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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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구출 작전

“…너 세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

피식 웃으며 그녀가 나를 부축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지간한 성인 남성 이상의 덩치를 가진 나인데도 무슨 갓난아기를 들어 올리듯 번쩍 들어 감옥 밖으로 꺼내 든다. 놀랍게도 그녀가 걸음걸음 옮길 때마다 점점 내 몸이 나아지고 있다.

우우웅--

“황금… 빛?”

극도의 피곤에 눈을 감고 있던 나는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빛에 힘겹게 눈을 떴다. 내 몸을 치료하고 보듬어 안는 빛이 느껴진다.

“황금사자기(黃金獅子氣)야.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족들만이 가지는 힘이지. 일반적으로 공격이나 방어에 많이 사용하지만 이런 식으로 남을 치료하는 것도 가능하긴 해.”

세레스티아는 근처에 있던 방 하나를 뒤지더니 그 안에 잔뜩 있던 죄수복들을 바닥에 깔아 그 위에 나를 눕혀주었다. 그리 호화스러운 자리는 아니었지만 냉기가 올라오던 철판 위에 누워 있던 때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레스티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황금빛이 빠르게 내 몸을 호전시키는 게 느껴진다.

“후우… 후우… 아, 이제 좀 정신이 드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빠른데?”

“나야 황금사자기보다 병기술이 전문이기는 하지만… 황가의 혈통이 쓸데없이 진해서 위력 자체는 괜찮은 편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죄수복 중 몇 개를 가볍게 찢더니 붕대로 만들어 내 몸 이곳저곳에 감는다. 그냥 아픈 것만 알지 명확한 내 몸 상태를 알지 못하던 나는 그냥 그녀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몸 상태가 어느 정도 좋아지니 슬슬 상황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감옥에 버려진 거지?”

“버려진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격리시킨 거지. 하하! 멍청한 놈들이 내가 청원에게 무력하게 잡혀 왔다고 자기네들 앞에서도 무력할 줄 알았나 보더라고.”

그렇게 말하며 세레스티아가 주먹을 쥐자 황금빛 기운이 그녀의 전신으로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이능에 무지한 내가 봐도 보통 강맹한 기운이 아니었다.

“뭐야. 너 설마?”

“그래. 한 서른 마리 정도 잡았지. 흥, 내가 다칠까 봐 공격도 못하는데 고작 열댓 마리의 비인으로 날 잡아놓을 수 있을 거라고 보다니. 모르네 그 멍청이는 맨날 지 입으로 현자현자 지껄이면서 멍청하기 짝이 없어.”

어여쁜 얼굴로 살벌하기 그지없는 내용을 풀어놓는다.

다시 말해 지금 이 녀석은 자신을 잡아놓고 있던 비인들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혼자인 세레스티아가 절대 다수인 비인을 다 물리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비인들 역시 그녀를 죽일 수 없는,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제대로 된 상처조차 입힐 수 없는 어마어마한 페널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네는?”

“당연히 없을 때 저질렀지. 알바트로스함과의 전투 때문에 많이 바쁜 것 같더라고. 뭐, 그래도 숫자에는 어쩔 수 없어서 결국 잡혔지만.”

그러나 단지 그뿐. 계속해서 반항하는 그녀를 견디지 못한 비인들이 결국 이곳으로 그녀를 끌고 온 것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조금만 방심해도 하나씩 죽어나갔을 것 같다.

‘하긴, 사지 멀쩡한 능력자를 제압해 놓기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니지.’

일반인이라면 수갑을 채워놓는다거나 하는 정도라도 충분할 것이다. 일단 움직이지 못하게만 하면 몸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날뛰는 걸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세레스티아는 능력자다. 그것도 제법 강력한 능력자. 그런 그녀를 완전히 제압해 놓으려면 지금 나한테 있는 [형틀]처럼 마나의 흐름을 완전히 차단하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수단들이 필연적으로 몸의 기능을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물론 방법을 찾는다면 능력자를 해치지 않고 제압하는 방법 역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능력을 사용해도 절대 끊을 수 없는 구속구를 채워놓을 수도 있고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일정 영역을 만들 수도 있겠지. 그것도 아니면 혈도를 봉한다거나 뭐, 그런 무협지스러운 방법도 있을 테고.

