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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5 I'm not your father
“세상에 외계인이 어디 있어요?”
“…….”
너무 상식적인 소리를 해서 벙찌고 말았다. 아니, 뭐라고요, 마법소녀씨? 황당해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자제한다.
‘됐어.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해야지.’
즉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어버버거리다가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위기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후우…….”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전체 설정]을 변경해 [목적]이 보이도록 만든다. 기본적으로 내가 칭호를 조작하는 건 특정 대상 하나뿐이지만 약간 무리를 한다면 시야에 보이는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숨을 참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일이라서 오래 유지할 수는 없지만, 개나 소나 고착칭호를 차고 있는 상태니 별 수 없는 일.
먼저 본 건 창을 들고 설치던 녀석이다.
[흑월문]
[너 잡으러 온 마곤]
“젠장.”
“네?”
“아냐. 상황이 개판이라고.”
“개판… 네, 맞아요. 개판이네요. 물론 저희들로서는 다행인 상황이기는 한데 뭐가 뭔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계를 유지하며 슬금슬금 구석으로 이동하는 보람을 따라가며 시선을 돌린다.
참고로 새롭게 나타났던 기계 인간들의 원 칭호는 이랬다.
[아몬 공작가]
[살육병기 135호]
당장은 쓸데가 없는 소속과 칭호다.
아몬 공작가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살육병기 135호, 17호, 221호 이따위는 전혀 정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상세한 [분류]에 들어간다면야 저놈들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는 물론 주인은 누구인지까지 알 수 있겠지만 거의 5분 넘게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나올 리 없다. 정신 놓고 있다가 저놈들이 목이나 안 따 가면 다행이지…….
어쨌든 고쳐진 칭호는 이것이었다.
[아몬 공작가]
[황녀를 죽이러 온 17호]
‘…황녀? 웬 황녀? 여기서 황녀가 갑자기 왜 튀어나와?’
너무나 뜬금 터지는 단어에 머리가 핑핑 돌아간다.
여전히 주변은 개판이고 우리를 노리는 녀석들이 보람의 결계를 두들기고 있었지만, 어차피 내가 할 일이라곤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것뿐이었으니 잡념에 빠질 틈은 충분하다.
‘설마 우리를 습격한 녀석 중에 황녀가 있나?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넓어도 황녀를 암살자로 쓰는 황제가 있을 리… 황제?’
순간 머릿속에서 단어장이 좌르륵 지나간다.
황녀란? 황제의 딸을 이르는 말이다.
황제란? 왕이나 제후를 거느리고 나라를 통치하는 임금을 뜻하는 단어다.
제국이란?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21세기 현대에서는 황제도 황녀도 제국도 없다. 역사서에서나 나올 단어.
그러나… 나는 아주 최근이 이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레온하르트 제국군 2군단 사령부 인사과장. 알레이나 대위입니다.'
그렇다. 레온하르트 제국이 있었다. 만약 녀석들의 배에 황녀가 타고 있었다면?
‘하지만 그러면 우주선으로 쳐들어가야지 왜 여기에 와서 설치고 있…….’
“꺄악!”
그런데 그때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린다. 물론 지금은 난전 중이라 사방에 비명과 고성이 가득 찬 상황이지만, 이 비명 소리만큼은 확실하게 귀에 들어온다.
왜냐하면 아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셀? 네가 왜 여기 있지?”
“아, 하하하. 그냥 좀 신경이 쓰여서 쫓아왔다가… 웃차!”
콰쾅!
순간 폭음과 함께 그녀를 덮쳤던 살육병기 하나가 튕겨 나간다. 어느새 세레스티아의 양손에는 금색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권총 한 쌍이 들려 있었다.
콰과과광!!!
무슨 권총이 아니라 기관총처럼 탄환을 쏘아내자 탄환의 비에 휩쓸린 살육병기들이 산산이 부서진다.
‘우와 이게 무슨 사기템이냐!’
나는 대번에 세레스티아가 들고 있는 쌍권총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물리적인 탄환이 아니라 기가스에나 탑재될 광자포야! 자체적으로 역장을 펼쳐 사용자를 보호하고 총신이 물리에너지를 흡수해 대부분의 반동을 제거한다!’
