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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6 취직, 그리고 전쟁
“뭐야. 그냥 열리잖아? 싱거운 녀석들 같으니.”
투덜거리며 복도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뒤를 들여다본다. 아무도 없다.
“흠.”
잠시 고민한다. 되돌아보면 ‘이 작업실이 그 부근이었군요’라고 말할 때 그녀의 표정에서는 경계심도 뭣도 아닌 미묘함만이 지나갔었다.
만약 그녀가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말했으면 뭔가 가치 있는 물건이 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으면 뭔가 위험한 것이 그 안에 있다는 뜻이었겠지.
그런데 그녀의 표정은 그냥 단지 미묘했다.
‘뭐지?’
그래서 호기심이 인다. 뭔가 좋지 않은 선택지를 마주했을 때의 불길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잠깐 보고 오는 것 정도야 상관없겠지.’
천천히 앞으로 걷는다.
복도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 엄청난 넓이를 생각하면, 이건 복도가 아니라 그냥 방의 일부라고 봐도 좋을 정도의 길이였다.
[뭐냐, 네놈은?]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그것과 마주했다.
“머리?”
그렇다 그것은 말하자면, 거대한 머리통이었다. 용의 비늘을 엮어 만든 것만 같은 묵직한 투구를 쓰고 있는 사내의 모습을 한 거대한 머리가 허공에 둥둥 떠 있던 것이다.
[무례하군. 너는 상대를 부를 때 신체 일부분을 지칭하나?]
강철로 만들어진 눈썹을 섬세하게 꿈틀하자 주변 공간이 지잉 하고 울렸다. 뭔가 진동 비슷한 것이 주변을 훑고 지나가서 진동이 일어난 것이다.
“오, 묘한 느낌.”
[…묘한 느낌? 뭐야, 너 괜찮아?]
기가 차다는 듯 나를 응시하는 눈동자는 뭔가에 많이 놀란 듯 동그랗게 나를 응시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이상할 테지만… 로봇 주제에 굉장히 표정이 풍부한 녀석이다.
“그나저나 넌 누구야?”
[아레스다. 전신(戰神) 아레스(Ares).]
오만한 목소리다. 세상을 깔아보듯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 따위는 알바 아니고, 그 명칭과 이름만을 생각한다.
‘전신이라?’
나는 이제 신이 실존한다는 것을 안다.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새엄마(…)가 될 지도 모르는 성계신의 힘에 의해 우주 공간으로 던져졌으며 방마다 자리하고 있는 PC에서 여러 신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구인인 내 입장에서 신의 존재는 신화나 환상의 영역이고 우주인의 존재는 SF의 영역이라 그 둘이 너무나 당연히 서로를 인지하고 살아가는 현실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질감을 느끼거나 말거나 하는 건 현실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며, 사실 냉정하게 둘 다 존재한다고 가정을 내리고 보면 과학의 끝을 본 외계인들이 신을 인지하는 게 그리 이상하기만 한 문제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신이 아냐.’
물론 신을 본 적이 없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녀석은 묘하게 [만만해] 보인다.
물론 오만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 있지만 신의 위엄 같은 건 먼지만큼도 안 보이는 것.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또 다른 존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신급 기가스?”
[그렇다! 내가 바로 아레스다!]
기가스는 신성인수기(神星人獸器)로 등급이 나뉜다.
그것은 신, 별, 사람, 짐승, 기계의 명칭을 가지며 수백수천만 대가 넘게 굴러다니는 짐승, 기계 등급을 넘어서면 그 숫자가 급감한다.
물론 사람 인(人)급의 기가스만 해도 레온하르트 제국만 2만대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위 단계인 성(星)급만 해도 오직 5기밖에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
‘그런데 신급이라?’
현재 레온하르트 제국이 보유했다고 알려진 신급 기가스는 단 1기로 레온하르트 제국의 초대 황제 레온하르트의 기가스라고 알려진 라(Ra)였다.
단 1기라지만 초월병기 넘버 92번에 빛나는, 대우주에서도 최강(솔직히 92번째인데 뭐가 최강이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의 기가스 중 하나라서 레온하르트 제국의 자랑으로 불릴 정도.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역시나 자신이 신급의 기가스라고 주장하는 녀석이 있는 것이다.
“그건… 좀 이상한 말이군. 레온하르트 제국에는 신급 기가스가 단 한 대라고 알고 있는데, 그건 네가 아니거든?”
[당연하지! 난 레온하르트 제국의 기가스가 아니니까!]
“레온하르트 제국의 기가스가… 아니라고?”
순간 위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온하르트 제국의 기가스가 아닌데 여기에 있다는 건, 어쩌면 이 녀석이 적국의 기가스이거나 어디에선가 몰래 빼돌린 기가스일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아레스는 당당히 말했다.
