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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6 취직, 그리고 전쟁
“언니! 그 녀석 기술자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게 진짜예요!?”
만약 여닫이 문이었다면 박살이라도 냈을 것 같은 기세로 뛰어 들어오는 혜란의 등장에도 알레이나는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 없이 보고서를 살피고 있다.
어차피 그녀가 이렇게 찾아오리라는 건 지구로 내려갈 때부터 예상하고 있던,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기에 평온한 태도인 것이다.
“그래.”
“아니, 하위문명에서 살던 녀석들을 기술자로 받았다고?”
황당해하는 그녀의 말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술 수준이 극도로 낙후된(물론 상대적이지만) 하위문명에 살던 이들은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상위문명의 기술자로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기초과학부터 다 새로 가르쳐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그를 써먹을 인력으로 만든단 말인가?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배워야 할 지식이 너무 많아져서 지식주입기를 쓴다 해도 몇 년 단위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냥 짐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것.
그러나 알레이나는 놀랄 것 없다는 듯 답했다.
“아아, 걱정하지 마. 아무래도 대단한 초능력자인 모양이니.”
“초능력자?”
“그래. 하비 씨도 그쪽 계열이잖아.”
“아… [그런]기술자를 말하는 거구나. 하긴 생각해 보면 이쪽인 게 당연하네.”
희귀한 확률로 태어나는 초능력자 중 일부는 전자계열 기기들을 마치 제 몸처럼 다룰 수 있다. 이것은 지식도 기술도 아닌 [감각]의 영역이라서 약간의 훈련만 거처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것이며, 지금 그들의 함선 알바트로스에 상주하는 정비사 중에도 그런 인물이 몇 존재한다.
“뭐야, 그럼 아무래도 보조나 수리 쪽이겠네.”
“그렇겠지. 기술적인 지식은 전혀 없을 테니.”
“아… 그러고 보니 전에 그 스카우트에서 빨리 도망가려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구나? 자기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해서?”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튼튼하기로 유명한 대전쟁의 보안을 뚫다니 상당히 고위 능력자인 모양이야. 성계신하고도 인맥이 닿아 있는 모양이고.”
“뭐? 성계신? 그게 진짜야, 언니?”
깜짝 놀란 혜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알레이나에게 묻는다.
직책으로는 인사과장과 기술자.
계급으로도 대위와 소위의 차이가 있는 그녀들이었지만 10년 가까이 함께 작전을 수행해 오면서 이미 친자매나 다름없을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였기에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편하게 대화하는 편이다.
그것은 제국군의 군기(軍紀)가 지구에서 생각하는 군대 문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불어 그녀가 월양(月陽) 권가(權家)의 영애로 계급 이상으로 배려 받는 위치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 황당하게도 그 녀석 성계신이 직접 선포한 최상위급 성지(聖地)에서 살고 있더라고. 어째 우리 배에 초대당하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
성계신은 어느 은하, 어느 행성을 가든 무조건 조심해야 하는 최고등급의 언터쳐블(Untouchable)이다.
기본적으로 [침략]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야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게 그들의 기본 성향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진 힘 자체가 워낙 크니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 그럼 그 녀석 초대한다고 하고 그냥 이렇게 대기권으로 올라와 버린 게.”
“그래. 알아서 보내준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지금이군.”
파앗!
그때 한쪽 공간이 일렁거리더니 삽시간에 네 개의 인영을 토해낸다.
그야말로 한순간의, 더불어 조짐조차 없이 일어난 일이어서 미리 들은 이야기가 있는 알레이나조차 멈칫할 등장.
하지만 정말 놀라고 있는 것은 이동한 당사자들이었다.
“으아, 이런 맙소사. 땅에서 여기까지 한 번에 이동시킨다는 게 말이나 돼? 당신 초월자였어?”
어쩐 일인지 크게 당황하는 세레스티아의 말에 동민이 고개를 흔든다.
“그럴 리가 있나. 현 지구에 존재하는 초월자는 단 한 분이고 모습도 보기 힘든 분인데. 가이아 님이 도와주신 모양이군.”
“뭐 성계신?! 아니 뭔 성계신이 뭐 이런 사소한 일에 힘을 써! 우리 성계신이 100년 동안 모습을 드러낸 건 아버지 임명식 때 딱 한 번뿐이었는데! 설마 아까 세 번 차였다는 헛소리가 진짜였어?”
“그럼 거짓말인 줄 알았나?”
