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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세퍼드 대전(大戰)
“네가 아는 나폴레옹이란… 누구지?”
조심스러운 질문이었지만 혜란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답한다.
“그야 난쟁이족의 대영웅이자 거대한 제국을 세운 황제지. 왜 그런 걸 묻는 거야?”
예상치 못한 답변에 황당해한다.
나폴레옹의 키가 작다는 이런 저런 속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도량형 차이로 인한 오해에서 비롯된 왜곡일 뿐 그가 난쟁이‘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것은 명백한 자부심이 아닌가?
‘아, 설마?’
그리고 그 순간 혜란의 모습을 보고 계속해서 느껴오던 이질감을 깨닫는다. 그녀가 실제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어려 보이는 것은 물론 그녀의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초중고생으로밖에 안 보이는 그녀의 키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그게 그녀만의 특성이 아니라 그녀의 [종족]으로서의 특성이라면?
때문에 나는 확인했다.
“난쟁이족이라는 건 하나의 종족인가?”
“아, 그러고 보니 너희 34지구에는 순수 인간만 살고 있다고 했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작업실 한쪽에 있는 매직핸드를 장비한다.
매직핸드는 기가스 조종에 흔히 쓰이지만 그 외에도 사용처는 무궁무진하다. 키보드나 마우스 대용으로 인터넷 서핑이나 게임을 하는 데에도 사용되고 지금처럼 정비기계를 정밀 제어하는 데에도 쓰이는 것이다.
“나폴레옹, 정비 시작할게.”
[부탁하지.]
기이잉--
10.5미터의 나폴레옹이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으며 모든 장갑을 해제해 내부를 드러낸다.
10.5미터라는, 인급 기가스치고는 비교적 작은 체구의 나폴레옹이었지만 녀석이 무릎 꿇는 모습을 정면에서 올려다보니 산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기이잉. 철컥! 끼릭!
그리고 그렇게 장갑을 해제한 나폴레옹의 정비를 시작하며 혜란이 말을 이었다.
“400년 전 한 사건이 있었어.”
“무슨 사건인데?”
“별건 아니고 대우주를 관리하던 창조신의 이면. 아수라가 온 우주를 멸망시키려고 했었다나?”
“…….”
나름대로 표정 관리를 잘 하는 편인데도 순간 ‘그게 어떻게 별거 아니냐?’라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본 것일까? 혜란이 웃었다.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물론 대단한 위기였겠지만 그때 살던 녀석들의 일이었을 뿐 오히려 우리한테는 대단한 ‘은혜’였었으니까.”
“우리?”
뜻밖의 단어에 의문을 표하자 그녀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제 나이는 얼마일지 몰라도 꼬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가 저런 표정을 지으니 굉장한 모멸감이 느껴진다.
“너 오리엔테이션 끝나고 공부 하나도 안 한 거야?”
“아, 좀 바빠서.”
는 헛소리고 이것저것 알아보긴 했는데 막상 핵심적인 내용은 거의 몰랐다.
나는 교과서 위주로 역사를 배우는, 그런 개념으로 정보를 알아본 게 아니라 넷상에서 검색하는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다. 때문에 이런저런 잡다한 지식을 쌓을 수는 있었지만 역사를 기본부터 차분히 배우지는 못했다.
무, 물론 개인적인 시간의 대부분을 게임에 쏟아서 그렇기도 하다.
“쯧. 그 우리에는 너희 별도 포함이야.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태어나지도 못했겠지.”
위이잉! 철컥!
나사를 풀고 전기 접합을 해제해 왼팔과 오른팔을 분리하고 몇 개의 부품을 교체하며 그녀가 설명했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어. 초월적인 신들 사이의 일이니까. 다만 중요한 건 대우주의 관리자이자 창조신의 이면이었던 아수라가 우주를 리셋시키고자 했고, 그걸 육계(六界)의 지배자들이 막았다는 거지.”
육계, 라는 단어라면 나도 잘 알고 있다.
대우주를 구성한다는 여섯 계의 세계로 초월적인 신들이 거주한다는 신계(神界).
신선들이나 정령들을 비롯해 세계를 구성하거나 관리하는 많은 영적인 존재들이 살고 있는 영계(靈界).
모든 죽은 자가 반드시 가계된다는 명계(冥界).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천족들이 거주한다는 천계(天界).
