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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형틀 속의 전쟁
파고드는 나폴레옹의 양쪽으로 하얀 빛줄기가 따라붙는다. 마치 나폴레옹이 빛으로 된 두 팔을 벌리는 것 같은 모양새였으나, 사실 그것의 정체는 나폴레옹이 미리 쏘아낸 광자포였다.
놀랍게도 나폴레옹의 돌진이 너무 빨라, 광자포와 동시에 적에게 쇄도하는 것이다.
콰쾅!
두 대의 전투기가 파괴된다. 이미 대하가 타고 있던 R-13과의 전투 때문에 100% 실드를 두르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R-13과 나폴레옹은 비교하는 것조차 실례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격차를 가지고 있다. 똑같이 아이언 하트를 가지고 똑같은 조종사가 탔다 하더라도 두 기체는 낼 수 있는 출력부터 가진 어빌리티까지 모든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같은 방식으로는 감히 막아낼 수 없는 것이다.
똑같이 광자포를 쏘아 보냈다 해도 단지 <관통> 어빌리티만 걸려 있던 R-13의 공격과 관통은 기본이고 <불가능은 없다>로 증폭되는 나폴레옹의 공격이 훨씬 강력하다. 하물며 두 기체 간의 기본 출력 차이 역시 압도적이니 무조건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콰득!
다만 여태까지 그 회피를 성공한 적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명중했습니다! 8번 9번 적기 아웃!”
“아니, 이게 무슨. 써니, 현재까지 [유령]의 명중률이 얼마지?”
“현재까지… 100%입니다.”
“그게 뭐야. 위협사격도 없이 그냥 다 명중이야? 떨어뜨린 적은?”
“21기입니다. 아, 지금 22기. 아, 23기…….”
불과 십여 분 전만 해도 시끄럽게 소리치며 전투를 수행하던 승무원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전장 정보를 바라보고 있다. 그 잠깐 바라보는 사이 두 기의 적을 추가로 처치한 나폴레옹은 벼락처럼 뽑은 광선검을 휘둘러 너무나 쉽게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광자포를 갈라 버린다.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분명 만만치 않던 비인의 기가스들이 허수아비처럼 쓸려 나가고 있다. 적 한가운데 뛰어들어 중, 장거리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적을 몰아치는 것이다. 비인들이 군세를 모아 그를 포위해 들어갔으나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으니 저게 적이었다면 대체 어떤 기분이 들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다.
“대체 어떻게 단 한 기로 적 한복판에서 학살을 하는 게 가능하지? 나폴레옹이 이렇게 강한 기체였나?”
기본적으로 우주전은 장기전이다. 어지간히 압도적인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전투는 길어지게 되어 있다는 게 통설인 것이다.
사람이 총알에 맞으면 1초도 안 걸려 죽을 수 있지만 실제로 총격전이 벌어지면 그 전투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어진다. 왜냐하면 그 총알에 맞지 않기 위해 엄폐물에 숨거나 하는 식으로 온갖 수단을 궁구하기 때문이다.
<배리어>가 존재하는 우주전은 그게 더욱 심하다.
일반적으로 아이언 하트의 영력은 50:50의 공방력을 가지며 전투 내내 그것을 유지한다. 즉 지구에서의 전투처럼 탄환 한방에 사망, 이라는 상황은 일반적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 궁금했지만… 대체 어빌리티가 몇 개인 거지? 점멸에, 관통에, 돌진기에… 정체 모를 증폭기술에 저격까지. 노블레스와의 혼혈인가? 아니면 신혈을 타고난 존재?”
“아니, 지금 어빌리티 숫자가 문제야? 저 기교를 봐! 세상에 관통을 손에 걸어서 적의 배리어 안에 집어넣었어! 배리어의 성질 변화는 터크 여단장님 이상이고 점멸 어빌리티를 미터 단위의 정밀 통제가 가능하다니! 대체 얼마나 많은 전투를 겪어야 저렇게 될 수 있는 건지 상상도 안 가!”
어빌리티는 조종사의 역량에 따라 그 위력이 천차만별이다. 똑같은 관통 어빌리티라 해도 광자포 같은 에너지 병기에만 적용시키는 것과 포탄, 미사일 같은 질량병기에 적용시키는 것은 그 난이도부터 효용성까지 큰 차이가 있으니까.
