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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유령의 탄생
“…변신.”
기이잉---!
속삭임과 동시에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거세게 퍼져 나간다. 귀를 욍욍 울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는데 어째서인지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철컥철컥.
그리고 그 직후 그녀의 양팔에 장착되어 손등에서부터 팔꿈치까지 뒤덮고 있던 은색의 금속이 확장하기 시작한다. 마치 변신 로봇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스로 뒤집히고 분열하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그녀의 전신을 뒤덮는 것이다.
탕.
그리고 마침내 갑옷이 온몸으로 퍼짐과 동시에 바닥이 가볍게 울리더니 상체만 세워 앉아 있던 보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호, 이건 또 특별해 보이는 물건인걸. 그냥 흔하디흔한 원시행성인 줄 알았는데 별게 다 있네.”
“원시행성이라고 하지 마, 멍청아.”
놀랍다는 듯 휘파람을 부는 세레스티아를 향해 어느새 내 뒤에 멀쩡히 서 있는 보람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답한다.
뼈가 다섯 개나 부러져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던 그녀였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전신을 뒤덮은 은색의 갑옷이 치료 효과를 가지고 있는 듯 제법 멀쩡한 모습이다.
“멍청이라니…….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싫지만 나 황녀거든?”
“아~ 그래, 맞아. 그러고 보니 이 우주에는 시대착오적인 황족이 있다고 했었지.”
태평스러운 보람의 말에 세레스티아는 화내지 않았다. 아니, 화내긴 커녕, 오히려 꽃이 만개하듯 화사하게 웃으며-
철컥.
“…작정하고 시비를 걸면 어쩔 수 없지.”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모를 금빛 쌍권총을 잡아든다.
“흥. 싸우자면 뒤로 뺄 거 같아?”
위이잉!
그리고 그런 세레스티아에 맞서 보람 역시 기세를 끌어 올린다. 그녀의 몸을 뒤덮은 갑주의 양팔 부분에서 알 수 없는 기계음이 나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 광경을 처음부터 다 보고 있던 나는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당연하지만 내 호위인 보람이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녀인 세레스티아와 싸우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그만해.”
키잉!
말리기 위한 말이었는데 갑자기 은빛의 갑주에서 나던 기계음이 단박에 멈추더니 보람이 크게 휘청거렸다.
“음? 뭐야, 너 괜찮아?”
보람의 시비에 잠시 화를 냈던 세레스티아 역시 보람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권총을 집어넣고 보람을 부축한다. 보람은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하아… 하아… 방금 뭐죠? 제가 왜 당신과 싸우려 한 거죠?”
“먼저 시비 걸어놓고 무슨 헛소… 설마?”
순간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듯 세레스티아가 보람의 갑옷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급변하는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세레스티아를 살핀다. 신기하게도 세레스티아의 파란색 눈동자에 황금색 사자 문양이 떠올라 있다.
“무슨 일이야?”
“아, 그… 비밀이야. 허허, 세상에. 설마 이걸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으아, 이러면 상황이 복잡해지는데. 아버지가 오는 거 아냐?”
“이봐?”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세레스티아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다가 슬쩍 고개를 들어 칭호를 분류한다.
[데트로 은하 연합 4군단 제1돌격대]
[대적자를 발견한 세레스티아]
‘대적자를 발견했다는 건 또 뭔 소리야? 대적자가 뭐지?’
의문이 떠올랐으니 내가 볼 수 있는 건 칭호지 상대방의 마음속이 아니다.
칭호를 보는 능력은 응용 방식이 다양한 편이지만 [분류]의 과정에 [마음속]이나 [현재 생각] 따위가 있을 정도로 편리한 능력도 아니다.
“그나저나 보람 넌 괜찮아? 방금 왜 그런 거야?”
“모, 모르겠어요. 이상하게 갑옷을 입으니… 저 여자를 보며 화가 났던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평소에도 이상하게 반감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전신을 뒤덮는 갑옷이었지만 우아한 디자인의 투구 가리개를 열면 얼굴이 드러나는 방식이었기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은 확실하게 보이고 있다.
보람의 머리 위 칭호를 대충 살펴봐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지금은 괜찮아?”
“네. 갑자기 괜찮아졌어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내 뒤로 와서 선다.
그러나 방금 전 상황 때문에 혼란스러운지 복잡한 얼굴이다.
‘그나저나 변신이라.’
세레스티아도, 보람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나는 보람의 갑옷을 살펴보았다.
