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 / 0117 ----------------------------------------------
Chapter 10 세퍼드 대전(大戰)
나는 기본적으로 단독 전투를 즐기는 편이지만 언제나 그런 전투만 할 수는 없다.
지금의 경우처럼 재수 없게 어빌리티 구성이 꼬이는 경우도 그렇지만, 기급 기가스를 타고 전장에 들어갈 때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혼자 신컨이어봐야, 타고 있는 기가스 자체의 성능과 발휘할 수 있는 전력 자체에 한계가 있다면 결국 전장에서 할 수 있는 활약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때문에 대전쟁 때에도 나는 아군 NPC를 이용하거나 지휘한 경험이 많다. 원래 전쟁(戰爭)이라는 건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아군이 있다고 꼭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쾅! 쾅! 쾅!
마구 사격해 은신해서 파고들던 적의 기가스를 명중시킨다. 집중 못하고 사방을 경계하던 아군들이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고치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밀려온다.
“대체 왜 좌측 사격이라는 명령을 듣지 않았지?”
[하,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적의 위치를 어떻게 특정한다는 말입니까?! 우측 바위산으로 돌아올 수도 있…….]
“바위산은 무슨 바위산! 꼭 보여야 아냐?! 움직임만 보지 말고 적의 심리를 파악하라고! 저놈이라고 죽고 싶지는 않을 텐데 기습에 성공해도 후퇴할 길 없는 바위산으로 왜 돌아?”
타격에 비틀거리다 재차 은신을 발동해 후퇴하는 적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그냥 잡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놈들이 뻘짓 하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제발 못하면 말 좀 들어라……!’
네, 네 하면서도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자기들 판단(잘못된)대로 하는 녀석들의 모습에 이를 간다.
그나마 다행히 적들도 발컨이라 치명적인 타격까지는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콰릉!!
그때 하늘을 향해 향해 천둥룡이 벼락을 쏟아낸다. 폭격을 가하려고 날아다니던 전투기를 견제한 것.
솔직한 마음으로는 천둥룡을 포함한 세 기의 기가스 전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지만, 나름대로 차분하게 전열을 갖추고 공격과 방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만은 인정할 만하다.
아마 처음부터 작업선을 지키러 왔던 만큼 호위에 능한 녀석들을 데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슈우웅!
쿠아아!
머리 위로는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비록 전투력 자체는 떨어지지만 기본적인 형태와 구조 덕분에 기가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비행 능력을 가진 전투기들이 번개 폭풍이 몰아치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제공권을 잡기 위해 필사적인 도그 파이트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다행힌 것은 아군의 전투기가 14대, 적의 전투기가 18대로 숫자에서 그리 크게 밀리지 않는 상태인데다 무엇보다 강철 십자 비행여단장이라는 단마 대령의 붉은색 전투기가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투기도 언제 한번 타봐야 하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전투기 역시 대부분 아이언 하트로 기동한다.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에너지 중 가장 상위의(신성력 제외)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영자력을 적용하지 않으면 적의 기본 공격에도 뚫리는 실드와 적의 기본 실드도 뚫지 못하는 미사일만 쏟아내야 하는 절망적인 전투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이다.
수급 이상의 기가스에 탑재된 아이언 하트의 실드만 해도 상대가 하위 에너지라면 설령 그 공격이 에너지 총량에서 그보다 수십수백 배 이상 강력한 핵폭발이라도 문제없이 견뎌낼 정도였으니 기가스는 물론이고 전투기, 전함, 심지어는 부유혹성이나 우주도시들조차 아이언 하트를 사용해야 했다.
때문에 일단 아이언 하트에 익숙해진 조종사라면 전함도, 부유도시의 제어도 할 수 있으며 어빌리티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조종법만큼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만큼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뭐, 어쨌든 나중 일이고.’
피식 웃으며 레이더를 살핀다.
전투기가 14대 대 18대로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면 기가스는 4대와 8대로 2배나 차이가 난다.
적들 역시 인급 기가스 하나에 수급 기가스들이니 등급에서도 유리할 게 없는 상황.
내가 제대로 된 전력을 발휘할 수 없는 이상 수를 마련해야 한다.
“천둥룡! 포격 모드 해제하고 중거리 모드로 변환해! 검은삵하고 큰범도 마찬가지. 한곳에 모여서 싸운다!”
