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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납치
“아, 별건 아니고. 명령한다.”
기잉--!
말에 힘을 담자 묘한 파동이 퍼져 나간다. 몇 번의 경험으로 제법 익숙해진 상태. 나는 아레스의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지금 내 앞에 완전한 상태로 현현하라!”
말과 동시에 눈앞이 새하얗게 될 정도로 엄청난 빛이 뿜어졌다.
그나마 광원이 내 등 뒤여서 다행이지 눈앞에서 터졌으면 실명 위협을 느껴질 정도의 빛이다.
[크… 윽? 이건……!]
그러나 다른 [명령] 때와 아레스의 반응이 조금 다르다.
‘당신의 명대로’라든가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부들부들 떨기만 한 것이다.
심지어 내 등 뒤에서 날아든 빛이 그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어 가고 녀석의 눈에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음에도 그랬다.
화아악--!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빛이 뭉쳐서 허공으로 올라가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리고 한순간 눈이 멀어버리는가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뿜어지던 빛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원래의 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
[…….]
아레스와 나는 잠시 서로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상황을 짐작하던 나는 그나마 먼저 정신을 차리고 혀를 찼다.
“쳇, 역시 실패인가. 하긴, 명령한다고 다 될 리가.”
사실 알고는 있었다.
만일 명령하는 것만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면, ‘너는 신세계의 신이 되어서 우주를 정복해 나에게 바쳐라!!’ 같은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는 것조차 가능할 테니까.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비교적 가벼운(우주정복에 비해서)명령을 내려봤는데, 역시나 무리다 싶을 정도의 일은 안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실패 이펙트가 뭐 이리 화려한 거냐?]
“그러게.”
그냥 피식, 하고 김새는 정도를 예상했는데 이렇게 화려하게 터질 줄은 나도 몰랐다.
여기가 밀폐되고 감시도 불가능한 공간이라 다행이지 밖에서 이런 빛이 흘러나왔으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을 것이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걸까?”
[당연하지! 내 몸들은 지금 우주 곳곳에 흩어져 있다. 내가 그 몸 찾으려고 초장거리 운행이 가능한 이 배에 타야 했을 정도인데 무슨 수로 당장 원상회복이 될 수 있겠어?]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건지 약간은 아깝다는 기색이 느껴진다.
하긴, 나도 좀 아깝다. 만약 아레스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전황이 전혀 달라졌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너 원상복구되는 것도 좋은데 그럼 내가 널 탈 수는 있는 거야? 신급 기가스는 초월자들밖에 못 탄다고 하던데.”
[그거라면… 상관없다. 사실 신급 기가스를 타는 데 자격 같은 건 없거든. 아니, 애초에 자격 요건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뭐라고?”
온갖 자료에서 신급 기가스는 초월자만이 탈 수 있다는 정보를 봐왔던 나는 기가 막혀 녀석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럼 그 자료들이 다 거짓말이란 말이야? 하고 황당해하자 아레스가 말한다.
[물론, 우리를 탈 수 있는 게 초월자뿐인 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냐.]
“…자격 요건은 없는데 틀린 말도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뻔하지. 우리들, 그러니까 기가스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관제인격들이 초월자에 이르지 못한 이들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스스로 어지간한 초월자와 맞먹는 전투력을 낼 수 있어. 지금 내가 그런 것처럼 자체적으로 어빌리티를 가동하는 것 역시 가능하고.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수준 이하의 조종사가 동조하면 오히려 전력을 약화시키게 되니까.]
아무리 강력한 신검이라도 주인은 있는 편이 낫다. 원래 검은 [들고 휘두르는] 무기이니까. 마찬가지로 활도, 마법서도. 그리고 사용자를 상정하고 만든 온갖 병기는 약하더라도 사용자가 있는 편이 낫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
그러나 기가스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단독으로 움직이는 게 가능하고 [완전]에 가까운 영혼으로 스스로 기교를 쌓아 올릴 수 있는 신급 기가스에게 어설픈 조종사란 없느니만 못한 짐에 불과하다고 아레스는 말하고 있었다.
