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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형틀 속의 전쟁
[감히----! 내 배에서----!!!]
어마어마한 기세와 함께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마어마한 영력을 두른 초월자. 단 한 번의 주문으로 수천수만의 적을 학살할 수 있는 강대한 술사.
그러나 청원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 드디어 왔군.”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말했다.
“일단 거기 무릎 꿇고 앉게.”
“……!!!”
작정한다면 하나의 문명을 파괴하는 것조차 가능한, 어떤 이들에게는 신이나 다름없는 힘을 가진 초월자는 당연히 목소리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뿐. 그의 [말]은 삽시간에 그를 강제했다.
쿵!
“크윽……!”
땅에 머리를 처박은 모르네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애초에 티라노사우루스라는 동물은 무릎을 꿇기에 적절한 신체 구조가 아니다. 아니, 굳이 티라노사우루스 말고 대부분의 공룡이 그렇겠지. 그런데 청원의 말 한마디에 강제로 무릎 꿇려진 것이다.
“세상에.”
그리고 나는 그 황당한 사태에 입을 벌렸다. 단지 말하는 것만으로 상대를 강제하다니. 심지어 거기에 당한 대주술사 모르네는 초월자라 불리는 괴물이 아닌가? 아무리 신선이라지만 이건 그야말로 격이 다르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힘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격이 다르니까.”
“뭐?”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자 세레스티아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청원을 노려보며 말했다.
“청원은 레온하르트 제국을 세운 초대 레온하르트 황제와 직접 계약을 맺은 신선이야. 스스로 밝힌 적은 없지만… 그는 중급 신위를 가진 걸로 파악되는 존재지. 우주 전체를 뒤져도 스물이 안 된다는 황제(皇帝)클래스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만약 그가 신선이 아니었다면 우리랑 눈도 못 마주칠 존재였겠지.”
“신선이라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는 거야?”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세레스티아가 설명했다.
“사실 엘로힘의 전력 자체는 노블레스의 3배가 넘어. 하지만 그럼에도 엘로힘이 노블레스보다 세력이 약한 건 엘로힘의 중축을 이루는 것이 선계(仙界)의 존재들이기 때문이지. 선인들은 그들을 아주 강력하게 옭아매는 사명(使命)을 가지고 있거든.”
“…왜 그런 사명을 가지고 사는데?”
“선인의 태생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선계의 힘을 빌어서 초월경에 오르는 그들은 다른 엘로힘들보다 더 쉽게 하급 신위, 또는 중급 신위를 손에 넣을 수 있거든. 대신 죽을 때까지 사명이 가져오는 금제에 옭매여 사는 거지. 심한 경우는 자신을 죽이려는 적에 대해서도 저항하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금제가 되기 때문에 막대한 힘을 가졌다 해도 마음대로 살 수는 없어.”
그녀의 말에 나는 청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마음대로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굳이 말을 안 해도 내 마음을 이해한 듯 세레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지. 그는 언제든 이럴 힘이 있었으니 힘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가 가진 사명은 그를 자유롭게 못하게 만들고 있었어. 이런 막무가내 행동은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청원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의 존재가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것은 그녀만이 아닌 듯, 모르네 역시 불신과 경악이 담긴 눈으로 청원을 바라보고 있다.
“말도… 안 돼. 넌 대체 누구냐? 나에게 대체 뭘 한 거지?”
“별로 대단한 건 하지 않았네. 그리고 정체를 묻는다면… 그래. 엘로힘에서 나왔다고 하면 가장 이해하기 쉬울 것 같군.”
“엘로힘……!”
모르네의 경악성과 함께 어느새 다시 몰려들어 와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수백수천 비인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일까? 청원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 정말 대담하더군. 연합에서 절대 접촉을 금지한다고 천명한 리전을 그냥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병기로 활용하다니. 도대체 어떤 심리 상태에서 이런 대담한 짓을 한 건지 좀 들을 수 있을까?”
수천 쌍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조금의 두려움조차 없는 표정이다. 아니,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건 그를 바라보고 있는 수천의 비인이었다.
“그… 건.”
“바보가 아닌 이상 테케아 연방은 제국 클래스의 세력이니 함부로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뭐, 이런 안이한 생각을 한 건 아닐 거야. 아무리 그래도 바로 징계하지는 않겠지, 경고라도 하면 그만두면 될 거야. 같은 생각도 아닐 테고. 호오, 그렇다면 설마.”
피식 웃으며 청원이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초월자라면 우리도 많은데 제까짓 것들이 무슨 금제를 한다는 거냐! 뭐 이런 생각을 했나?”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살벌한 미소다. 그냥 차갑게 웃는 얼굴에 불과한데도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런 느낌은 가진 힘의 유무나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 느끼는 듯 비인들은 물론이고 모르네조차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저, 저, 정도 이상의 선인들은 함부로 물질계에 힘을 행사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지, 지금 당신의 이 행동, 지나친 게 아닙니까? 무, 무엇보다 당신은 선경(仙境)에 소속된 투선(鬪仙)으로 보이지도 않는데.”
