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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3 이상한 오락실의 최첨단
“대하는 꿈이 뭐야?”
언젠가 그렇게 물었던 소녀가 있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내린 귀여운 아이였다. 작은 일에도 잘 웃고 친절하며 매사에 열심히 살아가는 소녀.
“흠. 일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적당히 좋은 대학을 찾아서 졸업해야지.”
“그 뒤에는?”
“적당한 회사를 찾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싶어.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좋은 여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거지.”
“후후. 적당함의 연속이네. 그나마 ‘좋은’이 붙은 건 아내를 구할 때뿐이고.”
“그럼. 아내는 꼭 좋은 여자를 구해야 하는걸.”
그녀는 편안했다. 예쁘거나 사람을 잘 다룬다거나 뭔가 뛰어난 재능을 가지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옆에 있으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평온함을 느꼈다.
그녀는 친절하며 뭐든 최선을 다하는 소녀였다. 귀여웠고 성격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범했다.
“너는 꿈이 뭔데?”
“에, 아마 웃을 텐데.”
“응? 아니, 별로. 남의 꿈을 비웃는 취미는 없어.”
태연한 내 말에 그녀는 수줍게 얼굴을 붉힌다.
“조,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또 사랑받는 신부도.”
“…….”
“와, 와악! 역시 이상하잖아!”
“아냐, 아냐. 진짜 잘 어울린다.”
“정말?”
그렇게 묻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심장이 다 떨릴 정도였다.
그녀는 대단한 미녀도 아니고, 또 대단한 재능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옆에 있으면 그냥 한평생을 조용히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첫사랑이었다.
마음이 치유된다는 게 아마 이런 느낌이겠지.
물론 내 마음이라는 건 이미 한번 갈가리 찢어져 엉망으로 기운 누더기나 다름없지만 그럼에도 그녀와 함께라면 평화로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할 말이 있어. 방과 후에 옥상으로 와 줘.
그런 편지를 받았을 때. 또 그 대상이 그녀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설렜다고 감히 누가 날 비난할 수 있을까.
“아, 와, 와줬구나…….”
옥상에는 그녀가 있었다. 날 발견하자마자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음. 할 말이라는 게 뭐야?”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내 침착성이 처음으로 증오스러운 순간이었지만 다행히 그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어… 어… 아! 어떻게 해!”
새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는 그녀의 모습은 기절할 정도로 귀엽다.
“괜찮아?”
“으, 으응. 아… 막상 말하려니 정말 떨리네. 처음 본 날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처음 본 날 부터라니! 그렇다면 그녀도 나를…….
“저기 힘들다면.”
“아니. 더 이상 시간 끌 수 없어. 오늘 말해야 해.”
당장에라도 타오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어, 어…….”
떠듬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나 역시 두근대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마음을 다잡은 듯---
“어, 엄마라고 불러보지 않을래?”
말하고 말았다.
“…뭐?”
“와! 말했어! 말하고 말았어~!”
꺄아아~ 하며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순수한 소녀의 그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내 마음은, 그리고 청춘은 그것으로 무너지고 있다.
아니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버럭 소리를 지으며 깨어난 곳은 교실이 아닌 방이다. 그래, 이건 거의 8개월 전의 일이니까.
그러니까 지금 난 예전의 일을 꿈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하필 이런 꿈이라니.
“허억. 허억. 허억.”
힘겹게 숨을 토해낸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아, 악몽이다…….”
*
언제나와 같이 유쾌한 우리 형은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앗! 우리 동생, 아침부터 표정이 왜 이래?”
“거지 같은 꿈을 꿔서.”
“악몽?”
“말하자면 그렇지.”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길가에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발견한다.
“아, 차에 치인 건가?”
“음.”
그건 시체였다. 물론 사람일 리는 없고 길을 떠돌던 개로 보였는데, 목걸이를 하고 있는 걸 봐서는 원래는 사람에게 키워지고 있던 녀석인 것 같다.
시체는 점점 부패하기 시작한 상태라서 누구라든지 보면 눈살을 찌푸릴 광경이었지만 난 오히려 거기에 접근해 가방을 뒤졌다.
치이익-!
“뭐 하는 거야? 그것보다 살충제를 가지고 다녀?”
형이 의아해하거나 말거나 개 시체 주변에 살충제를 뿌리자 몰려 있던 벌레들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물론 이건 아무 의미가 없는 짓이다.
