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 / 0117 ----------------------------------------------
Chapter6 취직, 그리고 전쟁
“뭐 좀 그냥 넘어가는 게 없구먼…….”
한숨 쉬며 알레이나를 따라간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스파이 이야기는 입에 담을 생각도 없다. 이 레온하르트 제국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스파이를 잡는 쪽이, 아니, 하다못해 알고 있는 쪽이 좋겠지만 어차피 내가 보기에 다 외계인인데 소속감이 있을 리 있겠는가?
‘아니 그걸 넘어서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애초에 괜한 소리를 지껄여서 위험을 자초할 정도로 정의감 넘치는 성격이 아니다. 무엇보다 증거도 없고.
딩동~
“엘리베이터네.”
“…이거 진짜 지구에서 만든 거 아니에요? 건축 양식이 너무 익숙하잖아요. 게다가 이 숫자들, 아라비아 숫자랑 너무 비슷하지 않아요?”
기가 막힌다는 보람의 중얼거림에 알레이나가 웃었다.
“하하하. 이름이 뭐죠, 아가씨?”
“…강보람이요.”
“네 보람 양. 보람 양이 생각하기에 외계인인 저와 보람 양의 외모가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
그렇다. 비슷하다. 아니,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알레이나는 누가 봐도 그냥 인간이었다.
나는 세레스티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인 문제라면 가능하죠.'
그녀의 말대로라면 아마 이 세상을 만든 창세신 같은 게 있을지 모른다. DNA단위에서 생물의 형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
물론 신의 존재에 대해서 그다지 깊이 생각해 본 바가 없지만, 성계신이라는 게 이렇게 당연시되는 상황이니 더 상위의 존재가 있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아예 세상이 가짜일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며 살아서일까? 지구에 알려진다면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올 만한 사실을 난 너무나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다 알게 될 테니 조급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 잠시만. 지니, 올라갈게.”
알레이나의 말에 엘리베이터 위쪽이 잠시 반짝이더니 녹색의 빛줄기가 그녀의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네, 알레이나 대위님… 신원 확인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기술부로 가줘.”
그렇게 말하고 엘리베이터에 들어선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방금 그건 인공지능인가요?”
대답은 알레이나에게서가 아니라 스피커에서 나왔다.
[알바트로스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통제하는 관제인격 지니(Genie)라고 합니다. 사적인 공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을 감지 하에 넣고 있으니 문의하실 내용이나 도와드릴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인공지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러운 반응에 보람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동민도 비슷한 상황.
하긴, 우리 셋 다 시골에서 서울 상경한 촌놈들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니 촌스럽게 두리번거리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
위잉-!
그렇게까지 생각할 때 문이 열렸고, 알레이나는 다시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기술부장님은 아마 지구 출신인 여러분이 느끼기에 가장 이질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더불어… 아직 초월지경에는 못 이르렀다 해도 귀족(Noblesse)이니까 염두에 두시고요.”
“귀족?”
뜻밖의 단어에 의아해한다. 이미 황녀, 그러니까 황족도 만난 우리인데 귀족이라는 게 중요한 문제일까?
‘아니 어쩌면.’
문득 귀족, 혹은 황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원래의 어감을 떠올렸다. 어쩌면 세레스티아 녀석이 드문 경우고 다른 귀족들은 상당히 까다로운 성정일지도 모른다. 말을 함부로 했다가 쫓겨난다거나 시빗거리가 된다거나.
그러나 그런 의미는 아닌 듯 알레이나가 웃었다.
“후후후. 무슨 상상을 하시는지 알겠는데 무슨 중세시대 같은 개념이 아니에요. 무엇보다 여기서 말한 귀족은 종족의 개념이기도 하니……. 이것 역시 차차 배우게 될 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날 안내한다. 그리고 가는 길에 보람이 속삭였다.
“저기, 그런데 선배님.”
“응.”
“지금 분위기를 보니 선배님을 기술자로 쓴다는 거 같은데… 외계 기업에 취직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으셨나요?”
“그럴 리가.”
고개를 흔든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상당히 무대책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대체 뭘 어째야 하는 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대전쟁을 해킹하지 않았다. 그럴 능력은 더더욱 없는 상황.
하지만 이미 한 번 숨긴 일을 가지고 이제 와서 ‘사실 그거 그냥 실력으로 딴 점수인데요?’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는 상황이 아닌가?
‘결국 최악의 상황에는 어쩔 수 없이 밝혀야 하나.’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기술부에서 활동할 능력은 전혀 없다. 애초에 상황에 밀리고 밀리다 여기까지 온 거니 뭐 어쩌겠는가?
“두 분은 잠시 대기해 주십시오.”
“에? 괜찮을까요?”
알레이나의 말에 동민이 슬쩍 팔을 들어 벽을 짚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벽이라면.”
“아, 더불어 저희는 호위니까 분위기가 이상하면 무력을 써도 되죠?”
