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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4 무너지는 일상
‘써먹으려고.’
너무 당연해 고민할 가치조차 없는 이야기일뿐더러 자국의 인재들을 두고 외부 인력을 데려가려는 것부터가 수상쩍기 짝이 없다. 내가 왜 잘 알지도 모르는 단체 간의 전쟁터에 발을 디밀어야 한단 말인가?
더불어 조건조차 의심스럽다. 그녀의 말만 들으면 좋아 보일지 몰라도 지구 [밖]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는 신뢰성 없는 이야기일 뿐이니까.
애초에 원화 가치가 우주에서 얼마나 통용될지 모르니 저 월급 이라는 게 지구 밖에서는 한 끼 식사조차 사기 힘든 돈이라 해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밥 한 끼 먹기 힘든 3,000원이 아프리카 난민들에게는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미개한(우주에서 온 외계인들 입장에서는)지구의 돈 따위 100억이든 1,000억이든 큰 가치를 가진다고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저는 제 삶에 만족합니다. 이런 해괴망측한 일에 연관되고 싶지는 않군요.”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혹시라도 오해할지 모른다는 마음에 단호하게 말한다.
“집으로 보내주세요. 제 마음이 변할 일은 절대 없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나였지만 사실 그러면서도 불안하다.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해도 내 앞에 있는 여인은 지구 밖 생명체이자 그들 중에서도 군인인 존재. 농담이 아니라 ‘그런 거 없고 다 강제였다 노예야!!!’라고 소리친다면 나에게 그걸 거부할 힘이 있겠는가?
그러나 다행히 알레이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시선에서 ‘멍청이. 굴러들어 온 복을 차는 구나’라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빠르게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눈치채지 못할 수준이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비밀서약은 해주셔야겠습니다.”
“기억을 지우거나 하지는 않나요?”
“네? 하하하! 저희 레온하르트 제국은 그런 비인도적인 국가가 아닙니다. 다만 이야기를 너무 넓게 퍼뜨린다거나 방송에 나온다거나 하면 제재가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뭐, 어차피 증거가 없으니 소용없겠지만.”
그녀의 말을 들으며 TV에 나와서 외계인에게 납치당했다는 외국 아저씨들의 미친 소리가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어쨌든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비밀서약 하고 돌아가면 되나요?”
“…정말 특이하네요. 제가 지구인을 꽤 만나봐서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우릴 귀찮아하는 건 처음이에요.”
“아, 됐으니까 빨리 좀 보내줘요.”
동원 훈련에 끌려온 예비군 같은 태도를 보이며 틱틱거린다.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이 망할 놈의 우주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음에는 강제 텔레포트 같은 걸 시키려고 하면 그냥 저항해야겠어. 어차피 꼬일 놈은 다 꼬이는 분위기잖아?’
혀를 차며 투명한 판의 계약서가 잠시 깜빡이더니 비밀 서약서로 변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낚아채 사인한다.
“어지간히 가고 싶으신 모양이네요.”
“당연하죠. 아니, 애초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계약을 90%나 수락한다는 게 더 의심스럽거든요?”
갑자기 정체도 알 수 없는 외계인들이 군인으로 데려다 쓰겠다는데 좋다고 따라가는 놈들이 오히려 미친놈 아닌가? 아니 목숨이 한 서른 개쯤 되는 것도 아니고 남의 전쟁터에 머리를 들이밀고 싶어 하다니?
그러나 알레이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군인이 된다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아니고 지구에서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군 생활을 강요받을 일도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단지 능력. 능력만 있다면 그만큼 보상을 받는 레온하르트 제국군은 누구나 들어오고 싶어 하는 곳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빙긋 하고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당신은 기가스에 타보고 싶지 않나요?”
“…….”
