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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세퍼드 대전(大戰)
“네. 무슨 일이십니까?”
[당장 출격해!]
“네?”
황당해서 되묻는다. 지금 막 탔구먼 이 곰탱이가 뭐라는 거야?
하지만 내 상황을 배려해 줄 상황이 아닌지 다른 목소리가 끼어든다. 부함장인 나탈리였다.
[알바트로스함의 수리를 위해 나섰던 채광조가 공격을 당했습니다. 현재 후퇴 중이지만 위험합니다! 퇴로를 마련해야 해요!]
“다른 병력은요?”
[이미 전투 중입니다!]
급박한 목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승강기를 타고 한참이나 내려온 장소였지만, 이 정비실에는 단독으로 함선 외부로 뛰쳐나갈 수 있는 사출구가 존재했다.
“응? 아니 잠깐! 어디 가는 거야?”
내가 사출구 쪽으로 향하자 당황해 소리치는 혜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내 그녀 역시 멈칫한다. 그녀의 통신기가 반짝이는 걸 보니 함교에서 연락을 받은 모양이다.
“사출구를 열어줘.”
“아니… 아니 대체 함교는 뭔 생각이야? 이거 함장님 명령 맞아? 이제 막 탄 기가스를 타고 싸우러 간다고?”
“됐으니 문이나 열어줘.”
“아, 아니 잠깐! 가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보조 무장을 갖춰야 해! 나폴레옹은 포격 전문 기가스란 말이야! 네 녀석도 고유 어빌리티로 저격을 가지고 있으니 그에 걸맞은 화기는 있어야 할 거 아냐!”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에 황당해한다.
“내가 저격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다고 누가 그래?”
“엑? 나는 그렇게 전달받았는데. 그럼 저격 어빌리티가 아니라 다른 원거리 어빌리티야?”
“원거리 어빌리티 없는데?”
“뭐!? 원거리 어빌리티도 없이 나폴레옹을 타겠다고!?”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비명을 지르는 혜란을 무시하며 찬찬히 나폴레옹의 어빌리티를 살핀다.
‘그렇군. 장갑이 지나칠 정도로 가볍다 했더니 포격 전문 기가스였어. 하지만 이 스킬 구성으로 왜 굳이 포격으로 가지?’
아이언 하트에 깃든 기본 어빌리티는 아이언 하트를 제작함과 동시에 정해진다고 한다.
대략적인 방향성은 몰라도 구체적인 내용에는 제작자들조차 전혀 간섭할 수가 없어 엔지니어들은 아이언 하트를 만드는 과정을 제작이라 하지 않고 출산(出産)이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
‘자식 낳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 녀석의 천성이 어떨지,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날지는 하늘에 맡겨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긴 건가.’
어쨌든 그렇기에 기가스의 형태나 외양, 성능 등은 철저히 아이언 하트의 성능이나 거기에 깃든 어빌리티에 의해 결정된다.
근거리 전투에 유용한 성능이나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다면 두터운 장갑이나 빠른 기동력에 어울리는 몸체를 만들고 원거리 전투에 유용한 성능이나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다면 장갑을 얇게 만들고 성능 좋은 포신을 달아주는 것이다.
“야, 그만 떠들고 광선검 내놔. 광선검.”
“무슨 미친 소리야! 나폴레옹이 왜 광선검을 들어!? 나가자마자 죽고 싶어!?”
“아, 거참 시끄럽네. 나폴레옹, 장비들은 어디 있지?”
[좌측에 무기고가 있다. 지금 열지.]
다행히 명령을 내릴 것도 없이 나폴레옹은 나에게 순순히 협조했기에, 나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부드럽게 열린 한쪽 벽 안에서 광자포와 빔소드를 꺼내 들었다.
근접전에도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 출력이 높아 중장거리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소총 형태의 광자포 사티나-55와, 대량생산품이지만 신뢰도가 높기로 유명한 전통의 광선검 레이지 샤벨(Rage saber)이다.
혜란은 태연하게 무기를 고르는 내 모습에 황당해했지만 대전쟁을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니 선호하는 무기가 있는 게 당연하다.
“좋아 이 두 개면 충분하지. 이제 격벽을… 오, 열리는군.”
아래에서 혜란이 꽥꽥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격벽을 연 것은 그녀가 아닐 테지만 중요한 건 바깥으로 나갈 길이 열렸다는 것.
열려진 격벽 너머로 사출구가 보이고 그 너머로 셀 수 없이 번개가 몰아치는 [밖]의 모습이 보인다.
“두근거리는데.”
수없이 많은 기가스를 조종했지만 직접 조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수없이 많은 전장을 누볐지만 그 역시 실제는 아니었다.