게다가 말이 좋아 권총이지 사이즈가 엄청나다. 권총과 소총의 중간 정도 되는 크기라고 할까?
구경도 20mm는 되는 기형적인 구조.
양손에 대포를 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인 것이다.
게다가 저 쌍권총의 슬라이드에 새겨진 황금사자 문양에서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이 느껴진다.
“뭐, 뭐야 이게? 검기도 안 통하는 괴물들이 겨우 총을 맞고 박살이 난다고?”
“지고의 마탑에서 보낸 적인가!”
“어째 좀 쉽나 했더니!”
모두가 혼란에 빠진 사이에 세레스티아가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일행이 되겠다는 의미이겠지만, 보람이 펼쳐낸 역장에 가로막힌다.
“열어.”
“싫어요.”
“뭐, 뭐라고?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군데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에 세레스티아가 멈칫한다.
“그, 비밀이지…….”
“바보세요?”
“으아악! 이래서 하위문명이 싫어! 아, 그러고 보니 이것들하고 얽혔으니 법무관들한테 한 소리 듣겠구나!”
그녀 역시 혼란스러운 상태인 것인지 고운 눈썹을 찡그리며 주변을 경계한다.
그런데 그때였다.
파앗!
공간이 일렁거리더니 주변 배경이 급변했다. 검기와 폭발에 박살 났던 집들이 삽시간에 원상 복구되고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적들의 모습이 싹 사라진 것이다.
“뭐야, 이게. 이동했어?”
“차 안이라니. 그러고 보니 장소는 방금 거긴데 환경만 변했군……. 아이고 힘들어.”
나는 푹신푹신한 시트의 느낌에 한순간 힘이 풀려 등을 기대 버렸지만, 보람은 결계를 재생성하고 세레스티아는 권총을 들어 주변을 경계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강제적으로 공간을 이동했으니 오히려 그쪽이 당연한 일.
그러나 곧 운전석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상한 덤들이 붙어왔군.”
“김동민…….”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 거기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반 친구가 되어버린, 그러나 절대 친하다고 할 수 없는 동민.
그리고 그 옆에는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웬 형이 불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괘, 괜찮은 거예요, 보스? 제가 적들까지 데려온 건 아니죠?”
“둘 다 적의는 보이지 않으니 안심해. 뭐, 그래도 확인 차 묻지. 대하, 거기 두 여자는 아군인가?”
“…말하자면?”
자신 없는 태도였지만 동민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엑셀을 밟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에 깜짝 놀라 물었다.
“어? 동민이 너 운전면허 있어?”
“…팔자 좋군. 지금 면허가 문제가 아닐 텐데.”
확실히 그의 말대로 면허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아무래도 이 녀석도 [저쪽]에 속하는 인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하아…….”
언제나 평범하고 평온한 일상을 바랐다.
현실을 의심해 왔지만, 그건 [우려] 섞인 의심이지 절대 그런 세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미 지치고 지쳤다. 마모되고 상처 입어 그 어떤 자극도 원하지 않았다.
내 기억과 정신을 침탈하고 짓눌러 온 기억과 힘에 고통받아온 나에게, 평온한 매일매일은 너무나 소중한 보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은… 그냥 내 착각 속에서만 존재했단 말이군. 어쩌면 내가 외면해 오고 있던 걸지도 모르지.’
하루 만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정신이 없다.
혼란스러운 건 나뿐이 아닌 듯 보람 역시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세상에 이면차원에서 몇 명을 특정해 꺼내는 게 가능하다니… 설마 당신들 초능력자 집단이라는 프레스티지 소속인가요?”
“이제는 초능력자냐……”
기가 차서 헛웃음 짓는다.
나름대로 평범하게 자라왔는데, 돌아보니 주변에 평범한 녀석이 없다. 다 이상한 놈들이다.
‘재석이 놈은 막 무림고수고 그런 건 아니겠지?’
뻘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벤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어디에 가나 했더니 점점 더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인다.
“뭐야, 지금 우리 집으로 가는 거야?”
“당연하다. 지금 이 순간 거기보다 안전한 곳이 있을 리 없으니까.”
차분한 동민의 목소리에 머릿속에 벼락이 친다.