나는 그제야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계약이 90%의 확률로 성공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구를 하위 문명으로 보는 저 외계인들이 굳이 여기까지 내려와서 스카우트할 정도로 뛰어난 조종능력을 획득하려면 당연히 어마어마한 시간과 정성을 [대전쟁]에 할애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나 대전쟁을 플레이한 유저들이라면… 우주를 날아다니며 적들을 격추시키는 경험을 실제로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게임의 고수]보다는 [우주를 누비는 전투병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전쟁은 참혹한 일이지만 그걸 실감하며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전쟁은 아닌 것 같군요. 받아주세요.”
“하아. 대전쟁 플레이어 중에 반전주의자가 있을 줄이야……. 아깝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 알레이나가 한숨 쉬며 내가 내미는 보안서약서를 받아 들었다. 조마조마했지만, 어찌어찌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 그런데 그때 한쪽 벽이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더니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녀가 뛰어 들어온다.
“대위님! 스파이에요, 스파이!!”
“뭐?”
황당해서 중얼거리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알레이나와 비슷한 제복을 입은 양 갈래 머리의 소녀가 소리친다.
“저 자식 스파이에요!”
아니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리야?
“스파이라니. 혜란, 그게 무슨 말이죠?”
어이없어하는 나와 다르게 알레이나의 표정이 차갑게 식는다. 여태까지의 온화한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것. 그러나 그런 그녀의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혜란이라 불린 소녀가 흥분해서 소리친다.
“제가 저 녀석 점수 확인해 봤는데 완전 이상해요! 분명 우리 레온하르트 제국군에 입대해서 안의 정보를 빼내 가려는 스파이라고요!”
소리치는 소녀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쩌면 누명을 씌운 다음에 마음대로 이용해 먹으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러나 다행히 차갑게 식었던 알레이나의 표정이 풀어지고 입에서는 깊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혜란아. 이분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군인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지.”
“더불어 지금 보안서약서에 사인했지요. 당신네랑 연관되기도 싫다는데 스파이는 뭔 헛소리세요?”
귀찮아 죽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확신에 가득 찼던 양 갈래 꼬맹이의 얼굴이 혼란에 젖어든다.
“에? 아니, 그럴 리가. 에에? 하지만 틀림없이…….”
“예비 조종사님,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왜 아직도 예비 조종사…….”
따지려 드는 나였지만 알레이나는 딱딱한 표정으로 양 갈래 머리 소녀의 귀를 붙잡는다.
“따라와.”
“이, 이상한데… 스파이 맞을 텐…….”
“권혜란 소위!
“네, 네! 대위님! 아아, 아파요! 잠깐만…….”
기잉.
버둥거리는 소녀를 질질 끌며 문 밖으로 나간다.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 나는 응접실에 혼자 남아 잠시 멍하니 문을 보고 서 있었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이 몰아닥친다.
‘아, 아아, 이 미친놈… 이런 등신아… 앞에서 그렇게 조심하면 뭐하냐.’
사실 새로 생긴 대규모 오락실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대전쟁은 누가 봐도 미심쩍기 짝이 없는 게임기였다.
뛰어난 그래픽이야 뭐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그야말로 인공지능이나 다름없는 관제인격과 NPC들, 뭘 해도 상관없는 자유도,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주제에 너무나 체계적인 조종법까지.
“으, 그런 말도 안 되는 게임이 있을 리가 없는데. 너무 당연한 거였는데.”
심지어 그런 말도 안 되는 게임이 나타났는데 소문조차 안 나던 상황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다. 내가 그놈의 게임에 미쳐서 현실을 외면하고 있던 것이다.
“으으, 과연 게임중독이란 무섭구나! 이성적으로 생각했으면 상황이 이리되지는 않았을 텐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니.”
그러나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기에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는다.
“아, 됐어. 집에 가면 그만이지.”
액막이했다고 생각하자. 뼈아픈 실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새로 발견한 재미있는 게임을 무시하는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잉!
다행히도 알레이나는 금방 돌아왔다. 무슨 상황인지 그녀는 꽤 미묘한 표정이다.
“그 꼬맹이는 뭐랍니까? 아니, 그걸 떠나서 그런 꼬맹이도 군인이에요?”
“꼬맹이라니! 내가 학위 딸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핏덩이가 건방… 읍읍!!”
