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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세퍼드 대전(大戰)
“아…….”
어느새 나를 향해 덤벼드는 4기의 기가스를 보며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암 걸리겠네…….”
하지만 발암은 발암이고 일단은 싸워야 한다.
“천둥룡! 큰범! 얼른 가서 고양이 녀석하고 셋 빨리 잡고 돌아와!”
[뭐? 하, 하지만…….]
“너네도 명령 불복종 할래?”
[…알았다. 아니,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두 기체의 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진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에게 덤벼들던 4기의 기체 중 둘이 내 뒤로 넘어가려 했지만.
“가긴 어딜 가! 나폴레옹! 중력제어장치 재가동!!”
[좋아, 파트너! 해보자!]
대답과 동시에 자세를 낮추며 <불가능은 없다>와 <증폭>을 동시 가동한다.
핑그르르 돌며 실드에 에너지를 충전. 나에게 덤벼들던 거미 모양의 기가스에게 달려들었다.
끼기긱---!!
당연한 말이지만 몸싸움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가스전에 체술이 있을 수 없는 개념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잔뜩 쫄아서 실드로 몸을 둘둘 두르고 있는 적은 일단 실드를 깨야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접전에 걸맞은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다면 상황이 좀 달랐겠지만 적어도 지금 나에게는 실행이 불가능한 선택지다.
‘집중하자.’
나는 나폴레옹의 아이언 하트와 동조했다. 나폴레옹의 거대한 영력이 내 보잘것없는 영혼과 접속하며 반응하기 시작한다.
우웅--
기가스의 실드를 구성하는 것은 아이언 하트의 영력이며 그 기본적인 성질은 고체에 가깝다. 하지만 실질적인 물질이 아닌 만큼, 영력에 동조한다면 그 성질을 변환시키는 게 가능하다.
‘고무공처럼 유연하고 탄력이 넘치도록!’
집중한다. 가상시뮬레이션 장치인 대전쟁은 여기까지 동조할 수가 없어서 실제로 해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실패할 거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파앙!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성공!
나는 나에게 덤벼들던 기가스 녀석의 아래로 파고들어 녀석을 하늘로 튕겨 버렸다.
쾅!
“스트라이크!”
벼락같이 튕겨 나간 거미 모양의 기가스가 천둥룡과 큰범을 쫒던 적 기가스 둘을 명중시키는 모습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쥔다.
공격 어빌리티가 없어서 적의 배리어를 뚫을 수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 밀어내고 튕겨내고 내리누르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기본 공격들과 배리어가 강화된 상태였기에 기세 또한 매서운 편이다.
쾅! 쾅!
고속 비행을 시작하려다 뒤에서 날아든 다른 기가스에 얻어맞고 추락한 두 기가스는 이내 눈을 번쩍이며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도망치는 그들의 동료와 그들을 쫓고 있는 천둥룡, 검은삵, 큰범과의 거리가 순간적으로 크게 벌어지자 아예 가까운 나부터 끝장내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결과적으로 1:4의 전투가 된 것이다.
[파트너! 온다!]
경고와 함께 내 양쪽으로 떨어지는 포격을 피한다.
비인들의 기가스에서는 제법 드문, 인간 형태의 기가스 둘이 덤벼들었는데 그중 실드를 두드린 포격의 감촉이 심상치 않다.
‘이건.’
익숙한 [느낌]에 버럭 소리친다.
“나폴레옹! 실드의 범위를 피부 바로 위로 붙을 정도로 줄여!”
[하지만 실드를 구체 형태로 유지하지 않으면 시스템 점유율이 너무 높아져! 영력 소모도 심각하다! 근접전용 어빌리티도 없으면서 왜?]
“별수 없어. 적이 배리어에 맞기만 해도 별로 안 좋은 어빌리티를 쓰고 있다. 녀석의 공격이 배리어에 닿지 못하게 해야 해!”
[애초에 공격을 막으려고 쓰는 배리어에도 공격이 안 닿게 해야 한다고?]
기막혀하는 나폴레옹이었지만 그래도 납득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듯 실드의 범위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깨 위로 스쳐 지나가는 광자포.
역시나 이 녀석 실드에라도 맞으라는 듯 마구잡이 사격이다.
‘침식이군.’
어빌리티 <침식> 그건 나도 즐겨 쓰는 어빌리티 중 하나로 적의 영기에 침입하여 제어를 흐트러뜨리고 폭주를 유도하는 기술이다.
