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 / 0117 ----------------------------------------------
Chapter 10 세퍼드 대전(大戰)
“망했어…….”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한다.
“패망이야…….”
그러나 그런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폴레옹은 거의 추락하다 싶을 정도의 속도로 하강해 전장에 돌입했다.
녀석은 전장에 돌입했음에도 별다른 조종을 하지 않는 내 모습에 당황한 듯 버럭 소리쳤다.
[이 멍청아, 잡생각 하지 말고 집중해! 적이다!]
“그래도 파트너 파트너 해주더니 그새 멍청이로 격하냐.”
투덜거리며 매직핸드를 조작해 나폴레옹의 오른쪽 다리에 장착되어 있던 레이지 샤벨의 손잡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스위치 온. 광자로 이루어진 검신을 뽑아내 어빌리티를 적용한다.
웅-!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로 300% 강화된 영력은 <증폭>의 +50%효과로 350%까지 강화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증폭이 곱셈으로 중첩되어 기하급수적으로 강화되는 일 따위는 없다. 그런 복리 이자 같은 일이 가능했다면 증폭 어빌리티 5개로 수급 기가스가 테라급 전함을 날려 버리는 일조차 가능했을 것이다.
아, 증폭 어빌리티가 5개나 중첩될 일이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 좋은 어빌리티 구성을 가진 기가스에 운수 나쁜 날이 겹치면 어빌리티가 그 따위인 경우도 있다.
마치 공격 어빌리티가 하나도 없는 지금처럼 말이다.
“어휴, 아쉬워하면 뭐하나.”
<마렌고의 질주>가 발동한다. 그리고 빠르게 하강하던 나폴레옹의 속도가 한층 더 가속한다. 그냥 가속도 아니고 지금까지 떨어지던 속도조차 우습게 느껴질 정도의 급가속이었기에 아군을 향해 사격하던 거미 형태의 기가스는 제대로 된 반응조차 못했다.
콰득!
세로로 베고 지나간다. 너무 일순간의 일이어서인지 적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뭐,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가속은!? 내가 어떻게?]
당황하는 나폴레옹과 다르게 적은 침착했다.
내가 기습적으로 모습을 드러내 동료 중 한 명을 해치워 버리자 벼락같은 기세로 몸을 돌려 광자포를 쏘아낸 것이다.
파앙!
그러나 다시 나폴레옹의 몸이 순간 물리법칙을 의심할 정도로 급작스레 솟구친다. 위쪽에 있던 다른 기가스를 향해 <마렌고의 질주>가 발동한 것으로 타깃을 변경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한다.
콰광!!
그러나 맨 처음처럼 되지 않는다. 십자가 모양의 기가스, 아니, 전투기인가? 하여튼 녀석의 몸에서 실드가 뿜어져 나와 광선검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350%로 강화되어 일반 공격 치고는 강렬한 일격이었지만 그래 봤자 한방에 실드 전부를 날려 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광파참이나 헤븐즈 소드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하다못해 관통만 있었어도…….”
종잇장이나 다름없는 방어력에 돌진기, 자신의 스킬을 강력하게 증폭하는 보조 기술을 가진 기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암살형 기체다.
내가 순삭(순간 삭제)형 기체라고 부르는 방식의 이 기체들은 빠른 기동력과 공격력이 중요하지 방어력은 별 상관이 없다.
애초에 누구든 한방에 제거할 수 있다면 방어력 따위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공방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즉시 적을 파괴할 수 있다면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게 가능하니까.
“그런데 공격 어빌리티가 없으니 돌아버리겠군. Q 없는 AP 마이도 아니고…….”
[뭐가 없는 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그냥… 게임 이야기!”
대답과 동시에 벼락처럼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1분 정도의 쿨타임을 가지고 있는 <마렌고의 질주>지만 시스템으로 딱딱 정해져 있는 게임이 아니니 무리하면 연속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물론 그만큼 많은 영력을 소모하며 기체에 부담을 주는 행위이지만 <죽지 않는 황제>에 <메마른 심장>을 가진 나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쾅! 쾅! 쾅!
돌진기로 접근해 실드를 후려치자 반투명한 실드가 크게 흔들렸지만, 부서지지는 않는다.
쾅쾅! 쾅!
다시 접근 후 평타 평타 평타. 그러나 그럼에도 녀석은 실드만 단단하게 두른 채 무작정 버텨낸다. 반격조차 못하는 걸 보니 주변 아군을 믿고 방어 태세에 들어간 것 같았다.
