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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유령의 탄생
심지어 나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뭐, 어쩌면 이게 당연한 걸지도.’
나는 수천만의 학살자다.
물론 그걸 내가 한 것은 아니지만 [기억]은 [경험]과 같고 나는 그 끔찍한 악몽을 이어받았으니 어쩌면 지금 이 상태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
“뭐, 어쨌든 당장의 위기는 넘어간 듯했으니 가볼게. 다만 다시 오게 될지도 모르겠네.”
[아마 그렇겠지. 전투는 끝났어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적들이 일차적인 후퇴를 했지만 그건 백병전에 한해서일 뿐 여전히 알바트로스함은 적의 엑사(Exa)급 우주모함(Carrier)과 마주하고 있고 거기서 나온 기가스와 전투기, 그리고 다수의 호위함이 포위진을 완성한 상태다.
“이제는 자폭을 막을 수도 없는데 포기해 주지 않을까?”
[어림없는 소리. 녀석들은 레온하르트 제국은 물론이고 자신들까지 포함된 우주 최대의 세력, 연합(Union)의 대적(大敵) 중 하나인 리전을 끌어들였어. 자기들끼리 싸울 때야 연합에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리전이 끼어든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만약 이 사실이 연합에 알려진다면 틀림없이 제재가 들어올 테니 절대 살려 보내려 하지 않을 거다.]
“…고작 테러 단체 때문에 제국 클래스의 구성원을 제재한다고?”
[고작이 아니야, 멍청아. 지금이라도 리전이 마음먹으면 전 우주가 시끄러워진다. 그나마 지금에 와서 시들한 거지 기계신(機械神) 디카르마(Dekarma)가 있을 때의 리전은 연합조차 쉽게 어쩌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세력이었어. 디카르마가 신계에서도 강하기로 유명한 무신(武神)에 의해 소멸하지 않았으면 연합에 맞먹는 세력으로 커졌을걸.]
“무신에 기계신이라니.”
헛웃음 짓는다. 신이라는 존재가 대놓고 등장해서 그런지 왠지 역사가 아니라 신화를 듣는 기분이지만 이 망할 대우주에 익숙해지려면 이 정도는 가볍게 넘길 수 있어야겠지.
‘그나저나 디카르마라…….’
왠지 익숙한 느낌이다. 비슷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일까.
[어쨌든 뭔가 분위기 이상하면 바로 이리로 피신해.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배가 가라앉을 때 가장 안전한 곳은 이곳일 테니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다 슬쩍 고개를 돌린다. 어지간한 수급 기가스에 맞먹는 크기를 가진 머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뭐, 뭐? 야! 지금 내 말은……!]
“닫혀라.”
철컹!
문을 닫고 작업실로 나온다.
전신의 눈으로 이미 무사함을 확인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람과 동민의 상태를 살필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 큰 함선 안에서 동향 사람이라고는 그들뿐이니 이럴 때일수록 함께 있는 게 좋다. 무엇보다 그들은 내 경호원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때 작업실 한쪽에 쓰러져 있던 은색의 메탈바디가 몸을 일으킨다.
[관대하 님.]
아무런 표정도 얼굴도 없는 밋밋한 머리와 그냥 금속을 굳혀 만든 것 같은 몸 위로 물리적으로 실존하기 힘들 정도로 장대한, 그러나 더없이 아름다운 가슴과 상대적으로 훨씬 가는 팔다리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다시 그 위로 사막의 무희들이나 입을 법한 반투명한 재질의 천이 씌워진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폭발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몸매를 가진 소녀의 모습이다.
일본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 미소녀의 모습은 알바트로스함의 관제인격 지니의 캐릭터 이미지(Character Image)다.
“아, 지니. 상태는 좀 괜찮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이제 설명을 좀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그녀가 나의 이상성을 감지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모르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잠들어 있던 그녀를 깨운 게 바로 나니까.
