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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28화 (2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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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8 각성(覺醒)

“열려라 참깨.”

문이 열리고 큼지막한 복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뭐야, 또 왔어? 어떻게 자꾸 들어오는 거야?]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눈동자가 내 상체만 한 거대한 머리통이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는 모습에 나직하게 웃는다.

“짜식, 반가우면서 틱틱거리긴.”

[뭐, 뭐라고?]

당황하는 녀석의 반응에 웃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맨 처음 왔을 때는 자세히 보지 않아 몰랐는데, 녀석이 있는 방에는 각종 무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칼도 있고 활도 있으며 내 키만 한 방천극이나 할버드 같은 것들도 있다.

무슨 무기 전시장 같은 모습이다.

“어디 앉을 데는 없어? 뭔 무기들 잔뜩… 오, 이게 좋겠군.”

나는 적당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주변을 굴러다니던 갑옷 하나에 걸터앉았다.

말이 좋아 갑옷이지 무슨 3미터짜리 괴물이 입었던 물건이기라도 한 듯 커다란 사이즈라서 거의 올라탄다는 느낌이었는데 그걸 본 아레스가 기겁한다.

[그건 투왕 카델의 갑주야! 운석을 맞아도 사용자를 지키는 강력한 갑주를 깔고 앉다니!]

“운석에 맞아도 멀쩡할 정도면 깔고 앉는 정도로는 흠집도 안 나겠네.”

태연하게 답하며 아레스를 바라본다.

기계 주제에 얼굴 표정이 제법 섬세해 표정이 다양하다. 마치 어릴 때 보던 애니메이션에 나오던 합체 로봇 같은 녀석이다.

뭐, 머리만 있어서 몸은 어떻게 생긴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왜 온 거냐? 저번에는 그냥 가버리더니.]

“아, 별건 아니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혹시 너 우주선 밖을 볼 수 있어?”

내가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한 가지 가설 때문이다.

아무리 신급 기가스라도 머리밖에 없는 상태에서는 전투가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그 전력은 원래 상태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적을 박살 내버릴 팔도, 적의 공격을 견뎌내며 무한의 에너지를 뽑아낼 몸체도, 땅을 박차고 뛰어다닐 다리도 없다면, 원래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도 한계가 명확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머리만이 남은 녀석이라면.

적어도 [머리의 기능]은 남아있지 않을까?

그리고 과연 내 가설은 틀림이 없었던 듯 아레스 녀석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나에게는 전신안(戰神眼)이 있으니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전장은 물론이고 전쟁의 징조까지도 볼 수 있지.]

“오~ 대단한데?”

[대단? 하하하하! 당연하지! 전신안은 신의 눈 시리즈에서도 최상급이거든!]

묘하게 기뻐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녀석의 모습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묻는다.

“지금 전쟁 상황은 어때?”

[글쎄?]

씩 하고 음흉하게 웃는 아레스의 모습에 혀를 찬다.

쳇, 묘하게 허술해서 그냥 답해주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만만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전쟁이 시작되긴 했나?”

[알아서 뭐하냐고 해주고 싶지만, 후후후. 뭐, 이 정도는 말해줄 수 있군.]

씨익 하고 웃으며 아레스가 말했다.

[너희는 질 것이다.]

“…….”

너무나 단호한 확언에 할 말을 잊는다. 그냥 약간의 불안함에 전황을 알고 싶어 왔을 뿐인데 최악의 상황을 듣게 된 것.

그리고 그런 내 모습에 녀석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너희는 기습당했고 적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했으며 적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다. 이 배의 전력은 나름대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적은 그 이상이로군.]

지금까지의 가볍고 만만했던 녀석의 표정에 진중함이 어린다.

적어도 [전쟁]에 대해서는 허언하지 않는, 전쟁의 전문가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 말은 소규모 교전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전체적인 전황을 말하는 거다. 이 배는 적에게 패할 것이며, 그 탑승자는 대부분 죽고 남는 이들 역시 적에게 유린당할 것이다. 승리의 가능성은 1%도 되지 않으니 그 어떤 희망도 있을 수 없다.]

선언한다. 마치 그것이 절대 어긋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 마냥.

내가 할 말을 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아레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듣기만 해서는 와 닿지 않겠지? 직접 봐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배경이 변한다.

*

“미쳤군……. 엑사(Exa)급 우주모함(Carrier)라고? 테케아 연방에도 두 개밖에 없는, 그것도 방어용이나 다름없는 우주모함을 이런 분쟁 지역에 데려왔단 말이야?”

