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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18화 (1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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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5 I'm not your father

“우리별의 성계신이 선생님께 홀딱 빠졌거든요.”

“…성계신?”

“벌써 세 번이나 차였다고 하더라고요.”

“…….”

어이가 없다.

아니, 그러니까. 어떤 대단하고 강력한 초월적인 존재가 아버지한테 완전히 빠져서 마법사든 누구도 감히 건드릴 엄두조차 못 낸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우리를 습격했던 녀석들이 기둥서방 어쩌고 했던 기억이 난다.

“성계신이라는 게 대단한 거야?”

내 물음에 동민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신이라는 단어를 허투루 들은 모양이군.”

“솔직히 저희 입장에서는 전지전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존재예요. 인간사에 거의 간섭하지 않지만, 절대 거스르면 안 되는 존재죠.”

초능력자(라고 짐작되는) 동민과 마법소녀인 보람이 입을 모으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진짜 신적인 힘을 가진 모양.

나는 혹시나 해서 세레스티아를 향해 물었다.

“너희도 성계신을 알아?”

“당연히 알지.”

거기까지 말하고 슬쩍 고개를 움직여 내 귓가에 속삭인다.

아무래도 외계인이라는 건 동민이나 보람에게도 비밀이라 그런 것 같았다.

“하위문명에서 설치다가 성계신들한테 멸망한 나라가 한두 개가 아냐. 그중에서 [제국] 클래스만 해도 엄청난 숫자지. 사실상 [하위문명 접촉 제한법]이 만들어진 것도 성계신들 때문이니까.”

“얼마나 강한데?”

“우리 수준에서는 답이 없을 정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에 황당해한다.

그러니까 마법사들도 외계인들도 그 존재를 선명하게 알고 있는 신이란 말이 아닌가?

아버지에게 반했다는 존재인만큼 접촉이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 슬쩍 옆구리를 찌르자 세레스티아가 작게 설명을 시작한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바로 옆에 있는 동민이나 보람은 그 말을 듣지 못하는 분위기다.

“하나의 행성에 문명이 태동함과 동시에 태어나는 성계신(星界神)은 고위 초월자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신이야.”

그러나 가장 흔하다 해도 무시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건 절대 아니다. 성계신은 태어날 때부터 상급 신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레스티아는 성계신의 존재 목적 자체가 전투와 거리가 멀어 전투력은 중급 신보다도 약하지만 창조신의 위계(位階)를 가지고 있어 [신]으로서의 거의 모든 권능을 다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도 이상의 문명을 가진 행성 하나에 한 명씩 있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존재지. 실제로 지금 대우주에서 활동하는 중급 신위 초월자를 다 합쳐도 스무 명이 안 되는데 말이야.”

당연하지만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니다. 신이면 신이지 상급인지 중급인지 하급인지 알게 뭐란 말인가?

다만 아버지에게 반한 존재가 그렇게나 대단하다, 라는 정도로만 이해하면 되는 모양이다.

“실존하는 유일한 신이에요. 인류의 의지가 현현(顯現)된 존재죠.”

당연한 말이지만, 보람과 동민의 설명은 세레스티아와 좀 달랐다.

“저건 지고마탑의 입장이고 정확히는 지구의 탄생과 역사를 같이해 온 초월적인 신이다. 허상과 거짓을 이야기하는 인간들의 종교에서 떠드는 신과는 차원이 다른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수십수백 차례 이상 지구를 멸망에서 지켜낸 존재야. 신이라기에는 좀 가벼운 성정을 가졌다고 해도 감사하고 숭배해야 할 대상임에는 틀림없지.”

“…….”

평소 말도 없던 녀석이 좔좔 늘어놓는 모습에 놀란다. 이 녀석 설마 성계신교 같은 종교를 믿고 있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떠오르는 의문에 묻는다.

“그런데 유일한 신이라고? 우리별의 성계신이라고 했잖아. 그럼 다른 별에도 있는 거 아냐?”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람이 눈살을 찌푸린다.

“저기… 아까부터 왜 이렇게 외계인을 찾으시죠? SF소설을 좋아하시나요?”

