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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11화 (1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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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3 이상한 오락실의 최첨단

‘그 외계인 녀석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막말로 그 우주선 같은 거에 타서 멀리서 지켜보고 있으면 내가 그녀를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살짝 경계하는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무시하고 오락실로 향한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무시하는 게 제일이다. 괜히 집으로 끌고 가기도 애매한 일이고 말이다.

혹여 그 외계인 여자가 아빠한테 반하기라도 해서 집에 머물게 된다거나 하는 3류 러브 코미디가 벌어지는 것도 참, 진심, 정말, 진짜, 진정으로 싫은 일이니까.

물론 아무리 멋진 남자라도 과연 그 매력이 외계인에게까지 통할 것인가? 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아버지의 매력은 종족을 따지지 않는다.

농담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도 아버지 근처에서는 정신을 못 차린다.

심지어 동물원에서 탈출한 사자가 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부리다 잡혀 들어간 적도 있다.

‘아, 그때 사육사들의 표정을 아직도 못 잊겠어.’

심지어 야생에서 잡아온 지 얼마 안 된 녀석이었다는데 무슨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재롱을 떠는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공황에 빠져 보고 있는 사육사들의 모습도…….

참고로 사자는 암사자였다.

“그나저나 뭐부터 할까나. 대전 게임은 지겨운데.”

오락실에 들어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어차피 어지간한 게임은 다 해본 것이라서 크게 흥미가 일지도 않는다.

일반 어드벤처 게임은 결국 타임 어택 이상의 의미가 없고 대전 게임의 경우는 주구장창 이기기만 해서 재미가 없으니까.

“사격 게임이나 할까나. 아니, 그것도 별로 특별한 건… 응?”

하지만 그러다가 오락실 구석에 있는 커다란 오락기기 하나를 발견한다.

구석이라고는 하지만 어지간한 방 정도의 크기의 기기라서 그 존재감이 장난 아니다.

들어가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슬쩍 보면 무슨 기계들로 가득 차 있다.

기기 내부로 들어가 투입구에 1,000원짜리 지폐를 넣는다.

게임 한 판에 1,000원이면 너무 비싼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난 오히려 다른 감각에 빠졌다.

왜냐하면 게임기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첨단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천 원 받는 걸로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데.”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뭐 어차피 내 장사도 아니다. 다 이득이 되니까 하는 거겠지.

온몸이 푹 잠겨드는 의자에 앉아 화면 위에 붙어 있는 착용법에 따라 서클렛 비슷한 걸 착용하고 장갑을 꼈다.

약간은 헐렁한 장갑이었는데 의자에 삑- 하고 전원이 들어오자 삽시간에 줄어들어 사이즈가 재조정된다.

-탑승자 인식 완료. 헤르메스 시스템을 기동합니다.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전면 화면이 확 하고 밝아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투가 시작된다.

쿠르릉! 쾅!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어난다.

배경은 우주다. 위에서부터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 정도 되는 기판이 내려와 장치된다.

버튼의 숫자가 최소 100개는 넘어 보인다.

“뭐, 뭐야? 왜 이렇게 복잡해?”

당황하며 허둥거리는데 눈앞으로 새하얀 색의 기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족 보행, 그러니까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일종의 로봇이다.

“뭐야, 이거 기갑물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하얀색의 기체가 총으로 보이는 물건으로 내 쪽을 겨누고---

쾅!

화면이 터져나가는 임팩트 후 삽시간에 어두워진다.

[GAME OVER]

어두워진 화면에서 떠오르는 하얀 글자에 망연자실해한다.

“뭐야, 목숨 한 개야? 시작하자마자 끝?”

게임을 한 시간이 채 10여 초도 되지 못한다. 그야말로 시작하자마자 끝난 것이다.

이 기기에 들어와서 서클렛이랑 장갑 낀 시간이 더 길겠다.

“뭐야, 이거 버튼이 너무 많아. 어쩌라는 거… 아, 책자가 있구나.”