“비밀이라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저에게 대하 님을 강제할 권한은 없으니까요. 다만.]
그렇게 말하며 성큼 다가선다. 그리고 그 동작에 크게 흔들리는(영상에 불과하니 알바트로스함의 중력에 영향을 받을 리가 없을 텐데도)가슴의 모습에 내심 혀를 찬다.
지니를 만든 제작자 녀석이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변태력이 충만하다는 것 하나는 인정할 만하다.
녀석이 지니 같은 관제인격을 많이 만들었다면 전 우주적으로 욕도 칭송도 부족하지 않게 듣고 있겠지.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제가 깨어날 수 있었던 사유를 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필요한 일이라면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하는 것이 바로 알바트로스함의 관제인격인 지니라는 존재였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사용자를 돕고 명령에 따르는 프로그램이다.
특히나 부함장 이상의 권한을 가진 존재라면 어지간한 기밀이라도 모두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러나 나는 웃었다.
“그럼 거짓말을 해줘. 왜 깨어났는지 모르겠다고.”
[그게 무슨……. 관제인격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아마도 관제인격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원칙(Principle)일 것이다, 절대로 어길 수 없는.
만약 그런 게 가능해지면 인간이 관제인격을 신뢰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니 당연한 조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말했다. 약간의 테스트였다.
“해줘.”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 대답이다. 이번에는 방식을 좀 바꿔본다.
“해.”
[……!!!]
순간 지니의 아름다운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확실히… 관제인격들도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는군. 아무래도 이건 리전이 아니라도 가질 수 있는 모양이야. 아레스 녀석도 그랬지만.’
우주로 나와 만난 인공지능들의 수준은 내 상상 이상이다.
그들은 감정이 있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상대가 권한이 높은 사용자라면 기본 원칙에 따라 명령을 거부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이쯤 되면 하나의 정신 생명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차이점은 창의력과 사고력뿐이라는 거군. 굳이 더 찾자면 관제인격이나 인공지능과 다르게 리전은 주인이 필요 없다는 정도.’
감정과 판단력이 있지만 창의력이나 사고력 등이 없기 때문에 문명을 만들어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만들어진 규칙을 절대 벗어날 수 없으니 SF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인공지능의 반란 같은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비롯한 사용자에게 반기를 들거나 원칙을 어긴다면 그것은 그 인공지능을 만든 개발자가 손을 썼거나 메인 시스템을 해킹당해 적의 명령을 들었을 때뿐.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 명령이 그 모든 것을 우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신의.]
무릎을 꿇는다. 아름다운 무희가 주인에게 예를 표하듯 우아한 자세였다.
[당신의 뜻대로.]
*
나는 의무실에 도착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의무실은 전쟁터나 다름없는 상태. 환자가 너무 많아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도 상당수 보였다.
의료기계들과 메탈바디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치료계열 능력자들과 마법사들이 사람들을 돌보고 있다.
“괜찮아?”
“안 괜찮아요. 으으, 뼈가 다섯 개나 부러졌어요.”
“우는 소리 하는 거 보니 멀쩡하네. 동민이 너는?”
“멀쩡하다.”
“정작 다 죽어가는 놈은 이런 소리라니.”
나는 내 머리통만 한 괴상한 기계를 가슴 위에 올려놓고 바닥에 누워 있는 보람과 동민을 바라보았다.
녀석들의 몸에는 불투명한 백색 젤리 같은 물질이 덮여 있었고 그 젤리들은 숨이라도 쉬듯 연신 부풀었다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기계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틀란티스 공방]
[특별히 꺼낸 고속 치유공방(소)]
‘특별히 꺼낸은 뭐야. 대우해 준다는 건가? 근데 그런 주제에 침대는 없어서 바닥이라니.’
내심 투덜거렸지만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는다.
내가 의료 쪽에 아는 바가 없다 하더라도 주변에 널린 부상자 중에서 그나마 이 녀석들이 경상자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으으, 침대가 부족하대요. 솔직히 많이 불편한데 주변이 너무 지옥도라 불만을 토하면 안 되는 분위기네요.”