“미치겠군……!!”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와 <증폭>이 있다지만 의미가 없다. 공격 어빌리티가 있어야 증폭이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약한 공격을 증폭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심지어 약한 어빌리티조차 아니고 그냥 평타라면? 평타를 350% 증폭해 봐야 평타 4대 때리는 효과밖에 없다.
“쓸데없이 에너지 효율만 안 좋잖아!”
500% 에너지 소모를 감수해 고작 그 정도 딜 증가를 기대하느니 차라리 평타를 4번 치고 만다. 칼질 한 방 하는 데 1초도 안 걸리니까. 물론 모든 평타에 증폭을 걸면 DPS(Damage per second, 초당 데미지)야 4배 가까이 늘어나겠지만 1:1도 아니고 이 급박한 상황에 그 무슨 뻘 짓이란 말인가?
사기 어빌리티로 언제나 강렬한 위엄을 뽐내던 <메마른 심장>도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어차피 에너지 출력 자체가 높은 나폴레옹은 일반적인 검격이나 광자포 사격을 수백 번 이상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하다.
나야 <메마른 심장>이 있으니 상관없지만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강력한 증폭 스킬 하나만을 가지고 있던 인급 기가스다. 기가스는 아이언 하트의 성능과 어빌리티를 보고 제작 방향이 결정되는 만큼 방어 능력이나 기동력을 비롯한 대부분의 성능을 희생하고 배터리 용량을 무지막지하게 늘려 에너지 총량만큼은 어지간한 성급 기가스에 맞먹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엄청난 영력으로 고작 평타만 치는 상황이니 영력은 여유가 넘친다. 그리 심각한 빈틈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구태여 적의 영력을 빨아들이려고 시간을 낼 메리트가 없는 것이다.
쾅!
그러나 그런 악조건 중에서도 한 놈을 추가로 잡아낸다. 애초에 다 발컨들이라 근접전으로 가면 질 수가 없었다.
[좋아, 파트너! 대단한데!]
“대단하긴 뭐가 대단해! 이제 겨우 둘 잡았네!”
이를 갈며 쏟아지는 사격들을 피해낸다. 긴장을 풀면 끝장이다. 애초에 실드 에너지를 무기에 쏟아붓는 100% 대 0%라는 극단적인 공방력을 유지하는 스타일을 가진 내가 종잇장이나 다름없는 장갑을 가진 나폴레옹에 타고 있으니 일반적인 공격에 노출되기만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공격 어빌리티 하나만 있었다면!’
그리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하다못해 관통이라도 있었으면 벌써 다섯 이상을 잡았을 것이다. 관통이 있다면 녀석들의 어정쩡한 실드 따위 장난처럼 찢어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만약 그 이상의 공격계열 어빌리티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게 영력 소모가 강력한 공격기술이라면?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와 <메마른 심장>의 시너지는 최강이다. 강력한 공격 스킬을 난사하고 영력을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작두를 타면, 농담이 아니라 아군도 필요 없다. 30체도 안 되는 적 따위는 나 혼자서 다 밀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나폴레옹, 전력은?”
[현재 남은 아군 작업선 2대, 전투기가 15대에 기가스가 3대다. 적은 19대의 전투기, 8대의 기가스가 있다.]
녀석의 말을 들으며 전황을 살핀다.
현재 레온하르트 제국군은 비인들에게 포위공격을 당하는 상태였다. 다만 완벽한 포위는 아니고 여기저기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들을 복잡하게 날아다니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아, 천둥룡.”
그리고 그 와중 우리 편에 속해있는 천둥룡을 보며 한숨 쉰다.
“저거 타면 다 쓸어버릴 텐데 하필 이런 걸 타서.”
[뭐, 뭐라고? 이런 거? 아니 그보다 지금 나를 짐승 기체 녀석하고 비교하는 거냐?]
발끈하는 나폴레옹을 무시하며 냉철하게 머리를 굴린다.
전황은 불리하다. 전투기 포함 18대 27.
그리 절망적인 차이는 아니었지만 가뜩이나 적은 아군이 흩어지고 포위되었으며 여기저기에서 휩쓸리고 있다는 게 문제다.
‘어떻게 할까.’
만약 지금 별 쓸모도 없는 <증폭>이나 <전투예지> 따위가 공격 스킬이었다면 외각에서부터 다 짤라 먹으며 들어가 아군을 구하겠지만 지금 내 전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고작 4~5명에게만 포위당해도 제대로 반격도 못하고 밀려 다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정리한다.
