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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20화 (2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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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5 I'm not your father

“그녀는 너를 낳기를 원했단다.”

간접적으로 돌려 한 말이었지만, 나 역시 바보는 아니었기에 거기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는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을 하고 있었다.

“저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요?”

“틀려.”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말을 잇는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 대신 너의 미래를 선택한 거다.”

“결국 같은 말이잖아요!”

화가 나 소리쳤지만 아버지는 얄미울 만큼 침착하다.

“달라. 지금 그 말을 은정이가 들었다면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이해했겠지.”

그렇게 말하고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잠시 침묵에 잠긴다. 그리고 잠시간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제이기도 할 테니 상세히 알아야겠구나. 은정이가 나를 찾아온 건 고등학교 2학년에 들어설 때였단다.”

“사랑한다고 말이죠.”

나도 모르게 나온 빈정거림이었지만 아버지는 별다른 반응 없이 답했다.

“그건 부차적인 주제였어. 그녀가 찾아온 진짜 이유는 작별 인사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녀는 이 세상을 떠날 예정이었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회하고 싶지 않아 나를 찾아왔었지. 정말 대단한 건 그녀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대부분 그대로 말해줬다는 거야. 어나더 플레인(Another Plane)이라는 단어를 안 것도 그녀를 통해서였다.”

그때 그녀는 이미 나를 배고 있었고, 나를 낳기로 결심한 상태였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불가능한 심리다.

어머니는 원래부터 아버지에게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사는 세계가 달라 표현하지 않았을 뿐.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상대에게… 어떻게 자신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고 출산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숨기는 쪽이 정상 아닌가?

그런데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그런 어머니의 행동에 아버지가 보인 반응도 상상 초월이다.

“그때 청혼했지.”

“…네?”

뭔가 상식을 뛰어넘는 답변에 입을 벌리는 나를 보며 아버지가 슬쩍 웃었다.

“그리고 그녀를 안았단다.”

“…….”

아, 나 이 커플 도저히 모르겠다… 하고 황당해하는데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고 있다.

아까 사과할 때만 해도 진중하던 그가,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미소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후후, 그러고 보면 그녀도 그때 엄청나게 당황했었지. 수백수천 개의 반응을 상정하고 왔는데 그게 다 틀린 표정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아니, 아니 잠깐만요.”

손을 들어 아버지의 말을 끊고 묻는다.

“그냥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어머니에게 왜 청혼한 거죠?”

“그야 그녀가 울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까도 말하지 않았니?”

피식 웃으며 아버지가 말한다.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짜증날 정도로 멋진 미소였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관심이 많았다고.”

그렇게 말하고는 뒤로 몸을 돌려 책장을 조작한다. 황당하게도 거기에는 평생 이 집에서 살아온 나조차도 전혀 몰랐던 금고가 숨겨져 있었다.

삑삑삑.

나는 아버지가 16자리나 되는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금고가 열리고, 그 안에 있는 물건이 모습을 드러낸다.

“열쇠… 군요.”

“친아버지라는 녀석의 유품이다. 은정이에게 받았지.”

열쇠라고는 하지만 특이한 디자인이었다. 마치 수십 개는 되는 쇳조각을 조립하고 짜 맞춰 만든 것 같은 모양새라 망치로 내려치면 깨질 것만 같다.

“그 친아버지라는 사람은 누구죠?”

“알 수 없다. 단지 고위 초월자라는 것만 알지.”

“초월자라…….”

대전쟁의 설명서에 포함된 설정집에 대략적인 내용이 들어있었기에 나 역시 알고 있는 단어였다.

다만 그게 나랑 연관될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지만 말이다.

‘운명을 초월한 신적인 강자들.’

어떤 존재가 세계의 진리를 깨닫든 스스로를 끝없이 갈고닦든 마침내 궁극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운명의 틀을 초월해 신의 영역에 들어서는 게 가능하게 된다고 한다.

실감조차 나지 않는 일이지만… 전투계열 초월자는 맨몸으로도 성(星)급 이상의 기가스도 때려 부순다고 한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이지? 어머니가 말해주지 않았다는 건지, 아니면 어머니도 몰랐다는 것인지.’

그러나 이미 모른다고 한 이상 아버지에게 캐묻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기도 했고.

“약속의 날이란 뭐죠?”

“오늘이지. 은정이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었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오늘을 예지했단다. 적들에게 습격당하는 날 손님들이 찾아올 것이고 너를 그들에게 보내야 한다고 했지.”

“제가 싫다면요?”

“죽게 될 거라더군. 하늘 아래 살 방도가 없다고.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설마 우주라니.”

어깨를 으쓱이는 그의 모습에 잠시 침묵을 지켰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우주로 나갈 생각은 0.1mg도 없지만,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말하니 마음이 심란했기 때문이다.

“그 예언 혹시 틀리거나 하지는 않나요?”

“적어도 사라는 맞을 거라고 하더군. 푼수 같은 녀석이지만 명색에 신이라니 아마 맞겠…….”

쿵!

그때 묵직한 진동음이 느껴진다.

나는 깜짝 놀랐으나 아버지는 예상하고 있던 소음이라는 듯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선생님.”

“으아, 으아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외계인은 무슨 말이야. 게다가 우주로 간다니? 으으…….”

거실에는 와 있는 것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차분해 보이는 동민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보람이다.

한쪽 소파에 편하게 앉아 있던 세레스티아가 어깨를 늘씬한 팔을 쭉 펴며 버둥거린다.