가장 이상적인 사용 방법은 당연히 적 아이언 하트나 갑판 내부로 흐르는 영맥(靈脈)에 직접 투입하는 것이지만 적의 실드 위에 쏘아대는 것만으로도 적 기가스의 영력 회복 속도나 방어력 등에 악영향을 끼치는 게 가능하다.
쿵!
땅을 박찬다. 중력제어장치와 관성제어장치로 자유로이 비행이 가능한 나폴레옹이라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나는 땅을 박참으로써 가속 시간을 최소화한 후 <마렌고의 질주>를 사용함으로써 순간적으로 최고 속도로 들어섰다.
쾅! 쾅! 퍼엉!
지구에서는 함선에서나 다룰 만한 거대 구경의 포격들이 내 몸, 아니, 나폴레옹의 몸을 스치며 대지를 박살낸다.
그러나 애초부터 사격각도로 녀석들이 노리던 부위를 파악하던 나는 가볍게 나폴레옹을 조작해 그 모든 공격을 피해내고 안으로 파고들어 벼락처럼 광선검을 휘둘렀다.
우득!
“웃?!”
그런데 순간 광선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나폴레옹의 손목이 꺾인다.
마치 공간이 굴절되기라도 한 것처럼 광선검의 궤도가 급변해 분명히 적을 쳐야 할 광선검이 나에게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파트너! 이건……!]
“알아! 방어 스킬이다! 공간굴절인가!”
급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건 기회다. 이런 식의 집중된 방어는 오히려 일반 배리어보다도 뚫기 쉽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나였으니까.
파앗!
일단 허리를 크게 젖혀 내 목을 향해 날아오는 광선검의 날을 피해냈다.
그리고 동시에 왼손으로 꺾인 오른손을 강하게 붙잡아 되돌아오는 검의 힘을 이용해 팽이처럼 돌았다.
콰득!
핑그르~ 돌며 파고들어 대각선으로 그어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신속한 반격에 당황하며 몸을 빼려던 적의 모습이 두 개로 나눠진다.
아이언 하트를 정확히 베어버린 데다 <메마른 심장>이 순간적으로 발동해 영력을 빨아들였으니 회생의 가능성 따위는 없을 것이다.
[맙… 소사. 지금 뭘 한 거야?]
“뭘 하긴 뭘 해. 공격했다가 반사당해서 반사당하는 힘을 이용해 공격한 거지. 아오, 겨우 한 대 잡으려고 손목이 나가야 하다니 이게 무슨 하드코어…….”
----!!!
그러나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머릿속을 왱-! 하고 울리는 파동이 몸을 치고 지나간다.
물론 나는 아발론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았지만, 애초에 이건 내 본신을 노리고 한 공격이 아니다.
“아, 다굴 짜증 나네. 이건 또 뭐야.”
순간적으로 나폴레옹의 통제가 반 박자 정도 늦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인상을 찡그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늑대 형태의 기가스가 상체를 숙이고 있는 상태. 턱 부분이 빠져서 입이 크게 벌어진 걸 보니 마치 포효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다.
‘천현일 소장이 사용했던 펜릴의 포효와 비슷한 어빌리티인가?’
그러나 침식과 다르게 이건 모르는 어빌리티였다.
대전쟁에 나오는 어빌리티는 100% 숙지한 내가 모른다는 건 이 스킬이 굉장히 희귀하거나 대전쟁 중에는 등장하지 않은 어빌리티라는 뜻이다.
[조심해라, 파트너! 아이언 하트의 영력이 둔화되어 반응 속도가 너무 느리다! 공격을 피할 수 없어!]
“아니, 뭐 그렇게 심각하게 말할 것 까지는 아닌데.”
매직핸드를 움직여 전면 화면에 어지럽게 떠오르는 피해 보고를 죽 밀어내며 웃는다.
“그냥 한 2초 정도 렉 걸린다는 말이잖아? 선 입력으로 해결하면 되지.”
오른팔이 박살 났고 그걸 수리하기 위해 <죽지 않는 황제>를 발동할 시간조차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내 목적은 승리가 아니다.
나 혼자서 이렇게까지 시간을 끌면.
[늦었다! 아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합류하겠습니다! 이제 뒤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 와중에 하나를 더 잡다니…….]
전투 중에 위치가 바뀌었기에 비인들의 기가스 뒤로 천둥룡과 큰범, 그리고 검은삵이 모습을 드러낸다.