다만 문제는 이 비인이라는 녀석들의 정체성에 있다. 이 녀석들은 죽여 먹어치우는 자이지 잡아두는 자가 아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문화가 극에 달해 있는 비인들에게 피해를 안 입히고 적을 제압하는 세련된 방식 자체가 발달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뭐, 이 정도로 멍청하다고까지 하는 건 잔인하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날뛰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니.’

이곳은 대천공. 어지간한 도시보다도 훨씬 거대한 테케아 연방의 엑사급 우주모함이다. 그야말로 적진 한가운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어지간히 미치지 않은 이상 그 안에서 날뛰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탈출이 불가능한 곳이고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이들은 식인을 즐겨하는 괴물이지 않은가? 아무리 그들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고 해도 보통 사람이라면 겁에 질려 있는 게 정상인 것이다.

“하지만 정말 조금의 피해도 못 끼치는 거야?”

“그래. 나한테 정도 이상의 피해를 입히면 우주 어디에서도 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즉시 찾아온다는 청원의 말은… 절대 블러핑 같은 게 아니야. 오히려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법칙에 가깝지. 이미 청원은 심각할 정도로 사명을 [곡해]해서 이제는 정말 털끝만치만 어겨도 녀석의 신성에 크나큰 타격이 올 거야. 비인 녀석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나한테 주먹질 한번 못 하는 거고.”

“그럼 자해를 하면?”

“그건 괜찮지. 내가 자해를 해서 청원한테 피해를 줄 수 있다면 솔직히 당장 자살이라도 할 거 같은 기분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씩씩거리다가 다시 덧붙인다.

“아, 물론 내 몸은 소중하니까 정말 하지는 않을 거지만.”

상큼한 목소리에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무심코 중얼거린다.

“너… 세구나.”

“아까도 말했잖아?”

“아니, 그런 말이 아니지만.”

그냥 단지 세다고 하기보다는… 그래, 강하다. 정말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녀석이다. 나 역시 난데없이 잡혀 와 모진 고초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녀 역시 위태로운 상황이긴 마찬가지였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그녀는 강간과 강제적인 결혼을 확정당한 상태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괴물이나 다름없는 비인이 상대가 아닌가? 지금 이렇게 몸부림치고 비인들에게 덤벼들어봤자 절대 그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그녀가 아무리 강력해도 초월자인 모르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게서는 일말의 그늘조차 발견할 수 없다. 황녀이면서도 군대에 들어 있을 때부터 특이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보통 녀석은 아니었다.

“끄응.”

가볍게 신음하며 몸을 일으킨다. 몸 상태는 제법 좋아져 있었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만 벗어났을 뿐 여전히 내 몸 안에는 [형틀]이 존재하는 상태다. 마치 수술 중 실수로 뱃속에 가위가 들어간 것 같은 지속적인 통증과 덥수룩함이 느껴진다.

‘아니, 가위보다는 차라리 뱀 같다는 게 더 정확하겠군. 자꾸 움직이는 기분이…….’

그러나 기분만 끔찍할 뿐 적어도 움직이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 까아인가 캬하하인가 하는 놈이 이능을 쓸 수 없을 거라고 했지만 어차피 안 쓰고 잘 살았으니 아쉬울 거 없다. 칭호를 보는 능력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고.

“음?”

그런데 칭호에 생각이 미치자 문득 이질감이 느껴진다. 뭔가 보여야 할 게 안보였다.

“왜 그래?”

“아, 아니… 잠깐만.”

갑자기 눈을 크게 뜨는 내 모습에 의아해 하는 세레스티아에게 고개를 흔들어 보이고 슬쩍 주변을 둘러본다. 내가 느낀 이질감이 뭔지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뭐야. 칭호가 안 보이잖아?’

물론 지금 내 앞에 있는 세레스티아와 리전 소녀가 [우주 아이돌]과 [잃어버린 자]라는(다만 리전의 이름은 ???였다. 이름을 잊어버렸다는 말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칭호는 잘 보인다. 문제는 그 외의. 다른 칭호들이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물건들의 칭호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칭호는 생물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사물에게도 존재한다. 내가 집 근처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그걸 버린 대상을 특정해 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주변에 있는 물건들에는, 그러니까 죄수복이나 탁자와 의자, 그 어떤 물건에도 칭호가 없었다. 차라리 모두에게 안 보이면 내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능력이 막혔나 할 텐데 생물의 칭호만 보이고 사물의 칭호는 안 보인다니?

