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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56화 (56/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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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구출 작전

내가 [악몽]을 처음 꾸기 시작했던 날이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어릴 적의 나는 정신병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치원도 다닐 수가 없었다. 너무나 어려 자아가 확립되지 못한 아이가 수십 년 치의 꿈을 꾼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물며 그 꿈의 내용이, 도저히 견디지 못할 정도로 지옥 같은 기억의 나열이라면?

-아버지! 이것 봐요! 움직일 수가 있어요! 완전 신기해!

-이건… 이건 몸이군요. 어찌 저희에게 이런 은혜를…….

-시끄러워. 다 조용히 해. 아,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니 그것보다 나까지 함께 [떨어]지다니……. 아버지의 뜻인가?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거야?

그래.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게 바로 기억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나]는 황망한 감정을 느끼며 자신의 몸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당연히 그건 내가 아니다. 그의 감정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몸을 움직이는 건 그 스스로였으니까. 내가 그 악몽들을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의 인생을 체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니,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크게 슬퍼하고 있었다.

그는 단지 약간의 호기심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약간의, 아주 조금의 간섭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도, 그는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어째서… 어째서입니까, 아버지……. 잠깐의 자비가, 잠깐의 망설임이 그렇게나 큰 죄였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토해내듯 중얼거린다.

그는 자신을 이루고 있던 무한하고 영원한 지식들이 처참할 정도로 가로막히고 흐려진 상태라는 걸 알았다. 그는 이제 전지(全知)하지 못했으며 인간의 육신은 숨이 막힐 정도로 철저하게 그를 억죄고 있다.

최초의 인간이었던 이들의 이름을 따 [아담]과 [이브]라고 이름 붙인 아이는 놀랍고도 기쁘다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는 마치 지옥에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몰랐으리라.

앞으로 자신이 겪어야 하는 그 기나긴 세월은, 영원을 살아오던 그조차도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잔혹한 지옥이 되리라는 것을…….

*

“후… 아.”

깊은 심호흡과 함께 깨어난다. 무한하게 퍼져 나갈 것 같은 인지능력과 태양처럼 빛나는 압도적인 영력이 먼지처럼 스러지고 눈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한정적인 시야와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이 나를 반겼다.

마치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아, 돌아왔어?”

내 맞은편에 있던 리전 소녀가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깨어났어?’가 아니라 ‘돌아왔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 상태를 짐작하는 모양이다.

‘이거 이러다 비인 녀석들도 지금 내 상황을 알게 되는 거 아냐?’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대참사다. 비인 녀석들이 사력을 다해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나를 죽이려 들 것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청원 녀석이 걱정되니 안 그러지… 않을까?’

애써 희망적인 예측을 해보았지만 무리수다.

나는 50기가 넘는 전투기와 기가스를 파괴해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비인들의 전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 기묘한 전투기들… 오히려 다른 기가스보다 훨씬 더 쉽게 쓸어버렸지만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어. 간단히 처리할 수 있었던 건 근접전에 약해서였을 뿐이지.’

나는 새롭게 나타나 뭔가 위험천만해 보이는 광선을 뿜어대었던 녀석들을 모두 파괴하고 전투를 마쳤다.

일단 포격을 시작하면 수십 발씩 쏘아대던 녀석들이었지만 충전 시간이 얼마나 긴지 내가 거의 다 파괴했을 때 즈음에 두 세대가 포격을 날린 게 전부였으니 숨겨 가지고 온 비장의 수가 허공에 포격만 좍좍 해대고 몰살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내가 외부의 기가스와 연결되었다는 게 파악된다면?

“후우, 아주 본진까지 쳐들어왔어야 하는데.”

가볍게 한숨 쉰다.

그래, 그게 내 목표였다. 아레스의 말대로 나 스스로 나를 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 전투 상황도 나쁘지 않아서, 나는 폭풍처럼 적을 몰아칠 수 있었다. 내가 깽판을 치는 동안 아군들도 세력을 수습해서 그대로 밀면 대천공으로 침투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끈!

“큭…….”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괜찮아?”

“아니, 별로……. 걱정해 주는 건 고맙… 쿨럭!”

지금 내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내가 원거리에서 기가스를 조종하는 능력은 아레스의 어빌리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촤악!

피를 토한다.

와,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니고 피를 토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상태냐. 치료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토해낸 피에 내장 조각이 섞여 있다.

“하아… 하아… 아니, 이거 왜 이래. 왜 이런 내상을 입었지?”

“형틀.”

느닷없는 말에 리전 소녀를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나를 보고 ‘왜 형틀을 메고 있어?’라고 물었었다.

“형틀이라는 게… 후우. 뭐지?”

가볍게 호흡을 고르며 한 질문에 그녀가 답한다.

