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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6 취직, 그리고 전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
작게는 학교를 옮겨 전학을 하는 것부터 크게는 입대해 군인이 되는 것까지 새로운 환경은 언제나 새로 들어온 신입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안겨주게 마련이니까.
알지 못했던 사람, 새로운 룰, 익숙하지 않은 일 등을 받아들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며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니, 저기 171번째 총기랑 3,141번째 총기 명중률 관련해서 테스트해 주겠어? 그리고 저기 7번 엔진의 경우는 그냥 버려. 내구도가 불량이야. 아, 그리고 저기 저 계측기인가 하는 건 어디 보자, 이 부품하고 이 부품을 교체하고.”
그러나 내 경우에는… 너무 쉽게나 적응했다.
당연하지만 내가 적응력이 높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맡은 일이 너무 쉬웠으며, 기술부장인 니단이 내 능력을 어느 정도 숨기는 게 좋겠다고 판단, 외부인의 접촉이 적은 작업실을 내줬기 때문이었다.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작업실에 있는 건 나 혼자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 혼자는 아니고 내가 타고 있는 테라급의 함선, 알바트로스의 관제인격인 지니(Genie)가 실질적인 정비와 수리를 하고 있었다.
“저기 근데 지니, 꼭 그런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해?”
나는 작업을 시작하는 지니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본디 그녀는 생명체가 아닌 프로그램일 뿐이지만, 지금 내 앞에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는 나와 비슷하다. 포니테일로 길게 늘어뜨린 갈색 머리칼은 중력과 무관하게 찰랑거리며 떠 있고 연한 갈색의 눈동자에 유려한 얼굴선 때문에 우아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기품 있어 보이는 인상인데, 문제는 몸매와 복장이다.
‘이게 무슨 컵이야. 짐작도 안 간다. 소문으로 듣던 G컵이나 H컵이 이런 건가? 아, 아니, 어차피 영상인데 이런 거에 신경 쓰면 지는 거?’
알레이나가 요염함으로 인간의 끝에 도달했다면 인간을 넘어선(……) 몸매를 가진 그녀는 황당하게도 이 우주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다.
마치 사막의 무희들이 입을 것만 같은, 하체는 속이 은은히 비치는 천을 두르고 상체는 손바닥 네다섯 개만 한 크기의 천을 이어 만든 것 같은 조끼와 목에 거는 형식의 가슴 가리개를 걸쳐 허리와 배꼽은 물론이고 속가슴까지 훤히 보이는 파격적인 노출을 선보이는 것이다.
목소리만 들으면 회장님 비서 같이 차분하고 단호한 느낌을 주는 그녀가 저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내가 시선 둘 바를 모르는 상태.
그러나 지니는 익숙하게 답한다. 아마 나 같은 질문을 한 녀석이 많았던 모양이다.
[제 캐릭터 이미지(Character Image)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제작자님의 취향이 반영된 영역이어서 저로서도 접근할 권한이 없습니다. 기본 세팅의 메탈 바디(Metal Body)가 드러나겠지만 보기 불편하시다면 위장을 지워 드릴까요?]
“아니, 뭐 그럴 필요까지야.”
[그렇다면 다시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능숙하게 작업을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눈이 반짝이자 작업실 한쪽에 있던 정비기계들이 움직여 내가 지적한 기기를 치워내고 그녀는 두 개의 총기를 걸러내 능숙하게 분해하더니 검사를 시작한다.
철컥! 기이잉!
들려오는 금속음을 들으며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댄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기계들을 수리할 능력이 없었고 그 과정은 전부 그녀와 정비기계들이 대신했다.
지구의 기술로는 감히 구현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완벽한 인공지능인 지니와 나노 단위의 조작조차 가능할 정도의 성능을 가지고 있는 정비기계들이 있으니 사실 기술적인 문제는 전혀 걱정할 게 없다. 문자 그대로 손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긴 그래서 이 배에 기술부장은 있어도 정비부장은 없는 거지만.’
기술적인 대부분의 요소는 인공지능과 기계들이 커버 가능하다. 다만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도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술부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수년에서 십 년 단위의 장기 작전을 목표로 만들어진 알바트로스함에서 자체적인 업그레이드 능력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전부 정확합니다. 심지어 총기의 명중률 불량을 일견하는 것만으로 알아채는 능력은 정말 놀랍군요. 수천 정 중에 두 정. 그것도 약간의 오차였는데 말이에요.]
