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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7 비인(非人)
지금은 5문명에 들어서 물질계를 떠나버린 고대의 인류가 처음으로 외계인과 조우한 것은 약 150억 년 전의 일이었다고 한다.
사실 [외계 문명과의 만남]이라는 것 자체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문명이 자신이 탄생한 항성계를 벗어난다는 것도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생명체가 탄생하는 항성이 은하계 단위에서도 극히 희귀하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외계문명과 조우하려면(외계문명이 직접 접근해 오지 않는 이상) 적어도 자신의 은하 정도는 무리 없이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문명 수준에 도달해야 하며, 아무것도 없는 제로에서 그만한 문명을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고대인류는 결국 그 조건을 클리어함으로써 새로운 문명, 새로운 외계의 존재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인류가 처음으로 맞이한 외계의 존재 또한 인류(人類)였다.
먼 우주에서 처음으로 만난 [외계인]이어야 할 존재가, 동종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엄청난 혼란이 일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문명 수준은 고대인류와 별 차이가 없었고 그들은 전쟁 대신 정보를 교류하는 방식으로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그들 서로가 일말의 연관도 없는, 머나먼 우주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완전히 무관계한 존재들이라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이었지만 그들은 서로 싸우는 대신 힘을 합쳐 우주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물론 드넓은 우주에는 그들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상위종족과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우주괴수들이 존재했지만 인간은 그 특유의 친화력과 적응력으로 때론 그들과 타협하면서, 때론 그들과 투쟁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또 다른 인류를 만났다.
이어 또 다른 인류를 만났으며.
다시 다른 인류를 만났다.
결국, 인류는 공포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른 은하, 다른 환경에서 탄생한, 절대 같을 수가 없어야 할 종족의 모습이 동일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가까워도 수십 광년에서 멀게는 수천만 광년 이상 떨어진 장소에서 [동종]이 태어난다는 건 절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DNA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일치해서 대부분 2세를 보는 데에 문제가 없을 정도였으니, 이제 막 우주를 누비며 스스로의 힘에 대해 자만에 빠져 있던 인류가 혼란에 빠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전혀 다른 은하에 있는 그들의 동족들은… 그들을 [설계]하고 [창조]한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단서나 다름없었으니까.
“현재 배 상태는 어떻지?”
“함선 좌현 함미 대파! 3번 엔진 손상으로 아스트랄 드라이브 기동이 완전히 멈췄습니다!
“선수의 주포 손상으로 수리 전까지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유폭으로 거주구역에 화재가 발생! 현재 진화 중입니다!”
전투함이 아니었던 만큼 대체로 여유로웠던 함교가 시장바닥처럼 시끄럽다. 중대장들이 자신의 부대를 호출해 명령을 전하고 조타수를 비롯한 조종사들은 가용한 엔진들을 활용해 주변에 널려 있는 암석군과 거리를 벌리면서 2차적인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무슨 공격을 당한 거야? 어떻게 아스트랄 드라이브 중에 전조도 없이 공격을 할 수 있었지?”
“공뢰(空雷)입니다! 떠돌이 암석군 사이에 아스트랄계에 겹쳐 있는 공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항로를 알고 있었다…….”
알바트로스의 함장인 천현일 소장은 칼날같이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앞발로 목덜미를 긁었다.
그의 배는 전 우주를 누비는 순양함으로 우주를 탐사하고 장기 작전을 실행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레온하르트 제국에서도 흔치 않은 테라(Tera)급 함선으로 전투 능력 역시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어지간한 행성은 대기권에 들어갈 필요조차 없이 초토화시킬 수 있는 화력과 2급 이하의 실드는 그냥 관통해 버리는 주포, 아스트랄 드라이브 가동 후 최대 300시간의 중첩가속을 실행할 수 있는 출력을 가지고 있으니 어지간한 전함조차 함부로 이빨을 드러낼 수 없을 수준인 것이다.
하물며 알바트로스는 자체적으로 강력한 전투부대인 강철 십자 비행여단과 하늘거인 기갑여단을 소유하고 있다. 홀로 우주를 누비고 있다고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생각했다가 파멸한 해적선단이 한두 곳이 아닐 정도였다.
“공격을 한 것은 역시 비인(非人)들인가.”
“어머, 함장님. 그런 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되죠. 함장님도 인간은 아니시면서.”
“아니 지들이 불러달라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다음 은하, 다음 은하로 점점 영향력을 뻗어 나가며 스스로의 힘과 기술에 대해 자만심을 느끼던 고대인류는 자꾸자꾸 드러나는 신의 흔적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들은 드디어 인간 외의 거대 문명을 만나게 되었다.
비인(非人).
그것은 인간도, 초월종이나 영수도 아니면서 독자적인 진화를 이뤄낸 종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연합의 구성원 중 70%가 인간, 혹은 아인종이라면 그들은 나머지 30%를 차지하는 존재들로 현재 인간이라면 이를 가는 적대관계이다.
애초에 비인이라는 호칭조차 반인(反人)에서 완화되어 지금에 이르렀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
사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인류연합]과 비인들과의 첫 만남은 매우 온화했다고 한다. 우주에서 외계의 존재를 만나면 틀림없이 전쟁이 날 거라던 학자들의 걱정과 다르게 전쟁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스타게이트도 설치가 되기 전이었던 그 시기의 우주는 너무나 거대해 가장 이웃한 문명을 만나려 해도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만나기조차 힘든데 전쟁이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거기에다가 비인들은 우주 어디를 개척해도 자꾸 인간만 튀어나오는 현실에서 가장 [외계인다운 외계인]들이었다.