“네 온몸을 돌고 있어. 힘을 쓸 때마다 내부를 뒤흔들고 체력을 소모시켜. 과도한 힘을 쓰면 몸 안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어.”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고문을 받으며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무슨 능력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행여나 쓸 생각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내장이 바닥에 들러붙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형틀이라는 게… 그런 거였군. 하긴 뭐, 엎드리게 해서 곤장을 치는 그런 형틀을 쓰지는 않을 거라고 봤지만.”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면 참 한가한 감옥이다. 지키는 사람도 없고, 그리 밀폐된 공간도 아니다. 창살이 있다고는 하지만 단지 좀 튼튼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즉 이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공간을 넘을 수 있거나 신체를 변형시킬 수 있다면 저런 창살 따위로 탈출을 막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 대상이, 마나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면?

“그런데 그러고 보면… 나도 마나를 쓰긴 썼다는 거군. 하긴, 그 멀리 있는 아레스의 힘에 호응하려고 해도 최소한의 힘은 들어가겠지.”

사실 전문적으로 마나를 다루는 훈련을 한 적은 없다. 그런 건 잘 알지도 못하고 사실 천현일 소장이 대접했던 만령차인가 하는 게 없었으면 마나를 각성하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기가스에 탑승하면서, 나는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영기를 다루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냥 의식하는 순간에 그럴 수가 있어서, 어디에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리전 소녀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그녀를 통해 내 감각이 [확장]하던 감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 감각은 뭐였을까. 저 녀석 묘하게 나에게 호의적이던데. 혹시 일부러 날 도운 건가?

“흠. 늦은 이야기지만… 이름이 뭐야?”

“잃어버렸어.”

“기억을 잃어버렸어?”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질문하자 리전 소녀는 무슨 말을 하느냐는 표정이다.

“기억을 왜 잃어버려? 이름을 잃어버렸어.”

“…뭔 소리여, 대체.”

“헤헤헤. 뭔 소리여, 대체.”

“…….”

이제는 내 말을 따라하는 그녀의 모습에 입을 다문다. 안 되겠다. 말이 안 통해. 요 녀석 묘하게 4차원인 데다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나만 보면 방실방실 정신을 못 차린다. 처음 알바트로스함에서 봤을 때 가지고 있던 그 슬프고도 애절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쾅---!!!

그런데 그때 근처에서 난데없는 폭음이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철창 앞까지 다가가 밖의 상황을 보기에는 몸 상태가 너무 안 좋다. 그냥 고개를 들어 올린 것만으로 머리가 울리고 손발이 덜덜 떨린다.

“크윽! 이 개 같은 년! 죽여 버리겠어!”

“이 멍청아!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안으로 처넣어!”

“네? 하지만 대장님. 적어도 감옥까지는 끌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형틀을 주입시키지도 못했는데 그깟 창살이 무슨 소용이야! 지깟 년이 날뛰어 봐야 이 [아귀의 뱃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테고 기습을 준비해 봤자 다음에 데리러 올 사람은 함장님일 테니 그냥 밀어 넣어!”

“네!”

뭔가 엄청난 소란과 함께 쿵! 하고 뭔가가 벽에 충돌하는 진동음이 전해진다. 벽에 충돌한 무언가가 벼락처럼 다시 벽을 박차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달려간 모양이었지만, 그 순간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비인들의 목소리가 사라진다.

“열어! 이 머저리들아! 덤벼 봐! 싸우자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껏 성질을 부리고 있음에도 새가 지저귀는 듯 듣기 좋은 미성(美聲). 평소에는 별로 좋아하던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순간에는 꽤 반갑다.

“셀?”

“어… 대하? 너 지금 여기 있는 거야?”

쾅쾅 소리가 나도록 벽을 후려치고 있던 기척이 내 앞으로 뛰어온다. 역시나 그녀는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녀, 세레스티아였다.

“안녕.”

“윽! 이게 뭐야. 괜찮아?”

“하하, 괜찮을 리가 있나.”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온몸이 축축하고 피까지 토한 상태였기에 내 꼴이 어떤 지경일지 너무나 뻔하다. 마음 같아서는 몸 상태를 다듬고 싶지만 고개조차 들기 힘든 상황이니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청원 그 자식, 나는 손도 못 대게 협박하더니 너는 전혀 챙기지 않았구나. 하지만 이럴 거면 굳이 왜 데려온 거지? 차도살인을 노렸다면 차라리 확실히 죽게 언급이라도 했을 텐데.”

비인들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혼란에 빠진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깊이 한숨을 내쉰다. 너무 힘이 들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 잠깐만. 나 잠깐 잘 테니까……. 거기서 쉬고 있어.”

“음? 아, 치료해 줄게. 나 치료할 수 있는데.”

“아니, 치료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여기 창살이…….”

터터텅!

그러나 그 순간, 번뜩이는 황금빛이 일직선으로 그어지나 싶더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창살이 수수깡처럼 잘려 나간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감옥 안으로 들어서는 세레스티아를 바라보았다.

“…너 세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

피식 웃으며 그녀가 나를 부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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