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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38화 (3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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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세퍼드 대전(大戰)

[500만 게럴트가 입금되었습니다.]

통신기를 보며 순간 숨을 들이켠다.

마나에 대한 생각이 확 날아가고 떠오른 숫자를 계산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게럴트가 1만 7,000원이니… 850억 원.’

이것만으로도 눈이 뒤집어지는 액수다.

농담이 아니라 1억 2억으로도 살인이 나는 판국이니 이 850억이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인 것이다. 어지간히 사치하지 않는 이상 평생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

“뭐, 그렇다고 지나친 돈지랄도 아니겠지만.”

엄청난 돈이지만 내가 알바트로스함 전체를 구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오히려 적은 감도 없지 않아 있다.

어지간한 도시보다도 훨씬 거대한 우주선 한 대를 구한 셈이니 수십 조 단위의 돈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그러나 나는 별로 억울하지 않았다.

‘아마 내 요청 때문이겠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으려면 내 공로를 정확히 밝히고 표창을 받든 뭐를 하든 해야 한다. 레온하르트 제국에 정확한 정보를 전하면 제국 자체에서 합당한 보답을 할 테니까.

그러나 언젠가 지구로 돌아가길 원하는 나는 내 존재가 널리 퍼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 결국 나에게 들어온 돈은 알바트로스함 자체에서 운용하는 자금뿐이다. 어쩌면 천현일 소장의 개인 주머니에서 나온 돈일 수도 있다.

기잉!

그때 숙소 문이 열리고 어깨 위에 커다란 얼음 관을 얹고 있는 보람이 들어온다. 기본적으로 여자 중에서도 작은 체구의 그녀가 2미터가 넘는 얼음 관을 들고 있으니 무슨 개미가 나뭇잎 조각을 들고 있는 것 같다.

“천하장사가 요기 잉네.”

“시끄러요. 생각 이상으로 차가워서 던져 버리고 싶으니까.”

투덜거리며 숙소로 들어와 침대 위에 얼음관을 올려놓는 그녀를 보며 묻는다.

“그나저나 변신은 그만 풀어도 되지 않아?”

“아직 뼈가 완전히 안 붙어서 그대로 두려고요. 뭐, 어차피 유지하는 데 힘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유지하는 데 힘이 안 들어간다고?”

순간 의문이 떠오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치열한 전투 중에도 변신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저 이상한 갑옷? 슈츠? 하여튼 저걸 입으면 확연히 강해지는 게 비전문가인 내 눈에도 보일 정도인데 유지에 별다른 힘이 안 들어간다면 왜 여태 안 입었단 말인가?

“뭔 생각 하는지 대충 알겠지만 별수 없었어요. 마탑주님이 무조건 선배 옆에서만 변신하라고 했거든요. 대체 이유가 뭔지.”

투덜거리며 소파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머리를 덮고 있던 투구가 사라지고 물결치는 파마머리가 어깨 위로 떨어져 내린다.

최근 들어 머리를 안 깎는 건지 어깨까지만 내려오던 머리칼이 어깨 너머까지 길어진 상태.

이어 양팔과 한쪽 다리의 파츠도 사라져 나머지 부분에 녹아든다.

아무래도 부상 부분만 덮어놔도 치료에는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거참, 신기한 갑옷이군. 아니, 이걸 갑옷이라고 하는 게 맞나?”

재질 때문에 갑옷이라고 하는 거지 이미지 자체는 전대물에 가깝다. 실제로 변신도 했고.

‘확실히 마법 소녀 느낌은 아냐.’

굳이 말하자면 차라리 히어로에 가깝지만 그렇기에 더 이상하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칭호의 [관점]은 어디까지나 내 입장과 인지를 기준으로 했었으니 마법소녀라고 했으면 틀림없이 마법소녀여야 할 텐데?

“…….”

“보람아?”

갑자기 조용해져 살펴보니 어느새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내색은 안 했지만 그녀 역시 보통 지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거 참, 하다못해 침대에 가서 자지. 이봐?”

가볍게 흔들어보았으나 일어날 기미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침실로 옮겨줘야 할까?

삑!

그러나 문에 다가가자 가벼운 경고음이 울린다. 동민의 방과 다르게 보람의 방은 잠겨 있었던 것. 아무래도 여자인지라 동민처럼 문을 열고 다니지는 않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열 수 있겠지만.’