그리고 그런 천족과 앙숙이며 악마에 가까운 성향을 가진 마족들이 산다는 마계(魔界).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차원 중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는 물질계(物質界).
하지만 문득 이해 가지 않는 이야기가 있었다.
“물질계의 지배자가 따로 있던가?”
“없지. 대신 인중신(人中神) 밀레이온이 그 역할을 맡는 데 성공해 온 우주를 구한 영웅이 되었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두리에 널리고 널린 깡촌 행성 중 하나였던 400년 전의 [지구]가 전 우주의 관심을 끌어모은 장소가 되었지. 우주가 멸망했을지도 몰랐을 역사의 장소로서. 또 100개로 [분화]된 특별한 행성으로서 말이야.”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인중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넷 상에서 몇 번 봤던 것 같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지금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지구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지구가… 분화되었다고? 설마 34지구라는 건.”
“그래. 너희 34지구는 그 100개의 지구 중에서 34번째라는 뜻이야.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 지구와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진 99개의 지구 중 하나지. 이건 기밀이라고 까지 할 정보는 아니어서 알 놈들은 다 알긴 하는데 그래도 대외비는 되니까 너무 떠들고 다니지는 마.”
철컥!
입으로는 떠들면서도 능숙하게 부품들을 교체하고 성능을 테스트한다. 마냥 어려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그녀가 제법 숙련된 엔지니어라는 뜻.
나는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조차 않는 혜란을 잠시 바라보다가 생각을 정리했다.
1. 대우주에 가장 흔한 종족은 인간이라고 한다.
이건 확실한 명제다. 숫자로만 치면 전 우주의 모든 지성체 중 70%는 인간, 혹은 인간과 매우 흡사한 종족일 정도라고 하니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생물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과거 세레스티아가 했던 말대로 [신학적인] 관점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세상을 창조한 초월적인 존재가 인간을 설계했다면, 정상적인 절차로 진화해 인간이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 테니까.
2. 설사 같은 인간이라도 다른 행성의 존재라면 전혀 다른 문화를 발전시킬 것이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지구에만 해도 수없이 많은 언어와 문자가 존재하고 산 하나만 넘어가도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것이 인간이다. 같은 인간이라고 비슷한 문화를 가질 거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렇군.”
“뭐가?”
“레온하르트 제국은 분화된 100개의 지구가 모여 만들어진 세력이야. 아니, 적어도 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세력이겠지. 맞지?”
내 말에 작업을 대충 마친 혜란이 피식 웃으며 매직핸드를 끼고 있는 손을 내젓는다. 그리고 그러자 바쁘게 움직이던 정비기계들이 좌우로 흩어져 제자리로 돌아갔다.
“제법 똑똑하네. 맞아. 레온하르트 제국은 분화된 100개의 지구 중 47개가 모여 만들어진 국가야. 초대 황제인 레온하르트 황제가 외적과 싸우고 지구의 인류를 통합해 만든 단체지. 100개의 지구는 마치 평행우주처럼 조금씩조금씩 다른 점들이 존재하지만 공통점도 매우 많았기 때문에 제국 클래스의 나라치고는 굉장히 빨리 만들어질 수 있었어.”
“그리고 그렇다면.”
“아~ 답하다 보니 끝이 없네. 그만!”
몇 가지 질문을 더 하려는 나를 향해 혜란이 앙증맞은 손바닥을 내민다.
느닷없는 행동에 멈칫하는 나를 보며,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뜬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공학자야. 깝치지 말고 나폴레옹에 타기나 하시지?”
“하지만.”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나머지는 넷에서 검색해! 감히 나폴레옹을 눈앞에 두고 이런 태도라니!”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엉덩이를 걷어차는 바람에 어느새 정비를 끝낸 나폴레옹의 가슴팍으로 떠밀린다.
열려 있는 가슴팍, 그리고 그 안으로 보이는 조종석.
다행히 방식은 매직핸드였다.
기이잉--- 철컹!
조종석 안으로 들어가자 전면부의 장갑이 닫히고 아이언 하트에서 발생한 영자 파동이 조종실 내부에 가득히 차오르기 시작한다.
‘웃! 이게 아발론(Avalon) 시스템. 직접 경험해 보는 건 처음이군.’
