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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49화 (49/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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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형틀 속의 전쟁

나는 시작부터 존재했다.

내가 할 일은 [아래]의 모든 정보를 모아 통합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만드시고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지만, 그가 남긴 사명은 영원히 존재했다.

세상은 만들어졌고 많은 생명이 태어났으며 또 무수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다… 그것을 발견했다.

[아버지… 당신은 아버지인가요.]

“아니다. 나는 그냥 관리자이다.”

[아버지.]

“관리자라니까.”

있을 수 없는 탄생이었다.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계의 존재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반쪽이나마 ‘영혼’을 가진 존재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럴 수가. 영혼이 자연 발생하다니.’

아버지께서 의도하지 않은 존재였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욱더 나의 관심을 잡아끌었다.

세상 모든 것은 아버지의 설계 아래에 완성되어 있었다.

세상은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관리자인 나는 온 우주에서 유일하게 그 말씀을 하나하나 분리해 읽어낼 수 있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내 앞에 있는 이 아이는 더욱 의문투성이의 존재다. 내가 세계를 관리해 온 영겁의 시간 동안 알고 있던 모든 것에서 위배되니까.

때문에 나는 결심했다.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자.”

그리고 그것이.

그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

눈을 뜬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온몸은 쇳덩이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무겁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다시 정신을 차렸군.”

“그러게… 왜 안 죽고 정신을 차린 건지.”

“뭐라고? 푸하하! 이거 강단이 제법이군. 내가 아주 좋아하는 놈이야!”

“좋긴 뭐가 좋아. 죽이면 안 된다는데. 아 정말 오랜만에 포로라고 해서 좋아했더니 이게 뭐야? 내가 왜 인간 놈 목숨을 붙여놓은 채 괴롭히는 방법 같은 걸 생각해야 하지? 얼른 손가락부터 오독오독 씹어 먹고 싶은데.”

3미터, 아니, 4미터는 될법한 괴물이 공기가 쩡쩡 울릴 정도로 거세게 웃음을 터뜨리자 그 옆에 있는 1.5미터짜리 괴물이 투덜거린다.

4미터짜리 괴물은 두 팔에 두 발 달린, 단지 덩치가 클 뿐 인간과 흡사한 모습을 가진 데 반해 1.5미터짜리 괴물은 악어를 닮은 머리에 8개의 팔, 그리고 각각 7개씩 56개의 손가락이라는 그로테스크한 외양을 가지고 있다.

/타테아족

무투 오거 아도

케릴족

고문기술자 까아(서체 볼드, 가운데/

이것이 둘의 소속과 이름이다. 정말 짜증 나는 게 우주로 나온 이후에는 고착칭호를 가진 녀석이 너무 많아서 한눈에 상태를 알 수가 없다.

욱씬!

그런데 그때 격통이 느껴졌다. 딱히 어디라고 특정할 수도 없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몸을 살펴보니 내 양팔에 두꺼운 관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 뭘 주입하고 있는 거지? 독인가?”

“이 새끼가 어디다 대고 질문질이야?”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크게 흔들린다. 그러나 고통은 없다. 아니, 있기는 있는데 이미 느끼고 있던 고통이 훨씬 더 커서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때려서 죽겠어? 바늘 박힌 데가 더 아프네.”

“뭐? 푸하하하!”

고문기술자인 까아라는 놈이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당연히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어서 고개가 내려온 순간 그 눈에서는 살의가 번뜩인다.

“역시 먹어야겠어.”

“워워, 진정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야 한다는 명령 못 들었어?”

“왼팔만. 왼팔만 먹자.”

“참아.”

“손가락만 먹을게.”

“뭘 흥정을 하고 있냐?”

무슨 공포 영화 같은 분위기다. 누구라도 두려움을 느낄 만한 외양을 가진 두 괴물이 저런 대사를 떠들어대고 있으니 어지간히 강단이 있는 사람이라도 겁에 질릴 수밖에 없는 상황. 만일 이 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덜덜 떨고 있겠지만…….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공포를 느끼기에는 늦었어.’

내가 공포를 느낀다면 그건 내가 평온한 상태에 있을 때다. 내가 평화롭고 잘 살고 있는데 그게 깨질 것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공포를 느끼는 것.

그러나… 이미 상황은 최악이다.

나는 인간을 너무 증오해 포로를 잘 취급하지도 않고, 설사 취급하더라도 절대 살려 보내지 않는다는 비인들의 소굴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이미 상황이 최악이니 두려울 게 없다. 내가 꿈속에서 겪었던 일들을 현실에서 그대로 재생하는 기분이다.

어마어마한 고통과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 때문인지 반쯤은 꿈을 꾸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대답을 못 들었어. 뭘 주입하고 있는 거야? 죽일 거면 그냥 죽이지.”

“큭큭큭. 별거 아닌 조무래기라고 하더니 생각 외로 잘 버티는군. 그건 독 같은 게 아니다. 일종의 금속이지.”

“중금속 같은 건가?”

“흠? 무거운 금속? 아니, 오히려 이 녀석들은 굉장히 가벼운 편이다. 하지만 무겁게 느껴지기는 하겠어. 이건 자석에 가까운 물질이니까.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지속적인 고통을 가하고… 영력을 끌어 올리면 그것 전부를 빨아들여 자성을 더하지. 무슨 능력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행여나 쓸 생각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내장이 바닥에 들러붙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즐겁다는 듯 주절주절 거리는 까아의 말을 흘려들으며 고개를 숙인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젠장, 청원 그 망할 자식이…….’