사실상 이것이, 내 첫 출격인 것이다.
기이잉--
나폴레옹은 사출기 위로 올라서 둥실 떠오르자마자 능숙하게 움직여 자세를 잡았다.
펼쳐진 두 팔과 다리에 뭉쳐진 영기가 자세를 제어하고 등 뒤의 망토는 우아하게 펄럭인다.
조종석의 시야는 단순 1인칭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모습이 화면에 선명히 비치고 있었다.
[나폴레옹, 발진.]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주변 공간이 일그러진다.
유령의 출격이었다.
*
내 경험을 기반으로 생각해 보면, 기본적으로 기(器)급 기가스들은 1개의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었고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그 숫자가 하나씩 늘어났다.
즉 수급은 2개, 인급은 3개, 성급은 4개의 기본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물론 그게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었다.
같은 급이라 해도 모든 기가스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어서 문제가 있는 기가스는 동급의 기가스들보다 어빌리티의 숫자가 적기도 했고 같은 급에서도 탁월한 기체는 한 단계 위 등급의 기가스와 같은 숫자의 어빌리티를 가지기도 했다.
비인들이 쳐들어왔을 때 내가 조종했던 천둥룡이 바로 그 예로 수급 주제에 어빌리티가 무려 3개였다.
어디 그뿐인가?
그 3개의 어빌리티가 관통 은신 저격의 3대 어빌리티로 채워진 사기 기체라서 상당히 수월하게 전투를 벌일 수 있었던 것.
말이 조금 새버린 것 같지만 어쨌든 결론은 상위 기가스일수록 더 많은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나폴레옹의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그리고?”
[그리고라니. 유니크 어빌리티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아주 강력한 기술이다.]
당당하게 답하는 나폴레옹을 보며 뻥진다.
아니, 그냥 태연히 쓰면 이상할 것 같아서 물어봤을 뿐인데 이놈이 뭐라는 거야?
“어빌리티가 그거 하나라고?”
[이상한 말을 하는군. 인급에서 두 개 이상의 어빌리티를 가진 녀석이 얼마나 된다고.]
“…….”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폴레옹의 어빌리티를 빤히 보고 있는 나였기에 황당함은 더하다.
[왜 그러는가?]
“아니… 너 몇 살이냐?”
[제작된 기간을 묻는 거라면 21년. 활동기간을 묻는 거라면 18년이다.]
“으엑. 구형이네.”
[뭐, 뭐라고!? 나정도면 완전 신형이다! 최신예기라고!]
발끈하는 나폴레옹을 두고 생각에 잠긴다.
그러니까 만들어진 지 21년이나 되었는데 여태 자신의 어빌리티도 제대로 모른단 말인가?
나는 나폴레옹의 어빌리티를 살펴보았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마렌고의 질주>
<죽지 않는 황제>
어빌리티는 세 개였고, 놀랍게도 그 전부가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가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유니크급이었다.
먼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아이언 하트의 영력을 300%나 증폭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황당하게도 쿨타임이 전혀 없는 희대의 사기스킬이다.
다만 문제는…….
‘에너지 소모율이 500%로군. 이래서 나폴레옹이 포격 전문 기가스가 된 거야.’
한 번에 남들보다 세 배나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대신 다섯 배의 기운을 소모한다.
만약 어빌리티가 이거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포격 전문으로 만드는 게 당연하겠지.
물론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근접에서도 잘만 쓰면 일격 필살을 노릴 수 있지만 그걸 노리고 적들 한가운데 들어갔다가 적을 잘 죽이고 아이언 하트의 영력이 바닥나면?
장갑이 아무리 두껍고 이동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리라.
‘하지만 나머지 어빌리티가 문제란 말이지.’
<마렌고의 질주>
나는 이 어빌리티에서 전해지는 [정보]에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일정 거리 안에 있는 아이언 하트를 향해 초고속 이동, 이라는 설명에 짜증이 밀려온다.
“돌진기라니 이런 미친… 종잇장 법사가 돌진기가 웬 말이냐…….”
내가 원래 방어를 거의 안 하는 성향이기는 하지만 방어력이 이렇게까지 낮으면 공격이 아니라 죽인 적의 파편 때문에 피해가 누적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물론 기가스에게는 배리어가 존재하지만, 나는 그 배리어를 평소에 거의 꺼놓고 싸운다는 문제가 있었으니까.
<죽지 않는 황제>
세 번째 스킬도 가관이다.
설명은 심플하다. 방어막이 생기며 긴급 수리, 라는 게 전부인 것이다.
물론 유니크급 어빌리티인 만큼 전투 중에 써도 될 만큼 강력한 방어력과 회복력을 가지겠지만, 문제는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때문에 영력이 모자랄게 뻔한 상태에서 수리 스킬이라니?