투덜거리다가 구석에 있는 전화번호부 비슷한 책을 들어 올린다. 보아하니 설명서 같다.

대체 무슨 오락기인지 설명서가 전공서적 수준이다.

팔락, 팔락.

의자에 앉아서 차분하게 페이지를 넘긴다.

설명서에는 조종판의 사용법과 각각의 키가 가진 기능, 그리고 계기판 보는 법 등을 포함해 궁극적으로 게임 속의 머신, 속칭 기가스(Gigas)의 조종법이 실려 있다.

말하자면 이 기가스라는 로봇으로 싸우는 법이 실려 있는 것이다.

“…근데 이거 전투기 조종보다 어렵잖아?”

네가 뭔데 고작 게임을 전투기 조종보다 어렵냐고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이 기가스라는 로봇의 조종법은 보통 난해한 게 아니다. 단순 오락이 아니라 체계적인 학습과 수련이 필요한 학문에 가깝다고나 할까?

물론 실전에서 배우는 게 이론을 공부하는 것보다 체득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이건 그 정도 난이도를 아득하게 벗어난 수준이다.

다시 천 원짜리 지폐를 집어넣은 후 천천히 조종법을 숙지해 나간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메카닉 FPS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이었는데 머리에 쓰고 있는 서클렛과 끼고 있는 장갑, 그리고 조종판이 주된 조작기기라고 할 수 있다.

-필드 진입. 헤르메스 시스템의 작동을 시작합니다.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전면 화면이 확 하고 밝아진다.

상황은 아까와 똑같다. 사방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폭음이 울려 퍼지는 걸 느끼며 양손을 슥 움직인다.

슈욱!

이 특이한 오락기의 조작법은 기본적으로 컴퓨터와 비슷했다.

말하자면 조종판은 키보드라고 할 수 있고 끼고 있는 장갑은 마우스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양손에 장갑을 끼고 있는 만큼 양손 모두가 키보드와 마우스를 다 조작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과 서클렛을 장착한 채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점이 이동한다는 점이다.

“왼손으로는 움직임, 오른손으로는 공격을 하는 식으로 세팅하면 조종하기 편하려나.”

하얀색 기체가 나타나기 전에 여기저기 움직여 본다.

굴곡조차 없이 판판한 조종판에는 대략 100여개의 버튼이 있었는데 어떤 버튼을 활성화했느냐에 따라 반응이 전혀 다르다.

게다가 손가락 하나에도 센서가 따로 달려 있는 건지 손가락 모양마다도 반응이 달랐다.

“아니, 이건 뭐,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지는데.”

투덜거리면서도 최대한 조종법을 숙지한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듯 하얀색 기체가 눈앞으로 날아들어 총구를 겨눈다.

취잉!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소리다. 굳이 예를 들자면 심벌즈를 모서리끼리 충돌시키는 소리?

하여튼 그런 소리와 함께 날아든 레이저 빔이 내 주위로 펼쳐진 에너지 막에 충돌해 사라진다.

조종법에 따라 실드를 발생시킨 것.

화면을 보니 오른쪽 위에 있는 에너지 창이 5분의 1가량 깎여 나간다.

‘보유 에너지? 엠피 같은 건가.’

횡으로 쭉 움직이며 에너지 창을 살핀다. 회피 기동을 하며 두고 보니 서서히 차오르는 게 있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는 모양이다.

쾅!

오른손을 움직여 총을 쏘아내자 폭음과 함께 적기 중 하나가 폭발한다.

아직 감각이 완벽하지 않아 어색한데도 용케 명중했다.

“오케이, 좋아! 다 쓸어주겠어!”

피핑! 쾅! 취잉!

왼손과 오른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적의 공격을 막고 빈틈을 노려 공격을 가한다.

난이도가 장난 아니어서 잡념을 할 틈이 없다.

“어? 뭐야, 저놈. 광선검? 우주전투에 검이라고?”