눈살을 찌푸리는 동민의 말에 세레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말 같아야 믿지. 그래도 성지는 진짜라서 따라 들어갔는데 그것도 정말이었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쪽 벽으로 다가갔지만 그 아래로 보이는 지구의 모습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아무리 그녀라도 대기권 밖에서 지상으로 내려갈 재주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행 분들이 개성적이군요. 보통은 가족 단위로 와서 이렇게 젊은 분들만 찾아오는 건… 당신은?”
이미 대하의 부친이라고 소개한 영민에게 대하 일행이 찾아올 거라는 언질을 받았던 알레이나는 느닷없는 등장에도 당황하지 않고 환영의 인사를 하기 위해 일행 앞에 섰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는 일행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아이고…….”
알레이나가 자신을 보았다는 걸 눈치챈 세레스티아는 앓는 소리를 내며 대하의 등 뒤로 숨었지만 당장 모델을 해도 좋을 정도로 훤칠한 키의 그녀 숨어봐야 얼마나 숨겠는가?
“으, 하위문명 여행이라도 위장은 할 걸…….”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은 법.
이내 그녀의 정체를 눈치챈 알레이나가 척, 소리가 나도록 부동자세를 취하고 소리친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저희 알바트로스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기 언니 갑자기 왜… 으악!? 황녀 폐하!?”
경악하는 두 여인과 한숨을 내쉬는 세레스티아.
그리고 아예 황녀라는 직위 자체에 별로 느끼는 게 없는 둘.
이미 세레스티아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은 나는 한쪽 벽을 통해 보이는 녹색의 별을 내려다보았다.
“지구를 떠나다니.”
허탈함에 한숨 쉬고 있는데 이내 연락이 간 듯 문이 열리고 이 사람 저 사람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황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알바트로스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세상에! 세레스티아 황녀님이다!”
“우와 진짜냐!?”
“오! 오오, 황녀님! 황녀님 사랑해요!”
“세상에, 진짜 황녀님이야!”
“아!름!다!운! 셀 황녀!”
초반에는 자신의 함선에 방문한 높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들이었는데 뭔가 뒤로 가면 갈수록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사람들의 눈에 뿅뿅 하트가 떠 있고 자기들끼리 팔에 장착한 기기를 조작하더니 이상한 홀로그램 영상 같은 걸 허공에 띄우기 시작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세레스티아의 칭호 중 하나였던 [우주아이돌]을 떠올렸다. 이 녀석 아무래도 황족이라는 지고한 위치보다 다른 걸로 더 유명한 모양이다.
[조용!]
그러나 묵직하게 울리는 고함 소리에 왁자지껄하던 주변이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그냥 단순한 고함이 아닌, 주변을 짓누르는 기백이 담긴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저벅.
거대한, 더불어 새하얀 몸체를 가진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그는 몸에 척 달라붙는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목에는 두 개의 별이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황녀님. 알바트로스함의 함장인 천현일 소장입니다.”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예를 표한다.
아니, 저걸 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앞발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닌가? 설마 이런 내 생각이 대우주에서는 인종차별적인 사고방식인가?
잠시 혼란스러워하는데 옆에 있던 보람이 중얼거린다.
“선배. 저거, 곰 아니에요?”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 보이네.”
“더불어 북극곰이군.”
그렇다. 스스로를 현일이라고 소개한 존재는 두발로 똑바로 선 2미터 50센티 정도의 백곰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어선 곰하고는 느낌이 전혀 달라서 구부정하게 잠시 앞발을 들고 있는 게 아니라 뒤꿈치에 못이라도 박은 듯 완벽한 직립보행을 선보이고 있었으며 더불어 털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전신 근육을 팽팽하게 단련해 날렵한 느낌이다.
“하하……. 네, 반가워요. 소장님. 의도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뵙게 되어 저도 영광입니다.”
우주선에 올라온 직후 멘탈 붕괴가 온 듯 정신을 못 차리던 세레스티아는 이내 현실을 인정한 듯 능숙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어차피 상황이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긴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군인 모양인데 여기서 목숨 걸고 탈출하는 것도 웃기는 모양새가 아니겠는가?
“함께하게 되어 기쁘군요, 대하 님.”
“사실… 저는 별로 기쁘지는 않지만 그렇게 되었군요.”
“하하하. 정말 재미있으신 분이에요.”
맑게 웃는 알레이나의 모습을 보며 한숨 쉰다. 악의는 없어 보이지만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왠지 어려운 타입이다.
뭐, 앞으로 이 우주선에서 생활해야 한다면 친해져야겠지.