“흠. 하지만 나는 조종 실력이 뛰어나고 어빌리티도 많으니까 상관없다?”
[아니, 그런 단순한 개념이 아니야. 그냥…….]
잠깐 망설이던 아레스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너, 너라면 괜찮아.]
“…….”
살짝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는 아레스의 모습에 황당해한다.
뭘 수줍어하는 거야, 이놈은? 순간 미묘한 공기에 뭐라 할 말을 잊었다가 애써 무시하며 말한다.
“뭐, 어쨌든 초월자라는 조건은 물리적인 조건이 아니라 기가스를 지배하는 관제인격들이 정해놓은 조건이라는 거지?”
기업이나 단체에서 신입사원 뽑을 때 4년제 이상 뭐 이런 식으로 조건을 거는 것처럼, 하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그때였다.
삑삑!
통신기가 울린다.
고개를 숙여 보니 손목에 차고 있는 통신기 위로 세레스티아의 SD캐릭터가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지고(개인 설정이었으니 그녀가 만들어놓은 것이리라) 그런 그녀의 머리 위에서 느낌표가 퐁퐁 솟아오르고 있다.
통신 요청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지 몰라서 꽤 당황했었는데.”
중얼거리며 가볍게 통신기를 터치하자 통화가 연결된다.
[야! 너 어디 있기에 위치 확인아 안… 음? 뭐야, 그 머리통은.]
허공에 떠오르는 화면 너머로 파란 장발의 미소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나칠 정도로 화사한 미모다.
“뭐야, 넌 이 녀석 몰라?”
[이 녀석이라면… 아아, 그게 바로 그 전신(戰神)이로구나.]
역시나 황족이라는 것인지 대번에 아레스를 알아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닌 듯 이내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보다 용무가 생겼으니 함장실로 와줄래? 되도록 빨리.]
“…너 요새 맨날 거기 있냐?”
[내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 별수 없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기가 가장 안전한 장소이기도 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함장실의 안전이란 함장실의 구조적 위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함장실 자체가 아니라 그 방의 주인인 천현일 소장.
즉, 그가 있는 곳이 함 내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런데 거길 왜 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받는 수당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와서 들어.]
거기까지 말하고 통신이 끊어진다. 아무래도 정보 유출의 문제가 있는 통신으로 말할 내용이 아닌 모양이다.
“이 녀석은 또 왜 이러는 건지…….”
황녀인 그녀가 작전 내용을 직접 설명할 리는 없으니 그녀가 나를 부르는 건 아마 다른 용건일 터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통신으로 하면 안 될 정도로 기밀이라 할 만한 이야기가 있던가?
잠시 고민에 잠겨있는데 아레스가 말한다.
[대하, 내가 방금 했던 말 기억하지?]
나는 다음 전투에는 나가지 말라 하던, 느낌이 좋지 않다던 아레스의 말을 떠올렸다.
녀석은 초월자에 준하는 영성을 가진 존재고 녀석의 예감은 단지 예감으로 끝나지 않을 터다. 물론 예지능력은 아니라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가급적 몸을 사리는 게 좋다는 것이다.
“뭐, 나도 목숨은 하나니 명심할게. 나대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몸을 돌린다.
전투가 있다면 사양할 생각이지만, 그래도 상황 자체는 알고 있어야 하는 만큼 굳이 밍기적거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방금 작업실 들어간 걸 파악하고 왔는데 그새 나오다니. 선배는 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예요?”
전신의 보물창고에서 나와 다시 작업실을 나서는 내 곁으로 보람이 다가온다.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전투용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와 달리 머리칼을 올려 묶어 새하얀 목덜미를 드러내고 있는 상태다.
“계속 일이 있어서. 그런데 그 복장은 뭐야?”
