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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16화 (16/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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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5 I'm not your father

“선배의 모친이셨던 함은정님께서는 대마녀의 재능을 타고나셨던 분이세요.”

“…….”

정말 미친 소리였다.

“너,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상처 받아요.”

“아, 미안. 내가 너무 중2병에 걸린 정신병자 여자애 보듯이 했나?”

“그렇게까지 심하게 보셨나요…….”

우우 하고 눈물을 글썽이는 보람의 모습을 보다 말고 잠시 주변을 살핀다. 기묘하게도 길에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느낌이 쌔한데…….’

이 근처 주택가가 직장인들이 잠만 자고 가는 곳이라서 낮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도 자녀가 있을 테고 지금은 하교 시간인데 주변에 단 한 명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니.

‘마법인가?’

그러나 클로킹 상태로 생각되던 우주선을 봤던 때와 다르게 지금은 별다른 이상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 알 수는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내 [보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나?

“저기, 선배님?”

“아, 그래. 뭐 일단 그 미친 소리라는 거 해봐. 대마녀의 재능은 또 뭐야?”

“말하자면… 함은정, 아니, 아주머님? 하여튼 그분은 특별한 힘을 타고난 분이셨어요. 그녀가 태어났을 때 온 세상의 마법사들이 그녀를 주시했다고 전해질 정도지요.”

21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황당무계한 이야기였지만, 굳이 거기에 태클을 걸지는 않는다.

사실 그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지고의 마탑 수호결계반]

[진실을 전하려 하는 강보람]

어렵지 않은 일이다. [현재 성향]을 칭호로 구현시키면 이런 식으로 어느 정도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칭호는 매 순간순간 변화하며 [거짓말을 하고 있는]이나 [아는 게 별로 없는]등의 칭호가 뻘 소리를 걸러주기 때문에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외계인들한테도 써볼 걸 그랬나?’

물론 거짓말을 한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지만 정신이 없어서 이것저것 읽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기 싫은 건 사실이지만 정보를 최대한 많이 습득해 두어서 손해 볼 건 없을 테니까.

“그래서 뭐야. 설마 어머니가 특별한 존재라서 그 피를 타고난 나도 뭔가 이상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서가 중요하다.

표시를 안 내고 살아왔을 뿐이지 난 틀림없는 초능력자이며… 그 힘은 아무래도 출처가 있음이 분명하다.

‘다만 걸리는 것은 [악몽]에 대한 것인데…….’

나는 머리가 별로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예전부터 조숙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나를 괴롭혀 온 기억과 악몽이 내 자아 성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 엄마라고 불러보지 않을래?'

무, 물론 저런 악몽은 예외고.

“흠, 실망하실지도 모르지만 선배님은 완전한 일반인이에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마탑의 대마법사들까지 나서서 확인한 사항이었어요. 원래 대마녀의 재능을 타고난 여인은 임신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존재 자체가 이해 불가능한 경우였다고 해요.”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이런저런 테스트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냥 아이큐 검사 비슷한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말이다.

‘그럼 결국 내가 가진 능력을 알지는 못한다는 건가?’

하지만 그러면 다른 의문이 떠오른다.

“그럼 뭐야?”

“네?”

“네 말이 다 맞는다고 쳐. 그럼 결국 난 아무것도 아닌데 왜 와서 이런 비밀을 알려주는 거야? 미친 사람 취급이나 받을 게 너무나 뻔한데?”

의중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래, 그 외계인들이야 내가 대전쟁에서 기록적인 점수를 획득해서 접근했다 치자. 세레스티아는 나에게서 [뭔가]를 느꼈다고 하고.

그런데 나를 일반인으로 본다면서 갑자기 나타나 이런 소리를 늘어놓다니? 그것도 이런 여자애를 요원으로 써서?

‘나같이 피 끓는 고등학생한테는 이런 미소녀가 잘 먹힌다고 생각해서인가?’

어쨌든 미친 사람 취급당할 걸 알면서도 이렇게 주절주절 늘어놨다는 건 목표가 있다는 뜻.