차라리 시체를 정리해 치우기라도 하면 거리 미관에 도움이라도 될 텐데, 밀폐된 장소도 아닌 야외에서, 그것도 아무 조치도 없이 살충제를 뿌려봤자 다시 벌레들이 꼬일 게 분명하니 쓸데없는 삽질이 아닌가?
아니, 삽질이라도 하면 시체라도 묻을 수 있을 테니 이건 그보다도 못한 짓이다.
“아니, 그냥 뭐, 신경 쓰여서. 가자.”
“……?”
하지만 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살충제를 뿌린 게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다.
“천 마리는 옛날에 넘어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더 이상은 없는 건가?”
난 칭호를 볼 수 있다.
평소 그게 보이는 건 사람들뿐이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동물이나 식물의 칭호를 보는 것까지 가능하고 거기서 더 집중하면 심지어 무생물의 칭호까지 볼 수 있다.
게다가 [분류]에 [구체화]까지 가능하다는 걸 생각하면 이거 은근히 쓸모가 많다.
탐정을 하면 딱 좋은 능력인 것이다.
단, 나로서도 칭호를 볼 수 없는 존재가 딱 한 명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볼 수 없다고 하기보다는 공란(空欄)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
그렇게 내가 칭호를 볼 수 없는 단 한명은.
“나지 뭐.”
그래, 나다.
난 나 스스로의 칭호를 볼 수 없다.
만약 볼 수 있다면 내 심리 상태나 대략적인 미래시(물론 지나치게 대략적이라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까지 가능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머리 위에는 칭호가 떠 있지 않다.
“그럼 공부 열심히 해.”
“그다지.”
“하하.”
어색하게 웃는 형과 헤어져 교실로 향하며 생각한다.
“하지만 새로운 칭호가 생기지 않다니 좀 안타깝네. 그것 때문에 들고 다니던 살충제인데.”
그래, 난 내 칭호를 볼 수 없다. 대신 내가 원하는 칭호를 [선택]하여 자유로이 변경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달고 있는 칭호는 대부분 그때그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변경하는 건 그야말로 무의미한 짓이겠지만 적어도 이 칭호라는 건 내게도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승하기 때문이다.
칭호를 [장착]하면 [능력치]가.
“정말 환장하겠군.”
옛날부터 의심해 왔다.
이 세상은 진짜인가?
‘나’라고 하는 객체는 과연 [실존]하는가?
사실 이 세상은 누군가가 프로그래밍해 만들어진 결과물이고 자신의 기억이나 추억 모두 한 편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이 세상이 불과 하루 전이나 한 시간 전, 심지어는 3초 전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보장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보통 이건 망상이다. 이런 걸 의심하는 건 그냥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나이를 먹고 현실적인 성격을 갖추게 되었음에도 이런 의심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 게임(Game)이었기 때문이다.
“안녕.”
“좋은 아침.”
무감동한 아침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아 책상 위에 엎어진다.
어차피 이른 아침이기 때문에 다들 비몽사몽으로 보인다.
“어째서 외계인이냐고.”
항상 의심해 왔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이 사실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이 아닐까.
내가 보는 세상은 마치 게임 같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불꽃을 쏘아내는 마법사라든지 검기를 뿜어내는 검사 같은 게 돌아다녀야만 게임이 아니다.
애초에 [칭호]라든지 [능력치] 같은 건 현실에 있을 만한 종류의 물건이 아니니까.
그래서 늘 생각해 왔다.
지금 이 세계는 사실 초월적인 과학력을 가진 존재가 만든 게임이 아닐까?
쉽게 말해 [인간의 일생 온라인]이라든지.
접속하면 [밖]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고 지구에서 살아가며, 죽으면 로그아웃 되는 그런 게임.
그렇게 설명하면 지금 내 능력이 대충 설명된다. 말하자면 버그라고 생각하면 끝 아닌가?
게임 밖에서만 볼 수 있는 능력을 버그나 에러가 발생해 보게 되었다면 대충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외계인이 나타났다.
아니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그래, 차라리 만약 모피어스(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에게 현실이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인도자)가 나타나 ‘여기는 가상의 세계다, 소년’이라고 말해준다면 난 좀 놀랄지언정 곧 납득할 것이다.
아, 물론 그래도 난 파란 약을 먹을 거지만.
스륵.
조심스럽게 의자를 당기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좋은 아침.”
“아, 미안. 깼어?”
“그냥 엎어져 있던 거지, 뭐.”
오늘도 귀여운 짝에게 태연히 말한다.
이 녀석 이름이 이선애였지. 내 평화로운 일상 중 한 명이기 때문에 굳이 올려 봐 칭호를 확인하지 않아도 기억하고 있다.