그때 느닷없이 달려든 검은색 기체의 공격을 피하며 황당해한다.

아니, 적들과의 간격이 무진장 긴 전투에서 검이라니 미치지 않은 이상 싸움이 될 리가…….

촤앙!

“우왁?!”

순간 나도 모르게 상체를 크게 트는, 게임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꼴불견 자세를 취하고 말았다.

검은색 기체가 들고 있던 광선검이 주욱 길어지며 내 기체를 베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인 데다 예상도 못한 일격이라 대응할 틈이 없었다.

[GAME OVER]

“으, 뭐야. 뭐 이런 사기가 다 있어?”

황당해하며 투입구에 지폐를 조공한다. 멈출 수가 없었다.

[GAME OVER]

[GAME OVER]

[GAME OVER]

검을 들고 있던 사기 기체의 머리에 광자포를 먹여주고 다른 전장으로 향하다가 10기가 넘는 적에게 둘러싸여 당한다.

10기가 넘는 적의 움직임을 유도해 서로 충돌하게 하고 사선이 겹치게 만든 후 모조리 추락시킨 후 전진하다가 보스급으로 보이는 거대 로봇을 만나 수천 개가 넘는 미사일의 탄막에 휩쓸린다.

회피기동을 하며 광자포와 미사일을 모조리 피해낸 후 마치 작은 체구의 사람이 덩치 큰 사람을 메치듯 거대 로봇을 던져버려 녀석이 쏘아낸 미사일 무리에 명중시켰다.

그리고 머리를 광자포로 부숴 버림으로써 마무리… 했다가 적의 전함(戰艦)이 뿜어낸 주포에 장렬히 산화한다.

“아~ 전쟁이니 너무 깝치면 적의 시선이 집중되는구나.”

하지만 게임이라는 게 뭔가?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가?

콰과광!

모든 공격을 피하고 파고든다. 아군 사이에 숨어 적을 저격하고 때로는 근접박투라는, 우주전투에 전혀 안 어울리는 짓이라도 해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적을 파괴한다.

단 한 기의 로봇으로 전황 자체를 뒤바꿔 버린다.

놀랍게도 이 게임은 자유도가 거의 무한에 가까워서, 전장에서 무슨 짓을 해도 알아서 전황이 조정되는 상황.

그러나… 그럼에도 끝은 있었다.

주변을 완벽히 정리하고, 보스를 물리치고, 주포를 피해낸 일순간, 전장 자체가 소강자체에 들어간 것.

그리고 그렇게.

[Stage Cleared!]

어두워진 화면에서 떠오르는 하얀 글자에 축 늘어진다.

극도의 집중 상태로 플레이해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다.

“후우… 후우… 와, 와, 와…….”

주먹을 불끈 쥔다. 그리고 벌떡 일어난다.

“완전 재미있다!!!”

오오, 이런 명작이 있었다니!!

난이도가 거지같아서 다른 사람들은 금방 죽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도전 의지가 생긴다.

게다가 영상이나 사운드가 뛰어나서 난이도 좀 떨어뜨리면 꽤 잘 팔릴 것 같다.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작품이구만. 아휴, 등신들. 좀 쉽게 만들었으면 막 TV에서 공개 방송으로 경기도 열리고 그럴 텐데.”

가끔 이런 게임이 있다. 돈도 꽤 들인 것 같고 영상이나 게임성도 괜찮아 보이는데 망하는 게임.

그러고 보면 이 게임은 광고 한 번 본 적 없다.

이만한 게임을 만들려면 들어가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뭐, 내가 걱정해 줄 문제는 아니지. 오히려 걱정할 문제는 1,000원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냐 하는 문제인가?”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오락기가 지폐를 씹어 삼킨다.

설명서는 제대로 살피지도 않는다. 어차피 이런 건 실전으로 익히는 법이니까.

“엔딩까지 몇 시간이나 걸릴까나.”

새로운 게임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이 망할 놈의 게임의 스테이지가 100개나 된다는 걸 모를 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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