[나는 단지 내 몸을 되찾아준다면 한동안 돕겠다고 계약을 했을 뿐이다! 이 우주선이 돌아다니는 목적 중 하나는 다른 내 몸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지!]
호탕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다.
‘협상과 계약까지 가능하다니. 말이 좋아 인공지능이지 인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군.’
나는 녀석에게서 상당한 기백과 자존심을 읽어냈다.
만약 녀석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어쩌면 레온하르트 제국이라도 함부로 접근하지 않았을 정도로 강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
그러나 여기에 있는 건 오직 녀석의 머리뿐이며… 아무리 거대 전함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항성계조차 말아먹는 게 가능한 파괴의 화신인 신급 기가스라 하더라도 이런 상태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물론 남은 힘이 상당하고 더불어 온전한 상태가 되었을 때 녀석이 발휘할 경천동지할 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와 계약을 한 상태일 것이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냐? 내 부품을 찾지 않는 이상 이곳을 찾는 이는 없을 거라고 했는데. 뭔가 연락이라도 들어왔나?]
“아니. 전혀 아는 바가 없는데.”
[…그럼 대체 왜 온 건데?]
어이없어하는 아레스의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궁금해서.”
그렇다. 그게 다다. 뭔가 말해주고 싶어도 다른 이유가 없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렇게 들어와서 신급 기가스의 머리를 봤다면 꽤 호들갑을 떨었을지 모르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녀석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실 뭐 대단해 봐야 내 기가스도 아니니 별 상관도 없겠지만.
‘에이, 그냥 R-13같은 거나 좀 있었으면 타보는 건데 뜬금 터지게 뭔 신급 기가스야.’
투덜거리며 몸을 돌리자 아레스 녀석이 깜짝 놀라 나를 부른다.
[어이! 어디 가는 거야?]
“어디 가기는. 돌아가는 거지. 뭔가 하고 왔는데 별일 아니었네.”
[벼, 별일이 아니라고? 야, 인마, 잠깐! 야!]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대로 걸어 복도를 나선다. 호기심을 풀었으니 되었다.
“닫혀라, 참깨.”
그긍---- 킥!
최초 열릴 때보다는 약간 더 부드럽게 문이 닫힌다. 아무래도 꽤 오랫동안 닫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는 뭐 별거 없었다. 바로 집에 돌아온다.
“열어줘.”
[네, 관대하 정비관님… 신원 확인되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은 동민이 경호를 맡았지만 기본적으로 말이 별로 없는 녀석인데다가 남정네 둘이었던 만큼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그냥 그대로 집 안에 들어와 도서관에서 돌아온 보람과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가서 게임을 켠다.
“흠. 생각해 보면 아까 너무 충동적이었어. 이 좋은 평화를 깨버릴 위기였을지도.”
기본적으로 귀찮은 일에는 접근조차 안 하는 내 성격을 생각해 보면 그 복도 안으로 들어간 것도 상당히 돌발적인 일이었다.
아무래도 몇 주간의 평화가 내 간덩이를 키워놨었던 모양이다.
[와, 무명 님 오셨군요! 오늘 같이 한판 하실래요?]
[무명 님, 레이드 몹으로 살육성좌(殺戮星座)가 나왔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ㅠㅠ]
[안 돼, 안 돼. 무명 형은 나랑 같이 암흑마룡을 잡으러 가야 한단 말이야! 이 망할 게임이 노블레스들한테 고소 처먹으려고 암흑마룡을 집어넣네. 존나 쎄. 과연 신이구나.]
[야, 이 등신아. 암흑용신하고 암흑마룡하고 전혀 다른 놈이거든?]
[어쨌든 미친 듯이 세! 아, 나도 신기 좀 얻고 싶다!]
로그인과 동시에 너도나도 말을 걸어온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게임의 유저가 아니라 여러 게임을 플레이하는 알바트로스의 선원들로 아바타 상태로 반투명하게 그 모습이 보인다. 여러 가지 게임에 접속하기 위한 대기 채널에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알바트로스의 탑승자는 1만 명이 넘고 십 년이 넘는 장기 작전을 수행하는 중이다. 그 지루하고도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한 오락거리가 있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고, 그 오락거리를 1만 명의 다른 승무원과 함께하기 위해 온라인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오늘은 블레이즈 오브 스톰을 해야지.’
쏟아지는 귓속말을 대체로 무시하고 십수 개의 게임 중 하나를 골라 접속한다. 게임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귓속말에 일일이 대답하다 보면 게임 못한다.
[오! 이게 소문의 무명씨인가?]
