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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44화 (4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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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납치

제국 클래스라고 평가받는 테케아 연방에조차 단 2대만이 존재하는 엑사(Exa)급 우주모함(Carrier) 대천공(大天空)을 제어하는 함교의 분위기는 더없이 적막하다.

상주인구가 십수 만에 이를 정도의 규모를 지닌 만큼 함교에서 근무하는 승무원의 숫자도 상당했지만, 그럼에도 사람 하나 없는 것처럼 극도의 고요만이 주변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녀석들이 게럴트를 캐 간 지 벌써 3일이 지났군.”

지구인의 관점에서 보면 약 7일이다. 비인들의 모성 [라이드]의 자전주기가 지구보다 2배 정도 길기 때문에 시간 관점이 다른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대현자님. 이게 다 쇠망치 비행연대와 서리요정 기갑여단이 교전마다 패배하기 때문에…….”

“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 게럴트를 캐는 적을 요격할 때 천현일 소장이 파고들 것을 예상하지 못해 전투 상황을 엉망으로 만든 건 오히려 작전부였소!”

“뭐라고요?”

분위기가 험악해졌지만 그것도 다 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온 발악일 뿐이다.

함장석에 앉아 고요히 그들을 내려다보는 모르네의 눈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듯 서늘하다.

“…시끄럽군.”

독백하듯 조용한 목소리에 서로 눈을 부라리던 비인들이 단박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다.

화면을 보고 있던 모르네는 살기가 끓어오르는 것을 감추지 않으며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렸다.

“대체 그 녀석들은 뭐지? 알바트로스함의 조종사들이 이렇게 수준이 높다는 보고는 받은 적이 없는데. 심지어 기간트 마스터로 의심되는 녀석이 있을 정도라니.”

게럴트 채광 때의 전투에서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대하의 활약은 엄청났다.

그는 별다른 부담 없이 전장에 나섰으며, 그때마다 셀 수 없이 많은 기가스와 전투기들을 처리했다.

사실 게럴트 채광 때의 전투만 해도 평생 자랑할 만한 성과였는데 그 후로 오히려 더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녀석들이 아니라, 녀석이라고 판단됩니다.”

“…한 명이라고?”

모르네가 의아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천현일 소장의 호의로 알바트로스함 최고 등급 기가스인 나폴레옹에 타게 된 대하였지만, 그 이후에는 계속해서 기체를 바꿔 타고 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나폴레옹을 버리거나 한 건 아니어서 다시 나폴레옹을 탈 때도 있었지만, 그가 주로 타고 다녔던 기가스는 천둥룡을 비롯한 수급 기가스들이었다.

“예, 전투 정보 분석결과 틀림없습니다. 자세한 자료는 여기에.”

부관의 손짓에 따라 모르네의 머릿속으로 각종 정보가 전달된다. 순간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한 양이었지만, 대주술사인 모르네는 순식간에 그 내용을 분석했다.

“…그렇군. 한 명이야. 습관과 방식을 비롯한 전투 방식이, 그리고 무엇보다 영자패턴이 모두 동일해.”

각기 다른 아이언 하트를 품은 기가스들은 각각 다른 영자패턴을 가지지만 조종사와 동조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패턴을 받아들인다.

실질적으로 기가스는 두 가지의 영자패턴을 가진다는 뜻으로, 높은 문명 수준을 가진 테케아 연방의 기술자들은 전투 정보만으로 상대의 영자패턴을 읽어 들이는 게 가능했다.

“코드명 [유령]이라고 합니다. 작전부에서는 녀석을 제거하지 않고서 알바트로스함을 포획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 내가 참가하지 않는 교전은 반드시 패하니 전쟁이 제대로 이뤄질 수가 없겠지.”

그렇게 말하며 서늘하게 웃자 날카로운 이빨들이 번쩍인다.

대하는 그를 티라노사우루스라고 봤지만 사실 그의 모습을 자세히 봤다면 단지 공룡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흔히 알고 있는 공룡의 모습과 다르게 발달된 양팔과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는 4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는데다 꼬리가 있을 뿐 일어서면 꼿꼿이 설 수 있는 골격,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은 마치 고양이의 그것처럼 꺼내고 집어넣는 게 가능하다.