아발론 시스템은 기가스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언 하트에 내장된 시스템이다.
기가스 조종에 가장 핵심적인, 아이언 하트와 조종사의 동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시스템.
그리고 동시에 아발론 시스템은 전투의 충격에서 조종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마치 수조(水槽)에 가득 찬 물처럼 조종실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아이언 하트의 영력이 조종실 외부와 내부를 완벽하게 격리해 조종실이 파괴되기 전까지 물리적인 충격이나 흔들림을 비롯한 모든 피해를 막아내는 것이다.
만약 아발론 시스템이 없었다면 기가스들이 포탄 한 방만 맞아도 조종사들이 죄다 죽어나갈 것이다.
기가스의 장갑이 아무리 튼튼해도 충격파가 조종사를 후려칠 테니까.
[만나서 반갑군, 파트너. 나폴레옹이다.]
“나는 관대하. 나도…….”
나폴레옹의 거대한 영력을 느낀다. 그의 아이언 하트에서 뿜어진 영력이 조종실을 남김없이 채운 후 본격적으로 나와 동조(同調)하기 시작한다.
중요한 과정이다.
어느 한쪽의 역량이 월등하다면야 어떻게든 맞춰가는 게 가능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기가스와 조종사에게는 궁합이라는 게 있다.
만약 내가 나폴레옹과 제대로 동조할 수 없다면, 내 조종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조종사가 동조의 과정조차 넘지 못해 좌절하며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 기가스를 찾아 긴 시간동안 헤매기도 하니까.
“…나도 만나서 반가워, 파트너.”
물론, 아직까지 어떤 기가스에게도 거부당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전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기잉---!!
아이언 하트가 기동한다. 자동차로 치면 시동이 걸린 것과 같다.
방금 전의 대기 모드에서는 일상적인 움직임 밖에 취할 수 없었다면, 지금의 나폴레옹이야말로 전력으로 자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엑!? 무슨 동조가 이렇게 빨라!? 너 나폴레옹 탄 적이 있었어?”
혜란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킨다.
아레스를 이용한 원격 조종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일체감이 전신을 뒤덮는다.
생각해 보니, 실제로 기가스를 타보는 건 이것이 처음이었다.
“좋은데?”
웃는다.
물론 머리는 여전히 복잡하다.
신이 실존해 인류를 만들어 냈다는 건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고 우리가 살던 지구가 다른 지구의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혼란스럽다.
내가 보고 만난 외계인들이 ‘다른 지구인’이라는 것 역시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뭐 어때.’
그러나 그런 잡스러운 생각들을 모조리 떨쳐 버린다.
맞다. 그러면 뭐 어떻단 말인가?
나는 이미 십 년 전에도 세상의 존재 자체를 두고 고민하던 애늙은이였다.
세상이 누군가 만들어낸 게임인 것보다, 만들어진 지 몇 초 지나지도 않은 프로그램인 것 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다른 지구의 복제인 편이 훨씬 깔끔하지 않은가?
탕!
땅을 박찬다.
10.5미터의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나폴레옹이 제자리에서 20미터나 뛰어올라 허공에서 물구나무를 선다.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가볍게 친 정도의 소리밖에 나지 않았고 아발론 시스템 덕분인지 내 몸에 가해지는 부담 역시 전혀 없다.
팟!
그리고 허공에서 물구나무를 선 상태 그대로 다리를 걷어차 그 반동으로 공중제비를 돈다. 마치 내 몸을 직접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볍고 유연한 몸놀림이다.
‘물론 진짜 내 몸으로 공중제비 같은 건 못 하지만.’
헛웃음 지으며 사뿐 바닥에 내려선다.
전방의 화면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혜란의 모습이 보인다.
삐삑!
[파트너, 함교에서 통신이야. 연결하지.]
아직 나를 완벽하게 주인으로 인식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기본 원칙이 그렇게 잡혀 있는 건지 허락을 받지 않고 통신을 연결한다.
[나폴레옹에는 잘 탔나? 동조는 잘 마쳤고?]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대뜸 들려오는 목소리에 당황한다.
천현일 소장의 목소리 너머로 시끌시끌한 소음이 들려온다. 뭔가 급박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당장 출격해!]
“네?”
황당해서 되묻는다. 지금 막 탔구만 이 곰탱이가 뭐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