아닌 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비통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알! 정신 차려! 제발 일어나!”
“하일! 크흐흑! 하일!”
한 번의 전투로 알바트로스함이 받은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농담이 아니라 1만 명이 넘는 승무원 중 30% 가까이가 죽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 중 태반이 전투 병력이라는 것.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해 보면 상황은 충분히 절망적이었다.
“치유공방! 치유공방 더 없어?!”
“이미 비축분도 다 꺼냈습니다!”
“그럼 일단 긴급 상황을 넘긴 사람들 것들을 받아서 더 심한 부상자들부터 구해!”
의무병이라고 해야 하나. 피로 더러워진 하얀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소리치며 뛰어다닌다.
치유 능력이 있는 치유사들은 손에서 은은한 빛을 흩뿌리며 주변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다.
“저기, 죄송하지만…….”
“아! 네 괜찮아요. 이제 숨 쉴 만하니 가져가세요.”
바닥에 누워 끙끙대던 보람의 말에 병사 중 하나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보람의 치유공방인가 하는 걸 조작한다.
띠리릭 하는 기계음과 함께 보람의 몸을 뒤덮고 있던 젤리들이 치유공방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내 것도 가져가라.”
“아, 마음은 감사드립니다만 당신은 좀 더 치료받아야 합니다. 폐에 구멍이 난 데다 내장도 너무 상했어요. 지금 치유공방을 거두어들이면 다시 악화될 겁니다.”
“개인적인 치유 능력이 있으니… 가져가.”
단호한 동민의 말에 병사가 잠시 망설인다. 그러나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를 듣더니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그렇다면, 실례하겠습니다.”
보람 때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젤리가 치유공방 안으로 회수되고 병사는 두개의 치유공방을 들고 다른 부상자들에게 뛰어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무실에는 새로운 부상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온 몸을 뒤덮고 있던 젤리가 사라지자 대번에 동민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폐에 구멍이 났다는 게 정말인 듯 새된 호흡소리는 보통 심각해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람이 부러진 뼈들 때문에 발열이 올라오는 정도가 전부라는 걸 생각해 보면 말도 못하게 심각한 상황인 것.
그러나 그럼에도 동민은 대단할 게 없다는 표정이다.
“보람.”
“네, 선배님.”
“나는… 앞으로 적어도 72시간 이상 싸울 수 없다. 대하를 부탁하지.”
“걱정 마세요. 선배가 그랬듯이 저도 숨겨진 패가 많으니까요.”
“뭐, 확실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피식 하고 웃으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동시에.
쩌저저저적!
동민의 몸이 빠르게 얼어붙는다. 그리고 그 위로 물방울들이 떠오르더니 이내 얼음이 투명한 관(棺)의 형태로 굳어진다.
이제와 제대로 보니, 어느새 그의 가슴 위에 포개진 양손에는 30센티 정도 되는 크기의 금강저(金剛杵)가 들려 있는 상태.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그걸 발견한 보람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와, 세상에. 제석천왕의 금강저예요. 인드라 버젼의 열화판이라고 말이 많지만 신기나 다름없는데 이걸 꺼내 오게 하다니. 마탑주님이 별말 없이 궁니르를 꺼낸 것도 그렇고 관일한 선생님의 영향력이 상상을 초월하네요.”
“대단한 무기야?”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저건.”
막 그녀가 설명을 하려고 할 때였다.
“호위들도 심상치 않네.”
“…셀?”
“쉿. 나 지금 투명 상태니까 앞을 보면서 이야기해. 뭐, 어차피 너야 그냥 보이니 잘 모르겠지만.”
열대 바다의 바닷물을 한 올 한 올 건져 올려 만든 파란 머리칼에 마찬가지로 푸른 눈동자를 가진 미소녀가 내 앞에 털썩 앉는다.