외계인을 만났을 때를 대비해 수없이 많은 준비와 매뉴얼을 준비해 왔던 인류는 기쁘게 그것을 사용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테케아 연방 측으로부터 선전포고가 도착했습니다. 즉시 세퍼드 항성계에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나가라는 내용입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보고하는 것은 부함장인 나탈리였다. 두터운 검은색 뿔테 안경에 양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몇 가지 주문을 사용해 지니와 연결, 통합망에서의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여 정리하고 있었다.
“흔히 하던 짓거리지만… 이건 냄새가 나는군.”
현일은 하얀 털을 벅벅 긁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알바트로스함이 세퍼드 항성계를 지나가던 중이긴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외곽 쪽이었으며 아스트랄 드라이버로 [투과]하던 중이기까지 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냥 넘어가는 편이 정상인 상태이다.
아스트랄계의 존재에게 간섭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아스트랄계를 비행하던 함선을 타격할 만한 공뢰는 절대 아무렇게나 뿌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현일은 아무래도 적들이 알바트로스의 항로를 파악해 기습을 준비했다고 판단했다가, 이내 거기서 한발 더 나간 가정을 떠올렸다.
“우리를 공격하면서 눈을 흐리기 위해 선전포고를 한 거라면 어떨까?”
“너무 과한 생각 아닐까요? 아무리 테라급 함선이라지만 그거 하나 때문에 선전포고라니.”
충분히 일리 있는 나탈리의 말이었지만 현일은 고개를 흔들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호위함 전부 내보내고 강철 십자 비행여단은 주변을 탐색, 하늘거인 기갑여단이 방호진을 펼치라고 해.”
“알겠습니다, 함장님.”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그대로 눈을 감는다. 그녀는 함선 누구와라도, 아니, 심지어 접근한 다른 함선의 대상과도 연결이 가능한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자였던 것이다.
‘아마 곧 녀석들이 들이닥치겠지.’
알바트로스는 언제나 조금씩 항로를 변경하며 비행하기 때문에 공뢰에 충돌하는 순간 적이 공격해 들어오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적들 역시 수십 개 이상의 공간에 공뢰를 뿌려두었을 뿐 정확한 위치를 확정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공뢰에 충돌해 폭발이 있었던 이상, 적들은 틀림없이 그것을 탐지해 추적해 올 것이다.
아스트랄 다이브는 기나긴 가속과 철저한 안전이 동반되어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라도 적을 다 물리치지 않으면 이 자리를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원 전투 준비! 망가진 부분은 즉시 수리하고 충격에 대비하라!”
포효와 같은 외침과 함께 알바트로스를 푸른색의 광구가 둘러싼다.
바야흐로 세퍼드 대전(大戰)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움직여! 더 빨리빨리 움직여!”
“마지막 점검 후 출격한다!”
“가용 가능한 모든 정비기를 주포로 보내! 어차피 엔진을 급하게 수리하긴 글렀고 주포를 약식으로라도 사용할 수 있게 해놔야 해!”
모두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투가 시작될지 모르는 분위기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한쪽에서는 수십 대의 전투기가 레일을 따라 비행하다 사출구로 쏘아져 나가고 한쪽에서는 두터운 무장을 덕지덕지 붙인 기가스들이 무장을 정비하고 사출기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오, R-13이다. 엄청 많아.’
R-13은 기급의 양산 기체에 불과하지만 동시에 레온하르트 제국군의 주 전력 중 하나이다.
어지간한 타격으로는 고장이 나지 않는 터프함과 몸의 대부분이 파괴되더라도 기동하는 높은 신뢰성, 특수 무장은 물론이고 공병장비까지 착용할 수 있는 범용성까지 갖추고 있어 오랜 시간 사랑받는 기체라고 한다.
‘아, 타보고 싶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R-13를 보며 침을 삼켰지만 당연히 탈 생각은 없다. 내가 싸이코패스도 아니고 안 나가도 되는 전쟁터에 제 발로 나갈 생각은 없으니까.
내가 죽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죽여야 하는 것도 문제다.
어차피 전쟁에 몸을 담은 건 마찬가지면서 싸우는 걸 피하는 건 비겁자라 욕먹을 짓일지도 모르지만… 가능하면 살인은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3중대! 출동하십시오!”
“3중대 출동!”
기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기가스들이 사출구로 쏘아져 나간다.
대충 비율을 보니 기급 기가스 20대당 수급 기가스가 1대씩 섞여 있다. 아마 분대장이나 소대장이 타는 기체인 모양.
나는 즉시 녀석의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거인 기갑여단]
[준비 완료된 큰범]
이건 처음 보는 기가스였다.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한 도색에 R-13보다 네 배는 커 보이는 덩치의 기가스다.
온몸을 철갑으로 둘러 싼 녀석의 양어깨에는 녀석의 큰 덩치를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큰 주포가 두 개나 달려 있다.
“포격용인가…….”
만약 내가 저걸 타면 어떨까? 하고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본다.
일단 방어 에너지를 전부 공격으로 쏟은 후-
“중대장님 나가신다! 주무장 준비해!”
“모두 물러서!”
그런데 그때 한쪽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기잉-!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기가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뭐야, 인(人)급인가?”
순간 그런 생각을 했지만 가만히 보니 대전쟁에서 봤던 맥아더, 관우, 클레오파트라 등의 인급 기가스에는 아무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방금 전 봤던 큰범과 마찬가지로 수급인 모양인데 또 같은 수급에서는 출중한 성능을 가진 모양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기가스의 머리 위를 확인했다.
그리고 멈칫한다.
“엉?”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늘거인 기갑여단]
[폭탄이 설치된 천둥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