“사격술하고 기가스 조종법을 배우고 왔어요. 요번에 조종사들 피해가 너무 엄청나서 전투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하는지라.”
“오호, 기가스 조종술이라니.”
“다행히 우리한테 지급된 건 갑옷 형태의 기가스라 조종이 어렵지 않더군.”
팟, 하고 공간이 일렁이더니 동수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녀석 역시 전투용 슈트를 입고 있었고 등에는 돌격소총이, 허리에는 광선검이 걸려 있다.
우리는 레온하르트 제국군 소속이 아니었기에 저런 군용 장비들은 주지 않았었는데 상황이 상황인만큼 생존자 전원에게 병기를 지급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민간인인 내가 기가스를 타고 다닐 정도니.’
내심 헛웃음을 지으며 동수를 바라본다.
“그나저나 괜찮은 거야?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훈련이라니.”
“이미 깔끔하게 회복되었으니 걱정할 것 없다.”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내 뒤에 서는 동민의 모습에 혀를 내두른다.
이 녀석은 같은 반 친구에 같이 있었던 시간도 꽤 긴데 도저히 친해지는 느낌이 안 든다. 가끔 잡담도 하고 친해지려는 행동을 보이는 보람과 다르게 군인처럼 철저하게 경호를 수행해 오히려 부담스러운 느낌을 받을 정도.
어쨌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함장실 앞에 도착한다.
시간이 좀 지난 만큼 벽에 구멍이 뚫렸다거나 바닥에 파괴된 기가스가 굴러다닌다거나 하던 건 정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함장실 앞을 지키는 건 병사 한 명뿐이다. 설마 문제가 생겨서 한명만 지키던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건가?
“정지. 이 앞은… 아, 대하님이군요. 들어가십시오.”
미리 들은 이야기가 있는 것인지 쉽사리 길을 비켜주는 병사의 모습에 내심 혀를 찬다.
아무리 그래도 함장실 경호를 얼굴 한 번 보는 걸로 열어줘서 되겠니. 뭐, 그 안에 있는 함장이라는 게 혼자 행성 하나를 부술 괴물이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아, 왔군요. 오호. 과연 그렇군요. 저분이에요.”
“음?”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함장실에는 전혀 모르는 얼굴이 있었다.
“흠? 어떻게 저 셋 중에서 정확히 특정했지? 너는 저 녀석에게서 뭔가 다른 걸 본 건가?”
“뭔가를 본 건 아니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보지 못했습니다. 전혀 [안 보이는]군요.”
“역시 그렇죠? 저도 처음에 그것 때문에 되게 당황했어요.”
함장실 안에는 이제는 제법 익숙한 천현일 소장과 세레스티아 말고 훤칠한 신장의 노인 하나가 서 있다.
다만 특이한 건 그가 동양풍의 비단옷을 입고 백우선(白羽扇)을 들고 있다는 점.
반짝이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전형적인 서양인이 그런 복장을 하고 있으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선배, 조심해요. 느낌이 이상한 노인이에요.”
“조심해라. 그의 주변 좌표 전부가 일그러지고 짓눌려 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 차원 전부를 장악하는 존재라니…….”
보람과 동민이 내 앞을 막는다.
내 앞에 선 노인에게서 뭔가를 느꼈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이미 그 노인을 보는 그 순간 그런 행동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다.
“허허, 반갑소. 청원(淸原)이라고 하오.”
“뭣?”
“무슨……!?”
어느새 그 둘을 지나쳐 내 앞에 도달한 노인이 가볍게 포권(包拳)한다.
공간이동을 자유자재로 하는 동민과도 차원이 다른, [그냥 어느새 거기에 있는] 이동 방식.
그리고 나는 나를 향해 정중히 예를 표하는 그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맙소사. 초월자라니. 그것도 천현일 소장보다 훨씬 더 강한…….’
기겁하는 나에게 청원이라 자신을 소개한 노인이 말했다.
“엘로힘(Elohim)에서 나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