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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5 I'm not your father
“그럼 준비를 좀 할 테니 다시 와주시죠.”
“호호, 알겠어요. 잠시 후에 봬요~”
뭔가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듯 잽싸게 집을 나서는 알레이나를 막지도 못하고 버벅인다.
“아빠?”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나를 저 정체도 모를 외계인들한테 떠넘긴단 말인가?
그러나 아버지는 마치 오래 전부터 오늘을 준비하기라도 한 듯 극히 평온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동민아.”
“네, 선생님.”
“지금 바로 노야께 찾아가 나와 약속했던 날이 왔다고 전해 드려라.”
“약속했던 날… 말입니까?”
“그렇게 말씀드리면 아실 거다.”
“흠, 알겠습니다. 그럼.”
팟!
순간 동민의 모습이 사라진다. 고속이동 뭐 이런 게 아니라 누가 봐도 공간을 뛰어넘는 모습.
이어 아버지는 보람을 쳐다봤다.
“보람아, 지금 이 시간부로 1급 변신을 포함한 모든 봉인을 해제한다.”
“네? 아하하… 무, 물론 선생님이 저희 마탑에 많은 권한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철컹!
위이잉-----!
“무, 뭐라고?! 말도 안 돼!”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손을 흔들던 보람이 비명을 지른다.
그녀의 양팔에 채워 있던 강철토시가 오색으로 빛나며 기동음을 낸 것이 그 원인인 것 같았다.
“너도 지금 즉시 마탑으로 돌아가 마탑주께 궁니르를 꺼내달라고 하렴.”
“그, 그걸 지금 왜 꺼내요? 3차 세계대전이라도 열리나요? 게다가 변신한 제가 궁니르까지 들면.”
“일단.”
아버지는 의문이 있든 없든 즉시 시키는 대로 행동한 동민과 다르게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보람의 말을 끊었다.
“마탑주께 말씀드려보면 알겠지?”
“그런… 아, 알겠어요. 금방 다시 올게요!”
동민처럼 공간 이동은 할 줄은 모르는 듯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보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뭐가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빠?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은정이가 부탁했던 일을 하고 있지.”
“지금 이 상황에서 엄마 이름이 튀어나오다니…….”
황당해하는 나를 보며 아버지가 언제나와 같이 차분한 태도를 보이며 말한다.
“은정이에게는 예지능력이 있었거든. 이미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오늘을 예상하고 있었지.”
“…….”
어머니가 대마녀의 혈통이라던 보람의 설명이 떠오른다.
그러면 그녀의 말대로 어머니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아, 그런데 저기 아가씨는 누구지? 장래를 약속한 사이?”
큰일 날 소리에 고개를 흔든다.
“그냥 길가다 만난 애예요. 누군지도 잘 모르는.”
“와, 그렇게 딱 자르면 좀 섭섭한데.”
뚱한 표정의 세레스티아였지만 그녀를 신경 쓰기에는 머리가 너무 복잡한데다가 실제로 그게 사실이기도 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녀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인 듯 세레스티아를 보며 말한다.
“별 관계가 아니라면 좀 나가주지 않겠니? 집안 문제로 아들과 할 이야기가 있는데.”
“어머, 제가 알면 안 되는 일인가요?”
세레스티아가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피워 올린다.
그녀의 미모가 워낙에 뛰어나서 어지간한 남자라면 [사람 좀 죽이면 안 되나요? ^^] 같은 헛소리를 해도 승낙할 정도였지만, 당연히 아버지는 별다른 표정변화조차 없이 답했다.
“그렇단다.”
“…….”
미모를 이용해 좀 비벼볼까 하다 씨알도 먹히지 않자 당황하는 세레스티아를 거실로 몰아내고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간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방 한편에는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묘령의 소녀가 은은하게 웃는 사진이 걸려있다.
‘어머니…….’
나를 낳고 돌아가신 어머니는 아버지와 소꿉친구였다고 한다.
다만 소꿉친구라고 그렇게까지 친한 건 아니고 그냥 아는 척만 좀 하는 사이?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선 어머니는 얼마 안 있어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고, 그 사실을 아버지께 고백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내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
그리고 아버지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릴지도 모르면서 곧 죽을 어머니와 결혼식까지 올린 것이다.
‘미담이지.’
이건 나만 아는 게 아니라 꽤 널리 퍼진 이야기이다.
이건 아버지가 경솔했다거나, 주변 사람들이 입이 가벼웠다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고등학생 커플이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던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거짓일지도 모르겠군.’
나는 아버지의 비범함만 신경 썼지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평범한 여학생 정도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대마녀의 재능이라.
“예지능력이라는 건 뭐죠?”
차분하려고 노력했지만, 나도 모르게 날을 세우고 만다.
“약속했던 날이라는 건 또 뭐예요. 지금까지… 저를 속이고 있었던 건가요?”
물론 나에게 아버지를 원망할 자격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아버지가 나에게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 자아와 가치관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기억에 대해서도, 머리 위에 칭호를 볼 수 있는 이 특이한 능력에 대해서도 나는 그에게 털어놓은 적이 없다.