하물며 관통 어빌리티를 스스로의 몸에 걸어 적 기가스에게 유술을 걸 수가 있다니? 역사책에서나 나올법한 기교다.
“뭘 멍하니 있나! 당장 녀석을 지원해!”
“네, 함장님!”
알바트로스 함장으로서 전투를 지휘하고 있던 천현일 소장의 일갈에 승무원들이 깜짝 놀라서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천현일 소장 역시 알바트로스함의 아이언 하트와 동조하면서 전함의 배리어를 강화하고 몰려드는 적들에게 어빌리티를 쏟아냈다. 그러나 상대 역시 대주술사 모르네가 직접 우주모함을 통제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쉽게 적들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변했군.”
“네, 함장님. 대, 아니 유령의 전투력이 상상 이상입니다. 이건… 오히려 평소보다도 훨씬 강력하군요. 어떻게 하위 문명의 행성에 살던 존재가 이만한 조종 실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걸까요?”
“그거야 알 수 없지. 혈통이 범상치 않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성계신의 혈통을 타고난 걸 수도 있겠군.”
“…그런 경우가 있습니까?”
“드물기는 하지만 종종. 성계신이라고 다 똑같이 철두철미한 성향은 아니니까.”
대화를 나누는 현일의 몸에서는 새파란 영기가 줄기줄기 뿜어지고 있다. 주변 전부를 짓누르는 파괴적인 영기. 만약 그가 악의를 품는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 하위의 존재를 격살시킬 수 있는 힘이지만 숙련된 조종사인 그는 그 모든 힘을 저 멀리 우주모함에 탑승 중인 모르네와 충돌하는 데 쓰고 있다.
“그나저나 저 녀석… 화가 났군.”
무심코 중얼거리는 현일이다. 대하, 코드명 [유령]의 강함이야 몇 번의 전투로 알바트로스함에 탑승한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지만 오늘의 전투는 그중에서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비인들은 어떻게든 포위망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래 봐야 양 떼 사이로 뛰어든 늑대, 아니, 호랑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기가스를 조종하는 테케아 연방의 비인들 역시 충분한 실력을 가진 스페셜리스트일 텐데도 유령은 모든 적의 대응을 예상하고 짓밟으며 문자 그대로 능욕하고 있는 것이다.
콰득!
광선검을 휘두르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이 터져 나간다. <은신> 어빌리티를 가동하고 접근하던 적의 기가스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베어버린 것이다.
처음으로 전쟁터에 들어선. [첫 경험] 때조차 냉철하고 차분하게 움직여 온 유령이지만 그렇다 해도 이 정도의 적극성을 보인 적은 없었다.
‘꽤나 험한 짓을 당한 모양이군. 아니, 비인들에게 납치당한 게 사실이라면 살아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건가.’
정확히 말하면 대단함을 떠나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포로를 두지 않기로 유명한 비인들이 황녀라면 모를까 왜 굳이 그를 살려둔단 말인가?
“그런데 함장님, 아무리 신급 기가스라 해도 이 정도 거리에서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냥 단순히 혼자 다른 기가스를 조종하기만 해도 기가 막힌 일일 텐데, 저 멀리, 그것도 엄중한 방어가 되어 있을 게 분명한 우주모함 안에 잡혀 있는 포로의 조종 능력을 끌어낸다는 건 그야말로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적인 힘을 가졌기에 신급 기가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멀쩡할 때의 이야기이지 어찌 머리 하나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거야 알 수 없지. 아무리 나라도 신급 기가스는 본 적도 없어. 본 초월병기도 몇 개 없을 정도인데.”
알렉스에게 유령, 그러니까 세레스티아 황녀와 함께 납치당한 대하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나폴레옹을 출격시킨 것은 현일 자신이었지만 그건 초월자로서의 직감 때문이었지 뭔가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의 직감을 공유할 수 없는 부함장 나탈리가 의문을 표한다.
“확실히 이상합니다. 저희가 파악하고 있던 아레스의 능력을 명백하게 넘어서고 있어요. 만병지왕이 놀라운 능력이라고는 하지만 초월기도 아니고 어빌리티에 불과한데 이렇게 상식 밖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건 있을 수 없.”