작고 귀여운 느낌의 미소녀인 주제에 살벌한 소리를 해대는 보람의 모습에 혀를 찬다. 이 녀석도 갑자기 외계로 던져져서 그런지 상당히 흥분한 상태인 것 같다.
“어머, 꽤나 실력에 자신들이 있는 모양이군요.”
“사실 그렇지도 않아요. 대체 외계인들이 무슨 힘을 얼마나 발휘할지 알지 못하는 상태여서요.”
언뜻 들으면 겸손해 보이나 나는 그 안에 담긴 음험함을 읽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1급 변신인가 하는 것의 봉인을 푼다고 했었지. 더불어 궁니르라고 하는 무기를 꺼내 오라고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녀석은 3차 세계대전을 언급했었다.
‘즉, 저 녀석이 군대에 버금갈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군. 애초에 변신이라는 것 자체가 허무맹랑하지만……. 마법소녀는 원래 변신을 할 수 있는 게 정상일지도 모르니.’
더불어 동민조차 심상치 않다. 아무렇지도 않게 공간을 휙휙 넘어 다니는 걸 보니 녀석도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초능력자라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그래 봤자 지구수준에서이고 우주에서는 씨알도 안 먹혀! 라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겠지. 우주에서 전혀 안 먹힐 정도라면 굳이 호위로 보낼 의미조차 없을 테니……. 무엇보다 예지능력이 있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아버지가 긴 시간 준비한 모양이고.’
나는 언제 한번 시간을 내서 녀석들의 칭호를 살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물론 칭호를 아무리 봐봐야 녀석들이 얼마나 강한지, 무슨 능력을 쓰는지 따위의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야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기술부장님.”
[아, 들여보내게.]
대답과 함께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문을 지나기가 무섭게 멈칫하고 말았다.
“…어?”
[아, 신입인가? 만나서 반갑군.]
들린 것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머릿속을 윙~ 하고 울리는, 흔히 텔레파시라고 부르는 종류의 방식.
하긴 상대방에게는 발성기관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으니 이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빛… 덩어리?”
사람 머리통보다 조금 큰 빛 덩어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도깨비불처럼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그 빛 덩어리 주변에는 대여섯 개의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각종 화면을 비추고 앞에 있는 길이 5미터 폭은 3미터나 되는 커다란 책상에는 온갖 기기가 어지러이 늘어져 있다.
[아, 그러고 보니 34지구에서 막 올라왔다고 했었지? 우리 켄딜러족을 보는 건 처음이겠군.]
그렇게 말하더니 그대로 슈웅 하고 날아 내 앞에 도착한다. 나는 무심코 그의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레온하르트 제국 알바트로스함]
[창조계/변이계 완성자 니단]
‘완성자?’
아무래도 무슨 경지를 나타내는 말인 것 같다. 저런 외양으로 무술 같은 걸 쓰지는 않을 테니 아무래도 마법이나 초능력 뭐 그런 쪽 계열이겠지. 기술부장이라고 했으니 비전투 계열일 테고 말이다.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관대하라고 합니다.”
[니단 호프먼일세. 나도 만나게 되어서 반갑군. 나이가 적어도 열 배는 차이 날 테니 말 놔도 상관없지?]
“아, 네 물론이죠.”
대답하면서도 기겁한다.
아니, 외견상 나이를 짐작하는 게 불가능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열배라니 200살이 넘는다는 소리 아닌가? 심지어 ‘적어도’라는 말이 앞에 붙었으니 300살 이상일 수도 있겠다.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면접을 오래 볼 수는 없겠군. 이것들을 고쳐보게.]
그렇게 말하더니 대뜸 문제를 낸다.
내 몸체만 한, 뭔지도 모를 기계들이 허공을 날아 내 앞에 내려선 것이다.
쿵. 쿵.
그리고 그건 하나가 아니었다.
무슨 엔진으로 보이는 부품과 기동이 중지되어 있는 듯 움직이지 않는 인간 형태의 로봇, 그리고 손목에 착용하는 걸로 보이는 시계 비슷한 물품까지.
뭘 어째야 하나 하는 시선으로 그것들을 보는 나에게 니단이 말했다.
[셋 다 고쳐도 되고 그것 중 하나만 고쳐도 되네. 나야 자네의 능력 방식만 보면 되는 것이니.]
그의 말을 듣고 기계들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에게 이것들을 고칠 재주 따위는 없다. 그냥 막연하게. 뭐 어쩔? 이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내가 대전쟁을 해킹했다고 생각해서 불러들여 놓고는 해킹이 아니라 대뜸 물건들을 고치라고?’
물론 그것은 그들이 나를 전자계열 초능력자로 판단했기에 나온 착오였지만 아직 그걸 모르는 나는 막연한 기분을 느끼며 그 기계들을 바라보고만 있다.