그러나 도둑도 아닌데 굳이 잠근 문을 열어서 경각심을 살 이유가 없는 만큼 내 방에서 이불을 챙겨와 그녀를 덮어준다.

동민이 녀석도 덮어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얼음으로 만들어진 관 안에 있는 녀석을 이불로 덮어봐야 뭐하겠는가?

“아아, 골치 아프군.”

나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머리가 복잡하다.

‘결국 전쟁에 참여하는 건가. 아니, 상황이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 전쟁이 [내] 전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전투에 참가해서 활약했지만, 알바트로스함이 패배하면 도매금으로 내 목숨까지 넘어가니 어쩔 수 없는 행위였을 뿐이다.

‘대체 뭘 본 건가요, 어머니.’

날 이리로 보낸 것은 아버지이지만 그 원인은 어머니의 예언 때문이다.

내가 적에게 습격당하는 날 찾아온 손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하늘 아래 살아날 방도가 없을 것이라는 예언.

하지만 그런 예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전쟁터였다.

“대체…….”

한숨 쉬며 내 목에 걸려 있는 금줄을 당기자 그 아래 달려 있는 열쇠가 옷깃을 헤치며 딸려 올려온다.

마치 수십 개는 되는 쇳조각을 조립하고 짜 맞춰 만든 것 같은 디자인의 이 열쇠는 내 친아버지가 남긴 유품이라고 했다.

‘그런데 결국 누구인 거야? 이 열쇠를 단서로 찾기라도 해야 하나?’

궁금한 마음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를 지금껏 괴롭혀 왔던 [기억]은 여전히 존재하니까.

나는 지금껏 이걸 뭐 전생의 기억,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해 왔지만 어쩌면 이건 내 친부가 가진 힘에 딸려 있는 부록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억 속에도 있는 [단 한 줄의 명령.]

실제로 현실에서 활용한 순간부터 그 힘은 일종의 단서가 되었다.

내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이능과 나 스스로에 대한 정체를 가늠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활용하고는 있지만 어째서 인공지능들이 내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었다.

어쩌면 친부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 정체를 알게 될지도 모르지.

[관대하 정비관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런 상황에 손님?”

그때 들려오는 전자음에 의아해하면서 화면을 바라본다. 화면에는 눈에 익은 얼굴이 떠 있었다.

“꼬맹이잖아.”

[누가 꼬맹이야!]

온 것은 초면부터 나를 스파이로 몰았던 권혜란이라는 소녀다.

검은색의 머리칼을 양 갈래로 땋은 이 주근깨 소녀는 누가 봐도 초등학교 고학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양을 하고 있다.

키는 특히나 작아서 내 골반을 간신히 넘길 정도.

하지만 나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어서 그녀가 실제 외양만큼 어리지 않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대우주의 인간들은 평균수명이 어떻게 되지?’

지구만 해도 의학이 발전하면서 인류의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났고 지금에 와서는 100살이 넘는 것도 꽤나 흔한 일이 되었다. 지구인들이 그럴진대 전 우주를 누비고 다닐 정도의 과학력을 가진 이 외계인 녀석들의 수명이 짧을 일은 절대 없겠지.

‘천현일 소장처럼 500살 이상 뭐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몇 십 살은 먹었을지도.’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묻는다.

“왜 온 거야? 스파이 잡으러 왔나?”

[이익! 실수였다고, 실수! 남자가 쪼잔하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뭘 거기서 화를 내고 있어.”

[그건……!]

말문이 막혀 버벅이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간다.

어린애의 외양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실제 나이는 어떨지 몰라도 하는 짓은 완전 애나 다름없다.

기잉-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그 앞에 서 있는 혜란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없다.

“자, 당연히 개적인 용무 때문에 오지는 않았겠지?”

“…그래. 네 전용으로 할 기가스를 소개하러 왔어.”

“뭐? 내 전용 기가스?”

그건 또 전혀 뜻밖의 용무였다.

물론 나는 전쟁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당연히 아레스의 만병지왕을 통해 참가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간 됐다고 말하려다가 멈칫한다.

‘전용 기가스가 있어서 나쁠 건 없지?’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른다.

어쩌면 아레스에게 갈 수 없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고, 설사 아레스에게 가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해도 전투가 벌어졌는데 느긋하게 조종병이 없는 기가스가 나오길 기다리느니 전용 기가스가 있는 쪽이 더 안정적인 것이다.