“뭐, 고치는 건 결국 다 네가 하잖아.”
[그건 알바트로스함의 관제인격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성실한걸. 아, 그런데 질문 좀 해도 돼?]
[물론입니다, 대하님.]
지니가 알바트로스함 내부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중계기와 비슷한 메탈바디가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그녀와 잡담을 시작했다.
지니는 인공지능이었기 때문에 저기 메탈바디에도 있지만 지금 내 옆에도 있으며 동시에 알바트로스함 모든 곳에 존재하며 사람들의 편의를 돌봐주고 있었으니 일을 하며 나와 이야기 나누는 것쯤은 너무도 간단하다.
“데트로 은하 연합에 대해서 말해줄래?”
[어떤 지식을 원하십니까?]
“보편적인 지식.”
나는 과거 세레스티아를 보았을 때의 칭호를 떠올렸다. 그리고 칭호 위에 있던, [데트로 은하 연합 4군단 제1돌격대]라는 소속 역시.
칭호는 현재 그 사람을 대표하는 상태를 보여주며 소속은 현재 그 사람이 들어가 있는 단체를 보여준다. 즉 그녀는 레온하르트 제국의 황녀이지만, 실제로 지구에 왔을 때 데트로 은하 연합 4군단의 제1돌격대에 속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또 다른 사람에게서 같은 소속을 보았다.
‘알레이나…….’
레온하르트 제국의 인사과장인 알레이나는 드러난 것 외에도 다른 소속 단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데트로 은하 연합 4군단 제1암살대]라는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대충 들어본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10년 가까이 알바트로스함에 탄 상태라고 하는데 여전히 소속이 저 암살대인가 뭔가 하는 데 들어가 있다는 것은 그녀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의 본분을 전혀 잊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데트로 은하 연합은 데트로 은하에 자리 잡은 행성들이 서로 연합해 만든 세력으로 우주 전체의 중심이라고 해도 무방할 교통의 요지입니다. 중립국으로서 많은 나라가 손에 넣고 싶어 하면서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할 정도의 강대국이기도 하죠.]
“교통의 요지?”
다른 단어보다 그 단어가 너무나 신경 쓰였다.
“우주에 교통의 요지 같은 게 있어? 그냥 날아가면 그만 아닌가?”
물론 바다에도 길이 있고 하늘에도 길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우주에서 교통의 요지라고 할 만한 장소가 존재할 수 있다니.
의아해하는 나에게 지니가 설명한다.
[대하님. 그냥 날아가서는 은하에서 다른 은하로 가는 데 이론상 수천 년은 걸립니다. 테라급 이상의 우주선에나 설치가 가능한 아스트랄 드라이브(Astral Drive)를 가동해 중첩가속(重疊加速)을 최대 출력으로 뽑아낸다 하더라도 최소 5년은 걸리죠. 거리가 먼 항성 간 이동을 위해서는, 또 은하 간 이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스타 게이트(Star gate)가 필요합니다.]
“스타 게이트라… 흔히 말하는 워프 게이트 같은 건가?”
[비슷합니다. 항성들 간의, 그리고 은하 간의 거리를 줄여주는 차원의 문이지요. 특히나 은하 간 게이트는 클래스 텐의 마왕급 마법사들만이 설치할 수 있어서 우주에서도 흔치 않지요.]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이제야 교통의 요지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 결국 데트로 은하 연합이라는 곳이 교통의 요지라는 것은…….”
[예. 수십 개가 넘는 항성 간 게이트와 3개나 되는 은하 간 게이트를 가진 곳이 바로 데트로 은하 연합입니다. 상주하고 있는 대마법사가 100명에 가까운 강대한 세력으로 대우주 최고의 학문기관인 우로보로스(Ouroboros)가 자리하고 있는 세력이기도 하죠.]
“즉 적도 아군도 아니지만 강대한 세력이다?”
[규모 자체로 보면 수많은 은하를 지배하고 있는 레온하르트 제국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세력이지요. 현재 레온하르트 제국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왕래도 자유롭고요.]
그녀의 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좀 불안했는데 적국이 아니라니 다행이다.
“그럼 테케아 연방은?”
[레온하르트 제국과 인접하고 있는 연방국가입니다. 레온하르트 제국과는 크게는 5번, 작게는 셀 수 없이 싸워온 오랜 적이지요.]