“이게 뭐야, 우리 존재를 드러내도 괜찮은 상대는 몇 안 된다고 그렇게 겁을 주더니 개나 소나 다 알고.”

구시렁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뜬다.

외계에는 개나 소가 있는지도 모를 상태에서 [개나 소나]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는 외계인을 보자니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세레스티아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이 둘을 너와 같이 보낼 생각이다.”

“우주로요?”

“그래. 말하자면 경호 인력이지. 아까 그 아가씨도 두 명 정도는 동행해도 상관없다고 하더군. 가족까지 다 데려가는 케이스도 있어서 이 정도는 양반이라고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나도 따라가고 싶지만 사정이 좀 있어서 그건 어렵겠군.”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금고에서 꺼냈던 특이한 디자인의 열쇠를 내 목에 걸어준다.

이제 보니 금줄이 달려 있어서 목에 걸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이었다.

“저기, 잠깐만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저 오래 나가 있어야 하나요?”

“얼마나 걸릴 지 짐작도 못할 정도로.”

당연한 거 아니냐는 반응에 당황한다.

아니, 설마 학기 시작하자마자 장기간 결석이란 말인가? 게다가 학교에는 뭐라고 할 생각인가?

[우리 아이가 잠시 우주로 나가 있어서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아버지는 그 일을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는 듯 동민을 보며 말했다.

“그럼 동민아, 부탁한다.”

“아니 언제까지 가야 하기에 벌써 부탁해요?”

뭔가 이상한 분위기에 의문을 표하는 나를 보며 아버지가 말한다.

“지금.”

“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순간 동민의 손이 내 어깨를 잡는다.

그리고 그대로-

파앗!

나는 지구를 떠나게 되었다.

*

“쯧. 설명해야 하는 게 조금 더 있었는데.”

대하는 물론이고 동민, 보람, 심지어 세레스티아까지 사라진 거실에 혼자 남은 일한은 혀를 차며 오른손을 들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그의 키만큼이나 거대한, 일반인이라면 드는 것조차 어려워 보이는 크기의 클레이모어(Claymore)가 들려 있다.

쾅!

순간 폭음과 함께 집 천장을 부수며 커다란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야말로 느닷없는 등장이었지만, 이미 예측하고 있던 일한은 가볍게 클레이모어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모든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슬아슬했네.]

[그래, 아슬아슬. 그런데 너 이 녀석, 내 안전은 네가 책임지기로 한 거 아니었냐? 누구도 못 들어올 결계라고 하더니.]

[우웅… 저런 거물을 상정한 결계는 아니란 말이야.]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영언(靈言)을 들으며 일한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목숨은 당연히 아깝지 않지만 잃어서 좋을 것도 없을 테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크르르르…….”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공기를 저릿저릿하게 짓누르며 퍼져 나갔지만, 그 소리를 낸 것은 짐승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그것]은 생물체조차 아니다.

황소 열 마리 정도를 합친 것 보다 더 거대한, 눈높이가 일한보다도 더 높은 사자 모양의 그것은 검은색의 광택이 자르르 흐르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주먹보다도 커다란 눈동자 안에서는 대여섯 개의 태엽이 돌아가는 모습이 보이고 발톱과 이빨은 LED램프라도 되는 양 은은하게 반짝거리고 있다.

“여기는, 어디지?”

잠시 으르렁거리던 거대한 사자 모양의 로봇은 의외로 명료한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역시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갑자기 쳐들어와서 그걸 나한테 물으면 안 되지. 넌 누구냐.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온 거지?”

“목적… 목적…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강철로 된 풍성한 갈기가 마치 진짜 털처럼 자연스레 흔들린다. 그 역시 자신이 왜 여기에 온 것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이곳은 신의 성역이다. 헛소리할 거라면 돌아가.”

“아… 그래. 흠, 미안하군. 그러고 보니 확실히 성지야. 대체 내가 왜 여기로 온 거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오른쪽 앞발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그의 발톱이 은빛으로 빛나고.

키이이잉---!!

그의 정면 공간이 그대로 찢어져 버린다. 그리고 그 틈으로 들어서는 사자를 향해 일한이 소리친다.

“잠깐! 넌 누구냐! 도대체 여기에는 왜 침입한 거지!”

[와, 역시 연기도 마스터네.]

[시끄러워.]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열연하는 일한을 잠시 돌아보았던 거대한 사자는 이내 다시 몸을 돌려 찢어진 공간 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찢어졌던 공간은 복원력에 따라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래도 곱게 갔네.]

[원래 난폭한 녀석들이 아니니까.]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들을 빼돌리는 걸 조금만 늦게 했어도… 상대가 절대 그냥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괴물이 날뛰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막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본체라면 또 모를까 지금의 그는 다룰 수 있는 힘이 극히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후우. 사라, 복구 부탁해.”

더 이상 영언으로 대화할 필요가 없어진 만큼 소리 내어 말하는 일한을 향해 답이 돌아온다.

[데이트해 주면.]

“사라,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기로 하지 않았던가?”

[우웅, 친구도 데이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아, 머리야.”

골치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흔들던 그는 잠시 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괜찮을까.”

순간 걱정이 일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할 수 있는 걸 모두 한 상태였다.

더불어 아들이 지구 밖으로 나간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부디.”

쓰게 웃으며 그는 몸을 돌렸다.

“자신의 운명에 지지 마라, 아들아.”

그리고 그 모습이,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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