“피곤해?”
“요새 인생이 피곤하네.”
투덜거리며 다시 엎드린다.
뭐, 이야기가 잔뜩 새긴 했지만 어쨌든 난 칭호를 장착하는 것으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지금 내가 장착하고 있는 칭호는 [파리 사냥꾼]. 심지어 설명도 달렸는데 그 내용이 이렇다.
[파리 사냥꾼]
근력, 체력, 생명력+10
파리를 100마리나 잡고 있다. 안타깝다.
아, 설명이 뭐 이래! 기분 나빠!
“이 텍스트는 누가 쓴 건지.”
“응?”
“아니, 혼잣말.”
하지만 웃기는 게 모기, 바퀴벌레, 심지어 풍뎅이나 방아깨비 등 온갖 곤충을 다 잡고 다녀도 칭호를 주는 건 파리뿐이라는 것이다.
처음에(아주 어릴 때)파리를 잡을 때 얻은 때 얻은 칭호가 바로 플라이 슬레이어(Fly slayer).
그리고 나이를 먹어 별생각 없이 파리를 잡았을 때 얻은 칭호가 파리 사냥꾼이다.
처음에는 영어였다가 다음에는 한글이라는 점에서 일관성조차 없는 칭호지만 어쨌든 능력치는 더 높아졌기에(플라이 슬레이어는 근력, 체력, 생명력+5였다)더 위의 수준을 노리기 위해서 파리들을 전멸시키며 다녔지만 더 이상 생기는 게 없다.
아무래도 사냥꾼이 끝인가 보지.
‘하지만 파리사냥꾼이 뭐냐, 파리사냥꾼이.’
솔직히 너무 폼 안 나는 칭호지만 가슴 아프게도 내가 가진 칭호는 이 두 개뿐.
아무래도 획득할 수 있는 칭호라는 게 대체적으로 뭔가를 죽여야 얻는 모양이다.
그래서 떠돌이 개 같은 거라도 한번 노려볼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냥 포기했다.
그냥 운동하고 말지 도저히 할 짓이 아니다.
‘슬레이어라…….’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슬레이어 칭호는 그리 흔한 게 아니다.
사실 당연하다. 그건 뭔가를 죽여야 가지게 되는 칭호니까.
물론 보통 사람들도 살면서 온갖 생물을 죽이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의 칭호는 그때그때 그 사람을 대표하는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에 파리 사냥꾼 같은 걸 칭호로 달고 나타나는 녀석은 없다.
아무리 시시한 인생이라고 해도 파리를 죽이거나 모기를 죽이거나 하는 게 그 사람을 대표하는 ‘상태’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살면서 봐온 슬레이어 칭호는 대여섯 개 정도로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이던 게 바로 경은의 휴먼 슬레이어다.
물론 이곳은 평화로운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휴먼 슬레이어는 그녀뿐(물론 더 있겠지만 일단 내가 본 건 그녀뿐이다)이고 나머지 슬레이어 소유자 몇 명은 개나 고양이 등을 죽인 것으로 짐작되는 도그 슬레이어, 혹은 캣 슬레이어 등이었다.
사실 휴먼 슬레이어에 비하면 도그 슬레이어나 캣 슬레이어 등은 귀여운 수준이라고 해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제정신이 아닌 느낌이 물씬 풍기기 때문에 슬레이어 타이틀을 가진 녀석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멀찌감치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안녕, 경은아!”
“응. 좋은 아침.”
여유 넘치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고개를 들고 싶지 않다. 마침 그녀 생각을 하던 중이라서 더 그렇다.
사실상 지금 내 근처에 있는 슬레이어 칭호 사용자는 그녀뿐이니까.
“안녕, 대하야. 피곤해?”
엎드려 있는데 왜 굳이 말을 걸어! 혹시 폐가 될까 봐 조심스레 앉으려던 선애랑 너무 차이 나잖아!
“…음.”
하지만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새삼스럽게 그녀의 외모에 다시 넋을 잃었다거나 하는 건 물론 아니다. 난 그런 거에 별로 비중을 주지 않는 편이니까.
그러니까 지금 내 상태를 말하자면, 그래, 넋을 잃었다기보다는 혼란에 빠져 있다는 표현이 맞겠다.
왜냐하면 매일 보고 한숨 쉬던 휴먼 슬레이어 칭호를 오늘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이런 글자가 떠 있었다.
[원일 고등학교]
[인간 사냥꾼 이경은]
“…….”
하나님.