솔직히 못 미덥기는 했지만 같은 숫자로 큰 타격을 입었던 적을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쉬우웅--- 펑!
그리고 그 와중 붉은색의 전투기가 격추시킨 비인의 전투기 하나가 우리 옆으로 추락한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 전투기들 역시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끝이군.”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비인들의 기가스를 보며 조종석에 등을 기댄다.
완벽한 승리였다.
* * *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군.”
화면을 바라보는 현일의 상태는 엉망이다.
눈처럼 새하얀 털 상당 부분이 불에 타기라도 한 것처럼 그을려 있고 한쪽 귀는 비스듬히 잘려 나가 온데간데없다. 오른팔은 걸레처럼 너덜거려 근섬유가 보일 정도이고 얼굴도 상당 부분 찢어져 커다란 어금니와 송곳니가 선명하게 그 모습을 보이니 비위가 약한 이라면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 것이다.
“폼 잡을 때야? 너 지금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꼴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깟 부상쯤은 침 발라도 낫는다.”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녀. 세레스티아의 핀잔에 농담같이 답했지만 실제로 그게 사실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부상은 빠르게 치료되고 있다.
타버린 피부가 천천히 재생되며 거기에서 새하얀 털이 자라나기 시작하고 부러진 뼈가 저절로 맞춰지며 잘려 나간 귀가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육체파 초월자들은 이게 무서워. 심지어 재생 안 되기로 유명한 궁극주문을 맞고 이 모양이라니…….”
“그 궁극주문이라는 걸 맞아서 이 모양인 거다. 아니었으면 여기로 돌아오기 전에 완치되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만령차(萬靈茶)를 후르륵 소리가 나도록 마신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마실 정도로 아끼는 차였지만 부상을 입은 그에게 가장 훌륭한 영약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가 만령차를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며 운기(運氣)에 들어가자 알바트로스함의 최고 귀빈으로서 함장실에서 대기 중이던 세레스티아는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대체 왜 전장에 돌입한 거지?”
전투 상황은 그녀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전쟁은커녕 사건 사고조차 거의 없는 극히 평화로운 지역 출신의 소년이 단번에 전장에 돌입해 수십 년 동안 전쟁터를 굴러온 스페셜리스트를 [지휘]해 적들을 몰아냈으니까. 그가 활약할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런 방식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아, 나도 그것 때문에 당황했지. 저 녀석 분명히 <저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나? 원거리 어빌리티가 없는 천둥룡으로 적의 배리어를 뻥뻥 잘도 뚫었다고 하던데 왜 포격전용 기가스인 나폴레옹에 타서 근접전을 한 거지?”
무인으로서 초월지경의 경지에 이른 동시에 조종사로서도 높은 재능과 실력을 가진 현일은 비인들과의 전투 후에 남겨진 영상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유령이라 불리는 지구인이 사용한 어빌리티의 종류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은신에 관통에 저격… 거기에 공간이동 능력까지. 실제 천둥룡에 내장된 기본 어빌리티는 관통뿐이었으니 나머지는 틀림없이 고유 어빌리티였을 텐데.”
관통처럼 근접무기와 원거리 무기 모두에 활용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어빌리티 <저격> 역시 배리어를 관통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또한 포격의 사정거리를 늘리는 힘을 겸하고 있으니 <은신>어빌리티로 몸을 숨기며 <저격>을 한다면 제대로 된 탐지가 먹히지 않는 번개구름에 숨어 안전하게 레온하르트군을 지원하는 게 가능했을 터였다.
손님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하의 참전을 반대하다가 그런 사정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세레스티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체 왜 포격전용 나폴레옹으로 근접 전투에 참여한 걸까?”
“사실 그것도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
피부 위를 손으로 탁탁 털어 엉겨 붙은 털들을 털어낸 현일이 나폴레옹의 전투 장면을 보는 모습에 세레스티아가 웃었다.
“어머, 설마 기간트 마스터(Gigant Master)가 어린애로 보일 정도의 기교라는 내 말을 허투루 들은 거야?”
“그럼 그걸 단박에 믿는 미친놈이 어디 있겠냐?”
다른 나폴레옹이 종종 각성하곤 한다는 보고를 받았던 <마렌고의 질주>와 <죽지 않는 황제>, 그리고 상대의 에너지를 빨아들여 자신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극히 희귀한 타입의 어빌리티 <메마른 심장>.
