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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24화 (2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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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6 취직, 그리고 전쟁

“개꿀이네?”

“무슨 꿀이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문 옆에 기대고 있던 보람이 벽에서 등을 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호위 역을 맡고 있는 보람과 동민은 번갈아 가며 나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이 생활 자체가 말이야.”

별로 당황하지 않고 답한다.

사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우리들 사이에서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아~ 선배 말이 맞아요. 외계로 나온 거라서 잔뜩 긴장했는데, 심지어 1급변신까지 허가하고 이런 평화라니. 심지어 벌써 3주째예요. 집에는 언제나 가련지.”

투덜거리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어깨까지 늘어진 물결 모양의 파마머리와 약간은 작은 키를 가진 그녀는 누가 봐도 벌레 한 마리 잡지 못할 것 같은 미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작고 귀여운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그녀의 토끼 모양의 핀과 토끼 모양의 손목시계는 그런 그녀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한다.

‘그런데 이런 녀석조차 나 정도는 단매에 때려죽일 강자란 말이지.’

그냥 흘러흘러 이런 상황이 되긴 했지만 참 특이한 경험이다.

무려 [마법소녀]씩이나 되는 녀석이 나를 경호한다고 매일 붙어 있다니.

“뭘 봐요?”

“…야. 너 처음 만났을 때랑 이미지가 완전히 다른 건 알지?”

“원래 여자들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터벅터벅 걷는다.

우주선 안이라지만 중력은 충분히 존재했다. 지구의 중력보다는 약한 것인지 미묘하게 몸이 가벼운 느낌이었지만 그리 심한 차이는 아니다.

[거주구역에 도착했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래. 고마워, 지니.”

엘리베이터의 한쪽에 뜬 지니의 SD캐릭터(Super Deformation Character. 2등신 혹은 3등신으로 표현되는 사람 형태의 캐릭터)를 향해 손을 흔듦과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지상이 드러난다.

물론 지상(地上)이라는 표현은 사실 정확하지 않다. 아무리 엘리베이터를 타봐야 우주선인 알바트로스 안인데 어찌 땅 위로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드러난 광경은 충분히 지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만 한 수준이다.

“언제 봐도 대단한 규모야.”

“그러게 말이에요. 말이 좋아 거주구역이지 어지간한 마을보다 커요. 산책 삼아 한 바퀴 돌아봤는데 걸어서 돌면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리더라고요. 선내라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죠.”

우리가 지구를 떠나 가장 먼저 도착했던 장소는 알바트로스함의 승강구 중 하나로, 우주선의 내부라는 SF적인 환경에 충분히 부합될 만한 곳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바닥과 착륙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우주선들, 무엇보다 두꺼워 보이는 유리벽 밖으로 보이는 지구의 모습까지.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장소는, 만약 맨 처음 도착한 곳이 여기였다면 우주로 왔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않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우주선]이라는 개념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레온하르트 제국에도 20대밖에 없는 테라(Tera)급 함선이라고 했지. 함선 내에서 거주하고 있는 탑승자의 숫자만 해도 1만 명이 넘어간다고도 했었고.”

놀랍게도 거주구역에는 수백 채 이상의 건물이 둥그렇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중심부에는 마치 지구의 도시들이 그러하듯 편의점이나 식당 등은 물론이고 각종 스포츠가 가능해 보이는 커다란 운동장까지 존재했으며 아래로 보이는 도로에는 상당한 수의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다. 차도가 있어 자동차와 비슷한 탑승물들이 달리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천정의 거대한 디스플레이가 파랗게 빛나 [하늘]을 구현하고 있어 눈여겨보지 않았으면 우주선 안이라는 걸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모를 정도다.

“동민은 뭐 하고 있지?”

“늘 그렇듯 수련이죠. 여기서는 초능력이나 이능이 전혀 비밀이 아닌데다가 트레이닝 룸이 잘 갖춰져 있고 능력자도 많아서 돈만 내면 개인교습까지 받을 수 있거든요. 게다가 도서관도 완전 개방되어 있어서 지구에서는 억만금을 주고도 못 구할 최상급 정보들이 돌멩이처럼 굴러다녀요.”

세상에, 군인이라면 다들 하나쯤 이능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라니, 하고 중얼거리는 보람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열어줘.”

[네, 관대하 정비관님……. 신원 확인되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 집을 관리하는 인공지능이 거주자인 내 신원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준 것이다.

삑삑!

그리고 그때 보람의 시계가 울린다. 보람은 미묘한 표정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일당 들어왔네요. 200게럴트.”

“340만 원이네.”

“정말 지나칠 정도로 사원복지가 철저한 외계인들이에요. 솔직히 선배야 여기에서 일하고 있으니 돈 받는 게 당연하지만 저랑 동민 선배는 뭘 한다고 챙겨주는 걸까요? 솔직히 말이 좋아 호위고 경호지 이 우주선 치안 상태 완전 좋아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게 없는데.”

테라급의 거대 전함 알바트로스는 1만 명이 넘는 탑승자를 태우고 있는 상태고 그 안의 거주 형태는 마치 도시의 그것과 비슷하다.