과거 지구 전체를 지배하던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그대로 진화에 성공했다면 도달했으리라고 판단되는 형태의 모습인 것이다.

심지어 공룡족은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우수한 지성을 가졌으며 어떤 이능이든 쉽게 익힐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영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주의 귀족이라 불리는 초월종(超越種) 노블레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에 준할 정도의 강력한 종족이었기에 비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모성에 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저희가 패배할 일은 절대 없겠지만 이대로 녀석들이 탈출에 성공해 연합에 연락이라도 하게 되면…….”

“그래, 곤란하겠지. 그깟 도구 좀 사용한다고 계집애처럼 호들갑을 떠는 연합이니까. 어쩌면 전룡단(戰龍單)이나 선경(仙境)에서 나설지도 모르겠군.”

우주를 지배하는 연합, 그리고 그 연합을 양분하고 있는 노블레스(Noblesse)와 엘로힘(Elohim).

제국 클래스의 힘을 가진 테케아 연방이라지만 연합이 작정하고 나서면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괴멸할 거라고 예상할 정도로 힘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레온하르트 제국과 테케아 연방의 전쟁에는 관심조차 없는 연합이지만 그들이 리전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어 나가면 강제력을 발휘할지도 모르니 비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럼 지원을 요청하는 방향으로 갈까요? 혹시 모르니 레온하르트 제국군의 눈을 가려둘 작업도 필요합니다.”

“…그래. 자존심이 좀 상하기는 하지만 만일의 사태를 위해 그편이 나을 것 같군. 준비해라.”

“네, 대현자님.”

부관은 모르네가 모처럼 차분한 상태라는 사실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러섰다. 평소 흥분하면 수하들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그였지만 수련을 위해 명상을 하고 난 직후였기 때문인지 흉성을 터뜨리지 않고 있는 그였다.

“아, 그런데.”

그러나 미처 물러나기 전 따라붙는 질문에 부관이 멈칫한다. 혹시나 이제 와서 흉성을 터뜨리려는 것일까 하는 두려움이 피어오른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다행히, 별다른 감정의 변화 없이 모르네가 묻는다.

“그 유령이라는 녀석은 왜 자꾸 기체를 갈아타는 거야?”

* * *

내가 나폴레옹에 타 잠시 침묵을 지키자 나폴레옹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 오, 오늘은 어때?]

“잠깐 기다려 봐.”

가볍게 녀석의 말을 끊으며 동조를 시작한다.

기잉---!!

동조가 완료되고 아이언 하트가 기동한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오늘의 어빌리티를 확인했다.

<절약>

<수리>

<광속의 검호>

<점멸>

대체적으로 무난한 어빌리티였지만 상당히 괜찮다.

어빌리티나 병기를 사용할 때 소모되는 영력의 양을 줄여주는 <절약>, 공격에도 도주에도 사용 가능한 <점멸>, 그리고 무엇보다 공격 어빌리티인 <광속의 검호>.

다만 <수리>가 <죽지 않는 황제>의 하위호환이라 무용지물이었지만 이 정도면 공격과 회피 모두 달려 있는 훌륭한 조합이다.

수리가 방어/생존 방식의 어빌리티였으면 완벽했겠지만 거기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굿.”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나폴레옹의 모습에 소리 죽여 웃는다.

이 녀석이 왜 이렇게 나오느냐? 라고 묻는다면 내가 녀석을 툭하면 대기 상태로 놔두고 다른 기가스를 탔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녀석은 그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급 기가스를 탔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 전장에 나섰다가 공격 어빌리티의 부재라는 돌발 상황에 크게 고생한 입장에서 자체적인 공격 어빌리티가 없는 나폴레옹을 그냥 탈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매일 나폴레옹에 탑승해 그날의 어빌리티를 확인했고, 내 고유 어빌리티에 공격 어빌리티가 있을 때에만 나폴레옹이 전장에 나갈 수 있었다.

만약 공격 어빌리티가 없으면 다른 녀석들의 수급 기가스를 아레스의 만병지왕으로 원격 조종해 싸웠던 것이다. 사실 조종 자체는 직접 타는 게 더 수월했지만, 나름대로 인적사항을 비밀로 하고 있는 만큼 별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상할 정도로 멘탈에 타격이 없단 말이지.’