아직 미처 닫히지 못한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자 알레이나가 이내 미묘한 표정을 지우고 사과한다.
“호호, 죄송해요. 시스템에 오류가 좀 있었던 모양이군요.”
“오류요?”
“네. 황당하게도 예비 조종사님이 100스테이지를 클리어했다고 표시되어 있어서요.”
“…아, 그래요? 이상하네요.”
“호호, 역시 그렇지요?”
필사적으로 억눌러 ‘그게 왜요?’라고 되묻지 않을 수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아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대전쟁은 100개의 스테이지로 이루어진 게임이다. 즉 올 클리어한다면 100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게 오히려 정상이라는 뜻. 그런데 그걸 오류라고 받아들이다니…….
뭔가 장난을 치는 분위기도 아니었던 만큼 그들과 나의 인식 중 뭔가 다른 점이 있다는 걸 깨닫고 당황했지만, 다행히 알레이나는 나를 보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대전쟁을 플레이해 보셨다면 당연히 눈치 챘겠지만 스테이지가 100개라고 해도 그건 [이렇게 하면 단 한기의 기가스가 전쟁의 판도를 다 뒤집어엎겠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숫자일 뿐입니다. 물론 우주적인 관점에서 본다면야 그런 전례도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전쟁은 현실이고 한기의 기가스가 적군을 다 쓸어버리는 것 따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대전쟁은 결국 동료 NPC들과 호흡을 맞추고 작전에 순응해 전쟁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평범한 조종사가 클리어 가능한 스테이지는 15스테이지 정도로 예비 조종사 자격을 얻을 수 있는 10만 점은 7스테이지만 클리어해도 획득할 수 있죠.”
“…….”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우주를 누비던 자신들이 굳이 지구로 찾아온 것은 대전쟁의 시뮬레이션 게임기가 우주로 쏘아 보낸 신호 때문이며, 그 조건은 대전쟁을 플레이한 유저가 10만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즉, 레온하르트 제국은 대전쟁에서 10만 점의 점수만 획득할 수 있어도 어느 정도의 대가와 인력을 사용해서 포섭할 가치가 있는 조종사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10만 점이다.
겨우.
겨우…….
겨우 10만 점.
‘조용히 돌아가야 한다.’
위기감이 몰려온다. 여태까지는 단지 귀찮고, 번거롭고, 짜증나는 일에 말려들었다.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조금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고작 10만 점을 획득한 유저가 쓸 만한 조종사라면, 어쩌면 녀석들은 나를 [반드시 포섭해야 할 대상]으로 판단할지도 몰랐다.
‘쓸데없는 재능 때문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언젠가 내 인생에 문제가 생긴다면 당연히 칭호를 보는 능력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지 설마하니 게임에서 터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니, 애초에 [오락실에 이상할 정도로 좋은 오락기가 들어왔다]는 정보에서 [외계인이 설치했을 것이다!]라는 판단을 누가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칭호라도 확인했다면…….’
아마 그랬다면 오락실에 있던 대전쟁에서 외계인의 존재를 유추하는 것 역시 가능했을 테지만 일단 오락실에 도착하면 게임하기에 바빠서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는 게 통한의 실수다.
“뭐, 어쨌든 돌아갈 거면 상관없는 일이겠죠?”
“네? 물론 그렇기는 하죠.”
“그럼 보내주세요.”
“흠.”
알레이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본다. 아무래도 뭔가 미심쩍다는 표정.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날 붙잡을 명분은 없는 듯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안타깝군요. 전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끔찍한 소리 마시죠.”
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다행히 그날의 용건은 거기까지였다.
*
“언니! 그 녀석 이상하다니까? 대전쟁은 수백억 대나 팔린 신뢰도 높은 시뮬레이션이야! 이유가 없이 오류가 날 리가 없잖아?”
“소리치지 마. 나도 알고 있으니까.”
대하를 돌려보낸 알레이나는 땍땍거리는 혜란을 무시한 채 생각에 잠겼다. 대놓고 응접실로 뛰어 들어와 소란을 피운 그녀의 행동은 물론 경솔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혀 이해가 안 가는 수준은 아니었다.