“역시 그랬구나!”
“…뭐가?”
“역시 아버지는 대단한 강자인 거지? 무림고수 아니면 대마법사 뭐 그런 거지?”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한 말이었는데 동민이, 심지어 보람마저도 나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선생님은 평범한 인간이다. 아, 물론 여기서 말하는 평범한, 이라는 건 이능에 한정된 이야기지. 나머지 부분에서는 아주아주 비범하신 분이니까.”
말하는 사이에 집에 도착한다.
우리 집은 규모가 꽤 큰 편이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갔다.
“실례하겠습니다~”
“…야, 넌 왜 집까지 쫓아와?”
넉살 좋게 집에 발을 들이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자 세레스티아가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청순한 분위기의 미소녀였던지라, 단지 표정 좀 바꾸는 것만으로 한 떨기 꽃이 떨어지는 것만 같은 그림이 나온다.
“어머, 너무해. 이 가녀린 미소녀를 위험에 내던질 생각이야?”
“위험은 무슨. 그 비마나인가 하는 거 타고 너희 별… 아니 집으로 돌아가면 되잖아? 애초에 넌 누가 노리는 것도 아니…….”
그러나 그 순간 멈칫한다.
누가 노린다? 누군가 세레스티아를 노린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잘 숨어 있다가 비명을 지르며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뭐였던가.
그 살육기계 중 하나에게 공격받아서가 아닌가?
“…너구나.”
“에? 뭐가?”
당연한 말이지만 황녀가 너지! 라는 멍청한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 이상한 로봇들, 널 노리고 왔던 거지? 게다가 태도를 보아하니 녀석들에게는 널 추적할 수단이 있군.”
“…….”
너무 깔끔히 정곡을 찔려 버리자 부정도 못하고 굳어버린다.
그녀가 어설퍼서는 아니다. 아마 부정해 봐야 소용없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나는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저 녀석이 처음 만난 외계인이 아니었으면 바로 황녀라는 사실을 알아챘을 텐데.’
칭호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나타내는 척도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주관적이고 종합적인 단어의 나열이라고 할까? 예를 들어 아까 목표로 칭호를 정했을 때에는 [너 잡으러 온]이라는 식의 칭호가 뜨지 않았던가?
내가 세레스티아를 처음 봤을 때 그녀의 칭호는 [외계인]이었다.
그러나 한 번만 더 생각해도 그 칭호가 얼마나 이상한지 깨닫기는 어렵지 않으리라.
어찌 자신을 대표하는 [상태]가 외계인일 수가 있는가?
외계인이라는 건 상대적인 개념이다.
저기 저 먼 안드로메다 성운에 어떤 종족이 산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지구인들이 외계인이듯이 말이다.
그녀의 칭호가 나에게 외계인으로 보였던 건 그녀가 내가 본 유일한 외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칭호는 이렇다.
[데트로 은하 연합 4군단 제1돌격대]
[우주아이돌 세레스티아]
‘뭐야, 결국 아직도 황녀는 안 뜨네. 게다가 우주아이돌은 또 뭐야, 미친.’
어이없어 하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나저나 너무 무방비하게 우리 집에 온 거 아냐? 아까 그놈들 쳐들어오면 집 다 박살 날 것 같은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네요. 여기는 일종의 성지(聖地)예요. 감히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죠.”
“왜? 아버지는 그냥 보통 사람이라면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의문을 표하자 보람이 한숨 쉬었다.
“관일한 선생님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마탑들은 물론이고 그 어떤 무법자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분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왜냐니까? 물론 아빠가 유능하고 온갖 재주를 가진 건 사실이지만 아까 그 괴물들이 덤비면 답이 없을 텐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아버지는 무술의 달인이지만 철창 한 번 휘둘러서 건물 한 채를 날려 버리는 괴물이 상대라면 잠시도 못 버티는 게 정상 아닌가?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동민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의 세계. 어나더 플레인에 사는 사람들은 선생님을 신의 마음을 훔친 자라고 부르지.”
“신의 마음을 훔친 자?”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보람이 설명한다.
“우리별의 성계신이 선생님께 홀딱 빠졌거든요.”
“…성계신?”
“벌써 세 번이나 차였다고 하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