나는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이름 란을 공란으로 비웠다. 딱히 여기에서 이름으로 유명해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갖 게임의 랭킹을 죄다 갈아치우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을 선보이면서, 우연히 맵핵과 치트를 쓴 적조차 짓밟으면서 내 존재가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아이디가 공란이어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이름 없는 자 무명(無名)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앙전선 갑니다. 혼자 가요.”
[뭐? 중앙전선을 혼자 간다니 미친 거 아냐? 현실에서 어떤 능력자신지는 모르겠는데 여기서는 다 1레벨의 입문 능력자에서부터 시작하거든요?]
매번 그랬듯 대번에 반발이 튀어나온다.
블레이즈 오브 스톰은 전쟁 게임으로 100명의 유저가 각각 50명씩 팀을 나눠 적군을 무찌르는 전쟁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중앙전선은 중립 몬스터와 병사 NPC가 가장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저들 역시 50명 중 10명 이상이 모여든다. 혼자 가면 아무것도 못 하고 죽는 게 정상이니 나 역시 초반에는 여러 전선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역할을 수행해 봤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명성이 쌓였으니까. 과연 아군 중 일부가 고개를 흔든다.
[하하하하! 그래! 어디 무명씨 실력 한번 볼까!]
“고마워. 대신 다른 전선은 인원이 추가되었으니 쉽사리 밀 수 있겠지?”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걸로 현실에서 정체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가 내는 목소리는 스스로의 목소리가 아니니까 우리가 선택한 영웅들의 목소리였으니까.
나는 활과 화살을 샀다. 대번에 귓가가 시끄러워진다.
[아니, 저게 뭐야!? 왜 1레벨에 활하고 화살을 사? 기본 자금으로 활 사면 화살을 3개밖에 못 사! 원샷 원킬이 될 리도 없지만 돼도 3킬이 전부인데? 진짜 타워에 서서 적 견제만 하면서 경험치만 먹으려고 하나? 돈 하나도 안 벌고?]
물음표 가득한 말이 난무했지만 당연히 신경 쓰지 않는다.
퍼억! 퍼억! 퍼억!
[--님이 알테어 님을 처치했습니다!]
[--님이 세라 님을 처치했습니다!]
[--님이 알라딘 님을 처치했습니다!]
[--님이 서영 님을…….]
그냥 묵묵히 적을 해치울 뿐이다.
[악! 뭐야! 이게 뭐야! 무슨 궁수가 이렇게 가까이에서 싸워?]
[익, 시바! 묘하게 멀어서 검이 안 닿아! 거, 검기만 뿜으면… 제기랄, 1레벨이라 아무것도 못해! 게임 캐릭터가 내 본신보다 약한 타이밍에 이러는 게 어디에 있어?]
[이런 미친! 근접해서 싸우다가 화살을 회수해서 다시 쏜다고??]
[으아, 망했어! 게임 터진다! 저놈 벌써 숙련자야! 이러다 완성자 되겠다!!]
학살의 현장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마냥 쉽게 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모두 평등한 입장에서 시작하고, 숫자에는 장사 없는 법이니까.
내가 이렇게 유리한 건 철저하게 [검은 안 닿는 근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지 못해 포위당하면 바로 죽는 게 당연하고 아무리 사격을 잘해도 적들이 갑주 트리를 올려 버리면 일반 활질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즉, 나는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애초에 모두가 공평한 입장에서 시작하는 이런 게임에서 한 명이 다수를 압도하려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노릴 수밖에 없고 이런 극 공격 패턴은 킬을 따기는 좋은 대신 한 발만 삐끗해도 그냥 나락이다.
그러나… 나는 발을 삐끗 하기는커녕 외줄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묘기를 하다가 마침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나댔기 때문일까?
[야, 저놈 죽여! 여기서 안 끊어서 저격 궁극기 배우면 난리난다!]
[뒈져라! 십자가의 검!]
막 완성자에 오르려는 그 순간 후방에서 스무 명의 적이 나타났다.
이 미친놈들이 정글을 삥 돌아 그냥 포탑한테 얻어맞으면서 후방에서 덤벼든 것이다!
‘아뿔싸, 아직 숙련자인… 응?’
당황하며 어차피 죽을 거 한 놈이라도 죽이고 죽으려고 활을 들다가 경험치를 확인한다. 98%였다.
[시바, 오버 골드는 내 거야!]
[아냐, 내 거야!]
[뒈져라! 원수!]
몰려드는 적들은 전부 갑주 트리를 탔다. 포탑한테 맞고 있는 녀석은 그냥 그 자체가 임무인지 저 뒤에 있어서 공격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유저를 죽이는 걸 포기하고 한 발짝 물러서며 마침 서로서로 싸우느라고 에너지가 별로 없던 병사 NPC를 살해한다.
[--님이 완성자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텍스트가 떠오르는 순간 궁극기가 생성된다. 8개의 궁극기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고, 나는 그중 하나를 골랐다.
