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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27화 (27/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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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7 비인(非人)

[하늘거인 기갑여단]

[폭탄이 설치된 천둥룡]

뛰쳐나가 직접 경고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멍청한 짓.

대신 나는 지니를 호출했다.

“지니.”

[네, 대하님.]

내가 있는 곳은 정비실 한편에 마련된 자리였기 때문에 언제든 그녀와 대화할 수 있었다.

“지금 나가는 기체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어.”

[…폭탄의 명칭도 알 수 있겠습니까?]

정말이냐? 라든지 그럴 리가! 같은 반응은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기술부장 니단을 제외하고는 내 능력을 대략적이나마 가늠하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지금까지 계속해서 나와 같이 근무해 오며 내 능력을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잠깐 기다려. 아, 그보다 먼저 제자리에 좀 서 있으라고 그래.”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뭔가 말이 전달된 것인지 천둥룡이 자리에서 멈춘다.

주변에 있던 다른 병사들이 어리둥절해했지만 그건 둘째 문제.

나는 즉시 [분류]에 들어갔다.

“어디 보자… 이게 뭐야. 아르테인의 절망? 폭탄 주제에 굉장히 시적인 이름이네.”

중얼거리는 순간 지니가 말한다.

[아르테인의 절망. 틀림없습니까?]

“아, 응.”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대화가 끊긴다.

나는 혹시나 몰라 다른 기가스들도 살폈다.

‘다행히 더는 안 보이지만 폭탄이라니. 설마 알레이나가 설치한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동맹군 소속인 녀석이 굳이 폭탄 테러를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아군한테 피해를 입히려면 굳이 움직이는 기가스에 설치하는 것 보다 배에 폭탄을 설치해서 내부파괴를 노리는 게 이득일 텐데.

잠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고민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단지 머리 위를 보는 것만으로 상대방에게서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는 나이지만, 그래 봐야 알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내가 무슨 독심술을 배운 것도 아닌데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기이잉-! 철컹!

그런데 그때 묵직한 소리와 함께 한쪽 벽이 열리고 탱크에 포신 대신 안테나를 올려놓은 것 같은 디자인의 장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래도 쉽게 꺼내는 물건은 아닌지 주변에 있던 다른 정비관들과 기가스 조종사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인다.

“잠깐! 지니, 왜 EMP포를 꺼낸… 미쳤어!? 어딜 겨누는 거야!?”

“지니, 멈춰!! 지금 막 출격하려는 기가스에 무슨 짓이야?”

그러나 그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위쪽에 [오랜만에 꺼내진 CM-3]이라고 쓰인 장비가 안테나를 천둥룡에게 겨눈다.

천둥룡이 깜짝 놀라(정확히는 거기에 탄 조종사가 놀란 것이겠지만)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안테나 위쪽에서 빨간 불이 번쩍이는 게 빨랐다.

투웅--!!

안테나를 중심으로 묘한 파동이 퍼져 나간다.

내가 알고 있는 단순한 EMP가 아닌 듯 주변에 있던 정비사들이 죄다 밀려 넘어진다.

물론 그냥 넘어진 정도인 데다가 이 함선에 타고 있는 녀석들은 조금씩이라도 다 이상한 마법이나 초능력 같은 걸 익히고 있어서 다친 사람은 없다.

기유웅…….

그리고 그 한방으로 천둥룡이 주저앉는다.

“지금 지니가 천둥룡을 망가뜨린 거야?”

“방어 시스템을 다 정지하게 하더니 EMP를 쏴버렸어!”

“뭐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그야말로 상상도 못한 사건에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CM-3라는 EMP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천둥룡의 등이 열리더니 붉은 머리칼의 미남자가 뛰쳐나온다.

“모두 즉시 개인화기로 무장하고 통합 시스템과의 제어를 끊어!”

“네? 하지만 중대장님…….”

“서둘러! 지니가 적에게 당했으면 주변 모든 기기가 적이나 다름없어!!”

꽤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듯 녀석의 몸 주위로 붉은색의 영기가 휘몰아친다.

그러나 그전에 그들의 앞으로 지니의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진정하고 천둥룡에서 물러나세요. 비상 메뉴얼에 따라 알바트로스의 관제인격으로서 긴급조치에 들어가겠습니다!]

“어? 지니 너 정상이야? 적들한테 당한 거 아니고?”

[저를 그렇게 쉬운 여자로 보다니 실망이군요, 알렉스 대위님.]

사막의 무희 같은 복장의 지니가 슬쩍 눈웃음치며 가볍게 손짓했다.