사실 이런 건 문제가 아니다.
아주아주 드물 뿐이지 남들보다 귀한 어빌리티를 많이 가진 존재는 과거부터 있어왔다.
초월자인 그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는 [노블레스]들이나 그보다 더 희귀하지만 틀림없이 존재하는 [언터쳐블]의 혈통들.
그들이라면 태어났을 때부터 말도 안 되는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해당 기체가 각성하지 못한 어빌리티를 고유 어빌리티로 사용하는’경우도, 극히 희귀해 말로만 들어왔지만 납득하지 못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그보다 그의 [기교]였다.
“하하. 실드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거 봤나? 나도 그거 하는 데 30년이 넘게 걸렸어. 그런데 저런 꼬마가 저렇게 쉽게 한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매 순간 급변하는 전투 속에서도 순식간에 [정답]을 찾아내는 상황 판단 능력,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부하들조차 이용하는 뛰어난 용병술, 제대로 된 공격 어빌리티 하나 없이 동급의 적조차 가볍게 제압하는 놀라운 조종 능력까지.
이건 재능 하나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수없는 수련과 연습, 그리고 무엇보다 ‘연륜’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녀석은 대전쟁으로 기가스 조종법을 배운 게 아니었나? 그런데 실전에, 그것도 죽고 죽이는 전장에 바로 투입되어 이렇게 완벽하게 적응한다고?”
대하에게는 신병 특유의 머뭇거림이나 두려움 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검과 검을 맞대고 숨결과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백병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기가스전 역시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대전쟁을 비롯한 시뮬레이션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고도 단 한 번의 전투로 트라우마가 생겨 다시는 전쟁터에 나서지 못하는 장교가 수두룩하다.
적을 죽여야 하는 상황과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가 공존하는 전쟁터에서 냉철하게 아이언 하트와 동조하는 것이 결단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하는, 제대로 된 기가스 탑승이 단 1회에 불과한 그 소년은 별 망설임도 없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투에 투입되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적들을 처치하고 호흡이 맞지 않는 아군 때문에 위기에 처했으면서도 냉철하게 전투를 수행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건 신병이 보일 수 있는 활약이 아니다. 오히려 백전노장에 가까워 오랫동안 조종사로 활동한 현일조차 흉내 낼 수 있을까 의심이 갈 정도.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에, 하지만 녀석은 대전쟁에서 12억 8,000만 점을 딴 천재라고 하지 않았어? 아무리 게임 형식으로 배웠다고 해도 그 정도 점수면 실전에서 어느 정도 하지 않을까?”
“12억 8,000만 점……. 하하하. 어처구니가 없군. 내가 ‘겨우’ 950만 점을 찍는 바람에 본성에서 난리가 났던 게 어제 같은데. 결국 100인 위원회에서 직접 소환해 녀석들이 보는 앞에서 다시 한 번 대전쟁을 플레이해야 했었지. 그런데 1,000만도 아니고 1억도 아니고 12억?”
대전쟁은 그냥 게임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조종사를 키워온, 아주 신뢰도 높은 전투시뮬레이션인 것이다.
어쩌면 현 기간트 마스터들조차 10억 대의 점수에는 도달하지 못했을 거라고 짐작될 정도인데 20년도 못 산 꼬맹이가 어찌 그 이상의 점수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세레스티아는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쨌든 상황이 잘 풀렸으니 다행이지.”
“그래, 잘 풀렸지. 내가 다친 만큼 그 공룡 자식도 다쳤고, 추적기도 다 박살내는 데 성공했고, 함선을 수리할 수 있을 정도로 게럴트도 채굴할 수 있었고.”
그러나 그럼에도 현일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남아 있다.
대하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다.
‘악의를 가지고 침투한 건 절대 아냐. 그럼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동시에 그가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확신은 분명하게 자리 잡았다. 그 놀라운 기교도, 엄청난 숫자의 어빌리티도 절대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었으니까.
‘잘 살펴봐야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서서히 잠이 든다. 표시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격전으로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던 것. 그리고 그렇게 그가 잠든 사이 세레스티아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대하가 타고 있을 나폴레옹이 검은삵의 머리통을 가볍게 때리고 있다.
“아아… 곤란한데. 이거 어쩌면.”
귀환하는 부대의 모습을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세레스티아가 중얼거린다.
“매파 할아버지가 올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