멋대로 아버지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먼저 벽을 만든 내가 이런 투정이라니?
그러나… 나는 항상 불안과 초조함을 안고 살아왔다.
세계의 진실 된 모습을 모르는,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이상성만을 선명하게 느끼는 나는 언제나 얼음판 위를 내딛는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 이 소중하고도 소중한 일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어느 날 갑자기 악몽 같은 기억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물리적인 실체를 가지고 덤비는 것만 같은 기분을 매 순간 느꼈다.
결과적으로 그 모든 불안을 외면하고 무시해 잘 넘겨왔지만, 내 정신력이 이상할 정도로 높지 않았다면 절망에 빠져 엇나가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면.
그리고 그래서 나에게 명확한 [세계관]을 잡아주었다면.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가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았다.
분명 그에게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도 그 사실을 주절주절 늘어놓지 않는 것.
대신 아버지는 물었다.
“오는 길에 공격을 당했겠지?”
“그것도 어머니가 예언하던가요? 자신의 피를 노린 적들이 저를 공격할 거라고?”
말하자마자 후회한다. 쓸데없이 날카로운 반응이었기 때문.
그러나 아버지는 화를 내는 대신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대마녀의 혈통이라고 해도 성계신의 심기를 건드릴 각오를 할 정도의 가치는 없어. 공격은 모계 쪽 혈통이 아니라 부계 쪽 혈통이 원인일 거다.”
“네? 아니, 아빠 피가 문제면 저같이 덜떨어진 녀석보다는.”
“대하야.”
차분하게. 그러나 엄하게 꾸짖는 눈빛에 멈칫한다.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라는, 몇 번이고 들어왔던 말을 어겼기 때문.
그러나 차마 사과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며 아버지가 한숨 쉬었다.
명백하게 평소와 다른 그의 태도에 내가 당황하는 순간 아버지가 말했다.
“대하야, 네 존재가 가지는 무게감에 비하면 순수 인간인 내 혈통에는 그리 큰 가치가 없단다. 고작 정자보관소에서 좀 더 높은 가격에 팔리는 정도지.”
“…네?”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문한다.
누가 봐도 터무니없이 비범한 아버지가 순수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은 당연히 아니다.
내가 당황한 것은 아버지의 말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아버지의 말은 마치, 그래, 마치…….
“그래, 네 생각이 맞다.”
아버지는 내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뭐라… 고요?”
사고가 정지한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구역질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차분하게 나와 눈을 마주쳤다.
“넌 내 아들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잘못 듣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준 후 이어 추가타를 가한다.
“더불어… 지구인도 아니지.”
너무나 현실성 없는 이야기에 뭐라 대답도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킨다.
물론 그건 나 역시 수백 수천 번 생각해 왔던 일이다.
나와 아버지는 닮지 않았다.
만능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그와 다르게 내가 잘하는 거라고는 게임 정도이고 월드스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외모를 가진 그와 다르게 나는 그냥 허우대만 멀쩡하다고 할 수 있는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의심하는 게 정상인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수많은 검증을 거쳤다.
“유전자… 검사를 받았잖아요. 각기 다른 단체에서 10번은 한 것 같은데 아무리 아버지라도 그들을 다 속였다고요?”
의심병 환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나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그런데 그들이 다 틀렸다니?
그런데 아버지가 하는 말은 더 가관이다.
“너에게는 DNA가 없어.”
“…네?”
어이가 없어 되묻는다. 아니, 세상에 DNA가 없는 생명체가 어디에 있어?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그들이 본 것은, 말하자면 내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페이크 DNA다. 은정이 입혀놓은 거지.”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뭔가를 추억하는 얼굴. 그러나 그는 이내 표정을 풀고 나에게 말했다.
“앉아서 들어라.”
순간, ‘서서 듣겠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이 얼마나 치기 어린 반항이란 말인가?
나는 어떻게든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소파에 앉았고 아버지가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은정이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단다. 다만 친하게 지내지 못한 건 그녀가 주변 모든 사람을 경계했기 때문이지.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평범한 인간이라 모르시지만 사실 그녀는 특별한 존재였거든.”
대마녀의 혈통이라지만 그게 대를 이어 전해지는 종류의 힘은 아니었다.
수백 년, 수천 년에 한 번씩 돌발적으로 생겨나는 세계의 특이점이었던 것.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날 찾아왔단다.”
“아빠를 사랑한다면서요?”
비꼬듯이 한 말이었는데 뜻밖에도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역시 재수 없는 인간, 하고 허탈해하는 나를 보며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다만 그 말을 급하게 하게 된 건 그녀가 죽음을 향해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불치병은… 아니었겠군요.”
“물론이야. 은정이는 대마녀의 힘을 타고난 존재는 불사신이나 다름없다고 했어. 불로 태워 잿더미로 만들어도 부활할 정도라고 했지.”
그녀는 스스로 살 수 있었지만 그걸 포기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절대 바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죽음은 스스로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너를 낳기를 원했으니까.”
간접적으로 돌려 한 말이었지만, 나 역시 바보는 아니었던 만큼 거기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는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을 하고 있었다.
“저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