그리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주변에 모여 있던 정비기계들이 동시에 움직여 천둥룡의 왼팔을 떼버렸다.

정확한 위치를 짚어주지 않았는데 망설임 없는 동작인 걸 보면, 아무래도 따로 조사를 해서 폭탄을 찾아낸 모양이다.

철컹! 기이잉---!

천둥룡의 팔을 떼버린 정비기계들이 떨어진 팔을 사출기에 올려놓았다.

사실 사출기라고 해 봐야 특별히 뭔가 있는 건 아닌 게 알바트로스의 사출기는 일종의 전자식 사출기로 자기부상열차와 비슷한(자세히는 모른다) 원리로 자기적 반발을 일으켜 전투기나 기가스를 쏘아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바닥에 있던 천둥룡의 팔은 저절로 허공에 떠올라 화살처럼 날아가는 걸로 보였다.

파앙!

사출구가 열리고 왼팔이 에너지 장으로 유지되는 공기막을 급작스럽게 뚫고 나갔다. 그 바람에 한순간 주변에 거센 바람이 몰아쳤지만, 그건 사소한 일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우주공간으로 날아간 팔이 폭발해 버렸다는 점이다.

쿠우우웅----!!

정비실 안쪽에 있는 나조차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진동에 식겁한다.

만약 저게 그냥 여기서 터졌다면?

“허허, 뭐 이런 게 다 있어?”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온다.

우연히 칭호를 안 봤으면 뭔지도 모르고 비명에 갈 뻔했다.

“이, 이게 뭐야, 지니? 왜 천둥룡의 팔이 폭발한 거지?”

[그곳에서 폭탄이 감지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완전히 팔의 부품과 동일하게 보이는 부품들로 이루어진 폭탄이었지요. 우연히 발견하여 즉시 처리했습니다.]

“내 전용기에 폭탄을 설치하다니 어떤 놈이……!”

붉은 머리칼의 미남자. 그러니까 알렉스라는 대위 녀석이 펄펄 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죽을 위기였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일어날 ‘뻔’했던 일이었을 뿐 결과적으로 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으니까.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은 지니의 권한과 상환 판단 능력이었다.

‘이게 뭐야. 누구한테 묻지도 않고 바로 자기가 판단을 내려서 마음대로 실행에 들어간다고? 내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개념하고 전혀 다르잖아?’

나는 지니에게 천둥룡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걸 말하면 당연히 그녀가 그걸 상부에 보고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무리 뛰어난 인간지능이라고 해도 [판단]은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독자적인 판단으로 EMP포를 꺼내 들어 당황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즉시 천둥룡에게 발사해 천둥룡은 물론이고 천둥룡의 안에 장치되어 있던 폭탄의 작동을 멈춰 버렸다.

아마 해체하거나 몸에서 분리하는 순간 폭발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더불어 그녀는 대담하게도 폭탄이 설치되어 있던 팔을 통째로 분리, 우주에 던져 버리는 기지를 발휘했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피해 없이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이 정도면 인간 이상의 판단력이야. 게다가 이정도의 판단을 스스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권한이라니.’

물론 보고는 올리는 모양이지만 이건 전형적인 선조치 후보고가 아닌가? 당장 행동하는 데에는 딱히 허락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에게는 인간을 보조하는 정도의 권한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행동이다.

짐작이지만, 어쩌면 지니는 알바트로스 내부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대해 경찰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여기 녀석들은 인공지능에게 이런 권리를 주고 불안하지 않나? 시스템 오류 같은 걸로 폭주하면 어떻게 하려고?’

해킹이나 버그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게 없다고 하기에는 알렉스라는 녀석의 행동이 걸린다.

틀림없이 녀석은 지니가 이상한 모습을 보이자 관제인격의 폭주를 상정하고 방비하려 했었다.

즉, 그의 행동은 관제인격이 [적에게 당하는] 상황이 과거에도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복잡한 상황에 내심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내 옆으로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알바트로스함 전체를 통제하는 관제인격, 지니였다.

[도움에 감사합니다, 대하님.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을 막으셨으니 차후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아, 음. 뭐 내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하니까.”

왠지 머쓱해져서 웃었지만 화면 속의 지니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과 별개의 사항이지요.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내가 확인하기로 더는 없어. 아까 그 폭탄도 사실 내 생각에는 쫌 뜬금없어서.”

내가 발견해서 지니가 즉시 제거하기는 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과연 그 폭탄들이 과연 당장 터질 물건이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보는 칭호가 표시하는 정보는 당장의 정보만이 아니다. 그 대상을 대표하기만 한다면, 짧게나마 미래까지 보여줄 수 있는 복합적인 능력인 것이다.