‘어떻게 하지.’
기가스를 조종하고 싶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가스 조종하는 것 자체에는 매우, 정말, 아주아주 많은 관심이 있었다.
직접 기가스를 타고 움직여 보고 싶다. 내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으니 확인해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전쟁으로 이어질까 봐 겁이 난다.
시뮬레이션인 대전쟁 속에서야 적들도 프로그램이었을 따름이지만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면 상대편 기가스에도 분명히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외계로 나와서도 대부분의 외계인들이 문어 형태나 다른 형태 등이 아니라 인간이랑 다를 바가 없는 상태에서 전쟁터에 들어서게 된다면?
‘물론 군인이 된다고 무조건 전쟁에 나가는 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
하지만 동시에 군인이 된다는 건 [그런 상황] 역시 충분히 감내한다는 전제를 까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군인이 돼서 월급을 받은 주제에 전쟁이 벌어지면 ‘전 사실 평화주의자거든요? 월급은 받았지만 그냥 평시 임무나 하려고 한 거지 누구 해치기 싫거든요?’ 이러면서 안 싸우겠다는 것도 미친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정체도 모를 기계들을 수리하는 게 가능할 리 없… 아니, 잠깐.’
순간 멈칫한다. 그리고 크게 숨을 몰아쉰다.
“후우…….”
정신을 집중해 [전체 설정]을 [상태]-[문제점]으로 변경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리는 못해도 고장 난 지점을 [보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기 이 로봇은 그냥 배터리가 빠져 있군요. 왼쪽 연결 부위가 뻑뻑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외의 문제는 없는 것 같고. 이 시계는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한 건지 버그를 먹었네요. 한 번 강제로 꺼졌다가 켜진 상태고요. 그리고 이… 엔진이었군요. 하여튼 이 엔진은 7번 하고 23번 부품이 마모되었습니다. 교체해야 할 것 같아요.”
차분하게 설명하자 니단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답했다.
[흐음… 그렇군. ‘보는’ 쪽 능력인가. 수리는 불가능하고?]
“네, 그런 재주는 없네요.”
솔직하게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못하는 걸 할 수 있다고 말해봐야 파탄만 불러올 뿐이니까.
[미묘한 걸… 너무 한정적이야.]
잠시 허공을 부드럽게 날아다닌다. 아무래도 나를 받아야 할지 돌려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모양새. 그리고 그런 그를 보다가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아, 그런데 혹시 알바트로스의 언어 통일장치가 문자도 번역해 줍니까?”
[그런 기능까지는 없지. 시야에 간섭하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자네 지구에서도 한국 출신이지? 한글은 내가 할 줄 아니 걱정 말게.]
“한글을 아신다고요?”
기가 막혀서 허공에 떠 있는 니단을 바라본다.
아니, 이 외계인이 한글을 어떻게 알아?
그러나 니단은 대단할 것도 없다는 분위기다.
[심심할 때마다 취미삼아 이런저런 언어들을 배우거든. 300개쯤 익혔는데 다행히 지구의 언어와 문자들도 익혔지.]
“그럼 다행이네요. 이걸 읽어주시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글자를 써서 보여준다.
-제 기준으로 오른쪽, 니단님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세 번째 디스플레이에 도청기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책상 위에 있는 기기에는 정보를 유출하는 종류의 바이러스가 설치되어 있고요.
아무래도 이 역시 [문제점]이라고 인식하는 것인지 칭호에 표시되었다. 도청기가 설치된 모니터, 라고 떠버리니 모를 수가 없는 것.
이건 꽤 충격이 컸던 듯 니단의 몸이 크게 깜빡인다.
[이게… 정말인가? 그리고 계속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나?]
“문제점을 찾는 정도라면 충분하죠.”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기술부에 들어갈 것 같은 분위기니 기계 관련 능력이 있는 쪽으로 속이는 게 좋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칭호를 보는 능력은 누구나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위험하지만, 기계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정도라면 괜찮을 것이다.
[이건… 대단하군. 능력의 방향은 한정적인데 등급이 높은 모양이야. 오히려 이렇게 되면 평범한 전자능력보다 더 쓸 데가 많겠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내 앞에 내려놨던 부품들을 가볍게 치워 버린다. 손도 발도 없는 대신 강력한 염동능력을 지닌 것인지 몇 십 킬로는 가볍게 넘어 보이는 물건들이 슉슉 날아가 벽에 진열된다.
“그럼 면접은 어떻게 될 까요?”
[두말할 필요도 없지. 합격일세. 앞으로 자주 보게 되겠군.]
가볍게 날아온 니단이 내 이마에 자신의 몸을 맞댄다. 약간은 따듯하게 느껴지는 몸체. 아무래도 인간으로 치면 악수 정도의 행위인 것 같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 역시.”
슬쩍 웃는다.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안 한 주제에 외계 함선에 취직한 어느 날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