“성계신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러는 모양인데 그건 그녀 스스로의 소개 때문에 붙은 호칭이고 일반적으로는 가이아라고 부르지. 뭐, 외계인이야 이 넓은 우주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증명되지 않은 존재는 가설에 불과한 거고.”

“판타지가 나왔다고 SF까지 있으리라고 기대하시는 건 좀…….”

왠지 둘이 번갈아 가며 나를 바보 취급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대인배의 마음으로 참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 어나더 플레인의 녀석들이라고 딱히 외계의 존재에 대해 알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잠깐 기다려.”

가볍게 한숨 쉬고 일행을 집 안으로 이끈다.

기분은 상당히 미묘하다.

‘아버지는 왜 이런 이야기를 전혀 안 해주신 거지?’

아무리 일반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비범하지만)이라지만 신을 제삼자들까지 알 정도로 뻥뻥뻥 차댔으면서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을 전혀 몰랐다고는 믿을 수 없다.

좀 멍청하고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아버지는 세계 최고의 천재다.

그냥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서도 단서를 잡아내고 추론하여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그가 아무것도 모른 채 있는 상태다?

‘그럴 리 없지.’

고개를 흔들며 내 뒤를 따르는 세 명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참 호화찬란한 멤버다.

‘마법소녀에 초능력자에 외계인이라니.’

솔직히 이것들을 내 집에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밖에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럴 수는 없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나이지만…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녀석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습격자 녀석들이 여기가 성지라는 걸 신경 쓸까? 괜히 막 다 박살나고 그러면 곤란한데.”

“그럴 일은 절대 없어요. 절대 누구도 불가능하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당연한 물음이었지만 보람은 뭘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묘하게 흥분한 상태라 처음 보았던 가녀린, 더불어 소심한 모습은 거의 사라진 상태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셀 녀석은 어느새 말을 놨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느 타이밍에서부터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다. 당연하다는 듯 친한 척을 하고 있으니 이거야 원.

어쨌든 보람이 설명한다.

“이 집을 포함한 성지를 침범할 수 없는 건 의식적인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문제예요. 성계신이 ‘살의(殺意)를 품고 성지에 들어오면 죽는다’는 [법칙]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법칙이라 아까 그 괴상한 기계들이라도 어길 수 없어요.”

“헐.”

맘대로 법칙을 정하고 그 법칙을 어기면 그냥 죽는다니 무시무시한 일이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신을 자처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

“아, 왔니?”

인기척이 들리자 한참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아버지가 몸을 돌린다.

슬슬 날이 풀리고 있어서인지 얇은 T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아, 앞치마… 와, 팔에 힘줄…….”

뜬금없이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보람아?”

“아! 아니에요!”

“뭐가 아니야?”

“하여튼 아니에요!!”

왠지 모르게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보람의 모습에 혀를 찬다.

이 녀석 초반 모습은 다 가식이었나.

그런데 돌아보니 그녀의 인중을 따라 한 줄기 피가 흐르고 있다.

“너 언제 다친 거야?”

“네? 아뇨 멀쩡한데요.”

“근데 코피가…….”

“……!!”

순간 보람의 몸이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건 아니고 뒤로 빠진 거였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 과정이 보이지 않았다.

번쩍!

그리고 문 밖에서 뿜어지는 온화한 빛. 나는 그걸 사용한 사람이 보람이라는 걸 알았다.

‘뭔가 회복기술 같은 건가? 아니, 그런데 아주 조금밖에 안 흘렀는데 저런 것 까지 필요해?’

어이없어 하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녀가 다시 안으로 들어온다.

그 기가 차는 과정을 다 봤을 텐데도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다.

“친구들이니?”

“그럴 리… 아니, 동민은 반 친구라면 반 친구겠네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생님.”

“그래, 오랜만이구나. 보람이도 오랜만.”

“네, 네! 안녕하세요!”

발개진 얼굴로 헤헤거리고 있다. 아주 눈에서 하트 모양의 레이저 빔이라도 쏘아낼 기세구만.

“와, 너희 아버지 되게 분위기 있다. 진짜 일반인 맞아?”