‘그래, 만약 당장 터질 폭탄이었다면 터질 거라는 언급이 있었을 거야. 카운트 1시간 남은 폭탄이 설치된, 뭐 이런 식으로라도 이야기가 있었겠지.’

칭호는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며… 터지는 게 목적인 폭탄에게 폭발은 너무나도 강력한 [상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칭호는 이런 중요한 상태를 무시할 리 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

칭호를 보는 힘이 위험하다는 것은 스스로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일단 조심한다.

기계에 한정해서 드러낸 지금도 약간은 많이 드러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은 있을 정도였으니까.

조심은 아무리 해도 과하지 않다. 일견하는 것만으로 스파이를 잡아내고 남의 정보를 멋대로 열람하는 게 가능한 능력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나라도 그런 능력자의 존재를 알게 되면 그걸 위협이라 느껴 잡아두거나 아니면 이용하려고 들 것이다.

쿠우-! 쿠우우-!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전투기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기가스가 사출구를 통해 우주로 쏘아진다.

나는 적어도 EMP를 얻어맞아 움직이지 못하는 천둥룡의 조종사인 알렉스는 출동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그 역시 다른 수급 기가스를 타고 출동해 버렸다.

분위기는 상당히 급박해서,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은 다 출동한다’는 느낌이다.

“저기 지니, 지금 전투 중인 거야?”

[죄송하지만 전시 상황은 기밀이라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차분한 대답에 살짝 실망했지만 수긍한다.

하긴 무슨 TV방송도 아니고 전시 상황을 중계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일종의 전투지휘실이라고 할 수 있는 함교에서라면 전투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테지만 일개 정비관에 불과한 내가 발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그럼 난 이제 뭘 해야 하지? 기가스들도 죄다 나가 버렸는데.”

내 질문에 지니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숙소에 가서 쉬고 계시면 됩니다.]

“…전쟁인데?”

[전쟁이라 하더라도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이고 이미 정비관님은 충분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허.”

쓴웃음 짓는다.

물론 일반인이라도 소총 하나 들면 어느 정도 병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지구에서와 다르게 이런 우주전에서 일반인은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게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냥 숙소에 가서 쉬고 있으라니.

“평시 꿀보직은 전시에도 꿀이라는 건가. 너무 편해서 불안할 정도인데.”

중얼거리며 정비실을 나온다. 문 밖에는 보람과 동민이 와 있는 상태였다.

“아, 기다렸어? 나는 그만 집에 돌아…….”

“죄송해요. 저희 둘 차출됐어요.”

“가서 쉬… 뭐라고?”

“근접 전투를 위한 인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우리 둘은 이곳에서도 전투병력에 속할 정도는 되니까.”

동민은 ‘전력이 아님에도 말이지’라고 중얼거리며 품속에서 종이 쪼가리를 하나 꺼내 들었다.

황당하게도, 그건 부적이었다.

“위험하면 찢어라. 이 녀석을 데리고 네 옆으로 즉시 이동할 테니까.”

“여기에서 임무를 맡는다고 했잖아. 그렇게 빠져도 돼?”

“우리 원래 임무는 네 호위다. 미리 이야기해 놨으니 상관없겠지.”

“아직 여기 있었군! 보병대가 다 집결했으니 즉시 이동하라!!”

“아, 금방 갈게요, 언니!”

“언니라고 부르지 말고 중대장이라고 불러!”

“네, 언니!”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옷을 입고 자기 몸만큼 거대한 대검을 든 여인을 따라 보람과 동민이 사라지고 나만 덩그러니 남는다.

주변을 돌아보니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주변에는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진짜 심각한 상황일지도?”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상황을 알 수가 없다.

이거 편하게 쉬다가 맥없이 전쟁에 져서 지옥 같은 상황에 빠지는 거 아냐?

내가 아무리 조심해서 산다 해도 거대한 전쟁의 급류에 휘말리면 아무것도 못하고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되면 숙소에 가서 게임이나 하기에는 너무 찝찝한데.”

하지만 단지 궁금하고 불안하다고 스스로 전쟁에 참여한다고 나서기도 애매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 내 직위는 정비관일 뿐이니까.

그것도 직접 부서진 기체를 수리하는 그런 방향도 아니기 때문에 전투 중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결국 내가 향한 곳은 매일 출근하던 작업실이다.

“이게 뭐하냐 싶기도 한데.”

피식 웃으며 작업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곳에 온 것은 출근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열려라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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