“궁극기. 아리넨의 발걸음.”
가볍게 속삭이자 몸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한 발짝 걷자 팀원들을 대신해 포탑에게 얻어맞고 있던 중갑병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여기까지가 딱 0.5초 내외였다.
퍼억!
그냥 아무 데나 맞춘다. 어차피 타워한테 하도 많이 맞아서 피도 없었다.
[억! 안 돼!]
[도망… 크악?!]
다음으로 타워한테 얻어맞기 시작한 녀석의 발등에 화살을 꽂아버린다. 처치는 타워가 대신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 녀석, 다음 녀석, 다음 녀석…….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하지만 아리넨의 발걸음을 익힌 내가 타워 주위를 뱅뱅 돌고 있으니 근거리 위주의 녀석들로는 답이 없다. 하나둘씩 타워에게, 그리고 나에게 얻어맞아 죽어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적 중에 한 명이라도 추적형 궁극기나 타게팅 형태의 마법을 익혔다면 회피고 뭐고 그냥 죽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나보다 레벨이 높은 녀석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이게 뭐야…….]
[와, 말도 안 돼……. 지금 적이 뒤에서 나타나는 순간 적 대신 병사를 쳐서 레벨업을 한 다음 이동형 궁극기를 찍어서 뒤쪽 중갑병을 죽인거야? 그다음 타워 허깅하면서 다 조지고?]
[침착성은 둘째 치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판단 능력이냐…….]
[죽을 듯 안 죽을 듯 절대 안 죽네…….]
[블레이즈 오브 스톰에서 1vs20이 웬 말이냐…….]
기막혀하는 목소리는 환호의 목소리보다 다디달다. 아아, 게임하는 맛 나는구나! 이런 거 즐기면 안 되는데…….
[승리했습니다!]
당연하지만 이겼다.
그리고 쏟아지는 채팅을 대충 넘기고 게임을 종료한다.
“아이고, 힘들어…….”
헬멧을 벗고 침대에 늘어진다. 극도의 집중 상태를 유지하느라 어지러웠지만 충족감이 가득하다.
“역시 난 천재야. 근거리 활질 할 만하군. 적들이 숙련자만 돼도 답이 없지만 그전에 조지면 된다.”
하나의 발상이나 전략을 떠올리고 그걸 실현시켰을 때의 쾌감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이 가상현실 게임들의 체험감은 지구에서 하는 게임들과 비교 자체를 불허한다.
“으으, 그러고 보니 지구에는 가상현실 게임이 없잖아……. 으으, 갑자기 지구로 돌아가기 싫어지네.”
분명 여기 올 때만 해도 너무너무 싫었고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직장에서 꿀을 빨고 가상현실 게임을 하게 되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그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민은 물론이고 보람 역시 그다지 집에 돌아가고 싶은 기색이 없다. 여기에서의 삶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녀석들은 나와 달리 도서관이라든지 훈련소라든지 하는 것들 때문인 것 같지만 중요한 건 결국 잘 적응했다는 것이다.
“이것 참, 의외로…….”
피식 웃으며 중얼거린다.
“살 만하구만. 불안할 정도로.”
처음에는 ‘학교 이렇게 빠져도 돼?’, ‘으아, 삼 일이 지났어’, ‘으아, 일주일이 지났어’ 뭐, 이러고 있었는데 슬슬 ‘이왕 휴학한 거 한 1년 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우~ 자야지. 내일도 일하려면.”
어느새 새벽 4시가 넘었던 만큼 침대 위에 쫙 늘어진다.
그런데 그때였다.
쿵----- 우르릉---!
“우왁!?”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책상 위의 물건들이 바닥에 쏟아진다.
그러나 우주선 안에서 지진이 일어날 리 만무하지 않은가?
황당해하는데 급박한 목소리의 방송이 조용하던 방을 울린다.
[전원 1급 전투 배치! 전원 1급 전투 배치! 이것은 훈련 상황이 아니다! 반복한다! 이것은 훈련 상황이 아니다! 전원 1급 전투 배치하여 명령에 대기하라!!]
들려오는 방송에 깜짝 놀라 통합망에 접속해 긴급 공지를 확인한다.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거기에 떠오른 정보는 매우 짧았지만, 그 내용이 매우 심각하다.
“…그럼 그렇지.”
순간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놀라고 당황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보다 한숨이 터져 나온다.
이유는 모르지만…….
왠지 이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을 이 배에 타는 그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던 듯한 기분이다.
나는 공지사항을 읽었다. 그곳에는 [테케아 연방 기습 공격 후 선전포고!]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그래, 내 인생이 그렇지 뭐.”
다시 한 번 한숨 쉰다.
그렇다.
전쟁이었다.
-당신의 머리 위에 1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