어빌리티 구성이 개망이라지만 짜증 나는 상황일 뿐 절망할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내 어빌리티는 매일 랜덤이고 대전쟁을 플레이할 때도 기체는 이것저것 돌려 탔었으니 더더욱 심한 조합도 종종 존재했던 것.
그리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폴레옹! 13시 방향 아군에게 합류한다!”
나를 잡으려고 덤벼드는 근접 기가스는 오히려 돌진해 광선검과 광자포 맛을 보여주고 아군 기체를 향해 접근한다. 주변에는 강력한 방해 전파가 펼쳐져 있었지만 근접 기체와의 대화를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는 강철 십자 비행여단장 단마 대령이다! 나폴레옹에 탄 그쪽은 누구지?]
“군인은 아닙니다. 당신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면 유령이라고 해야겠군요.”
쾅! 쾅! 콰득!
평타, 평타, 평타. 이 망할 놈의 평타로 적의 실드를 깎고 깎아 적의 전투기 중 하나의 날개에 광선검을 꽂아 넣는 데 성공한다.
순간 탈출 계열 어빌리티가 발동한 듯 전투기가 흐릿하며 사라졌지만 그대로 왼팔로 광자포를 들어 허공에 발사해 이동한 전투기를 명중시킨다. <전투예지>의 힘을 공격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유령! 그런가. 네가 바로…….]
“아, 그런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부탁?]
“네, 지휘권 좀 주세요.”
터무니없는 소리인 걸 안다. 군인조차 아닌 내가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군인들의 지휘권을 달라고 하는 건 그들의 전투 능력을 의심한다는 소리나 다를 바 없으니까.
과연 우리 사이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든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네 녀석이 제법 대단한 조종사라는 건 알겠지만 전쟁은 장난이 아니야!]
“그것 정도는 당연히 저도 압니다만 승산 없는 전투이기도 하니 속는 셈치고 맡겨도 손해는 아닐 텐데요.”
[뭐, 뭐라고?]
약간 도발한다는 느낌으로 말하자 버럭 소리를 지르며 끼어들었던 사내가 떠듬거린다.
아군과의 감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안 된다고 하면 탈출하면 그만이지.’
아군을 지키며 적을 쓰러뜨리려고 하니까 힘든 거지 탈출이라면 당장에라도 가능하다. 어떻게 아군을 버리고 도망칠 수가 있느냐, 라고도 물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얼굴도 모르는 녀석들을 위해 목숨을 걸 정도의 의리는 없다.
‘아니, 그걸 떠나서 왜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밀리는 거야? 이쪽에는 참모진이 없나? 동선을 훤히 읽힌 거야?’
아닌 게 아니라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불리한 전장이니 이건 내 목숨도 달린 일이었다.
어빌리티가 좀 잘 뽑혔으면 별 부담 없이 구할 수 있으니 걱정 않겠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지휘권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좋다. 지금 즉시 지휘코드를 넘기지.]
“…호오?”
일단 던져 보기는 했으니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만큼 약간 당황한다. 평생을 전장에서 구른 군인이 누군지도 모를 존재에게 이렇게 쉽게 지휘권을 넘긴다고?
당황한 건 나뿐이 아닌지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들린다.
[여, 여단장님?]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누군지도 모를 저런 녀석에게……!]
아무래도 전체 통신이었던 모양인 듯 시끌시끌했지만 강철 십자 비행연대장이라는 단마 대령은 가볍게 말을 잘랐다.
이 심각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있다.
[위험할 수 있다니, 그럼 지금은 안 위험하다는 소리인가?]
[하, 하지만.]
[헛소리 말고 지휘를 따라라! 거부하는 자는 항명죄로 다스리겠다!]
외침과 함께 전장 정보가 갱신된다. 아까 말한 대로 단마 대령이 지휘코드를 넘긴 모양이었다.
“흠.”
가볍게 고민한다.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지휘권을 받았다면 그리 어려울 것 없다. 혼자 다 쓸어버리는 재미는 없겠지만, 이렇게 되면 승산은 충분한 것.
나는 두 개의 증폭을 검에 걸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러며 소리쳤다.
“전장을 좁힌다! 즉시 모이며 좌측의 바위산으로 이동하라!”
[…….]
“대답은!”
[네, 네!!]
떨떠름한 외침과 함께 모두 움직이기 시작한다.
2차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