어떤 도시에 사람 하나 이사 왔다고 도시 사람들이 다 아는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우주선에 탔다는 사실 자체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외계인들이라고 해봐야 태반이 인간이어서 겉모습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냥 원래 타고 있던 승무원인가 보다, 하고 다들 그냥 잘사는 것이다.

‘반면 셀 녀석은 상황이 전혀 달랐지.’

우리가 처음 이 함선에 도착한 날 세레스티아의 정체가 황녀라는 게 밝혀지며 난리가 났었고, 그 소란은 적어도 일주일 이상 유지되었다. 그냥 길을 걸어가도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들의 말에 따르면 세레스티아는 레온하르트 제국의 정상에 위치한 현 황제 앙겔로스 3세의 네 번째 딸이자 전 우주에서도 이름이 쟁쟁한 아이돌 가수라고 한다.

‘도대체 그런 녀석이 왜 중립국의 군부대에 들어가 돌격병 같은 걸 하고 있는 건지.’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제국의 배에 탔으니 곱게 내려줄 리가 없다.

세레스티아 녀석은 단숨에 이 배 최고의 귀빈이 되어 일종의 사원 아파트 비슷한 건물에서 사는 우리로서는 얼굴조차 보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너무나 당연히 알레이나에게 어떻게 황녀님을 만났냐는 추궁을 당했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애초에 난 그녀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녀석도 참 재수가 없다고 할 수 있겠네.’

굳이 중립국의 돌격대에 들어가 있었다는 건 황녀로서 대접받으며 사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뜻인데 하필이면 우리 일행에게 엮여 강제적으로 텔레포트 되어버렸으니 지금 상황은 납치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게다가 녀석은 나에게 휴가 중이라는 단어를 썼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서 복귀를 안 하면 그건 탈영이다,

“다녀왔군.”

집 안에는 동민이 있었다. 한쪽에서 물구나무를 서서 팔굽혀펴기를 하던 녀석은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가볍게 몸을 튕겼다.

‘와, 저게 말이 되냐.’

물구나무 상태에서 손목의 힘만으로 휘릭 하고 한 바퀴 돌아 서는 동민의 모습에 혀를 내두른다.

극도로 단련된 동민의 전신 육체는 잘게 쪼개지고 압축되어 보는 사람을 위축되게 하는 흉기나 다름없는 외양을 하고 있다.

몸 좋아하는 여자들이 본다면 꺄악~ 하고 비명을 질러도 이상할 게 없는 광경인데 보람은 마치 흔히 봐왔던 걸 여기 와서 또 본다는 표정으로 묻었다.

“흐음~ 동민 선배는 초능력자면서 왜 이렇게 몸을 단련하는 거예요? 아무리 노력해 봤자 결국 이능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는 게 육체 단련 아니에요?”

“맞는 말이지만 나는 몸으로 직접 싸우니까. 회로가 너무 많이 열려 무공도 생체력도 익힐 수 없으니 초능력을 받쳐 주기 위해서라도 육체의 단련은 필요하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녀석의 전신을 타고 흐르고 있던 땀들이 훅, 하고 사라져 몸은 물론이고 머리카락까지 뽀송뽀송해진다. 말 그대로 편리한 능력이었기에 약간은 부럽다고 생각하며 한쪽 벽에 손을 내밀자 벽에 여러 가지 음식이 떠오른다.

터치스크린 같은 건 아니었다. 아니 뭐, 지금처럼 터치스크린 역할도 할 수 있지만 [힘]을 실어 지니를 부른다면 음성 인식 시스템이 가동되고 그렇게 되면 음성으로 주문이 가능한 것이다.

‘망할 마나. 무슨 외계인들이 개나 소나 마나를 써.’

당연하지만 칭호를 볼 수 있을 뿐 먼지만 한 마나도 없는 나는 언제나 직접 움직여서 화면을 터치해야 한다. 사적 공간에 음성 인식 시스템을 장치해 놓으면 도청의 우려가 있어 평소에는 비활성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으, 역시 여기 물가 너무 비싸네.”

“비싸 봤자 일도 안 하는 주제에 받는 일당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

“그건 그렇지만… 뭐, 어쨌든 평소대로 시킨다.”

알바트로스함에서는 기본적으로 선원들에게 조식과 중식을 제공하지만 석식은 알아서 사 먹어야 한다.

음식 값은 2.5게럴트의 기본식에서 10~50게럴트의 고급 메뉴까지 다양했는데 현재 환율이 1게럴트에 1만 7,000원이라는 걸 생각하면 절대 만만한 값은 아니었다. 지구 시점에서 보면 5,000~8,000원 사이로 보이는 식단이 2.5게럴트니 한 끼에 최소 4만 원 이상은 쓰는 셈이니까.

물론 지구 내에서도 물가 차이가 수십 배도 난다는 걸 생각해 보면 문명 수준 자체가 다른 외계와 지구에서 이 정도 차이는 애교라 할 만하다.

동민의 말대로 우리가 받는 일당에 비하면 별게 아닌 것도 사실이고.