“글쎄. 저게 일반인이면 [일반]이라는 단어를 내가 잘못 쓰고 있었다는 뜻이겠지만.”

쓰게 웃는다.

그런데 그때였다.

“오셨군요. 꽤 기다렸어요.”

놀랍게도 집 안에 있는 건 아버지 혼자가 아니었다.

“알레이나… 당신이 왜 우리 집에 있죠?”

“호호호. 너무 차갑네요. 남자들은 제가 집에 찾아오면 하나같이 좋아하던데.”

농염하게 웃는 여인은 나를 납치했던 레온하르트 제국의 군인인 알레이나.

아버지는 오븐에서 새로이 구워낸 케이크를 꺼내들며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너한테 볼일이 있다고 찾아왔더구나. 진로 관련이라는데.”

“맞아요. 솔직히 저는 아직까지 반신반의지만……. 기술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와서요.”

“기술부?”

예상치 못한 단어에 의아해한다.

기술부? 웬 기술부?

그녀가 여기까지 찾아왔다면 당연히 대전쟁에서의 내 점수를 보고 파일럿으로 만들기 위해서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어째서 기술부가 튀어나온단 말인가?

의아해하는 나를 향해 알레이나가 이어 말한다.

“이렇게나 문명 수준이 낮은 곳에서 대전쟁을 해킹할 수 있는 천재는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교육만 확실히 시킨다면 놀라운 엔지니어가 될 거라고 들었어요.”

“…….”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잊는다.

고작 12억 포인트가 그렇게까지 못 믿을 점수냐? 도저히 플레이 점수라고는 못 믿고 해킹을 생각할 정도로?

솔직히 까고 말해서 재미 다 버리고 점수 노가다 하면 100억 점도 그냥 찍을 거 같은데…….

“…선배, 저 불여시같이 생긴 건 누구죠? 아는 여자예요?”

그때 보람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묻는다.

한결같이 수줍은 태도를 유지하던 그녀가 도끼눈을 뜨고 있는 모습이 꽤 볼만하지만, 세상 누구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 옆에 알레이나가 서 있다면 같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우주선에서 만났을 때와 달리 사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노출이 거의 없는 제복을 입고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얀색의 블라우스를 입고 단추를 세 개나 풀러 폭력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풍만한 가슴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아래로는 검은 색의 H라인 스커트를 입어 넓은 골반과 쭉 뻗은 다리를 과시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그냥 저러고 인도를 걷기만 해도 옆 차도에서 교통사고가 수십 건은 날 것 같은 외양이니 같은 여자로서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겠지.

“누구냐면… 아오, 비밀서약 이거 되게 거슬리네. 야, 셀. 너무 불편한데 그냥 나한테 다 털어놓은 것처럼 하면 안 돼? 어차피 둘 다 이상한 단체인 건 피장파장……. 셀?”

“야, 부르지 마 부르지 마.”

어느새 뒤쪽으로 숨어서 작게 중얼거리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에 황당해한다.

얜 또 왜 이래?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셀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알레이나의 설명은 계속된다.

“전에 말씀하신대로 조종사가 하기 싫으시다면 기술부에 들어가시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기술부장님의 추천을 받으면 그것도 나름대로 출세가 보장되는 삶일 테고.”

“흠, 저기 죄송하지만.”

너무나 당연하지만 거절하려 한다.

안 그래도 마법소녀, 초능력자, 게다가 세레스티아까지 얽혀서 상황이 개판인데 이 상황에서 레온하르트 군에 입대라니?

설사 전투병이 아니라 기술부원이 된다 하더라도 문제다. 애초에 별다른 배경지식도 없는 첨단 SF세계에서 어떻게 기술자를 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때 아버지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알겠습니다.”

“거절… 네?”

“곧 준비를 하지요. 몇 시간 후에 출발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아, 네. 물론.”

“그럼 준비를 좀 할 테니 다시 와주시죠.”

“호호, 알겠어요. 잠시 후에 봬요~”

뭔가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듯 잽싸게 집을 나서는 알레이나를 막지도 못하고 버벅인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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