알바트로스함의 함장, 천현일 소장이 이를 갈고 있다. 거대한 백곰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함교 중앙에 위치한 자신의 몸에 걸맞은 사이즈의 의자에 앉아 으르렁거리고 있다.

-우주모함?

무심코 소리 내어 말했다가 깜짝 놀랐지만 천현일 소장은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 화면을 보며 이를 갈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야기만 들었던 함교(艦橋)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체적인 전투력에 집중하는 전투순양함과 다르게 전투기와 기가스를 잔뜩 싣고 있는 녀석이지. 속도도 느린데다 어마어마한 물자를 소모하기 때문에 전투순양함처럼 자체적으로 보급을 해결하고 장거리 항해를 하지는 못해 방어전에만 활용되지만… 전투력만 치면 당연히 전투순양함보다 윗줄이다. 활용할 수 있는 물량 자체가 다르니까.

돌아보니 어느새 내 옆에는 양팔이 훤히 드러나는 조끼 모양의 판금갑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사나워 보이는 눈매에 회색 머리칼을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리고 있는 그는 내 허벅지보다도 두꺼워 보이는 근육질 팔에 내 허리만 한 허벅지를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거한이었다.

-아레스?

-그래 나다. 하지만 날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아레스의 말에 고개를 돌려 적의 우주모함을 비추고 있는 화면을 바라본다.

그 순간 우주모함의 위쪽으로 빛이 번쩍이더니 어두워야 할 우주가 환해지면서 알바트로스를 둘러싸고 있는 수백수천 대의 전투기와 기가스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리를 걷는 위대한 현자 모르네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간악하고 사악한 인간들은 우리의 막강한 군세에 도망조차 치지 못하고 짓밟히게 될 것을……!]

머리가 윙윙 울릴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 모든 이에게 전해진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당황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외부 방송은 또 뭐야, 미친놈들이! 게다가 자기 입으로 위대한 현자라니 테러범 새끼가---!!”

“젠장, 초월기(超越技) 임전무퇴(臨戰無退)야!”

“끝까지 가자는 건가!!”

비명과 고함이 난무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 현일이 소리친다.

“모두 진정하고 전투에 집중해! 나간 병력들은 함선 주변으로 집결하라고 전하고 이쪽도 초월기를 준비한다!”

“네! 함장님!”

현일이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나자 의자가 즉시 바닥으로 가라앉고 지름이 5미터나 되는 거대한 고리가 그의 주변으로 내려온다.

왜 녀석이 앉아있는 의자 근처에는 아무런 기기도 없나 했더니 아마 이런 설계를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초월기?

-두 가지 뜻이 있지. 하나는 신적인 존재들이 만들어낸, 그야말로 상식을 뛰어넘는 강력한 위력을 가진 기술들이고 또 하나는… 어빌리티(Ability)의 상위개념이다. 초월병기를 활용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인데, 지금의 경우는 후자이지.

내공을 사용하려면 강인한 심력과 체술에 대한 재능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나에 대한 능력이다.

마나를 인식하는 능력과 제어하는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빼어난 체술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는 그냥 뛰어난 무술가일 뿐이지 강대한 무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력을 다루려고 해도 마나에 관한 능력은 필수적이다.

뛰어난 지능과 지혜도 중요하지만 마나를 다루지 못해서야 다 소용없는 일.

그런데 뛰어난 기가스 조종사가 되려면 필요한 재능은 무엇일까?

‘아이언 하트와의 동조 능력.’

물론 조종술과 전투에 들어가서의 상황 판단 능력 역시 중요하다.

마치 내공사용자에게 전투 센스가 필요하고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 머리가 좋아야 하는 것처럼 조종 자체를 못하면 아무리 동조 능력이 뛰어나도 소용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종 능력은 누구나 후천적으로 어느 정도의 학습이 가능하니 결과적으로 기가스 조종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강철의 심장 아이언 하트(Iron Heart)와의 동조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언 하트의 정확한 명칭은 [기계식 영자기관]이다.

놀랍게도 4문명의 끝에 도달한 몇 종족은 ‘영력을 생산하는 발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이언 하트에서 생산해 내는 영력은 단순한 에너지에 가까워서 진정한 영력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언 하트 자체에 동조해 염(念)을 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능력을 가진 이들이 바로 일부 전투기와 기가스의 조종사가 되며 각자의 성격이나 특성, 능력에 따라 아이언 하트에서 특수한 능력을 뽑아낼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기가스 조종사들의 특기 어빌리티(Ability)이며 그중에서도 빼어나거나 희귀한 능력을 가진 이들은 거대 함선이나 전함의 함장이 된다.