파앗! 파앗!

나는 스크린을 조작해 돈가스와 김치볶음밥, 그리고 된장찌개 정식을 시켰다.

외계 함선씩이나 와서 이런 것들을 먹고 있는 상황이 웃기지만 우리 일행은 대체로 먹을 걸로 모험을 안 하는 스타일이었고 뜻밖에도 이런 식사들 역시 매우 잘 나왔다.

“와, 이 된장찌개 누가 만드는 걸까요? 어머니의 손맛이네요.”

“글쎄. 기계들이 만들려나. 아니면 지구 출신 요리사가 있으려나.”

소소한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한다. 우리 셋 다 서먹서먹한 관계였지만, 아무래도 함께 3주나 같이 먹고 자고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친해지게 된 것이다.

그 후 흩어져 각자 훈련을 하든 공부를 하든 자유 시간을 보낸다. 내 경우에는 주로 웹서핑을 하며 외계의 음악이나 문화를 경험하거나 게임을 다운받아 플레이하느라 최근 정신이 없고 보람은 도서관에 틀어박혔으며 동민은 무술 수련을 다녔다.

그리고 밤이 되면 각자의 방에 들어가 수면을 취한다.

“이것 참.”

나는 중얼거렸다.

“평화롭군요.”

“하하하. 그래서 불편한가요?”

“아뇨, 매우 편하죠.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나 불안할 정도로요.”

“그런 말씀 마세요. 기술부장님께서 대하 님이 아주 큰 도움이 된다고 몇 번이고 칭찬하셨는데. 요번에 대하 님을 발견하고 스카우트한 공적이 쌓여서 드디어 소령이 될 수 있게 되었을 정도예요.”

“앗, 축하드립니다.”

“후후, 감사합니다.”

나는 오랜만에 알레이나를 만난 상태였다.

내가 찾아간 건 아니고 내 작업실로 그녀가 찾아온 상태였다. 그녀는 인사과장이었고 나를 관리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최근에 뭐 힘든 일은 없으시고요?”

“일은 별로 힘든 게 없고 저를 괴롭힐 상사 같은 것도 없네요. 그러고 보니 저는 앞으로도 계속 혼자서만 일하게 되나요?”

내 물음에 알레이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물론 기술부장님이 대하 님께 맡기신 일이 있으니 한동안은 그렇겠지만 아마 어느 정도 일이 정리되면 기술부로 배치될 겁니다. 물론 기술부장님의 속을 제가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패드에 이런저런 내용을 입력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문득 물었다.

“아, 그런데 과장님. 제 작업실 한쪽에 있는 문은 대체 뭔가요? 지니에게 물어봐도 답해주지 않던데.”

아닌 게 아니라 내 작업실에 있는 커다란 문은 요새 내 최고의 관심사다.

그리 작지 않은, 탱크는 물론이고 전투기도 우습게 오갈 것 같은 큰 문이 마치 한쪽 벽처럼 자리하고 있는데 황당하게도 그 입구 근처에서는 지니를 불러도 응답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그 근처는 접근할 권한이 없는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작업실이 그 부근이었군요.”

알레이나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부근이요?”

“하하하.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안 열릴 문이니까. 슬슬 퇴근 시간이고 하니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그렇게 말하면 더 신경 쓰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난다. 그녀 역시 바쁜 몸이어서 자주 보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인사과장님이 나가셨군요. 이것으로 일과는 끝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하 님.]

언제나와 같이 지니의 인사와 함께 일당이 지급된다.

근무시간이 끝난 만큼 지니의 메탈바디와 정비기계들 역시 작업실 한쪽 벽 안의 케이스에 들어가 작동을 정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허공을 보며 물었다.

“혹시 지니, 저기 저쪽 끝에 있는 문이 뭔지 알아?”

[죄송하지만 말씀 드릴 수 없는 내용입니다.]

“기밀사항인가?”

[그렇습니다.]

“흐음.”

나도 모르게 작업실 한쪽으로 간다. 너무나 거대한, 그래서 처음에는 문인지도 몰랐을 정도의 문이 보인다. 좌우로 열리는 방식인데 온통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 두께가 가늠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침투는 불가능해 보이는 곳이다.

“아, 궁금병 도지네. 큰일이다.”

벽에 손을 대본다. 분명 재질은 금속인데 은은하게 온기가 도는 문은 굳건하기만 하다.

“뭐, 확실히 어차피 안 열릴 문이면 신경 쓸 필요가 없긴 한가.”

슬금슬금 치밀어 오르는 호기심을 누르며 몸을 돌린다.

그리고 그러다, 무심코 중얼거린다.

“열려라 참깨.”

그때였다.

그그그그긍---- 키기긱!

“엑? 억? 엥?”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열리는 문에 당황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문은 완전히 다 열려 탱크 세 대는 나란히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뭔 일이 터지나 하고 잠시 몸을 움츠린 채 주변을 살피던 나는 단지 문이 열렸을 뿐 다른 어떤 변화도 없다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꼈다.

“뭐야, 그냥 열리잖아? 싱거운 녀석들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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