“아, 들으셨겠지만 이 둘은 제 호위 역할이에요. 그리고 저 녀석… 아니 분은 그냥 사고로 딸려 왔고요.”
내 말에 알레이나가 고개를 돌려 현일이라는 백곰과 대화중인 세레스티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속삭이듯 묻는다.
“뭐 적당한 내용은 황녀님 스스로 밝히시겠지만… 왜 저분이 여러분과 함께 있었던 거죠?”
“아, 그건.”
나는 적당히 상황을 설명했다. 세레스티아를 노리는 적들이 출현했고, 나와 일행은 우연히 그들과 접촉했고, 그래서 적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세레스티아가 성지(우리 집)으로 피신했다는 이야기.
당연한 말이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알레이나는 분노했다.
“어느 녀석들이 감히 암살자들을……! 황실에서 황녀님이 밖으로 나돌아서 걱정이 태산이라고 하더니 이런 이유에서였군요. 황권이 이렇게나 튼튼한 상황에서 암살자를 보내는 녀석들이 있다니.”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경호를 더 철저히 하고 보호해야겠군요. 세레스티아 황녀님은 15개가 넘는 은하계를 떨쳐 울릴 정도의 스타입니다. 그녀의 영향력은 이미 황족 그 이상의 것이죠. 암살당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는 알레이나를 보며 어쩌면 세레스티아가 정체를 숨기고 있던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녀는 워낙 대단한 배경의 소유자였고, 그렇기에 직위대로 움직이면 새장 안의 새처럼 밖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그보다는 내 앞가림이 우선.
나는 알레이나를 보며 물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당연하지만 당장 일을 시키지는 않아요. 일단 기술부장님께 면접을 봐야 하고 한 일주일 정도는 오리엔테이션을 받게 되죠. 아무래도 문명 레벨이 다른 행성에서 오셨으니 교육이 필요하거든요. 모두 따라오세요.”
알레이나의 안내에 따라 세레스티아와 그녀를 둘러싼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서 멀어진다.
당황해서 지금까지는 잘 못 봤지만, 자세히 보니 현일이라는 백곰이 그러하듯 인간 외 종족이 상당히 섞여있었다.
“흠, 저기 선배님. 여기 외계 맞아요? 왜 다 말이 통하죠?”
“하하, 귀여운 아가씨. 알바트로스에는 언어통일장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이 함선 내에서라면 어떤 언어로 대화를 하더라도 서로 뜻이 통하죠.”
색기 넘치는 누님의 외모를 가진 주제에 아저씨 같은 어투로 하하하 웃으며 보람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보람은 일순간 싫은 표정을 지었지만 악의를 가진 것도 아닌 상대에게 날카롭게 행동하지는 못하겠는지 슬쩍 손을 밀어내는 정도에서 그쳤다.
‘이 아줌마, 사람 대하는 데 능숙하구먼.’
필요할 때는 온몸의 색기를 다 뿜어낼 기세로 요염함을 뽐내다가도 또 어떨 때는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 같은 털털함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여자의 적이 되기 딱 좋은 외모임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그녀를 좋아하는 분위기인 걸 보면 그녀가 얼마나 처세에 능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특이한 칭호였지. 아니, 칭호 자체가 특이하다고 할 수는 없으려나?’
나는 레이나를 따라 걸으며 슬쩍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레온하르트 제국 2군단 사령부]
[인사과장 알레이나]
여전히 특이한 방식의 칭호다. 멀쩡한 칭호 위에 취소선처럼 직직 선이 그어져 있는, 마치 글자를 써놓은 다음 그 위에 선을 그어 그 글자를 지우려고 한 것 같은 모양새.
나는 무심코 분류를 시작했다.
‘언제 이런 칭호를 또 보게 될지 모르니 정체는 알아내야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소속, 단체, 현재 상황. 뭐 이런 걸 대충 읽어 들이면서 직직 그어져 있는 칭호의 정체를 파악하려 하는 것.
그리고 곧, 나는 그 취소선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가짜… 칭호라고?’
그리고 그 칭호를 걷어낸 진짜 칭호는 이랬다.
[데트로 은하 연합 4군단 제1암살대]
[스파이 다나]
“…….”
“왜 그러시죠?”
“아뇨. 별로.”
언제나 그러하듯 놀라운 포커페이스로 동요를 숨기며 고개를 흔들자, 그런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훗~ 하고 웃어 보인 알레이나가 다시 길을 안내하기 시작한다.
“아, 진짜.”
무심코 중얼거린다.
“뭐 좀 그냥 넘어가는 게 없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