-아니, 잠깐. 지금 여기에 초월병기가 어디에 있다는 거야?

-쯧쯧, 멍청한 놈. 테라급 이상의 함선은 대부분 초월병기야. 물론 초월병기 중에서는 양산형에 가까워서 등급은 아주 낮지. 아, 저기도 써 있군.

그렇게 말하며 한쪽 벽을 가리킨다. 그의 손짓에 따라 벽을 바라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5,000시리즈

알바트로스(Albatross)(서체-볼드)/

자랑스럽다는 듯 쓰여 있는 두 줄의 문구에 의문을 표한다.

-5,000시리즈?

-그쯤 되는 위치라 이거지. 초월병기는 1,000위 안의 넘버링이 아니면 명확한 순위가 없으니까.

-아, 그렇군…….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초월병기를 다룰 수 있다는 건.

나는 무심코 알바트로스의 함장 현일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위에서는 백색의 영기가 휘몰아치고 있는 상태.

아레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곰탱이 녀석은 초월자다. 이 배에서 나를 조종할 자격이 먼지만큼이라도 있는 유일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그때였다.

[울부짖어라---------!!!!!]

포효와 함께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함께 일하면서 그의 기질에 익숙함이 분명할 승무원들조차도 휘청거릴 정도의 힘.

잠시 압도되어 할 말을 잃은 나를 보며 아레스가 말했다.

-이건 밖에서 보는 게 좋겠군.

말과 함께 순식간에 배경이 변한다.

어느새 우리는 알바트로스에서도 훨씬 떨어진 장소로 이동해 알바트로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콰앙--! 쿵-!

펑!

알바트로스에서 뿜어지는 어마어마한 파장과 함께 알바트로스를 포위하고 있던 전투기와 기가스들이 마구 터져 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강렬한 영력으로 이루어진 우주 태풍이나 다름없는 공격이었다.

-펜릴의 포효. 초월기 중에서도 제법 유명한 기술이지. 저 녀석은 무투형 초월자인 동시에 제법 훌륭한 조종사의 자질 역시 타고난 거야.

아레스의 말에 따르면 그가 ‘겨우’ 소장밖에 못하고 있는 것은 평범한 곰으로 태어난, 영물이라는 출신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그가 인간이었다면 벌써 대장의 자리에 올라갔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니, 잠깐. 저렇게나 강력한 초월자가 함장인데도…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1%도 안 된단 말이야?

-큭큭큭. 원래 한 손으로 열 손 못 당하는 법이고.

아레스가 쓰게 웃으며 우주모함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강함이라는 건 상대적이지.

[인간의 발바닥을 핥으며 연명하는 짐승이 발악하는구나!]

우주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는 영적인 외침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그냥 초월기를 발동한 현일과 다르게 기술을 쓸 때마다 이렇게 외쳐 대는 걸 보면 적군의 수장이 어지간히 허영심에 찌든 인물인 모양.

하지만 허영심에 찌들어 있다 해도 적의 능력은 진짜였다.

쿠우우우---

-맙소사 저게 뭐야!?

우주 공간에 떠오르는 거대한 창의 모습에 기겁한다.

황당하게도 어지간한 도시보다 훨씬 거대한 알바트로스보다 더 기다란 창이 스스로 빛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그 창은 잠시 허공에서 진동하더니 벼락처럼 알바트로스를 덮쳤다.

우웅-!

그리고 그에 대항하듯 알바트로스에서는 백색의 방패가 떠올라 창을 마주한다.

평소 함선을 보호하는 실드와는 명백하게 다른 힘으로, 십자가의 문양이 그려진 그 방패에서는 무엇이든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강맹한 힘이 느껴졌다.

-백십자의 방패. 제법 훌륭한 방어형 초월기지만.

그러나 아레스는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신창 알리에타를 막을 정도는 아니야.

쾅!

폭음과 함께 우주의 모습이 단숨에 사라지고, 나는 어느새 거대한 아레스의 머리 앞으로 돌아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닥이 흔들리는 충격에 넘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런. 알바트로스가 관통 당했군. 지금 공격으로 300명가량이 죽거나 우주로 날아갔다. 내가 말했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목소리로 아레스가 말했다.

[승리의 가능성은 1%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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