말을 더듬으면서도 필사적으로 할 말을 다 하는 걸 보니 과연 초월자라 할 만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청원이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후후, 물론 맞는 말이다. 나 역시 내 사명을 벗어나는 행동은 함부로 할 수 없지. 사명에 관련되지 않은 지역은 함부로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하고.”
“그, 그렇다면 여기에는.”
“당연히 관련이 있으니까 올 수 있었지. 셀.”
부드럽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자 모든 비인들의 눈이 세레스티아와 그 옆에 있는 나에게로 모여든다.
사실 진작 우리를 살피거나 노리는 녀석이 있어야 정상이었지만 청원의 존재감이 워낙에 강력해 누구도 우리에게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잠깐만 청원. 사명에 관련이 있다는 건… 설마?”
“맞다. 이곳에 네 남편감이 있지. 예전에 발견해 후보로 정해놓았었다.”
청원의 대답에 혼란에 빠져 있던 세레스티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비겁한! 넌 신선으로서의 자존심도 없어? 이건 사명을 우롱하는 행위야! 중급 신위에 도달할 정도의 대신선이 이런 꼼수를 사용하다니!”
이제야 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상황은 너무 늦었다. 이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혹스러운 것은 우리만이 아닌 듯 모르네가 의문을 표한다.
“남편감? 황녀의? 황녀의 남편감이 우리의 모함 안에 있다고?”
“그 정도가 아니라 바로 내 앞에 있지.”
“설마 나는 아니겠지.”
현실을 외면하는 그였지만 청원은 담담하다.
“설마 네가 맞다. 공룡족의 대주술사 모르네. 너는 저 아이와 관계해 아이를 태어나게 해야 한다. 정식으로 결혼도 해야 하고 그것을 세상에 공포해야 하지.”
“…맙소사.”
당연한 말이지만 모르네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세레스티아는 엄청난 미녀로서 대우주적인 스타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의 미적 관점일 뿐이다.
하마 중 최고의 미모를 가진 암컷을 인간이 성적인 대상으로 볼 리 만무하듯이 그 역시 세레스티아를 전혀 성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는 걸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식으로 결혼해 세상에 공표까지 해야 한다니?
“미친 소리다. 레온하르트 제국과 테케아 연방은 불구대천지 원수야. 그런데 한 번 강간하고 끝도 아니고 그쪽 황녀랑 결혼 따위를 하라고? 무엇보다 그녀와 나는 종 자체가 달라. 관계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한다고 하더라도 후세를 볼 수 있을 리 없다.”
너무나 당연한 반론이었지만 청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식이라면 틀림없이 태어날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훌륭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가. 미래의 편린을 볼 수 있는 나이니 그것만은 확실하겠지.”
거기까지 말하고 슬쩍 고개를 돌려 세레스티아를 바라본다.
세레스티아는 분노로 창백해진 상태였지만, 지금 여기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는 듯 단지 차가운 눈으로 청원을 쏘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방법은?”
“그건 알아서 찾아야지. 내가 볼 수 있었던 운명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과정에 그녀를 상하게 하면 안 되고, 죽게 놔둬서는 절대 안 되며. 정신을 현혹하는 행위 역시 금지이다. 강간을 하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최면을 걸거나 약물에 절이거나, 그리고 강간 와중 그녀의 몸이 정도 이상으로 상해도 안 돼.”
점점 점입가경이다. 세레스티아뿐만 아니라 모르네조차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그 말에 따를 거라고 생각하나?”
“따라야지. 지금 내가 말한 조건 중 단 한 가지만 어겨도 난 우주 어디에서도 그걸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너희가 조건을 어긴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거기까지 말한 청원이 웃었다.
“나는 리전에 대한 모든 것을 연합에. 아니, 엘로힘에 전달할 것이다. 엘로힘은 징계를 내리려 할 테고 거기에 지원한다면 상제(上帝)께서는 허가서에 옥새를 찍어 잠시나마 나를 금제에서 자유롭게 해주시겠지.”
그의 말에 나는 선인들이 마냥 자유가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계에 있다는 상제라는 존재가 허가한다면 일시적으로 금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모양.
그리고 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청원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모두가 청원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홀린 것 마냥 누구도 눈을 뜨지 못한다.
동양풍의 비단옷을 입고 허리에 새하얀 백우선을 차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냥 적당히 나이 먹은 백인으로만 보이는 그였지만 순간 그의 통해 모든 것이 파괴되는 멸망(滅亡)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는 말했다.
“약속하지. 일주일 안에 테케아 연방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어 주겠다. 다시는 우주 어디에서도 테케아 연방이라는 이름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농담이 아니다.
순간… 나는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진실로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실행할 생각이 충만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의지는 주변에 있던 모든 비인에게 강력하게 전달되었다.
“크르륵!”
“끄으으…….”
그리고 그 순간을 기점으로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비인들이 하나둘 혼절하기 시작했다. 청원이 흩뿌리는 강렬한 위압감을 견디지 못한 것.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청원이 말했다.
“그러니 너희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 말한 그의 모습이 점점 흐려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린다.
그것이 모함에서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망할 놈.’
그리고 그때를 회상하며,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 자식은, 결국 끝까지 내 처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