살기 위해서라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적을 이 손으로 죽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별다른 정신적 타격을 입지 않았다.

내 머릿속 어디가 망가졌다거나, 미쳤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멀쩡하다. 아니 그걸 넘어 너무나 절대적이고 객관적으로 시선에서 모든 걸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내 목숨이 위험할 때조차, 나는 모든 걸 차분히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그거야 대전쟁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진짜 목숨이 걸린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지 않은가?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물론 정신이 파괴될 정도의 악몽을 보여줬던 [기억]으로 인해 내 정신력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예전의 나는 위험한 상황에는 겁을 먹었었고 내 존재 때문에 고뇌했었다. 지금처럼 강철멘탈의 소유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같은 반 친구가 되어버린 경은의 [인간 사냥꾼] 때문에 멘탈이 휘청휘청했던 경험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아무렇지 않게 적을 해치우며 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별다른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위험한 상황에 걱정은 해도 공포를 느끼지는 않는 것이다.

‘언제부터였지?’

고민한다.

그런데 그때 삑삑 하고 알림음이 울린다.

[파트너, 통신이다.]

“음? 이건 혜란이군. 내려줘, 나폴레옹.”

[알았다.]

순식간에 아이언 하트와의 동조가 풀리고 나폴레옹의 전면부 장갑이 열린다.

물론 10.5미터나 되는 나폴레옹의 가슴팍에서부터 바닥까지는 상당한 거리지만, 나폴레옹은 능숙하게 내 몸을 잡아 바닥에 내려주었다. 거대한 로봇이지만 달걀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니 녀석의 손길에 다칠 걱정은 안 한다.

“무슨 일이야?”

“아, 저. 나래의 군사재판 때문에.”

“나래라니 그건 또 누구야? 그리고 웬 군사재판?”

뜬금없는 소리에 의문을 표한다.

내가 법무관도 아닌데 왜 군사재판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말하는 혜란의 표정이 평소와 달리 상당히 조심스럽다. 실력은 확실하지만 가끔 개념이 없나 싶을 정도로 마음대로 행동하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 흔치 않은 경우다.

“흠. 검은삵이라고 하면 알려나…….?”

“아하.”

검은삵이라면 전투 중 지휘권을 이어받았던 내 명령을 무시한 채 반파된 적들을 좇아갔던 기체였다.

뭐, 어차피 전투는 승리로 잘 끝나서 가볍게 머리 한 대 때려주고 넘어갔는데 그 이름을 일주일이나 지난 지금 듣게 된 것이다.

“와, 설마 그걸 이제 와서 처벌한다고?”

“이제 와서가 아니라 쭉 진행 중이었어.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징계를 피할 수는 없지. 현재 명령 불복종으로 군법재판에 회부된 상태고 마지막 절차를 위해 네 의견이 필요해.”

“내 의견?”

“그래. 명령권자가 너였고 피해를 본 것도 너였으니 가중처벌을 요청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합의할 수도 있지.”

“아, 군법도 합의가 가능하구나.”

몰랐던 사실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그냥 봐주지, 뭐.’

그때야 목숨이 걸려서 성질이 났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니 이해 못 할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듣도 보도 못한 굴러 들어온 돌이었고 그들은 오랫동안 전쟁터를 굴러온 베테랑이니 설사 맞는 명령을 내렸다 해도 쉽게 따를 수 없었겠지.

녀석은 틀림없이 트롤이지만, 사실 그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다. 일부로 지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나름 열심히 하려다 잘못된 거니 뭐.

무엇보다 딸피를 쫒아가는 건 인간 본연의 본능(?)이기도 하고.

“저기… 합의해 줄 생각이 있어?”

슬며시 묻는 혜란. 그리고 순간 나는 그녀의 표정과 태도에 새로운 의문이 떠올려다.

애초에 그 검은삵인가 뭔가 하는 녀석의 소식을 왜 이 녀석이 직접 와서 전하고 있는가? 그리고 태도는 왜 이렇게 조심스럽지?

애매하다면 애매한 의문이었지만 나 역시 눈치라면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는 만큼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오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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