차라리 한 대도 안 맞아서 안 다치는 상황을 노리는 게 낫다.
‘아, 이게 무슨… 인급 주제에 천둥룡만도 못하네. 전체적인 스펙이랑 출력이 더 높으면 뭐해?’
암담한 스킬 구성 상태에 좌절하면서도 나폴레옹을 조종한다.
빠르게 하강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주변에 벼락이 몰아치고 있다.
콰르릉! 콰릉!
어마어마한 벼락이었으나 고작 자연계에 존재하는 하위 에너지인 전기는 영력으로 만들어진 배리어에 피해를 입힐 수 없다.
이런 하위 에너지로 배리어에 타격을 줄 수 있었다면 누가 거대 전함이나 기가스에 아이언 하트를 쓰겠는가? 차라리 핵융합 엔진을 사용했겠지.
“거리는 아직 멀었어?”
[근접했다. 5분 내에 전장에 돌입할 테니 준비하라.]
구형이라는 단어에 삐진 것인지 딱딱하게 답하는 나폴레옹이었지만 그리 개의치 않는다.
개성과 감정을 가진 게 관제인격이라는 존재이지만 그들은 철저한 원칙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한테 삐져서 전투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때문에 나는 잠시 그에게서 신경을 끄고 나머지 어빌리티를 살폈다.
당연하지만 나폴레옹의 어빌리티는 아니다. 녀석의 어빌리티는 세 개가 전부니까.
내가 확인 하는 건 고유 어빌리티, 즉 [내] 어빌리티였다.
‘아, 제발… 제발 공격 기술 하나만 주세요.’
내 고유스킬은 매일 바뀐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하겠지만, 그게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
사실 나는 예전 대전쟁을 할 때 그게 주인공으로서의 특성인 줄 알고 있었지만, 알바트로스함에 탑승하고, 넷을 돌아다니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극한의 단련과 수련으로 간신히 하나의 고유 어빌리티를 각성해 평생 그걸로 먹고 사는 게 일반적인 경우였던 것. 만약 내 상황을 안다면 수많은 조종사가 분노하겠지.
‘하지만 이것도 마냥 좋은 건 아니란 말이지.’
매일 어빌리티가 바뀌니 그야말로 복불복이다. 아주 좋은 어빌리티들이 나오는 날도 있지만 완전 꽝인 날도 있고 희귀한 어빌리티들이 모였는데 구성이 망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날의 어빌리티를 미리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날의 어빌리티를 알려면, 일단 어떤 기가스라도 한 번 타봐야만 한다. 하다못해 대전쟁 같은 시뮬레이션이라도 켜봐야 하는 것이다.
<전투예지>
“으, 미묘.”
첫 번째 고유스킬에 신음한다.
전투예지는 적의 기습이나 저격 등을 방비할 수 있어 나쁘지 않은 어빌리티이지만 공격 계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증폭>
“또 증폭이라고?”
이것 역시 나쁘지 않지만 이미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가 있는 상태에서 미묘한 어빌리티. 나는 불안해하며 세 번째 어빌리티를 확인했다.
<메마른 심장>
“오… 가 아니잖아!”
전설(Legend)급 어빌리티에 반색하다가 신음한다.
적의 아이언 하트를 파괴해 일순간 모든 기운을 흡수함으로서 모든 스킬 쿨타임을 초기화하고 에너지까지 만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이 어빌리티는 매우 강력해 이걸로 깽판을 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공격용 어빌리티가 안 나오면 상황이 심각하다.
“으, 하다못해 네 번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네 번째 어빌리티를 확인한다.
그런데 없었다.
끝이었다.
“뭐, 뭐라고?”
신음한다. 보통 내 고유 어빌리티는 4개나 5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개라니.
생각해 보니 레전드급 고유스킬이 끼면 어빌리티 숫자가 확 주는 게 일반적인 경우이기는 했다.
“아니, 이게 뭐야… 관통도 안 나와?”
3대 어빌리티라고 했지만 그건 실용성 때문이지 희귀한 어빌리티는 절대 아니었다. 재수 없는 날은 기본 어빌리티는 물론이고 고유 어빌리티에도 나타나서 막 2개씩 끼고 그랬던 어빌리티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관통조차 없다는 건.
“공격 어빌리티가 하나도 없다고……?”
[…저기 파트너. 뭘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나? 곧 전장에 돌입한다.]
이놈 괜찮은 건가, 하는 기색이 명백하게 느껴지는 나폴레옹의 말이 들렸지만 대꾸조차 못한다.
“망했어…….”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한다.
“패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