[뭐라고? 그러다 적의 광범위 폭격에 노출되기라도 하면……!]
“그러니까 안 노출되게 같이 움직여!”
소리치며 쏘아지듯 달려 나가자 어쩔 수 없는 듯 뒤따라온다.
나는 광자포를 쏘며 적들을 연신 타격했다.
콰과강! 쾅! 두두두!
사격 각도를 제한하기 위해 최대한 낮게 비행해 바위산들에 붙어 다닌다. 적 기가스들이 우리를 추격하며 광자포를 쏟아냈지만 나는 가볍게 실드로 막거나 피하면서 적들을 견제했다.
“좌측을 공격해!”
[큭… 간다!]
천둥룡이 벼락을 쏟아낸다.
제대로 명령을 안 듣는다고는 하지만 녀석들이 나한테 불만을 가지고 일부러 항명을 하는 건 아니다. 녀석들 역시 살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즉 녀석들이 이해할 만한 명령을 해주면, 어떻게든 거기에 따른다는 것이기에 나는 계속해서 떠들어야만 했다.
“보호막을 전개하면서 함께 돌격해! 내가 진영을 흔들고 있고 또 이동 중이기도 하니 고작 두 배 정도의 숫자로 완벽한 포위진을 짜는 건 불가능하다! 숫자가 적어도 우리는 하나의 점으로 움직이고 적은 선으로 움직이니 순간적인 숫자 우위는 계속해서 우리 쪽이야!”
설명하며 점사로 사격한다.
좌측으로 파고든 녀석이 날렵하게 접근하려 했지만, U자로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봐야 내 사격 수십 발이 죄다 명중하니 버티지 못하고 뒤로 빠진다.
[큭! 유령! 녀석들이 앞뒤로 우리를 포위하고 있어! 따라잡혔다!]
“샌드위치 대형이야! 완전히 뒤를 잡히는 걸 주의하면서 방향을 틀어! 지금 즉시 오른쪽 빵을 몰아낸다!”
[빠, 빵?!]
“언제까지 그 사이에 껴 있을 수는 없잖아! 명심해! 적을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몰아내는 거야!”
적에게 샌드위치를 당할 경우 소수인 쪽을 먼저 몰아내고 다수랑 싸우는 게 좋다.
한순간 한쪽에 공격을 집중해 샌드위치 구조를 풀어버리고, 그 즉시 다수와 충돌해 승기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전원 우측 돌격!”
소리치며 나폴레옹에게 명령을 내린다.
“나폴레옹, 중력 제어장치를 해제해.”
[뭐라고? 이곳 엘라-3행성의 중력은.]
“아니까 해제해.”
엘라-3행성은 지구보다 15배 이상 높은 중력을 가진 고중력 지대다. 대부분의 기가스나 전투기에 내장된 중력제어장치가 없다면 제대로 된 비행조차 힘들 정도로 높은 중력을 가진 공간.
하지만 아무리 중력이 강하다 해도 초과학의 산물인 기가스를 뭉갤 정도는 아니다.
쿵!
묵직하게 떨어져 내리기가 무섭게 땅을 박차며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와 <증폭>을 발동한다. 증폭스킬은 <마렌고의 질주>였다.
콰앙---!
폭발하듯 쏘아지자 우측의 적들이 깜짝 놀라는 게 느껴졌지만 이미 늦었다.
안 그래도 강력한 이 돌진기가, 거듭된 증폭을 받아 더 긴 사거리와 더 빠른 속도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을 위해 여태까지 평타만 강화했지!’
나는 한 번에 가용 가능한 모든 에너지를 실드로 집중시키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검을 휘두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차피 실드를 뚫지 못하니까.
하지만 중력제어장치를 해제한 내가 초고속으로 덮치듯 떨어지면 거기에 실리는 파괴력은 전혀 다르다. 수십 톤의 금속 포탄이 지구의 15배나 되는 중력을 등에 업은 채 떨어지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끼이익---!!
순간 앞쪽에 있던 인급 기가스가 두 팔을 펼치자 거대한 결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반투명한 유리장벽을 한순간 만들어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초고속으로 날아든, 더해서 중력의 힘까지 더해진 나폴레옹의 육체를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한다.
그뿐이 아니다.
[부숴 버려!!]
콰르릉! 번쩍!