과연 보람은 한숨 쉬며 설명했다.

“경호를 위해서예요. 저희 지고의 마탑에 있는 [하늘의 눈]이 선배님을… 조심하세요!!!”

“무슨… 우엑!?”

난데없이 어깨를 짓누르는 우악스러운 힘에 짓눌려 엎어진다.

1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그마한 미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주제에 힘이 무슨 롤랜드 고릴라 급이었다.

쾅-!

엎드린 내 귀로 폭음이 울린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가 걷던 도로 옆의 건물이 통째로 날아가 있었다.

“뭐야?”

“이런, 벌써 왔어요! 역시 아까 그 여자도 한패였던 건가!”

“그 여자라니 설마… 윽!”

보람이 막 뭔가 말하려는 내 멱살을 잡고 확 일어난다. 키가 어느 정도 되는지라 절대 적지 않은 체중을 가지고 있는 내가 지푸라기처럼 허공에 붕 하고 뜰 정도로 거친 기세였다.

콰득!

폭음과 함께 거대한 창이 바닥에 박힌다. 창날이 윙 하고 떨리는 진동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놀라고 경악하지는 않는다. 대신 땅을 박차고 일어나 뒤쪽으로 굴렀다.

피잉!

묵직한 창날이 내 머리가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뭐야, 이 미친놈들은? 일언반구 없이 죽이려고 들다니.

어느새 공격당한 건지 고정한 머리칼이 다 풀어져 버린 보람이 창백한 얼굴로 내 앞을 가로막는다.

“괘, 괜찮으세요!?”

“뭐, 괜찮지. 머리가 터질 뻔하긴 했지만.”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에 창을 휘둘렀던 사내가 휘파람을 불었다.

“오~ 뭐야, 이 녀석. 완전 태연한데? 어나더 플레인(Another Plane)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일반인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이 녀석 그 기둥서방의 자식이라고 했었지. 그 녀석 겁나 무술 고수라 맨손이면 3레벨 능력자도 이긴다고 하더라.”

“뭐? 무능력자가 능력자를 이긴다고? 그런 게 가능해?”

“실제로 개망신당한 등신들이 있다던데.”

나는 일단 내 유일한 방패막이라고 할 수 있는 보람 뒤에 숨어 시끌시끌 떠드는 사내들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흑월회]

[창술 전문가 마곤]

당연한 말이지만 칭호만 봐서는 뭐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녀석이 창술을 쓰는 거야 당장 들고 있는 무기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니 사실상 아무 정보도 아니다. 정말이지 고착칭호는 귀찮기 짝이 없는 개념인 것.

그리고 그렇게 내가 칭호를 살피는 사이 보람이 보라색의 영기(靈氣)를 피워 올리며 분노하는 모습이 보인다.

“당신들! 선배가 2급 보호대상이라는 건 알고 일을 벌인 건가요? 이건 절대 용서받지 못할 일이에요!”

“우리야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알게 뭐야. 게다가 어차피 안 들키면 그만인데.”

“하하하! 하도 숫자를 많이 모아서 걱정했는데 상대가 고작 견습 마법사 하나라니 기가 차는군. 아무리 지고의 마탑 소속이 정예로 유명하다지만 이건 아니지.”

“뭐 어때. 꽁돈 얻어 가면 우리도 좋지.”

골목골목에서 하나둘 사람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귀랑 입술에 피어싱을 덕지덕지 하고 있는 불량배 같은 놈부터 회사원 차림을 하고 있는 사내까지 복장은 가지각색.

다만 그렇다 해도 충분히 현대에 있을 만한 모습들이었는데, 묵직해 보이는 철창이나 해골이 달린 지팡이 등을 들고 있어 지독히 이질적인 모습이다.

“맙소사. 작전부에서 완전히 판단을 잘못했어요. 어, 어째서 이렇게 엄청난 숫자가…….”