용의 머리를 이미지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투구와 틀림없이 금속으로 보이는 재질로 이루어졌음에도 사용자의 움직임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 은색의 갑옷은 군데군데 박힌 보석들과 복잡한 문양으로 인해 꽤나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나저나 특이한 변신이네. 이건 마법소녀가 아니라 전대물 주인공 같은데.”
“…선배.”
나는 난데없이 딱딱해지는 보람의 표정에 당황한다.
“왜, 왜?”
“마법소녀라는 말……. 어디서 들은 거죠?”
나직한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질문에 머릿속이 텅 비는 충격을 받았다.
왜 마법소녀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느냐?
당연하지만 그녀의 칭호 때문이다.
‘어?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마법소녀라는 말은 단 한 번도 안 했었나?’
순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머릿속을 뒤지고 생각을 정리한다.
다행히 떠오르는 답변이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 전에 나를 습격했던 그 무술가 같은 놈들이 견습 마법소녀라는 말을 했었잖아.”
“…무술가요?”
“그래, 그 습격자 녀석들. 그 녀석들이 견습 마법소녀인가 하는 소리를 해서 정식 명칭인 줄 알았는데 아냐? 뭔가 잘못되었나?”
늘 생각하지만, 정말 남우주연상 급의 연기력이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그리 정색하느냐, 하고 오히려 의아해하는 표정이 포인트.
과연 제대로 먹혔는지 보람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아! 하! 하하하! 맞아요! 그런 별명도 있었죠. 호호호, 무술가 녀석들이 여성 마법사들을 마법소녀라고 장난식으로 부르기도 해요!”
“그런 거 치고는 이상하게 분위기를 잡던 것 같.”
“호호호! 그, 함장님한테 간다고 했었잖아요! 어서 가요! 황녀님? 슬슬 이동하죠. 주변 시선이 모이는데.”
“황녀라고 소리 내서 말하지 마. 사람들이 쳐다본다.”
방금 전 싸우기 직전이었다는 걸 기억이나 하는지 순식간에 정리된 분위기로 나를 이끄는 두 소녀.
그리고 그런 그녀들에게 끌려가며 생각한다.
‘저 갑옷이 보람의 생각을 강제했군.’
별다른 증거는 없었지만 눈치라는 게 있다.
기본적으로 보람은 활발한 성격이지만 수줍은 미소녀를 연기할 정도의 사회성 역시 가지고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떨어지는 한 떨기 꽃 같은 미소녀의 이미지만을 알고 있을 정도로 빈틈없이 생활해 온 그녀가 비빌 배경 하나 없는 우주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녀한테 대놓고 시비를 걸어 싸움을 일으킨다?
내가 사람을 잘 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다.
‘그리고 제정신을 찾은 건… 그만해, 라는 내 말 때문이겠군.’
이제는 나도 안다.
내 [명령]이 기계류에게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단지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으로 그들은 내 명령을 절대적으로 지킨다. 그들은 뭐든지 한다.
심지어 할 수 없는 일조차도…….
‘다만 제약이 있다.’
지구에서의 나는 이런 능력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것은 지금에 와서 내 능력이 발현되어서가 아니다.
힘 자체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그 힘이 발휘되는 조건이 [기계]라는 식으로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명령을 듣는 것은 [인공지능]이다.
완벽한 인공지능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거기에 준하는 기능은 필요한 것.
실제로 지구에 있을 때에는 망가진 PC에 대고 ‘켜져라 켜져!’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었고 그건 알바트로스함에서 고장 난 통신기 등으로 실험해 확인했다.
적어도 내 말을 이해할 정도의 기능이 없으면 명령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무식한 귀신이 부적을 몰라본다는 말이 이런데 쓰는 말인가.”
“…부적?”
난데없는 소리에 의문을 표하는 세레스티아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뻘 소리니 신경 쓰지 마.”
나와 보람, 그리고 세레스티아는 여기저기 부서지고 박살 나 메탈바디들과 정비기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복도를 지나 함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원래는 몇 개의 벽이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야 하지만 전투 때문에 모든 벽이 파괴되고 지키는 사람도 없다.
하긴, 알바트로스함 최대 전력이 바로 천현일 소장이니 이런 비상시국에 굳이 그를 위한 병력을 빼놓는 게 오히려 우스운 일이겠지.
물론 그렇다고 정말 아무도 없는 건 아니어서 함장실 앞에 총을 든 병사 하나가 서 있다.
“정지. 이 앞은 함장실입니다.”
앞을 막아선다. 수많은 사람이 죽은 전투가 끝난 직후인 만큼 경직된 분위기.
그러나 그 직후 세레스티아가 앞으로 나선다.