“그래. 진짜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함장님의 명령이니 별수 없지. 정말 힘들게 정비했는데 검증되지 않은 녀석한테 넘겨야 한다니……. 어쨌든 따라와.”

그렇게 말하고 휙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거주구역이 아니었기에 이내 한쪽에 있는 승강기를 타고 한참 내려간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기술부 소속이던가? 학위 어쩌고 한 거 보면 꽤 수준 높은 기술자일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의 머리 위를 올려다본다.

[레온하르트 제국 2군단 사령부]

[벽을 눈앞에 둔 권혜란]

‘벽?’

의외의 칭호에 눈을 가늘게 뜬다.

벽이라니. 이 녀석도 뭔가 수련하는 녀석인가? 그래서 벽을 깨면 한 계단 위로 올라서고?

확인 겸 물어본다.

“요새 뭔가 잘 안 풀려?”

“전쟁 중인데 잘 풀릴 일이 있겠어? 진짜 중요한 타이밍인데 일이 터져서는……. 지니!”

[네, 권혜란 소위님……. 신원 확인되었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길.]

지니의 목소리와 함께 한쪽 문이 열린다.

온갖 장치와 설비, 그리고 정비기계들이 잔뜩 자리하고 있는 작업실이었다.

“어?”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그것이 있었다.

[드문 일이군, 혜란. 네가 네 공방에 다른 사람을 들이다니.]

기본적으로 보인 것은 하얀 색상이다. 순백의 갑옷을 입은 성기사처럼 고결한 느낌을 주는 새하얀 외장.

다음으로 보인 것은 붉은 망토였다. 바람 한 점 없는 작업실 안이었지만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조금씩 펄럭이고 있는 붉은 망토.

그러나 무엇보다 강렬하게 눈에 들어온 것은, 아니, [인식]된 것은 전혀 다른 쪽이었다.

“아니, 스킬 구성 상태가??”

기가 막혀서 신음한다.

어빌리티들이 하나하나 떼놓고 보면 죄다 개사기 유니크인데 모아놓고 보니 똥이었다.

아무리 어빌리티가 랜덤이라지만 뭐 이런 황당 구성이 다 있단 말인가?

“뭔 구성?”

“아, 아냐.”

그러나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얼버무리자 혜란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아, 이런 놈한테 알바트로스 유일의 인급 기가스를 줘야 하다니.”

“유일의 인급 기가스? 그럼 이게 설마.”

사실은 칭호를 봐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놀라는 척을 해준다. 그리고 과연 그 서비스(?)에 혜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래! 이게 바로 무수한 전장을 해치고 온 인급 기가스, 나폴레옹이지!”

왠지 모르게 자랑스러워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 녀석이 이 나폴레옹이라는 인급 기가스의 제작이나 정비에 많은 수고를 한 모양.

뭔가 찔러보면 줄줄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을 것 같은 모양새였기에 나는 그녀를 단숨에 현실로 불러들였다.

“그러니까 이게 이제 내 전용기라 이거지?”

“하하하! 하하, 하… 맞아. 그래… 나폴레옹이… 내 나폴레옹이…….”

“누가 보면 네 거 내가 뺏는 줄 알겠다.”

“으으… 함장님, 대체 왜 이런 녀석한테…….”

원래 이 나폴레옹은 알바트로스함의 기가스들이 속해 있는 하늘거인 기갑여단의 여단장 터크 대령의 기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요번 전투 중에 패배하고 목이 잘리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리전에 의해 관제인격이 동결된 상황이었기에 제 실력을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죽은 그 두 녀석이 범인이라고 했었지.’

어쨌든 그가 그렇게 사망함으로써 나폴레옹이 잠시 주인이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 천현일 소장이 그걸 나에게 넘기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것도 이렇게 구석진 곳에서 넘겨주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정보 통제를 할 생각인가 보다.

“그나저나 나폴레옹이라.”

너무나 익숙한 이름에 헛웃음이 나온다.

사실 이 이질감은 여태까지 계속 느끼고 있었다.

우주에서 생활하고 있음에도 24시간이 하루, 12달이 1년, 쓰는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와 비슷하고 신의 이름을 딴 기가스는 라에 아레스다.

심지어 이제는 나폴레옹이라니.

“에? 왜 그래?”

“아니 별건 아니고. 나폴레옹은 인(人)급이니 당연히 사람의 이름을 딴 거지?”

“당연하지. 그게 왜?”

그게 뭔 질문이냐는 혜란의 표정에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네가 아는 나폴레옹이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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