움직이기 편한 전투복에 양 허리에는 쌍권총, 등에는 돌격소총을 메고 있는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선배… 지금 내 옆에 뭔가 앉았어요.”
“아아, 적이 아니니까 긴장하지 마. 전에 우리랑 같이 왔던 황녀 폐하야.”
세레스티아를 마주 보며 속삭이듯 말해주자 보람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설마, 보이는 거예요? 통찰안을 가진 저한테도 안 보이는 게?”
나는 보람과 동민에게 나에 대해 별다른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냥 잡다한 상황이나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 했을 뿐 개인적인 친분을 털어놓지는 않은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나는 그들이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들은 적이 없다.
“후후, 아무래도 이 녀석들도 너에 대해 모르는 모양이구나?”
“…여긴 무슨 일이야. 바쁜 몸일 텐데.”
“후후, 아무리 바빠도 우리 모두의 생명을 구한 영웅에게 얼굴도 안 비치는 건 예의가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빤히 나를 바라본다.
그냥 단순한 시선이었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도 파괴력이 상당하다.
‘젠장. 예쁘기는 정말 예쁘구나.’
살면서 많은 미녀를 봐왔다. 아버지에게 구애하는 여성 대부분이 영화배우 뺨치는 미녀였으며 알바트로스함에 탑승한 후에 만난 육감적인 미녀 알레이나나 인간은 아니지만 놀라운 미모를 가진 지니 역시 대단한 미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레스티아는 그 누구보다 빛나는 존재다.
농담으로라도 여성적이라 부를 수 없는 전투복을 입고 있음에도 그 미모는 나조차 한순간 정신을 못 차릴 지경.
외모가 이 정도로 반칙이면 몸매라도 좀 부족해야 하는데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다 나온 여성성을 자랑하니 굳이 황녀라는 혈통이 아니어도 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조심해야지.’
그러나 그럼에도, 그녀를 마주 보는 나는 언제나 냉랭하다.
그녀가 싫어서라기보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리는 순간 고생길이 열릴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리고 스스로 그걸 잘 아는 여자한테 잘못 코가 꿰이면 어찌 될지 잘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별로 정체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다는 걸 알잖아. 비밀로 해주면 안 될까? 정체를 모르는 히어로가 우리를 돕는다, 정도면 어때?”
나름대로 조용히 넘기려고 해보았지만 세레스티아는 고개를 흔든다.
“함장님이 부르셔. 아, 참고로 내가 이야기한 거 아니다. 정체를 숨기려는 모양인데 그러려면 초월자 근처에도 가지 말았어야지.”
“뭐? 설마…….”
“우주모함과 우주전을 할 때 함교를 돌아다녔다면서?”
“와, 그 곰탱이.”
기가 막혀서 웃는다.
세상에, 거기서 나를 봤었단 말이야?
심지어 더 무서운 건 거기서 전혀 나를 본 티를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내가 누군지 정확히 파악해 이렇게 불러내다니.
보기에는 그냥 단순무식 무투파 같았는데 역시 초월자라는 건가.
“저기, 선배님.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잠깐 가봐야 할 것 같아.”
“윽, 하지만 제가 호위하지 않으면…….”
그렇게 말하며 상체를 일으키는 보람이었지만 뼈가 다섯 개나 부러질 정도로 심각한 전신 타박상을 입은 상태에서는 무리한 주장이다.
당장 정강이뼈가 박살 나서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무슨 수로 나를 호위한단 말인가?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안전한 곳이니 걱정하지 마. 함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함장은 걱정 안 해요. 어차피 항거할 수 없는 상대이기도 하고. 후우… 제길. 좀 더 멋있는 상황에, 모두의 위기를 구하면서 아름다운 뒤태를 보이면서 하고 싶었는데.”
“보람아?”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의문을 표하는 바로 그때였다.
그녀가 오른팔을 들어, 손등이 나에게 보이게 들고 중얼거렸다.
“…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