전혀 세레스티아를 의식하지 않던 사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아무래도 세레스티아가 은신을 푼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데리고 온 손님입니다.”
“화, 황녀님! 충성!”
“후후. 수고하세요.”
“네!”
군기 바짝 든 목소리로 차려총 자세를 취하는 병사를 지나 함장실로 들어간다.
쿠우우---
“윽… 이게 뭐야?”
순간 멈칫한다. 왜냐하면 주변 공기에서 끈적끈적할 정도의 점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늪 속에 들어온 것처럼 숨이 턱 막히고 강한 압박이 느껴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영압(靈壓)이라니…….”
느낀 것은 나뿐이 아닌 듯 어느새 보람이 내 앞으로 서서 기세를 막아서고 있다.
어느새 그녀의 갑옷 주위로 묘한 문양들이 떠올라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약동하고 있다.
“아, 미안하군.”
그러나 그 직후 모든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부상을 치료하는 중이라.”
동양풍의 가옥이다.
함선 내부에서 [가옥]이라는 단어를 쓰기 좀 애매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함장실은 어지간한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컸고, 그 중앙에는 단출한 이미지의 기와집이 있었으니까.
놀랍게도 함장실의 한편에는 폭포가 있어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고 여기저기 아름다운 꽃들과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고 있다. 개중에는 귀한 약초도 있는 건지 청량감이 느껴지는 향기가 전해진다.
“몸은 좀 괜찮아?”
“조금 더 치료해야겠지.”
가부좌를 취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천현일 소장을 살피며 세레스티아가 웃는다.
“멀쩡해 보이는데?”
“치고 박고 싸운 게 아니니까. 아, 그보다 만나서 반갑군. 천현일이라고 한다. 나이차이가 500살이 넘는데 말 놓는다고 뭐라 하지는 않겠지?”
친근하게 말을 걸며 몸을 일으키자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박력이 전해진다.
똑바로 서는 것만으로 3미터에 이르는, 소형의 기가스만큼이나 거대한 덩치 때문만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내면.
아까와 다르게 기운을 갈무리한 만큼 보람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힘이 존재감이라는 형태로 느껴진 것이다.
‘맙소사. 정말 이게 일개 생물이 가진 힘이란 말인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온다.
황금성좌 골드리안에 탄다 해도 그와 1:1전투에서 이길 작전이 떠오르질 않는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공적을 세울 수야 있겠지만 그와 100미터 이내로 접근하게 되면 도망조차 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 것이다.
골드리안에 탄 나는 테라급 함선인 징벌을 파괴도 아니고 포획했을 정도로 강했는데도 그 지경이다.
‘여러모로 초월자들은 상식 외의 존재군.’
이런 자들이 한둘도 아니고 수백 수천 명이 있다니. 우주가 아무리 넓다지만 너무 엄청난 일이 아닌가?
농담이 아니라 일개 개인이 하나의 문명을, 혹은 하나의 행성을 파괴하는 일조차 가능할 테니 모든 세력이 초월자 중심으로 짜인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그래, 어쩌면… 우주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왕정제인 이유도 초월자들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제국, 황제, 황녀라는 단어를 볼 때부터 이상했다.
틀림없이 더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어야 할 대우주의 세력 태반이 왜 지구에서조차 옛날에 버린 왕정제를 유지하고 있는가?
정보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미래의 시민들이 왕의 존재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는가?
‘힘이다.’
그렇다. 힘이다.
일개 개인이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일개 개인이 그가 속한 문명 자체를 파괴할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사회의 틀과 룰, 법률로 묶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가 용납하고 따른다면 모를까 어찌 그를 강제할 수 있겠는가?
그 과정이 순탄할지, 아니면 피가 흐르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초월자가 나타나서 그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면 결국 결과는 두 가지뿐일 것이다.
그가 왕이 되거나, 아니면.
‘신이 되거나.’
“대하라고 했나?”
“아, 네.”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정신을 차리고 천현일 소장을 마주한다.
천현일 소장은 슬쩍 고개를 움직여 내 옆에 바짝 붙어있는 보람을 바라보았다.
“이거이거… 정말 재미있군.”
북극곰의 모습이었던 만큼 표정을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한순간 그가 웃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직후 그가 허리를 숙여 코가 맞닿을 정도로 바짝 얼굴을 들이댄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날렵한 움직임이었는데도 주변에는 바람조차 일지 않아 소름이 끼칠 정도다.
“무,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 아, 별건 아니야. 다만 묻고 싶어서.”
눈을 마주하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의 눈동자가 무저갱처럼 나를 빨아들인다.
“누구냐,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