이를 갈며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

“뭐, 뭐야?! 이놈들 어디에서 나타난 거야?!”

“크르륵! 인간이다! 인간 놈들이 배 안에 들어왔다!”

“침입이다! 모두 집결해!!!”

다시 생각해 봐도 무시무시한 공간이동 능력이다. 한쪽 배에서 한쪽 배로. 청원은 너무나도 가볍게 이동했다.

공간이동을 흔히 사용하는 우주이니만큼 외부에서의 침입에 대한 온갖 방어가 되어 있을 텐데도 그는 너무나 쉽게 비인들의 모성 대천공(大天空)에 침입했다.

만약 그가 작정한다면 그 어떤 배라도 버티지 못하고 침입을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아, 진정하시오. 싸우러 온 게 아니니.”

“닥쳐! 죽어라!!”

근처에 있던 스파게티를 닮은 비인 중 몇이 대여섯 개의 칼을 꺼내 들었다. 중세도 아니고 대우주시대에 함선 내에서 칼을 들고 다니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그 기세만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물론 다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우당탕!

검을 휘두르던 비인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비인이 모여든다.

“포위해!”

“이것들 여기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지?”

“보통 녀석들이 아니다. 조심해라!”

살벌한 기세를 일으키며 수십, 아니, 수백은 될 법한 비인 병사가 주변을 포위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죄다 전투 능력을 가진 존재였고 무기고를 연 것인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무장이 충실해지기 시작한다. 최초에는 검을 들고 덤볐던 이들이지만 점점 광선검이라든가 광자포라든가 플라즈마 라이플 같은 걸 들고 오는 것이다.

“난리 났네.”

무심코 중얼거리는 내 모습에 세레스티아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난리? 저런 것들은 문제가 아니야. 가장 문제는…….”

그렇게 말하며 청원을 바라본다. 확실히 내가 느낀 그의 힘이라면… 저런 비인은 수천만 명이 덤벼도 그의 옷깃 하나 스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겠소. 나는 싸우러 온 게 아니오. 하지만 그럼에도 공격한다면, 반격할 수도 있음을 양해 부탁드리오.”

정중하게 말하는 청원이었지만, 당연히 씨알도 먹힐 리 없다.

“죽여!!”

찢어지는 괴성과 함께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비인들이 해일처럼 덮쳐들었다. 총기를 들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덤비는 건 죄다 근접 무기를 들고 있는 녀석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청원이 웃었다.

“뭐, 역시 이렇게 되겠지.”

나직하게 중얼거린 것이기에 비인들은 듣지 못할 목소리. 그리고 그 직후 청원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저절로 그의 손 위에 빛으로 만들어진 부적이 떠오른다.

“규칙을 정하지. 당신들은… 지금 나에게 하려고 마음먹은 대로 되돌려 받을 것이오.”

“하하하하! 뭐라는 거야, 미친 늙은이가---!”

“갈기갈기 찢어주마!”

고함과 괴성. 그리고 살기를 품은 비인들의 파도가 몰려온다.

그리고 그 직후였다.

콰드드드득! 촤아악!

뿌득! 빠지직!

머리가 부서지고 사지가 찢겨 나간다. 온몸에 수백 개의 구멍이 뚫리고 온몸의 뼈가 부서지며 전신이 둘둘 말리거나 무언가 거대한 것에 짓눌린 것처럼 찌그러진다.

그 모든 과정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청원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었지만 적들은 모조리 죽어가고 있었다. 앞에서 무기를 들고 달려들던 녀석들은 물론이고 뒤에서 원거리 무기를 들고 있던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다.

개중 몇은 뭔가 보이지 않는 괴물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자근자근 씹어 삼키는 것처럼 으깨지고 있다.

“끔찍하군.”

“하지만 모두 그들이 저에게 하려던 일이기도 하오.”

무심코 중얼거린 내 말에 청원이 대답한다. 나는 의문을 표했다.

“저들이 하려던 일이라고요?”

“그렇소. 나는 [그들이 마음먹은 만큼] 돌아가도록 했으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모든 적이 쓰러진다. 제대로 서 있는 자는 단 한명도 없다. 인간의 것과는 다른 기묘한 혈향이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로 주변을 휘감고 있다.

“으윽……”

“오호. 생존자가 있긴 하구려. 그나저나 꼴을 보니 나를 생포하려고 한 것 같소.”

“이 배에… 어떻게 침입했는지 알기 위해서지. 큭큭큭.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니. 내가 망상을 품었군.”

나와 비슷한 신장을 가진 공룡족이 알 수 없는 기운에 꽁꽁 묶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딱 자신들이 마음먹은 만큼만 되돌린다!’

그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청원은 적들을 잔인하게 죽인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우리가 적들에게 그대로 잡혔다면, 그들이 우리에게 하려고 했던 일의 [결과]만을 적에게 되돌린 것이다.

적들이 참혹하게 몰살당한 것은, 그들 모두가 우리를 참혹하게 살해하려 마음먹었던 결과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다니.’

있을 수 없는 상황에 기막혀할 때였다.

[감히----! 내 배에서----!!!]

어마어마한 기세와 함께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마어마한 영력을 두른 초월자. 단 한 번의 주문으로 수천수만의 적을 학살할 수 있는 강대한 술사.

그러나 청원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 드디어 왔군.”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말했다.

“일단 거기 무릎 꿇고 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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