보람은 창백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예의 그 강철토시가 나타나 그녀의 양팔을 뒤덮고 있었지만, 적들의 수는 계속 늘어 어느새 서른을 넘고 있었다.

불량배 서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저들은 하나하나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강자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추가 등장인물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장! 이면공간에 침입자가… 크악?!”

“뭐, 뭐야? 지원군인가?”

“공격해!”

자신만만하게 우리를 포위하던 녀석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한다. 허공에 실선이 그어지더니 거기에서부터 2.5미터나 되는 괴한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 습격자들과 충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건 검은색의 망토를 두르고 있는 녀석들로 하나같이 괴상한 디자인의 가면을 쓰고 있는데다 온 몸을 싸매고 있어 외모도 성별도 알 수가 없는 상태. 다만 전투력만은 엄청나서 녀석들의 주먹과 습격자들의 무기가 충돌하자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린다.

콰앙!

번쩍!

그리고 그렇게 난무하는 폭음과 섬광에 노출된 나는 속이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아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냥 울렁거리는 정도가 아니다.

“쿨럭!”

피를 토한다.

농담이 아니라, 내장이 울렁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피를 한 됫박은 쏟아낸 것이다.

“제 뒤에 바짝 붙으세요!”

보람이 내 앞에 서더니 양손을 좌우로 뻗는다. 그녀의 양팔에 장착된 토시가 빛을 뿌리더니, 뭔가 홀로그램 같은 빛무리가 둥그렇게 주변을 감쌌다.

“뭐야, 내가 무슨 공격을 당한 거지?”

“공격이 아니라 저쪽에 있는 사내가 무슨 탄두 같은 물건을 창으로 쳐내면서 충격파가 전해진 거예요. 일반인의 몸은 약하다는 걸 알면서도 대비하지 못하다니…….”

죄송스럽다는 그녀의 반응에 황당해한다.

“뭐? 충격파?”

지금 그러니까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냥 여파만으로 이 꼴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거 잘못하면 비명에 가겠구나.’

칭호 효과도 있고 해서 나름대로 허약하지는 않은 몸 상태를 가지고 있는 나였지만 이건 상식을 벗어난다.

고개를 돌려보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팡팡팡! 하고 움직이는 녀석들이 보인다.

습격자들 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창술 전문가 마곤이라는 녀석이 괴상한 디자인의 가면을 쓴 녀석에게 창을 휘두르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창끝이 음속을 넘었다는 증거였다.

“완전 괴물들이군.”

“흑월회의 마곤에 타나토스 학파의 세미도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스터급 강자들까지 용병으로 오다니 이게 무… 합!”

순간 보람이 기합을 내지르자 양팔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덤벼들던 양복 차림의 사내가 양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채 튕겨 나간다.

“큭! 뭐 이런 결계가!”

“흥! 숫자가 많으니 무서웠던 거지 하나하나는 제 방어를 뚫을 수 없거든요?!”

평소의 수줍은 인상에서는 연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섭게 소리치며 뒤로 빠진다.

의문의 적과 싸우지 않는 암살자 몇이 덤벼들었지만 보람의 주변을 둘러싼 결계에 모조리 격퇴당한다.

단지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오히려 강화해 되돌려 보내는 결계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지고의 마탑 수호결계반이라고 했었지.’

예전에 봤던 그녀의 소속을 떠올리며 따라 달린다.

주변은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콰광! 콰득!

촤르륵!

“으아악! 살려줘!”

“뭐야! 이 녀석들 뭐야?!”

“검기가 안 통해!”

“정신계도 안 통해! 아니, 이 녀석들… 인간이 아니잖아?”

용병 녀석들과 전투를 벌이던 괴인들의 가면이 부서지자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왜냐하면 가면 뒤에 있는 얼굴이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는 녀석들이야?”

“모, 몰라요! 이, 인간형 로봇이라니. 저런 과학력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외계인들이라면 다룰 거 아냐?”

“외, 외계인이요?”

내 물음에 보람이 그 급박한 와중에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세상에 외계인이 어디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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