당황하고 있는데 여태 조용하던 리전 소녀가 입을 연다.

“그 녀석이 다시 왔어. 연결할까?”

아마 아레스에 대한 이야기였을 테지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나보다 세레스티아가 먼저 반응한다.

“아, 그러고 보니 한 명이 더 있었구나.”

내가 뭐라 할 틈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 리전 소녀의 창살 앞으로 다가간다. 나를 꺼내준 것처럼 그녀 역시 해방시켜 주려 했던 모양인데 막 창살을 끊으려다가 리전 소녀를 칭칭 감고 있는 쇠사슬을 바라보고 멈칫한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엑? 이 녀석 리전 아냐?”

“아… 그래, 맞지.”

나는 그녀가 리전을 별로 경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보면 흑사병의 창궐을 목격한 사람처럼 기겁해도 이상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리전이 인간을 증오하지는 않는 건가?’

생각해 보면 여기에 잡혀 와서 본 리전은 시종일관 헤실헤실 방긋방긋이다. 처음 보는 나에게 묘하게 친절하기도 한 것 같고. 그러나 이어지는 세레스티아의 말은 그런 내 생각을 가볍게 부정한다.

“와, 이 테러범 종족 오랜만에 본다.”

“테러범?”

“그래.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녀석들이야. 대화도 안 통하고 자신들의 룰에 조금만 어긋나도 공격 개시!!! 라는 느낌이랄까.”

“Ⓒ그러면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되는 거 아냐? 너무 방비를 안 하는 거 같은데.”

황당하다는 내 말에 세레스티아가 웃는다.

“방비는 무슨 방비야. 리전은 이렇게 1:1로 만나면 전혀 무서운 상대가 아냐. 오히려 약하지. 내가 무슨 전자 병기를 사용하거나 저 녀석이 입고 있는 게 전투형 안드로이드라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아무리 비인들이 멍청해도 그 정도 대책 없이 리전을 잡아놓았을… 아니, 잠깐.”

말을 하다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듯 그녀의 표정이 묘해진다.

“뭐야. 근처에 기계가 없는 건 알겠는데 고작 이 정도 방비야? 지켜보는 녀석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리전 녀석을 우리랑 같이 가뒀다고? 내가 철창 끊고 벽에 구멍 뚫어서 리전을 내보내면 어떻게 하려고?”

리전은 모든 기계장비를 감지하고 그 시스템을 장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어떤 뛰어나고 강력한 마법, 기술적 장벽을 만든다 해도 정보생명체인 리전의 크랙킹 앞에서는 무소용. 일단 리전의 전파 범위 안에 들어온다면 무조건 제어권을 빼앗기게 되기 때문에 우주전에서 리전이 무시무시한 취급을 받는 것이다. 적어도 우주에서 맨몸으로 날아다니는 존재는 많지 않으니까.

우주 한가운데를 날아다니다가 자신이 타고 다니는 함선의 제어권을 적에게 빼앗긴다면? 정말 어지간한 존재가 아닌 이상 이미 그 목숨의 적의 손아귀로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깐만.”

세레스티아는 즉시 한쪽 벽으로 다가가 황금빛 기운을 일으켰다.

터엉!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뿐, 벽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세레스티아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린다.

“이게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텅! 터엉!

황금빛이 번쩍번쩍하며 벽을 후려치지만 소용없다. 세레스티아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뭐야. 이 자식들 날 어디에 가둔 거야? 여기 대체 뭐지? 벽이 튼튼한 것도 아니고 무슨 기운이 흐르는 것도 아닌데 흠집도 안 난다고?”

쾅! 쾅쾅!

나는 납득할 수 없는 듯 다시 벽을 후려치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설마.’

나는 지금껏 칭호가 없는 존재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물의 [일부]라면 칭호가 없기도 한다.

요컨대 내가 사람을 본다면 칭호는 그 사람 한 명 위에 있지 누구의 오른팔, 누구의 왼팔, 누구의 머리, 이런 식으로 독자적인 인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맙… 소사.”

나는 머리 위를 올려다보며 신음했다. 저 위쪽, 감옥의 윗부분에 난생처음 보는 칭호가 보였다.

[탐식의 군단]

[최상급 마족 지옥아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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