“왜 적이지? 같은 [연합]이라면서.”
보통 사람이라면 짜증을 낼지도 모를 정도로 자잘한 질문들이었지만 지니는 성실하게 이런저런 내용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 우주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족은 [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범우주적인 단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물질계 밖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 그러니까 천족이나 마족, 혹은 신들같이 도저히 감당 불가능한 재앙 같은 존재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연합이라는 거대한 이름으로 묶여있다고 해도 우주는 끝없이 광대하고 그 구성원의 숫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 안에는 십여 개가 넘는 제국과 연방, 수백 개가 넘는 왕국과 자치령이 존재하지요. 연합의 힘은 연합법의 행사와 범우주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만 발휘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구에 있다. 북한도 지구에 있다. 하지만 둘 다 지구에 있다는 이유로 이 두 나라를 [아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연합이 우주의 대부분의 세력을 품었다 해도 그 억제력은 그리 강하지 않다. 그 구성원들의 개성과 사고방식이 각각 다 다르며 서로의 원한이 골수에 뻗쳐 도저히 화합이 불가능한 세력들 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두 연합이라고 해도, 그 소속감이란 극히 희박하다. 모두 지구에 살아도 외계인이 나타나기 전에는 지구인이라는 것 자체에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은 것처럼.
[아, 작업이 종료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일과는 끝이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대하님.]
“수고는 네가 다 했지, 뭘. 혹시 문제가 있으면 연락 줘.”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작업실을 나선다. 그리고 그와 동시였다.
삑삑!
알바트로스에 취직(?)하면서 받았던 전자시계 형태의 통신기에 [3,000게럴트가 입금되었습니다]라는 텍스트가 떠오른다.
황당하게도, 이곳에서의 급여 형식은 일당이었던 것이다.
“어디 보자, 현재 시각 1게럴트가 1만 7,000원…….”
마법소녀인 보람이나 초능력자인 동민 모두 외계인의 존재를 모르기는 했지만 그거야 녀석들이 권력과 인연이 없어서일 뿐 아무래도 각국 최고위층에 가면 외계의 존재를 알고 협력하는 이가 상당수 존재하는 것 같다.
안 그렇다면 이렇게 환율이 정해질 리 없으니까.
심지어 통신기에 표시되는 환율이 매일 조금씩 변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실시간인 모양.
나는 무심코 계산했다.
“5,100만 원이라니… 하루 5시간 일해서 일당이 5,100만 원이라니… 어허허허.”
기가 차서 헛웃음 나온다.
솔직히 내가 뭘 하는가?
출근 시간이라고 해봐야 아침도 훨씬 지나서(물론 해가 뜨는 건 아니지만 놀랍게도 이 녀석들의 시간개념은 지구와 똑같이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었다) 10시쯤이었고 몇 개 좀 둘러보다가 점심 먹고 오후 3시까지 일하고 퇴근이다.
보통 자기 일이 제일 힘들다고 하는 게 보통이라지만, 양심이 있지 이걸 힘들다고 할 수는 없다. 심지어 5시간 근무 중에는 점심시간이 포함된다.
“물론 기가스 조종병이 되는 것보다는 조금 받는 모양이지만.”
기억을 되새겨 보면 그 파이넬 아카데미인가 뭔가에 합격하면 월마다 100억 원이 나온다고 했으니 한 달에 고작(?) 15억 원 정도(휴일도 평균 일당이 계산되어 나온다)를 버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버는 셈이겠지만…….
군사학교에 가면 당연히 군사훈련을 할 테고 어쩌면 전쟁터에 나갈지도 모르는 기가스 조종병과 지금의 입장은 완전히 다른 상황.
심지어 5시간조차 그냥 노는 시간이다. 저거, 저거, 저거 이상해, 라고 찍어주면 지니가 알아서 수리하거나 확인하고, 나는 그 시간 동안 앉아서 책을 보거나 지니랑 잡담이나 나누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조건이 좋아서 ‘이것들이 날 속이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어느새 3주의 시간이 흘렀다. 눈치가 없기는커녕 매우 빠른, 더해서 칭호를 본다는 사기적인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동안의 이 모든 상황에 그 어떤 음모조차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물론이고 한동안 초긴장 상태였던 보람과 동민까지 잘 적응하고 있는 상황.
“이거 몰랐는데…….”
천천히 기술실을 나서다 무심코 중얼거린다.
“개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