‘확실히 이상하긴 해. 하지만 정말 스파이라면 100스테이지 클리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으로 조작할 리도 없고… 무엇보다 그 어처구니없는 점수를 만들 일은 더더욱 없을 거야.’
눈까지 감고 생각에 잠겨 있는 알레이나였지만 혜란은 신경 쓰지 않고 중얼거린다.
“그 녀석, 분명 내가 자기가 스파이인 걸 눈치챈 것 같으니까 곱게 돌아간 거야. 아니었으면 사양하다가 미녀의 애원에 어쩔 수 없이 들어온다, 라는 콘셉트를 잡아서 제국군에 들어오려고 했겠지.”
단정적인 어투였지만 알레이나는 고개를 흔들며 아직 이름도 확인하지 못한 한국의 소년을 떠올렸다. 문명 수준이 수백 년 이상 차이나서 그렇지 그녀도 혜란도 [지구]출신이었기에 그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그녀들과 그리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꺼려하고 있었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오래 해온 만큼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능숙한 그녀는 그 소년이 레온하르트 제국군의 존재에 당황하고 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스파이라? 물론 그녀를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인재를 거느린 단체가 이렇게나 어설프게 일을 처리할 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무엇보다 결국 별다른 접촉 없이 돌아간 이상 그 어떤 작전도 무용지물인 상태가 아닌가?
“결국 대전쟁이 오류가 났다는 결론인데.”
“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니까?”
“그럼 대전쟁을 해킹해서 점수만 수정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 그건…….”
말문이 막힌 듯 입만 벙긋거린다. 왜냐하면 대전쟁의 점수를 아무 흔적 없이 수정하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우리끼리는 결론이 안 날 것 같으니 기술부에 보고나 올려둬. 이거 참, 오류가 날 리가 없는데 오류라니.”
대전쟁은 전 우주를 대상으로 수백억 대나 팔려나간 신뢰도 높은 시뮬레이션이다. 대전쟁에서 일정 점수만 넘어도 레온하르트 제국 최고의 교육기관인 파이넬 아카데미의 시험을 볼 자격을 부여할 정도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만약 대전쟁의 점수를 조작하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었다면 파이넬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에 온갖 부정이 판을 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점수가 진짜일 리는 더더욱 없고.”
만약 대하가 획득한 것이 어지간한 높은 점수였다면, 알레이나는 당연히 오류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점수가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포섭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대전쟁이 표시하는 점수를 [신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하가 얻은 점수가 만약 50만 점이었다면? 그녀는 자신이 빼어난 인재를 얻었다고 보고를 올렸을 것이다. 대전쟁에서 50만 점 이상의 점수를 얻어내는 건 숙련된 파일럿들에게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당장 기가스를 맡겨도 괜찮을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고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얻은 점수가 100만 점이었다면? 그녀는 자신이 놀라운 천재를 발견했다고 보고를 올렸을 것이다. 실전 경험조차 없이 대전쟁에서 100만 점 이상 획득할 수 있는 유저는 파이넬 아카데미의 조종학부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최후에는 영관급 장교가 될지도 모를 정도의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1,000만 점이었다면?
그럼 바로 보고를 올리지는 못하고 좀 더 확인했을 것이다. 대전쟁에서 1,000만 점의 점수를 딸 수 있는 이는 레온하르트 제국에도 5명밖에 없는 기간트 마스터(Gigant Master)의 자질을 타고난 자로, 제국군에 충성을 맹세하고 라인을 잘 탄다면 대장군의 자리에 오르는 것조차 가능할 정도니 재확인은 필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수에서조차, 대전쟁 자체의 오류를 의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몇 번이나 말했다시피 대전쟁은 신뢰도 높은 시뮬레이션이니까.
그러나…….
“하하. 아무리 그래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점수면 오류인 게 당연하지.”
피식 웃으며 알레이나가 중얼거렸다.
“12억 8,000만 점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