그런데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천현일 소장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니, 잠깐… 이런 미친?”
현일이 기겁하며 어마어마한 영력을 일으켰다.
[울부짖어라---------!!!!!]
급작스러운 포효에 보고를 위해 비교적 가까이에 있던 나탈리는 폭풍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벽으로 날아갔다. 물론 그녀도 능력자인만큼 날렵하게 자세를 잡아 벽에 발을 디뎌 무사히 내려설 수 있었지만 내부가 진탕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레이더를 관리하던 승무원이 비명을 지른다.
“함장님! 지, 지원입니다! 적의 지원군이 나타났습니다! 메가(Mega)급 전함 3기! 전투기 50기입니다!”
“개자식들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궁여지책이기는 했지만 초월기 <펜릴의 포효>는 효과가 있었다. 메가(Mega)급의 은폐함(隱蔽艦)이 펼친 위장막을 찢어발겨 그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막아내고 그들 전부에게 큰 타격을 가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에 숨어 있던 50여기의 전투기였다.
“저, 전부 차원포격기입니다! 50기 전체에서 고 에너지원 발생!”
차원포격기는 거대 전함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격 전문 전투기들이었다. 비록 속도도 그렇게 빠르지 않고 충전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공격 능력만큼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포격기인 것이다. 구조상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 게 어려운 거대 함선이 가장 두려워하는 차원 포격기들은 어떻게든 비인들의 우주모함 대천공에 타격을 줘 빠져나갈 틈을 마련하려고 하던 레온하르트 제국군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일 차 포격이 날아온다! 모두 충격에 대비해!”
현일은 소리치며 초월기 <백십자의 방패>를 준비했다. 다행히 선제공격을 당하는 사태만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안전하게 후퇴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어떻게 해서든 한 차례 막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유, 유령! 차원포격기를 향해 돌진합니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뭐? 안 돼! 막아!”
차원포격기에서 뿜어내는 적색의 광구는 다른 말로 극대소멸탄(極大掃滅彈)이라고 부른다. 범위는 크기 않지만 속도가 빠르며 일단 명중하면 주변의 모든 물질을 빨아들여 그대로 소멸시키는 절망적인 파괴병기!
일단 여기에 휩쓸리면 아무리 대하의 육신이 나폴레옹에 없더라도 끝장이다. 극대소멸탄은 물질은 물론이고 영적 존재마저 소멸시키니까. 아레스가 불러들인 것이 온전한 영혼이 아니라 [시점]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영혼의 일부분이 날아가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당장 나폴레옹에 통신! 복귀하라고 해!”
“네, 네! 지금 즉.”
우웅----!
그러나 그들이 뭘 할 틈도 없이 강렬한, 일반인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파괴적인 차원파동이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근접전에 약한 차원포격기들이 순식간에 접근해 오는 나폴레옹을 향해 대당 200발, 총1만 발의 극대소멸탄을 발사한 것이다.
쿠우웅---!
한순간 디스플레이가 붉게 물든다. 마치 셀 수 없이 많은 붉은색의 구슬을 허공에 흩뿌리는 것만 같은 그 광경은, 극대소멸포가 차원포격기를 향해 달려들던 나폴레옹을 포함한 우주의 일부를 통째로 날려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맙소사.”
모두가 신음한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던, 어쩌면 레온하르트 제국의 새로운 대장군이 될지도 몰랐던 존재가 너무나 허무하게 죽었기 때문.
그러나 그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다.
“엇?”
새롭게 갱신된 전장 정보를 확인한 승무원이 신음한다. 디스플레이에 다시 떠오른 푸른색의 점이 엄청난 속도로 차원포격기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뭐야? 상황이 어떻게 된 거야?”
“그, 어떻게 되었냐면.”
잠시 신음하던 승무원이 말했다.
“전탄… 회피했습니다.”
“…….”
잠시 주변이 침묵에 빠진다. 개중 한 명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뭐야, 그게.”
*
‘뭐긴 뭐야. 그냥 피한 거지. 이게 놀라워?’
나는 황망해하는 아레스를 보고 ‘요 녀석, 슈팅게임을 안 해본 모양이군’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다들 이 정도는 피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