결계는 물론 한순간에 뭉쳐진 실드가 통째로 박살나기가 무섭게 천둥룡과 큰범이 포격을, 검은삵이 반달 형태의 영자빔을 쏘아내 무방비로 밀려나던 적들에게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힌다. 이번만큼은 나름대로 잘 버티던 적들조차 버틸 수 없었던 듯 4기의 적 중 가장 강력한 인급 기가스가 파괴된다.
다만 녀석의 희생으로 나머지 3기의 적은 다소의 피해만 입은 채 황급히 뒤로 빠졌다.
[추격한다!]
“안 돼! 뭐 들었어?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몰아내는 거라고 했잖아! 당장 뒤돌아서 뒤쪽 넷을 상대해!”
그렇게 외치며 <죽지 않는 황제>를 가동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나폴레옹의 몸 자체를 포탄으로 써서 적의 실드와 결계를 박살냈으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촤아아앙---!
[이게 뭐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회복 속도… 으악! 영자력이 죄다 소모되고 있어!]
나폴레옹의 몸을 보호막이 뒤덮음과 동시에 떨어져 나갔던 팔이, 부서졌던 갑주가, 엉망으로 일그러졌던 부품들이 마치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기 시작한다.
이것 역시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로 증폭한 상태라서 잠시 호흡을 고르는 사이에 만전의 상태로 회복되어 버린다.
물론 그 덕에 영력이 바닥으로까지 떨어졌지만.
콰득!
내 공격을 받고 쓰러졌던 기가스의 가슴팍에 광선검을 꽂아 넣는다. <메마른 심장>이 발동하고 적의 아이언 하트에 있던 모든 기운이 빨려 들어와 나폴레옹의 에너지를 60%까지 회복시킨다. 원래 스킬 목표는 100%까지 채우는 것이지만 나폴레옹이 기형적일 정도로 에너지 총량이 높아 다 채우지 못했다.
[잠깐! 뒤돌아서라니 무슨 소리야! 저기 다 박살 난 녀석들을 놓아주고 멀쩡한 녀석들을 상대하라고?]
흥분해서 반말을 지껄이는 검은삵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그 뒤쪽에서는 멀쩡한 4대의 기가스가 날아오고 있다.
“박살이고 뭐고 지금 후퇴하는 속도를 봐! 단번에 따라잡을 정도는 아닌데 그걸 쫒아갔다가는 저 녀석들한테 뒤를 잡힌다! 오히려 지금이라면 4:4 구도에 뒤를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쉽게 처리할 수 있어!”
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조합이라면 도망 중이라도 싸워야 한다.
적이 싸움을 피하려고 해도 강제로 전투를 걸어야 할 판국인데 덤벼주면 오히려 고마운 일.
그러나 검은삵 녀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벼락처럼 뒤쪽으로 빠졌다.
[큭! 금방 해치우고 오겠어! 잠깐만 버텨!]
“뭐라고?!”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녀석은 가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타게팅이 흩어지면서 우리에게 달려들던 4명을 단숨에 쓸어버리는 것 역시 불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다. 적을 쫒아내기만 했어야 하는데 녀석은 물론 천둥룡과 큰범까지 어정쩡하게 뒤로 물러나서 기껏 무너뜨린 샌드위치가 구조가 유지되어 버렸다.
도망치던 녀석들이 어느 정도 상태를 수습해 돌아서는 순간, 우리는 완벽히 포위된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맙소사. 이 트롤 새끼들이.”
대전쟁 NPC들은 비록 봇(Bot. 멀티 플레이 게임, 혹은 멀티 플레이 모드에서 등장하는 인공지능 플레이어)특유의 답답함과 제한적인 사고회로로 내 속을 터지게 할지언정 이따위로 움직인 적은 없다. 무엇보다 기여도를 어느 정도 높이게 되면 무슨 말을 해도 잘 듣기도 했고.
그런데 막상 사람 새끼들하고 같이 플레이를 하니 이따위로 할 줄이야? 비록 억지에 가까운 행동이었다고 해도 지휘권도 잘 이어받았는데?
비록 어정쩡하게 뒤쪽에 있는 천둥룡과 큰범이 지원사격을 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진형 자체가 완전히 무너졌을뿐더러… 혼자서 튀어나간 검은삵 녀석은 1:3의 전투를 해야 한다.
적이 아무리 큰 피해를 입었어도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
“아…….”
나는 어느새 나를 향해 덤벼드는 4기의 기가스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암 걸리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